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 - 전술 단위에 있어 관우의 용맹함은 조조, 여몽도 인정했던 바이나 사실 한나라 말기, 난리를 제압한 사람은 전술에 능한 한명의 효장哮將이 아니라 지모知謨를 갖춘 책사 집단이었다. 결국 관우는 북北으로는 사마의, 장제, 환계와 두뇌 싸움을 벌였고 동東으로는 여몽, 육손, 전종과 꾀를 다퉜으나 이들을 능가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랫사람과 화합하지 못해 군량이 적절하게 조달되지 않아 끝내 서황과의 한판 싸움에서 패했다. 관우는 형주의 왕王과 같은 입장이었는데, 관우는 왕의 자질이 아니었다.



유비 - 오랜 세월 관우를 알았으면서도 관우의 약점을 이렇게 모르고 방관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장비에게 난폭하게 굴지 말 것을 충고했던 유비가 관우를 타일렀다는 기록은 없으니 결국 관우의 죽음은 유비의 책임이기도 하다. 삼국지 전체를 통틀어 관우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무관이 있었을까. 주요 요충지나 심지어 주州를 관리하는 현대의 주지사 직책에 군인을 배치하는 일이 드물지는 않았으나 위나라는 이들을 체계적으로 감시, 통제했고 오나라 역시 비슷했는데 관우는 그런 권력 제어 장치가 없었다. 그만큼 유비가 관우를 신뢰했다는 뜻이나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제갈량 - 천하삼분지계를 보면 제갈량 스스로 "한명의 상장上將에게 명해 형주의 군사를 이끌고 완, 낙양을 향하게 하라"고 한다. 왜 하필 한명의 상장이고 그 한명의 상장이 관우여야 했는가. 조조를 보면 관서 일대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무관이 아니라 문무를 겸한 정치가 종요를 보냈고 종요는 훌륭하게 관서의 혼란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앞서 말한대로 위나라는 이런 권한을 가진 사람의 폭주를 막기 위한 체계적인 감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형주는 유표, 괴월, 한숭 등 빼어난 정치가들이 오랜 세월 노력하여 질서를 유지한 방대한 영토인데 아무리 인재가 없다고 하여도 주목州牧에 임명할만한 정치인 한명 없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유비가 관우를 제대로 부리기 위해서는, 형주를 관우에게 맡기지 않고 제갈량처럼 침착하고 준비성이 뛰어난 문관文官에게 통치를 맡겨야 했다.


유비 진영에 인재가 없어 익주의 혼란을 다스릴 인재가 부족하여 입촉入蜀과 동시에 형주에 있던 제갈량을 소환한 것이야 이해할 수 있더라도 이후 장기적으로 형주를 관우에게 맡기고 관우의 권력을 제어하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관우가 비록 전술에는 능하나 전략에는 사마의, 육손 등에 미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문관들과 화목하여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려는 의지도 없었으니 유비가 관우를 직접 감독하고 법정과 방통이 유비에게 조언하여 관우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관우를 용인用人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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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ne

2014.03.04
13:23:09
(*.111.14.40)
유비가 내리는 전장군 가절월을 마다하려한거나(이건 원소가 헌제의 작위를 거절한것과는 다른 느낌)유비의 암묵적인 지시가 있었든 없었든 단독북벌을 추진했으며 확실히 둘은 군신관계를 뛰어넘는 그런 사이였고 관우는 그것을 득이 되는쪽으로 이용해야 하는데 독이 되는쪽으로 가버린건 안타깝기만 하네요.

서주때부터도 관우는 단독군세를 이끈 경험이 유독 많은점도 묘하기도 하고..

망탁조의

2014.03.04
14:17:22
(*.155.148.94)
그만큼 유비가 관우를 믿었다는 뜻이지만. 사실 위나라나 오나라의 국경지대 장군을 감시하는 법체제는 물론 반역을 대비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장군 개인의 위험한 판단이 세력 전체를 위험에 빠드릴 수도 있었으므로. 그걸 견제하는 역할도 수행했었거든요.

관우는 전술 단위에서는 강하다는 강점이 있었지만 전략 단위에는 사마의, 여몽보다 취약하고 또 아랫사람과 화목하지 못했다는 약점이 있으니. 이 약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관우를 운용해야 했는데 유비가 관우를 배치한 위치와 권한은 관우의 강점을 살리기 어렵고 약점을 극대화하는 그런 입지였는지라.....

저는 차라리 반준을 형주에 맡기고 제갈량이 형주 정책을 지침하여 수성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합니다.

아리에스

2014.03.04
18:17:49
(*.20.202.173)
민정과 군정이 분명 구분되었을텐데 어쩌다가 관우 혼자 다하는 체제가 되었을까요...

망탁조의

2014.03.05
01:37:01
(*.155.148.94)
반준(潘濬)은 자가 승명(承明)이고, 무릉군(武陵) 사람이다. 선주(先主)는 촉(蜀)으로 들어올 때, 그를 형주치중(荊州治中)으로 임명하여 남아 지키면서 주(州)의 행정을 관리하도록 했는데, 역시 관우와 화목하지 못했다. 손권이 관우를 습격하자, 곧 오나라로 들어갔다. 학보는 관직이 정위(廷尉)까지 올랐고, 반준은 태상(太常)까지 올랐으며 후(侯)로 봉해졌다.

계한보신찬의 기록을 보면, 형주 행정은 반준이 관리했습니다. 반준이 투항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오나라 승상 후보에 언급되고 손권이 반준을 극진히 대접한걸 보면 나름 일도 많이하고 잘 처리한 것 같기는 한데 여전히 관우를 견제할 힘은 없었지요. 조예가 신비를 보내서 사마의가 제갈량과 결전한 것을 막았다는 기록과는 정반대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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