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년, 한헌제는 원소를 꾸짖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물론 이것은 조조의 의지가 개입한 행동으로, 땅도 넓고 병력도 많은데 황제를 지킬 생각은 없고 오직 원소를 위한 파벌만 형성하여 공손찬을 비롯한 주변 군웅들과 화목하지 못함을 책망했습니다.


비록 책망이었지만 본질은 원소가 반역의 마음을 품은 것이 아니냐고 추궁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때 원소는 비교적 강하고 당당한 어투로 자신을 변호합니다:



1. 나는 비록 천출賤出로 노비 출신 어머니를 두었으나 조상이 대대로 한나라의 은혜를 입어 황실을 위해 투쟁하고 선비를 존중했다. 


2. 나는 수많은 역적을 토벌했으니 십상시, 청주 황건적, 흑산적, 한복, 동탁이 대표적이고 나를 추종하는 선비 집단과 그 공적이 과거의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3. 이 과정에서 반동탁연맹의 맹주가 됐다는 이유로 동탁에게 가문이 몰살되는 참사를 겪었으나 국가를 위한 행동이었기에 슬퍼하지 않았다. 이게 내 충성심의 수준이다.


4. 공손찬과 갈등하는 까닭은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라, 공손찬이 남쪽을 노략질하고 질서를 어지럽혀 토벌하고자 함이다.


5. 다른 군웅들은 (나와는 다르게) 서로 지위와 명성을 이용해 도적질하고, 의심하고, 갈등하고, 욕망을 위해서만 싸운다.


6. 지금 (조조나 동탁, 이각처럼) 공적이 없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나 원소처럼) 덕을 갖춘 사람에게 보상하지 않으니 누가 큰 뜻을 품겠는가.


7. 나는 억울하다. 역적이 아니다.


6번의 경우 원소가 말한 '공적이 없는 사람'은 조조, 동탁, 이각의 무리를 말하고 '덕을 갖춘 사람'은 자신을 말합니다.

실제로 원소는 이 상소문에서 자신이 선비들의 지지를 얻고 있음을 계속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당黨을 형성하는 행위는 그때는 반역에 준하는 죄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건 자신의 충성심을 보증하는 집단을 소개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인망이 황제 못잖다는 상황을 은연중에 나타낸 느낌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원소는 자신이 한소제漢少帝를 지지하여 한헌제의 후견인이었던 동태후와 대립했다는 사실은 전혀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해명은 얼핏 보면 원소가 강하게 자신을 변호한 것처럼 보이지만. 또 얼핏 보면 황제를 디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봐야 하는데, 조조는 왜 무의미하게 원소를 도발했을까요. 원소를 역적으로 몰아치고 싶어서?

아직 중원도 제대로 통일하지 못해 주변에 원술, 이각, 여포 등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가운데 원소를 도발하는 행위가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이건 순전히 조조가 원소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정치적 위트였습니다.


이때까지의 상황만 보면, 조조는 원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때 원소의 명망이 너무 대단했고 원소를 추종하는 무리들도 엄청났는데 특히 동탁이 원씨를 멸하고서 중원에는 그 복수를 명분으로 궐기하는 집단으로 들끓었습니다.


원소는 조조에게 이따금씩 자기 손을 더럽히는 일을 대신 청탁했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장막을 죽이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장막, 원소, 조조는 서로 친구로 처음에는 의리가 있었으나 장막이 원소에게 충언을 아끼지 않았고 원소는 장막을 미워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선비를 죽이면 원소의 명성에 오점이 되므로, 무려 조조에게 청부 살인을 명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조는 장막을 적극 변호하면서 명령을 거부합니다.

조조 입장에서는 매우 황당했을텐데, 장막과 조조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친구였으며 무엇보다도 청류파의 팔주八廚 중 한명으로 명성을 떨친 연주의 대표적인 선비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죽였다간 손해보는 사람은 조조였으니 당시 원소가 조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조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원소의 역량을 파악하고, 절대 대업을 이루지 못할 흠결이 많은 인물이라고 믿었기에 영원히 원소 2인자 노릇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조가 196년에 한헌제를 옹립하면서 조조는 원소가 은공을 입은 연주목이 아니라, 황실의 수호자로 거듭났고 한헌제의 직책이 원소보다 높았으므로 원소의 명령을 받을 수 없는 입장이 됐습니다.



쉽게 말하면, 조조는 더 이상 원소와 함께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유도했던 것입니다.



이 도발에 가까운 조서도 그렇습니다. 어제는 원소가 조조를 추궁했는데 이제는 조조가 원소를 추궁할 수 있고 그걸 보여줬습니다.


조조는 만족하지 않고 한가지 계책을 더 냅니다.

원소를 태위, 업후에 임명하고 자신은 대장군에 임명됐는데 이때 대장군의 계급이 태위보다 높았으므로. 직접적으로 조조가 원소보다 위에 있음을 천하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마침내 원소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이때 원소는 다분히 감정적이었습니다.



[주 : 『헌제춘추(獻帝春秋)』에 이르길 「원소는 자신의 반열이 태조 아래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화내며 말하길 “조조는 여러번 죽을 뻔 했는데, 내가 번번이 그를 구해주었다. 지금 은혜를 배신하고서는 천자를 끼고 나에게 호령하는구나!”라 했다. 태조가 이를 듣고 대장군의 직위를 원소에게 양보했다」고 한다.]



여기서 한가지 미스터리가 있으니 조조가 죽을뻔한 위기가 많았으나 무제기, 원소전 어디에도 원소가 그걸 구해줬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협객을 자처하며 온갖 나쁜짓을 저지르고 다닐 때의 이야기인지 출사 후의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출사 후의 이야기라면, 조조가 겪은 두가지 위기가 있었는데 하나가 형양 전투, 둘이 연주에서 장막과 진궁이 여포를 영입해 반란을 일으킨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록 어디에도 원소가 조조를 도왔다는 말은 없습니다. 형양 전투는 반동탁연맹 때의 일인데 이때 원소는 제대로 싸우지 않았고 연주의 반란에도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위나라를 정통으로 삼은 삼국지의 논조상 원소에게 도움을 받은 치욕스런 과거가 나쁜 의도로 편집됐을 개연성도 있습니다만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원소가 조조에게 상전 노릇을 할 정도로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고, 적어도 원소(측)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입장이 전부입니다.



아무튼 원소는 황제가 내린 업후와 태위직을 받지 않습니다.

보통 관직을 거부하려면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을 핑계로 삼는 것이 관례였는데 원소는 그냥 거절한 겁니다.

이건 매우 오만불손한 무례였는데 조조 역시 현실적인 힘이 아직은 없었으므로 더 이상 원소를 자극하지 않고 공융을 파견해 자신의 관위를 원소에게 양보하고 오히려 위엄을 더했습니다.



장작대장(將作大匠) 공융(孔融)으로 하여금 부절을 가지고 원소를 대장군(大將軍)에 배명하게 하고, 석(錫)의 궁시(弓矢)와 부월(節鉞), 호분(虎賁) 100인과 [三] 기주(冀州), 청주(靑州), 유주(幽州), 병주(並州) 4주의 독(督)을 겸하게 한 연후에야 받아들였다.



사실 이것도 한나라의 권위가 손상되는 행위였으니 신하가 건방지게 황제가 내린 상이 누구보다 직함이 낮다고 거부하고, 그러자 황실은 그 신하를 달래기 위해 그 높은 관직과 보너스까지 선물한 겁니다.



원소의 오만함이자 배짱이었고, 실력을 갖춘 대응이라 결국 조조가 물러섰습니다. 한헌제漢獻帝만 우습게 된 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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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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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에스

2014.02.27
13:57:06
(*.20.202.173)
점점 시리즈화가 되고 있군요. 잘 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평소 관심두던 지점이 아닌데 여러가지 흥미를 던져주네요.

동방삭

2014.02.27
16:23:36
(*.163.43.168)
깊이 있는 글입니다. 덕분에 잘 읽고 있습니다.^^

venne

2014.02.27
17:33:12
(*.111.2.237)
4주의 목이 아니라 독이었나요?

망탁조의

2014.02.27
17:38:25
(*.155.148.94)
기록에는 감독할 때 독자를 써서 독이라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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