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비는 분노로 눈이 뒤집혀 오로 진격한걸까?
- 오히려 관우 사망 후에도 몇년간 준비를 해온 뒤, 제위에 오르고 형주로 진격했습니다. 즉 나름대로 치중과 물자를 모으고 군대를 준비시킨 기간을 거친 뒤 관우의 죽음과 손권의 배신을 명분삼아 동진했다고 보여지는데, 감정적이었다면 익양대치때처럼 군대를 급파하여 오가 형주를 영토화시키기 전에 갔어야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다만 명분적으로 관우의 죽음을 내세웠기에 복수전의 성격인 것도 부정할 순 없지요. 무시못할 규모의 수군을 준비해 운용했고, 몇개월간의 전쟁중에도 군량이나 치중부족의 기록이 없는걸 보면 꽤나 공들여 준비한 전쟁인것으로 보이거든요.

요약하면 복수전을 내건 철저히 기획하고 준비한 전쟁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요.

2. 타깃설정이 손오인건 오류인가?
- 유비의 어택땅이 형주는 일단 확실하지만 과연 양주까지인가는 알 수 없는데 그만큼 이릉대전은 복잡미묘한 여러 요소들이 얽히고 섥힌 전쟁이라 해석하기 나름인듯 합니다. 필자는 남군탈환 후 최소 형남 3군반환 및 재동맹 정도의 협상과 이후 재정비 정도로 봤습니다.

양주까지 한큐에 쓸어버리는건 다소 무리가 있고 그럴 전력으로 보기도 어설프며 어차피 최종목적이 양주라 해도 형주까지 먹고 한타이밍 재정비해야 하므로.

제위에 오른 뒤 주적을 조위로 잡아놓고 손오를 치는것이 문제될 것도 없는게 당시 둘은 동맹상태였고 둘의 전력으로 보면 오가 상대적으로 만만할 수 밖에 없고 특히 중요거점인 남군을 포함한 형주일대를 회복해야 위신도 서고, 전략적인 거점도 되찾는거니까요.

옹주일대를 손에 넣은지 오래된 조위와 자국영토를 불과 몇년전 기습점거한 손오 중 쉬워보이는 상대를 택했다고 보여집니다.

3. 형주는 타깃으로 괜찮았는가?
- 유비가 이끈 최소 5만 이상의 대군이 옹주쪽으로 향했을시엔 군량 및 물자수송에서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는게 상류에서 배로 군량 옮기는것과 잔도뚫고 옮기는것의 차이는 천지차이로 이릉전 당시 촉군은 수개월간의 원정인데도 군량부족에 허덕이지 않았습니다. 옹양주 북벌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이면 손권과 동맹을 맺기 전에 남군정도는 탈환해놔야 이후 북벌을 위해 편해지고 더 많은 카드와 전략채택이 가능해진다는 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군탈환 전에 동맹을 해버린다면 이후의 전개는 변화가 없을 수 밖에 없는게 이릉전의 전력을 유지했어도 한중이북 극악의 보급로는 변화없죠. 군대의 질이, 양이, 장수의 수가 늘어나거나 북벌시기가 앞당겨질뿐, 보급이 안되는건 마찬가지일거거든요.

요약하면 6만이 가든 10만이 가든 군량은 3만치밖에 못옮기는데 효과를 볼까?

4. 유비는 수명때문에 조바심이 났다?
- 유비 스스로의 군재는 천재급은 아니나 노련한 정도로 평가받지만 그는 언제나 일선에서 지휘했고 그즈음엔 나름 성공의 연속이었습니다. 유선은 생각보다 총명하지 않았고, 2세대를 책임질 제갈량은 군재관련 경험이 부족했으며 마초, 장비, 관우, 법정 등은 사망해버린 시점에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다는것에 어느정도의 조바심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유비는 이릉전을 준비하며.

숙명이 될 천하통일에 한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리라란 의지와 황제로서의 권위상승, 계속된 성공에 유방과 오버랩되는 자신감, 곧 끝날 수명에 대한 조바심, 관우의 죽음에 대한 분노, 꼭 필요한 형주땅의 회복과 국가의 위신회복 등 여러가지 요소들에 의해 이릉전을 기획했고,

전략적인 검토와 추후 진출과 방향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만만하고 앞으로도 꼭 필요한 형주로 향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고 이에 따른 국가의 위기와 후대들이 짊어질 짐을 남긴 점은 결과로 평가받는 역사속에서 비판받아도 할말이 없지 않은가?
조회 수 :
3417
등록일 :
2014.03.03
16:33:31 (*.111.17.202)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community_three/98602/8ba/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98602

망탁조의

2014.03.03
16:57:09
(*.155.148.94)
생각하기로, 그때 그 지역에 육손이 있었던 것이 패착의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유비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오나라 군대를 유인해서 한판 싸움을 벌이는 것이었고, 손환을 이릉성에 포위해서 오나라 장군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가중시켰지요.
실제로 오나라 장군들도, 육손이 유비를 공격하는 그날까지 유비를 도모할 방법이 없다고 여겼고, 단기 결전을 고집했으니.

ㅇㅇ

2014.03.03
17:00:59
(*.150.175.250)
1. 당시 모든 기록이 복수 때문에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찬성하는 내용도 없고 신선전 같은 곳에서조차 패배를 예견했다는 정도의 말밖에 없고요. 그렇다면 기록된 것으로는 신하들의 반대밖에 없고, 위나라 애들도 다 무리라고 봤는데 공격했다? 그럼 이건 복수로 눈이 뒤집힌게 맞죠. 한중에서 전투 뒤 바로 가는 것도 무리고 이것을 가지고 철저히 대비했다고 하기도, 복수가 아니라고 보기엔 무리라고 봅니다. 거기다 유비가 공격하겠다는 의사를 들어낸 것은 손권이 칭번하기 바로 직전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죠? 그럼 시기 차이는 거의 안 납니다.

2. 당시 옹, 양주에는 반란이 일어났고 이와 더불어 3군데에서 더 문제가 생겼었고 내부도 어수선했죠. 조위를 공격하기에는 최적의 타이밍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대국적인 안목으로는 결국 형주가 오에서 촉으로 간 것에 불과하고요. 또 유비가 공격하기 전에 손권과 조비는 싸우고 있었습니다. 오가 칭번을 한 이유는 유비가 공격했기 때문. 따라서 이는 상관 없습니다.

3. 위나라가 오나라 편에 붙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고(조비가 직접 말했듯) 이미 상용은 뺏긴 상황. 그렇다면 여기서 제대로 된 선택이 뭐냐는 성향차이겠지만 전 조위라고 봅니다. 어찌됐든 확실히 오를 적으로 돌려서 조비한테 항복하게 만들었고 조비는 덕분에 황제에 문제없이 오를 수 있었으니까요. 각지에 반란도 잘 처리됐죠. 거기다 마속의 경우만 봐도 조그만하다고 하지만 장수의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나라든, 자국 신하든 위나라든 기록된 것이 모두 분노에 대한 것으로 돼있는데 이걸 바꾸기 위해 너무 많은 가정이 들어가고 호의적으로만 보려고 노력한게 아닌가 싶군요.

venne

2014.03.03
17:47:02
(*.111.17.202)
2년여의 시간이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그리고 운용한 규모와 치중 등을 보면 한중전 후 3년동안 많은 공을 들인게 보이니까요. 전 복수전을 부정하지 않았고 단순히 관우참살의 복수에 눈이 멀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어 복수전을 명분으로 내건 준비된 전쟁이란 표현을 쓴겁니다.

당시 옹주는 종요아래 조용했고, 조비의 선양도 꽤나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며 낙양궁과 허창궁보수 외에는 이렇다할게 없어요. 공손연도 우호적으로 돌아섰고 오히려 손권에겐 더 상을 주며 볼모를 요구하지만 거절당한 정도? 확인이 안되는데 둘이 싸웠다는건 어느기록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오가 위에 진심으로 붙어먹은건 아니지만 문제도 그걸 알고 있었고 어찌됬든 표면적으로 둘은 동맹내지 동반자상태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본문을 다시 읽어보니 첫 의도와는 다르게 유비를 쉴드치는것처럼 본문이 전개가 된건 인정해야겠군요.

삼갤러

2014.03.03
17:14:08
(*.196.197.50)
저도 이해가 않되는게 사료에서는 이미 분노로 찬듯이 표현하는데 굳이 이걸, 이성적이라고 말하는게 이해가 안됩니다.

사료에서 반대한것만 나오는데...
그것도 군부에서 어느정도 영향력있는 조운이고요.
제갈량도 뭐 반대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뉘앙스로 봐도 절대 찬성은 아닙니다.
그냥 동오 정벌 하러간 것 같습니다.

삼갤러

2014.03.03
17:17:43
(*.196.197.50)
선주가 조공(曹公)과 함께 다툴 때 형세가 불리했다. 의당 퇴각해야 했으나 선주가 크게 화를 내며 퇴각하려 하지 않으니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는데 법정이 선주의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선주가 말했다
“효직은 화살을 피하시오.”
법정이 말했다,
“명공께서 친히 시석(矢石-화살과 돌)을 당해내시는데 하물며 소인이겠습니까?”
이에 선주가 말했다,
“효직, 내가 그대와 함께 물러나겠소.”
그리고는 퇴각했다.

생각보다 유비는 이성적인 타입이라기 보다, 가슴뜨거워지면 물불안가리는 타입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이릉대전은 냉정한 판단으로 보더라구요.

망탁조의

2014.03.03
17:24:14
(*.155.148.94)
그 이유는 본문에 충분히 서술됐다고 생각합니다.

유비가 정말 이성을 잃으면, 독우를 구타하거나 말씀하신대로 화살이 빗발치는 가운데서 버티거나, 심지어 칼을 뽑아 사신을 협박한 사례도 있고 이걸 보면 '분노하면 물불 안가리는 타입'이 맞긴 맞는데.

그럼 왜 관우가 죽자 즉시 공격하지 않고 오랜 세월 준비를 마친 다음에 공격했는가. 이 부분이 설명이 안되는거죠.


유비는 화나면 물불 안가린다.
한중전이 유비를 화나게 했다.
한중전에서 유비는 물불 가리지 않고 화살비 가운데서 버텼다.


이 논리라면,

유비는 화나면 물불 안가린다.
관우의 죽음이 유비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런데 유비는 몇년에 걸친 준비 기간 끝에 오나라를 쳤다????

이렇게 되는거죠.

삼갤러

2014.03.03
17:30:13
(*.196.197.50)
관우어르신이 돌아가신지 1년 8개울 후의 전쟁입니다만, 사실 그동안 아무일이 없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비의 찬탈이 있었고, 상용도 그동안 잃었고, 황제로 등극도 했습니다.
전쟁일어난건 정확히 황제 오른뒤 3개월 후죠.

나라 안과 밖으로 상당히 정국이 어지러운 시기였습니다. 과연 저기간동안 안정되게 전쟁준비만 했을까요?

사료에서도 반대한것이 많고, 분노했다는 표현이 주고 한것을 토대로 보면 저것도 짧다고 느껴집니다.

어쩌면 정말 준비기간은 채 3개월도 않됬을수도 있고요.

망탁조의

2014.03.03
17:42:56
(*.155.148.94)
육손 열전, 선주전을 읽어보면 당시 유비는 매우 많은 계책을 준비하고 전쟁에 임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비는 손환을 이릉성에 몰아 고립시키고, 오나라 장군들을 유인/유도하여 단기 결전을 원했습니다.
실제로 육손 혼자만 단기 결전을 반대했고, 오나라 장군들 모두 손환을 구해야 한다, 장기전으로 가면 위험하다. 단기간에 결판을 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들의 여론이 하도 거세서 육손도 손권의 권위를 빌려 이들을 진정시켰고요. 육손을 제외한 오나라 장군들은 유비가 원하는 전쟁을 수행하려고 하는 위험한(적의 페이스에 넘어갔으니까)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복병에 걸릴뻔하는 등. 아슬아슬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결국 육손이 강하게 억눌러서 유비의 계책이 다 물거품이 됐지만요.

심지어는 육손이 화공으로 유비를 격파한 그 직전까지 오나라 장군들은 "이제 늦었다, 유비를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 오나라에도 경험 많은 노장들이 참전했는데 유비가 아무런 준비도 책략도 없이, 분노에 눈이 멀어서 왔다면 이들의 페이스를 이렇게 잘 읽었을지 의문입니다.

아리에스

2014.03.03
17:50:09
(*.20.202.173)
저는 유비가 단기결전을 유도한건 길이 좁아서라고 생각합니다. 왜 상류의 이점을 버리고 좁은 산길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유비가 이릉에서 손환을 포위해서 오나라 장수들을 안달나게 한 건 맞지요. 문제는 유비군은 이릉을 못 우려 뺐다는거고 그 사이에 육손이 이겨버렸다는게...

오의 수륙병진을 허용한 시점에서 유비가 단수높게 계책을 쓴 것인지는 쵸큼 의문이 드네요.

망탁조의

2014.03.03
18:17:13
(*.155.148.94)
유비의 계책이 단수가 낮은건 분노로 이성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냥 유비라는 인물이 군략이 그정도 밖에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ㅠㅠ

자잘한 실수가 많고 그것들이 누적되어 조조, 육손 같은 네임드를 상대로 끝내 패하는 것이 유비의 일생이었지요. 전투 경험이 풍부해서 B급 정도로 인정은 받았지만, 문제는 유비가 적대한 인물들이 하나같이 A급인지라.

아리에스

2014.03.03
18:19:15
(*.20.202.173)
그게 더 안타깝군요. 전 황권을 강북에 보낸 시점에서 이미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서도 그게 한계라 생각하면...

삼갤러

2014.03.03
17:54:09
(*.196.197.50)
아무리 눈이 뒤집혀도, 어느정도 냉정함은 유지했겠죠. 완전 정신나간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퇴각할 타이밍이 있었고, 전쟁의 장기화로 무리가 보였다면 어느정도선에서 휴전을 맺거나, 퇴각을 했어야 하는데...
결과가 없다고 계속 시간끄는게 고집이 작용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관우에 대한 복수를 꼭하겠다는 고집이라고 할까요?

유비도 경험이 있는데, 그냥 완전 개닥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패배해도 너무나 많이 죽었는데, 이걸 그냥 유비도 잘했지만 육손이 너무 잘했다라고 보기에는 좀 너무 쉴드치는게 아닌가 생각드네요.
차라리 고집이 작용한 전쟁으로 냉정하지 못한 판단들을 중간중간에 했었고, 그것으로 많은 병사를 잃은게 아닌가 생각드네요.

아리에스

2014.03.03
18:04:21
(*.20.202.173)
유비가 오로 침공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전쟁수행에 있어서 아쉬움이 많이 보이죠. 전쟁을 할거면 이겨야지 패해놓고 다음에 잘하면 돼 라는 식으로 위안 삼기엔 잃은게 심각하게 컸죠.

venne

2014.03.03
18:06:55
(*.111.17.202)
여기서도 오해가 있습니다만, 전 이릉전에서의 유비는 비판받아야된다고 봅니다. 그는 실패했고 그 리스크는 말도 안될만큼 가혹했으니까요.

다만 제가 얘기하고 싶은건 이릉전이 몇몇이 얘기하는 것처럼 눈이 뒤집힌 유비가 혼자 독단으로 고집부리며 오나라어택땅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유비는 손환을 묶고 황권을 강북에 보내고 나서 너무 질질 끌어 퇴각할 타이밍, 아니 최소 협상할 타이밍을 놓쳤고 이는 협상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서인지, 남군이든 관우든지에 대한 고집인지, 황제로서의 자존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욕먹을게 맞습니다.

제가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건 유비는 최선을 다했어! 이게아니니까요.

아리에스

2014.03.03
18:18:22
(*.20.202.173)
venne님이 그렇다는게 아닙니다. 그렇게 보였다면 제 잘못이네요.

venne

2014.03.03
18:37:27
(*.111.5.241)
세네분의 덧글이 엉킨 상황속에서 오가는 멘트들이니 잘잘못을 가릴정도로 너무 신경쓰실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전달하고자 했던 요지만 전해지면 되니까요.

아리에스

2014.03.03
17:44:15
(*.20.202.173)
저도 삼갤러님 생각에 동의하는게 사람들이 말하는 만큼 원정준비가 체계적이고 일심분란했느냐. 그리고 1년 8개월이라지만 징병까지 해가면서 쏟아부은 한중전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원정을 할만할 정도로 유비의 군사들이 견실했느냐. 무릉만을 굳이 끌어들일 정도로 오가 강했는가. 이런 거 생각하면 최소치 채워놓고 나선 감이 없지 않죠.

ㅇㅇ

2014.03.03
17:54:18
(*.115.91.66)
전쟁시기만 1년 8개월 이후지 선전포고 비스무레하게 해서 오가 위에 칭번한건 220년이죠. 얼마 안돼서 입니다. 최소한 숨기는 척이라도 하던가. 저렇게 바로 조아를 들어낸 것을 보면 분노로 인해서 보이는게 없었다고밖에 안보이더군요.

아리에스

2014.03.03
17:56:32
(*.20.202.173)
예전에 삼도에서 이릉전 준비기간 관련해서 지적한 글을 썼었죠. 하도 3년을 준비했다고 해서. 그래서인가 이제는 좀 수치가 비교적 사실적으로 내려가더군요.

계산을 아예 하지는 않았을겁니다. 다만 지나치게 밀어붙인게 흠이랄까.

venne

2014.03.03
17:56:26
(*.111.17.202)
말하고 싶은게 그겁니다.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면 앞뒤가릴것없이 성도먹자마자 일어난 익양대치때처럼 그냥 대군 끌고 나왔을건데 분명 유비는 터울을 뒀고, 준비를 했다는게 보여진단거죠.

무릉만을 끌어들인것은 오의 강함과는 별게인것이 아군에 보탬이 될만한 전력은 회유하여 써먹는것이 당연한 수순이고, 오히려 이들 수만이 가세했지만 군량 등이 부족하단 얘기가 없음으로써 이릉전의 준비에 꽤 공을 들였다쪽으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양주까지 먹을 전력은 분명 아니지만 최소 남군은 확실히 탈환할 수 있는 준비를 한 전쟁이었고, 관우의 죽음은 그 전쟁의 명분이었다라는게 논지입니다.

삼갤러

2014.03.03
17:59:10
(*.196.197.50)
어쩌면 전쟁을 못일으킨 걸수도 있죠....
신하들이 반대하거나, 한중전의 여파....
조비의 찬탈, 제위에 대한 갈등...

아리에스

2014.03.03
18:01:00
(*.20.202.173)
장강으로 보급하면서 군량 부족까지 날 정도면 군을 일으키질 말아야죠. 저는 한중전에서 입은 손실을 최소한으로 보존한 다음에 움직인거라 봅니다. 익양 때는 관우를 지원하면 지킨다는 보장이 있었죠. 그런데 이릉 때는 외원도 없고 손실도 복구 못했으니 그걸 채우지 않고 나가면 파멸이 뻔하지 않았겠습니까? 참고 참은게 그 정도라 생각하면...

venne

2014.03.03
18:12:07
(*.111.17.202)
예. 유비는 왜 한타이밍 늦추고 복수전을 감행했나? 왜 칼끝은 옹주(조위)가 아닌 형주(손오)로 향했는가?

이것들에 대한 얘기일뿐인데 이릉전의 진행과정까지 해석되버리니 필자로선 뭔가 안타깝기도 하네요. 필력도 부족하거니와 한참 뜨거운 주제라 그런듯.

망탁조의

2014.03.03
18:42:54
(*.155.148.94)
궁금한 것이 있는데. 아리에스 님께서는 이릉대전의 동기는 나쁘지 않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리에스

2014.03.03
20:51:05
(*.144.59.77)
저는 원정 자체는 불가피한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죠. 거듭되는 패전으로 인한 민심 동요라던가, 국가 전반적인 침체라던가. 이런걸 쇄신하려면 황제놀음도 좋지만 원정이 제일 낫거든요. 거기서 위로 가느냐 오로 가느냐는 유비에게 달린 선택지지,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고 보거든요. 문제는 그 과정이...

망탁조의

2014.03.04
04:25:48
(*.155.148.94)
저는 이릉대전이야말로 장군 유비가 가진 모든 역량을 다 보여준 전투였다고 생각합니다.
유비가 만만하지는 않아요. 우습게 볼 인물은 절대 아니죠.
그런데 대세를 뒤집을 정도로 무섭냐면, 그건 또 아니예요. 진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일류급하고 싸우면 필패하는 전적이었는데 이릉대전에서도 그게 여실히 나타났지요.

삼갤러

2014.03.03
18:02:50
(*.196.197.50)
사실 이성적인게 이상하지 않나요?... 제가 유비라도 정신나갈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형주 잃어, 자기 아들 처보다 중요한 관우 목숨줄 날아가고, 한실은 무너지고...

정말 냉정히 보면 정신나갈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한중왕되고 전성기였는데 순식간에 완전 대업의 희망도 많이 날아갔죠.

venne

2014.03.03
18:15:17
(*.111.17.202)
그 분노를 무조건 억눌러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계산했다기보단 그런 와중에도 유비는 어느정도 전황을 분석했고 준비한 모습을 보였지만 박살났으니 욕먹어도 할말없다정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신 게시판 관리 기준 운영진 2014-01-28 31511
공지 (필독공지) 삼국지 이야기 방입니다. 아리에스 2013-07-24 34073
791 하비 전투시 유비가 있었던 곳은?-정사 시간순 정리 [7] beermania 2014-03-07 2873
790 묵돌(모돈)을 때려잡은 조조 이야기 [3] 이전만성 2014-03-07 2162
789 교차 검증: 서로 다른 기록 중 무엇이 진실일까? [1] 망탁조의 2014-03-07 2006
788 손권 말년, 노망인가 대책인가 [8] 출사표 2014-03-06 3208
787 유표에게도 천통의 꿈은 있었다. [1] 망탁조의 2014-03-06 2023
786 유비의 정오에 찬성한 인사들은 누구인가? [6] 포증 2014-03-05 3059
785 유비의 이릉대전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 [23] 삼갤러 2014-03-05 6777
784 오나라가 생존하면 익주의 안보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2] 망탁조의 2014-03-05 2865
783 How to use 관우關羽 [4] 망탁조의 2014-03-04 3171
782 유표와 자식들 평가 망탁조의 2014-03-04 1918
781 서량의 반란 세력이 도움이 될까? [2] 망탁조의 2014-03-03 2318
» 이릉대전 [28] venne 2014-03-03 3417
779 [번역] 촉한蜀漢의 경제 [5] 망탁조의 2014-03-03 2858
778 유비는 도겸과 인연이 전혀 없었는가? [1] venne 2014-03-02 2339
777 원소의 무력치를 대폭 상향해야 할 것 같습니다. [1] 망탁조의 2014-03-02 2475
776 장비와 마초의 가맹관 전투를 그린 도자기 [3] file 이전만성 2014-03-02 2518
775 여포는 왜 유비를 배신했는가? [1] 망탁조의 2014-03-01 6675
774 한漢을 그리워하는 마음; 원소와 조조의 여론 전초전 [4] 망탁조의 2014-02-27 2421
773 한漢을 그리워하는 마음; 원소와 조조의 선택 [14] 망탁조의 2014-02-26 2644
772 한漢을 그리워하는 마음; 황제, 동쪽으로 가다. [6] 망탁조의 2014-02-25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