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포라는 인물에게 관심이 생겨 기록을 읽어보던 중에 생긴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여포가 192년에 장안에서 쫓겨나 관동을 방랑하면서 원술(기주), 원소(남양), 장양(하내), 장막(연주)에게 의탁하고 마지막에 유비(서주)에게 의탁한다.

여포가 유비를 만나기 전까지 다른 군웅 밑에서 보여줬던 행동은 제법 일관된다:



1. 남의 전쟁에 개입

2. 병력 증대

3. 노략질

4. 퇴출



1번의 경우 사실 여포와 흑산적, 여포와 조조는 아무런 나쁜 감정이 없었음에도 적대하여 사이가 나빠지길 자처했다.

이때 여포는 나쁘게 표현하면 남의 집에 빌붙어 있는 신세였고 흔한 말로 밥값이라도 벌어야만 했다.

때마침 원소는 흑산적, 장막은 조조와 적대하고 있었으므로 객客이자 을乙의 입장이었던 여포에게 선택권은 없어 보인다. 혹 여포의 지혜가 순욱급이라서 조조에게 귀순했다면 모르겠으나 이건 너무 많은걸 요구하는 것 같고.....



문제는 병력 증대와 노략질.

여포가 원술 밑에 있을 때는 특별히 원술을 위해 활약하지 않았으면서도 오직 동탁을 죽인 공적만을 믿고 노략질을 일삼았다.

원소 밑에 있을 때는 흑산적을 격파하는 활약을 했고 이번에는 여포가 정식으로 병력 증대를 요청했다.



여포의 병력 증대, 노략질을 후한서나 삼국지는 여포 개인의 탐욕에서 비롯된 일탈로 묘사하지만 노략질, 도굴, 학살은 후한 말기 군웅들이 군자금을 확보하는 방법 중에 하나로 유행했었고 병력 증대는 여포가 원술, 원소 밑에서 독립적인 부대로 거듭나길 염원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어떨까.


여포는 언제까지 원술, 원소의 발톱에 머무르길 원하지 않았고 세력을 확장할 뜻이 있었다면?



이때 원씨 군웅들의 반응은 한가지였다. 여포의 세력화를 매우 싫어했다.

일단 원씨와 여포가 특별히 깊은 인연이 있지는 않았다. 여포는 자신이 동탁을 죽여 원씨의 원수를 갚았다고 자부했으나 그것도 해석하기 나름이고 여포 개인과 원술, 원소 사이 인간적인 정이나 의리, 정치적 유대감은 없었다.

쉽게 말해서 심배나 여포가 원소의 명령을 받기는 똑같지만 원소는 여포를 심배만큼 신뢰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후한 말기, 군웅들과 막료들의 관계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도 있었지만 때로는 정치적 동반자, 동맹, 동업자의 관계 등 상하관계가 모호했고 서로 명분이 없는 상태에서 누가 누군가에게 먹히고, 토해내고, 배신하고, 독립하는 일이 매우 잦았으므로 원씨는 여포의 세력 확대를 의심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포와 원술, 원소는 충돌할 요소도 많았는데 여포는 중앙에서 황제에게 직접 후候, 장군직을 받은 정통 무관武官이고 반면에 관동의 군웅들과 그 휘하 막료들은 제멋대로 관직을 칭하고 쪼개 먹고 있었다. 여포는 이들을 가소롭다고 생각했고, 폄훼되는 사람들은 여포를 불쾌하게 여겼다.



그러나 여포 입장에서 이런 원씨 군웅의 견제책이 어떻게 비춰졌을까.

자신이 기껏 동탁을 죽이고, 흑산적을 토벌했는데 변변한 보상이 없으니 이대로가면 평생 남의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죽을 것이라는 불만을 가져도 욕심이 많다고 비판하기 어렵다.


실제로 기록을 보더라도 원술이나 원소 밑에서 여포가 얻은 정치적, 경제적 보상은 없다. 여포가 원소 밑에서 병력 증대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도, 원소가 자꾸 보상을 미뤄 참다못한 여포가 체면 구기면서 구걸한 모양새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후戰後 보상을 두고 발생하는 갈등이야 흔하지만 이때 여포는 원씨에게 원하는 바를 구하지 못하고 떠났다.

원술, 원소 모두 여포의 요구에 타협할 생각이 없었고 결국 심상찮은 분위기를 파악한 여포가 떠난 것으로 권력 다툼에서 여포가 밀려난 형세였다.

심지어 원소는 여포의 암살까지 시도했는데. 이건 하내의 장양, 연주의 장막도 비슷했다.



장양은 (나중에 마음을 고쳤으나) 한때 여포의 현상금에 매혹됐었고 장막의 경우, 여포는 반란 성공 확률을 올리기 위한 용병에 불과했다.

여포의 충신忠臣으로 회자되는 진궁도 원래 조조의 대안으로 장막을 추천했으며 오직 여포의 전투력만을 빌리고자 했었다.



여포가 배신자, 이기주의자라는 이미지가 강하여 이런 부분들이 잘 조명되지 않는 것 같은데 적어도 방랑하던 시절의 여포는 결과적으로 활약에 비교하여 그다지 대접을 받은 것 같지는 않고 억울한 대접을 받은 측면이 있다.



인간적인 의리나 유대감 없이 오직 이익 다툼에 채이고 쫓겨난 여포는 결국 원소, 조조, 원술과 적대하여 서주로 흘러갔는데 유비는 여포가 서주에 주둔할 것을 허락한다.

여기까지 보면 유비가 여포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는데, 조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일단 여포가 정확히 서주 어디에 머물렀는지 확실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소패라고 알려졌고, 이는 여포가 나중에 하비를 기습할 때 이동한 경로에서 추론한 것일뿐.

소패가 금기의 땅도 아니고 삼국지에서 "유비가 소패에 주둔했다" 혹은 "여포/도겸이 유비를 소패에 주둔시켰다"는 기록이 자주 나오는데 왜 여포가 소패에 주둔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는 것일까. 혹 소패가 아니라 소패 근처 어딘가의 주둔을 허용한 것은 아닐까.



소패를 살펴보면, 서쪽으로는 조조의 영토인 허창, 진류와 근접하고 남쪽으로는 원술의 영토였던 수춘과 근접한 지역이다.

훗날 조조가 진류와 여남에서 군대를 보내어 소패를 공격한 사실만 보면 이곳은 최전방이었다.


유비가 도겸을 응원하고자 군대를 이끌고 서주에 당도했을 때, 도겸이 유비를 소패에 주둔시켰다.

이때 도겸과 유비가 전혀 인연이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패는 누군가 독자적인 거병이나 서주로부터 독립을 시도하기에는 부적합한 땅이었다.

심지어 여포도 유비를 소패에 배치시키고 훗날 토벌하니 백보 양보해 소패에 여포의 주둔을 허락한들 집으로 비유하면 마당에 머물 것을 허락한 격이다.



유비가 소패(혹은 그 근처)에 여포를 배치한 계책은 다음을 의미한다:



1. 유비는 조조, 원술과 근접한 상황에서 전투력이 뛰어난 군인을 필요로 했다.

2. 1번의 이유로 여포를 맞이했으나 관우, 장비와 같은 인연이나 유대감이 유비-여포 사이에는 없었기에 견제할 의지도 분명히 있었다.

3. 최전방이자 여차하면 유비가 진압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 확보만 가득한 소패 혹은 소패 근처 어딘가에 여포를 주둔시켰다.

4. 소패와 근접한 세력은 조조, 원술인데 모두 여포와 적대했던 인물들이다.



과연 이것을 은혜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이때 서주의 분위기는 매우 험악해서, 194년에 도겸이 죽고 그 직전에는 조조가 서주를 난폭하게 공격하여 희생자가 많았다.

때문에 서주 호족들은 도겸의 아들을 대신하여 외부인이었던 유비를 새로운 서주목으로 추대한 것인데 이는 서주가 원술로부터 자립自立하고 원소와 친교를 맺음을 뜻했다. 그럼 조만간 서주 세력과 원술과 충돌함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여포가 유비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기는 매우 어려웠다.


여포 스스로가 이미 다른 군웅들에 의해 발톱으로 쓰이다가 버려지는 비참한 경험을 했고, 소패나 그 근처에 주둔했다간 이번에는 유비의 발톱 노릇만 하다가 또 버림받거나 제거될 가능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포의 덕을 본 원술, 원소도 정치적인 이익에 따라 여포를 견제했는데 하물며 전혀 인연도 없던 유비가 여포를 더 잘 대접하리라 믿기에는, 여포가 그동안 배운 교훈들이 너무 현실적이었다. 만일 유비에게도 버려진다면 그럼 중원에서 더 이상 여포가 머물 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포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으리라.



196년, 여포는 단양 출신을 비롯해 서주의 소수 반反 유비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유비를 배신하고 서주를 얻어 군웅으로 성장했다.

관서, 하내, 회남, 기주, 연주를 거쳐. 마침내 중원의 극동 서주에서 그토록 원했던 세력화에 성공한 것이다.

여포에게 무조건 헌신한 고순, 의로운 선비 진궁도 여포의 서주 탈환을 도리에 어긋난다며 반대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여포가 서주를 빼앗은 행위는 생각만큼 윤리적이지 못한 행동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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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ne

2014.03.02
16: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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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항상 다른 시각으로 파주시니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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