196년에 조조가 천자를 봉대하고 새로운 수도를 허창으로 정하자 원소는 뒤늦게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원소는 조조와 같이 천자 봉대의 기회가 있었고 특히 저수가 강하게 권고했습니다.

일설에는 곽도 역시 천자 봉대를 주장했으나 다른 기록에는 곽도가 천자 봉대를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심배, 순우경은 확인된 기록마다 확실하게 반대했다고 전하므로 원소는 이 둘의 계책을 수용했다고 봐야 합니다.



진수가 '범증'에 비교할 정도로 꾀가 많은 전풍은 원소가 후회하자 차라리 군사를 동원해 허창을 공격하여 한헌제를 강제로 끌고 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원소는 이것조차 포기하면서 한헌제는 영구히 조조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창졸간 무슨 망령이 들었던 것일까요.



일단 원소가 결단력이 없어 고민하다가 기회를 놓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원소는 찬성측 의견과 반대측 의견을 모두 종합했고 반대측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고 여겨 주체적으로 한헌제 옹립을 포기한 바입니다.


원소의 참모진이 더 무능하여 기회를 놓친 것도 아닙니다. 기록에 따르면 조조 정권의 하후돈, 조인, 만총 역시 한헌제 옹립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일단 입장이 확실하지 않은 곽도는 미뤄두고 저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찬성합니다:


1. 원씨는 4대가 고위직을 역임하여 세상에 베푼 것이 많다.
2. 사람들이 원소가 한나라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아주길 바란다.
3. 지금 병력도 많고 원소를 추종하는 선비들도 많아 업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한헌제를 맞이하면 대의명분까지 갖춰 무적이 된다.



여기에 순우경, 심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합니다:


1. 한나라는 이미 망했다.
2. 원소가 황제를 맞이하면 한나라를 다시 살릴 수는 있는데 이미 각지에 군웅들이 할거해 지멋대로 하거늘 황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3. 황제가 있으면 군사를 동원할 때마다 보고해야 하고, 그럼 원소의 권위가 약해지고. 그렇다고 보고하지 않으면 황제를 기망한다고 욕만 먹는다.



후한서, 삼국지는 모두 한헌제漢獻帝는 원소가 지지했던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반대측 의견을 종합하면 결국 한나라는 이미 망했는데 황제는 어쨌든 황제라서 받아들이면 원소는 2인자가 되고, 그렇다고 1인자 역할을 했다간 오히려 역풍逆風이 분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간단히 말하면, 원소가 누군가의 명령을 받는 권력 구도를 만들어선 안된다는 뜻과 같습니다.



한번 풀어서 해석을 해봅시다:


한나라는 공식적으로 220년에, 한헌제가 조비에게 선양하면서 망했습니다.

그러니까 관도대전, 적벽대전, 심지어 조조의 죽음까지 모두 한나라 역사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미 동탁이 낙양을 파괴하고 장안으로 천도한 191년부터 한나라는 관서 일부를 제외하고 중국의 통제권을 잃었습니다. 고려와 후백제가 싸우던 때의 신라와 비슷한 입장이라 보시면 됩니다.



저수는 한헌제를 봉대하면 천자의 명령으로 전쟁을 수행하므로 원소와 적대하는 세력을 모두 반역자로 규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배와 순우경은 이미 한나라는 망한거나 똑같고 군웅들이 지 멋대로 다투는데 천자의 명령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받아칩니다.



문제는, 한나라가 사실상 죽었어도 공식적으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국가였고.............

그럼 황제를 황제로 대접해야 하는데 하북에서는 한헌제가 1인자가 되고 원소가 2인자가 됩니다.

원소가 2인자가 되면 원소 휘하 선비들이 계속 원소를 섬길까요. 아니면 한헌제를 섬길까요.

원소가 제 아무리 날고 길어도 결국 한나라의 신하입니다.


만일 원소가 황제를 황제로 취급하지 않고 자신이 황제처럼 굴면? 그럼 공식적으로 역적 인증. 그 후폭풍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황제를 대접하든 하지 않든, 원소는 결국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수도 있음을 심배와 순우경이 경고했고 원소는 결국 한헌제 옹립을 거부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만일 원소 휘하 모든 선비들 중 다수가 한헌제 옹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리고 순우경과 심배의 불충不忠을 규탄한다면 원소도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입니다.

만일 이 여론과 대립했다간 원소는 반역자라는 인식이 퍼지고 그럼 원소 정권을 유지하는 선비들이 이탈하게 됩니다.

그런데 원소는 한헌제를 무시했고, 원소 정권은 이후로도 9년 더 무사했습니다. 이탈하는 사람도 없었군요.



원소 휘하의 선비들 사이에서, 한나라를 그리워는 하되, 굳이 한헌제를 통해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는 동의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모순된 여론이 공존할 수 있었던 까닭은, 원소는 한소제漢少帝가 적통이라 주장했고, 실제로 한소제가 적통 맞았으며, 한헌제는 역적 동탁이 세운 괴뢰 황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럼 조조는 어땠을까요.


한헌제 옹립을 주장하는 순욱 역시 저수와 비슷한 논리를 펼쳤습니다.



문제는 반대한 사람들입니다. 하후돈, 조인, 그리고 만총.


이들은 한헌제를 모셨던 동탁, 이각, 왕윤 등이 모두 역적으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경고합니다. 순우경과 심배의 주장과 비슷하지만 순우경과 심배는 권력 구도의 측면에서 접근했고 하후돈과 조인, 만총은 조조의 안전이란 측면에서 접근했습니다.


조조 역시 원소와 함께 하진을 보좌했고 반동탁연맹에 적극 가담하여 여러 계책을 진언하고 심지어 형양에서 열심히 싸우기도 했습니다.

만일 조조가 형양에서 동탁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대로 동탁까지 죽였다면 조조는 한헌제를 옥좌 위에서 끌어내리고 죄를 물었을 것입니다.


원소보다는 급이 부족하지만 한헌제와 적대했다는 사실은 확실하니 이건 결국 군주의 판단력 차이로 한쪽은 옹립을 결행하고 한쪽은 포기했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럼 조조의 판단이 옳았고, 원소의 판단은 틀렸을까.

지금까지는 조조의 천자 옹립을 찬양하는 주장이 일반적이었고 반대로 이 사건은 원소의 무능함을 상징했습니다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확실히 조조가 천자를 봉대하면서 강력한 권위를 바탕으로 삼공제 폐지, 둔전제 같은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고 한중의 장로, 형주의 유종이 훗날 조조에게 항복할 수 있었던 배경도 조조가 천자를 봉대하여 적대하면 역적이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물론 이 논리는 적당한 핑계였지만, 이 적당한 핑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항복을 주장하는 사람의 적극성은 확연히 달라지게 됩니다.

핑계가 없으면 외적에게 혼을 뺏겨 주군에게 항복을 권하는 인물이 되지만 핑계가 있으면 주군의 명예와 한나라를 생각하는 충신이 됩니다. 대의명분이란 원래 그런 성격의 존재입니다.


결정적으로 조조가 유씨였던 유표, 유비하고도 전혀 꿀리지 않고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까닭도 한헌제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선양을 통해 위나라를 건국하니 한헌제가 조씨 일가에게는 참 여러모로 유용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조조가 천자를 봉대하면서 감당해야 했던 업보도 대단했습니다.


일단 공융, 예형, 동승, 복황후를 비롯해 수많은 한나라 신하들이 조조 견제, 심지어 제거까지 시도했고 한헌제 역시 조조를 나쁘게 보고 있었습니다.

한헌제가 멍청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정황도 조조에게는 부담입니다. 만일 한헌제가 지혜를 갖춰 자신의 지분을 늘리고 조조를 견제하면 매우 부담스럽게 됩니다.



서진西晉의 사마씨는 조씨와 유사한 방식으로 나라를 세웠지만 정통성은 위나라에 비교하면 부족했습니다.

사마소가 고귀향공 조모를 살해했기 때문인데 한헌제가 분노를 참지 못해 어느날 칼 빼들고 근위대와 함게 조조에게 일기토라도 걸면 조조 입장에서는 한헌제를 죽여도 큰 정치적 부담이 됩니다.



손책은 200년에 관도대전으로 정신이 없을 조조의 후방 공격을 시도했고 손권과 유비는 조조가 '한나라의 승상이자 수호자'라는 프레임을 절묘하게 역이용해서 조조를 '승상의 탈을 쓴 역적'으로 규탄해 오히려 지지 세력을 결집했으니 한헌제를 이용한 프레임 설정도 허점이 많았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원소의 경우 한헌제 옹립을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원소 정권의 선비들이 두렵고 꺼려 조조에게 대대적으로 귀순하거나 항복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소 역시 '조조는 실질적으로 역적이다. 따라서 우리가 조조를 공격하는 것은 한나라를 공격하고자 함이 아니라 역적을 토벌하고자 함'이라는 프레임으로 오히려 조조 공격의 정당성을 확보합니다.



만일 동승이 조조 암살에 성공했거나 손책이 중간에 죽지 않고 허도를 공격했다면 중원을 정복한 영웅은 조조가 아니라 원소가 됐을 것입니다.

아니면 한헌제가 조모처럼 거병해서, 결국 조조가 한헌제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면, 그럼 조조는 초나라 의제義帝를 죽인 항우와 똑같은 놈 취급받아 중원이 들끓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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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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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man

2014.02.26
23:09:25
(*.28.241.38)
1.조조의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원소나 유비가 오히려 역이용했다면 그래서 그것이 설득력(정당성)이 있다면 결국 애시당초 절대적인 대의명분이란것이 정해져있다기보다는 결국 그 본질은 말잘하는 이가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상황과 실리를 따져 얼마나 잘 갖다붙이고 포장하느냐에 달려있는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겉으로는 충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실력의 차이에 의해 대세는 판가름나고 대의명분은 적당히 갖다붙이는것이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의명분의 진정한 가치는(즉 실질적인 힘이 될수있는 가치) 말하기 좋고 듣기좋은 그럴듯한 형식논리보다는 당시의 민심을 정확히 읽고 그것을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이념과 비전에 조화시키고 나아가서는 승화시키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최고의 대의명분은 민심입니다. 요즘말로는 여론이라 할 수 있겠죠. 그점에 있어서는 역시 유비가 가장 재미본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애초부터 유비는 그게 최고의 자산이었고요. 형주에서 조조에게 쫓길때 백성들이 유비따라간것은 그 절정을 보여주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2. 역사에서 if는 의미없다고 합니다만 그렇게 말들 하면서도 그 재미있는 것을 안할 수 없죠. 다 합니다. 조조가 암살당했다면 원소가 재미봤을거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황제까지도요. 하지만 손책이 허도를 공격했다고 해서 원소가 재미는 보겠지만 중원정복까지는... 글쎄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이런 주제(역사의 우연과 필연에 의한 가정과 그에따른 결과예측)는 너무 방대하네요. 막상 의견개진을 할려니... 엄두가 안납니다. 역시 안하는게 좋을듯 합니다. 사실은 내공이 달릴까봐서 ㅎㅎ.

망탁조의

2014.02.27
10:15:02
(*.155.148.94)
옛날 사람들이 민심을 강조하고 특히 국가 교체기에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고대 동아시아 왕조 사회에서 민심은 솔직히 큰 역할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동탁이 민심을 얻어 상국이 됐던 것도 아니고, 왕윤이 민심을 얻어 동탁 암살에 성공한 것도 아닙니다.
왕망은 호족들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해 망한거지 민심을 잃어 망한 것이 아닙니다.
조조가 민심을 얻어 위나라를 건국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조조가 다른 군웅들에 비해 역량이 빼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마씨가 백성으 사랑을 받은 가문도 아니었고.
고려의 무신정권이 민심을 등에 업어 수백년간 고려 왕실을 농락한 것도 아닙니다.
신라가 멸망한 것도 왕건, 궁예, 견훤 등이 지방 호족과 6두품과 결탁했기에 가능했지 민심 때문은 아니거든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던 비결도 신진사대부와 이성계의 역량이 고려 왕실과 권문세족을 능가했기 때문이고.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민심의 힘을 바탕으로 천하포무의 꿈을 이룬 것도 아닙니다.


민심이라는건, 그야말로 백성들의 의견입니다. 기업에서 말단 사원들 다 의견이 있지만 결국 정책을 시행하는건 이사회와 대표이사 이듯 정치를 움직였던 실질적인 파워맨들은 결국 귀족, 상인, 군인 같은 지배 계급이었거든요.
황건적의 반란 보세요. 민심에 부흥한 운동이었지만 결과는 호족과 황실의 탄압으로 실패했고 농민 반란 필패必敗의 전통은 태평천국의 반란, 의화단의 반란까지 이어집니다.

다만 지배 계급 입장의 선행善行이나 민심 확보를 위한 정책도 그정도 숨통을 틔워주지 않으면 골치 아프고, 또 빨리 죽거나 도주하거나 생산량이 증가하지 않는 등 자기들 이익에도 피해가 생기니까 융통해주는 수준이었습니다.

venne

2014.02.27
10:46:05
(*.111.13.103)
민심을 잃어 일어난 봉기들이 성공한 사례는 없으나, 지배층들이 근심스러운건 체제전복이 아닌 진압으로 인한 인명, 물자, 토지 손상으로 인한 생산량과 인구감소였고 이는 인구수가 곧 국력인 고대에서 가장 꺼리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즉 민심을 얻는다는건 피지배층에게 자연스레 지배자로 인정받고 우러름을 받는다는 것으로 정권의 안정화를 말합니다. 민심을 잃으면 그 지역이 침략당할시에 민심이 쏠리는 쪽으로 귀향하기도 하구요. 예를 들어 북벌시 삼군 투항 등.

그래서 한고조를 비롯한 수많은 제왕들, 군웅들이 민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온 것이겠지요.

망탁조의

2014.02.27
11:08:38
(*.155.148.94)
사실 이건 관점의 차이가 있고, 정권 교체의 과정은 무엇인지,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과연 무엇이 역사의 승리이고 무엇이 역사의 패배인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만.

미야자키 이치사다 교수가 농민 반란을 딱 근육통에 비유했거든요.

쉽게 말해서, 아프고 골치아프고 거슬리는데. 근육통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사람을 죽이는건 바이러스, 암, 외부의 물리적 충격, 심지어 감기가 원인이 될 수는 있어도.
근육통 때문에 사망하지는 않고, 만알 근육통으로 사망한다면 그건 근육통이 다른 병으로 전이되거나 다른 기관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대유했는데 전 여기에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동탁의 경우, 진짜 민심을 잃었지만 결국 동탁의 모가지를 딴 것은 청류파 유학자 왕윤과 군부 세력의 수장 여포였고.
당장 조조만 보더라도, 그 많은 학살에 이주, 도적떼가 창궐했지만 위나라는 잘만 버텼거든요.
고려의 의종만 하더라도. 민심을 잃어서, 천민 출신 건달 이의민에게 죽은게 아니라 군인들에게 인망을 잃어 무신 정권의 거물급이었던 이의민에게 죽었던거고.

정권의 안정은 민심을 얻는데서 비롯되는게 아니라 중앙의 귀족과 지방 호족, 국경의 군인들의 지지를 얻는가 여부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게 동탁과 조조의 차이입니다. 둘 다 민심에서는 점수를 잃었지만 동탁은 지배 세력에게도 인망을 잃었고. 조조는 자신읠 적대하는 지배 세력을 다 청산하고 호족들의 지지를 확실히 얻거나 통제했고.

황건적의 반란은, 사실 농민 세력 vs 그외의 정면 충돌이자 일대 대회전이었는데. 결과는 황건적이 패배였습니다.

venne

2014.02.27
12:00:19
(*.111.13.103)
아, 제가 말하는 것은 민심만 얻는게 정답은 아니고 당연히 그에 동반되는 힘이 있어야만 하지요. 힘이 동반되지 않은 민심몰이는 유우의 경우처럼 다른 힘있는 인물에게 이용당할 뿐이니까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민심을 적극적으로 얻진 못해도 잃어선 안된다는 것이고, 이는 민란으로 이어지며 민란으로 인한 체제전복은 거의 불가능하나 진압을 했을 때 생기는 손실이 상당히 뼈아프다는 거죠. 고대엔 특히나.

한손엔 민란이 일어나지 않게 민심을 잡고 다른 한손엔 호족과 지배층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힘을 잡아야 한다는 것.

망탁조의

2014.02.27
12:08:52
(*.155.148.94)
이것도 사실 굉장히 재밌는 주제입니다. 과연 민심이 정권의 안정에 차지하는 역할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가.

정권의 안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따지면 크게는 기후, 정통성, 군부의 지지, 귀족의 지지, 외교 관계 등등이 있겠고. 정말 세밀한 요소들까지 따지면 군주의 외모, 건강, 여성 편력, 취미까지 포함될 것입니다.

그럼 문제는, 이런 모든 요소들을 통합하여 백(100)이라고 하면, 민심의 비중인데. 저는 정확히 산출할 수는 없지만 다른 부분에서 점수를 따면 충분히 만회가 가능할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venne

2014.02.27
12:52:47
(*.111.13.103)
그렇군요. 많은 요소가 있고 그것들의 비중도 어느 세력, 어느 지방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 민심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소 30은 된다고 봅니다. 민심없이 힘과 억압으로 굴러가는 나라는 결국 비슷한 힘을 가지고 민심까지 얻는 다른 이에게 넘어가게된다는 역사의 반복된 교훈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진, 원.

역으로 힘은 없고 민심만으로는 질질 끌려다니며 결국 먹히고마는 사례들도 많으니, 예를 들어 송, 노.

힘과 민심은 필요하며 전 민심을 잃었을 때 일어나는 연쇄적인 손실을 크게 보기에 비중을 많이 두게 되었습니다만 역시 이건 시각에 따라 변하기에 비중에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Longman

2014.02.28
00:57:26
(*.28.241.38)
읽다보니 마치 제가 민심이 큰 힘이다라고 말한것 같네요. 그래서 님께서는 민심은 실질적으로 그다지 힘은 못된다. 이런 말이신데... 저도 바로 그 얘기를 한건데... 제가 민심이 큰 역할을 차지한다고 했나요. 애초에 저는 대세는 실력에 의해 판가름나고 대의명분은 갖다붙이는 거라고 전제했지 않습니까. 실질적(미약하지만 그나마)인 힘이 될 수 있는 가치라고 했지 그것이 큰 힘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기본적인 독해력으로도 이미 행간의 의미에서 충분히 알 수 있을것 같은데요. 애초에 그닥 실질적인 힘이 안되는것이 대의명분이라고 전제하고 나서 최고의 대의명분이 민심이라고 했지않습니까. 최고의 힘이 민심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유비를 예로 든것은 유비가 그걸로 일어섰다는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제후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유비에게는 큰 자산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미를 보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굳이 동탁,왕망,조조,사마씨 기타등등등등등등을 예로 들지 않아도 그정도는 다 압니다. 왜 이런 기본적인 독해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지 알고있지만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여기온지 얼마안되서 왜 많은 사람들이 님을 싫어할까 이해가 안됐는데... 지식이 깊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이네요. 이제 댓글달지 않겠습니다.

망탁조의

2014.02.28
03:38:50
(*.155.148.94)
이것은 님께서 쓰셨던 덧글 전체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1.조조의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원소나 유비가 오히려 역이용했다면 그래서 그것이 설득력(정당성)이 있다면 결국 애시당초 절대적인 대의명분이란것이 정해져있다기보다는 결국 그 본질은 말잘하는 이가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상황과 실리를 따져 얼마나 잘 갖다붙이고 포장하느냐에 달려있는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겉으로는 충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실력의 차이에 의해 대세는 판가름나고 대의명분은 적당히 갖다붙이는것이죠.

망탁조의>> 절대적인 대의명분(황제, 황실과 같은)이란 없다. 실질적인 파워가 대세를 결정하고 대의명분은 그걸 꾸미는 수단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의명분의 진정한 가치는(즉 실질적인 힘이 될수있는 가치) 말하기 좋고 듣기좋은 그럴듯한 형식논리보다는 당시의 민심을 정확히 읽고 그것을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이념과 비전에 조화시키고 나아가서는 승화시키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최고의 대의명분은 민심입니다. 요즘말로는 여론이라 할 수 있겠죠. 그점에 있어서는 역시 유비가 가장 재미본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애초부터 유비는 그게 최고의 자산이었고요. 형주에서 조조에게 쫓길때 백성들이 유비따라간것은 그 절정을 보여주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망탁조의>> 정말 중요한 대의명분, 정말 중요한 기치는 (황실 보호, 한나라 승상과 같은) 민심이며, 이 민심을 제대로 읽을 수 있고 자신들의 정책과 정치적 이상에 녹일 수 있는 정치 집단이 큰 대의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유비가 대표적이다.

망탁조의

2014.02.28
03:42:09
(*.155.148.94)
쓰신 글을 아무리 읽어도 민심이 힘이 되지 않는다는 속뜻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대의명분이야 갖다 붙이기 마련이라고 하셨지만, 제가 본문에서 말하고자 했던 대의명분은 황실, 한나라 부흥, 한헌제 같은 가치들이었고 따라서 저는 그러한 것들이 가치가 없음을 이분께서 주장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쓰신 글에서 절반 가까이가 민심에 할애하셨고, 심지어 유비가 그 민심으로 큰 재미를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님께서 주장하시는게, 민심따위는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다, 라면. 거기서 민심의 혜택을 본 군웅의 사례를 왜 제시하신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망탁조의

2014.02.28
03:46:30
(*.155.148.94)
제가 실수하여 말씀하신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말씀을 너무 직설적으로 하시어 오해의 여지가 있었는지는 뒤로 미뤄두더라도.

제가 썼던 답글 그 자체도 특별히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정도 발언 수위나 반박에도 불쾌감을 가지고, 확인되지도 않는 스스로의 지레짐작과 의심으로 나를 판단하시겠다면 제가 그걸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요.

난수기사

2014.02.27
03:37:25
(*.156.214.23)
명분에 관한 관점도 그랬지만 원소가 한헌제 옹립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강대한 세력을 일군 원소에게 있어선 심배,순우경의 주장대로 오히려 자기 위에 누군가가 있으면 골치아파지는 상황이었고, 반대로 조조는 강력한 적인 원소가 눈앞에 있으며 배후에도 유표, 손책, 한수등 무시못할 여러 세력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한헌제 옹립을 통해 어떻게든 일단 급한대로 우군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난수기사

2014.02.27
03:56:01
(*.156.214.23)
음. 쓰고보니 뭔가 이상한데, 헌제가 낙양으로 도피했을때는 아직 원소가 하북의 패권을 잡기 전이었나;;;

망탁조의

2014.02.27
10:17:43
(*.155.148.94)
이 직후에 공손찬을 토벌하면서 하북의 패권을 완벽히 장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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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 식량문제에 대한 조조의 대처방법 [7] 이전만성 2014-03-08 3612
793 허창은 허창에 있지 않았다??? [4] file beermania 2014-03-08 5790
792 위 vs 오 - '물'을 이용한 전쟁 [2] KM학생 2014-03-07 2711
791 하비 전투시 유비가 있었던 곳은?-정사 시간순 정리 [7] beermania 2014-03-07 3015
790 묵돌(모돈)을 때려잡은 조조 이야기 [3] 이전만성 2014-03-07 2234
789 교차 검증: 서로 다른 기록 중 무엇이 진실일까? [1] 망탁조의 2014-03-07 2066
788 손권 말년, 노망인가 대책인가 [8] 출사표 2014-03-06 3430
787 유표에게도 천통의 꿈은 있었다. [1] 망탁조의 2014-03-06 2087
786 유비의 정오에 찬성한 인사들은 누구인가? [6] 포증 2014-03-05 3132
785 유비의 이릉대전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 [23] 삼갤러 2014-03-05 7031
784 오나라가 생존하면 익주의 안보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2] 망탁조의 2014-03-05 2966
783 How to use 관우關羽 [4] 망탁조의 2014-03-04 3248
782 유표와 자식들 평가 망탁조의 2014-03-04 2021
781 서량의 반란 세력이 도움이 될까? [2] 망탁조의 2014-03-03 2393
780 이릉대전 [28] venne 2014-03-03 3640
779 [번역] 촉한蜀漢의 경제 [5] 망탁조의 2014-03-03 3039
778 유비는 도겸과 인연이 전혀 없었는가? [1] venne 2014-03-02 2417
777 원소의 무력치를 대폭 상향해야 할 것 같습니다. [1] 망탁조의 2014-03-02 2551
776 장비와 마초의 가맹관 전투를 그린 도자기 [3] file 이전만성 2014-03-02 2635
775 여포는 왜 유비를 배신했는가? [1] 망탁조의 2014-03-01 6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