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첨지중추부사(行僉知中樞府事) 신점(申點)은 아뢰기를,
“남적(南賊)이 물러가지 않았는데 김덕령을 서방으로 옮겨보내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김덕령의 범죄는 작지 않다. 사람을 죽였는데도 유사(有司)가 감히 다스리지 못하고 수령도 묻지 못하니 극히 놀랍다.”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왜노(倭奴)가 익히 듣고 비장(飛將)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죄가 또한 많지만 우선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비장이니 협을(挾乙)이니 하는 것은 모두 장성 현감 이귀(李貴)의 설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당초 내가, 무군사(撫軍司)에서 한신(韓信)을 대접하듯 한다는 말을 듣고 웃었었다. 익호(翼虎)라는 칭호를 준 것은 더욱 사리에 당치 않은 일이다. 사람의 겨드랑이 아래에 어찌 날개가 있겠는가.”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사정이 민박(悶迫)하여 부득이 내려갑니다만 물의(物議)가 용납하지 않고 소명(召命)이 여러 차례 내리니, 위축되고 황공하여 마치 죄를 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체찰사의 중임을 받았으니 어찌 감히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경성은 탕패(蕩敗)되어 공허하며 기전(畿甸) 또한 경리(經理)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임무를 받은 바가 가까우면 조치할 수 있으나 멀면 형세가 서로 미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함경 일도는 유능한 자에게 맡기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함경도는 이미 감사·병사가 있으니, 자기가 해야 할 바의 일을 호령하고 규획(規劃)하는 것이 가하다<선조실록, 선조 28년>



정확한 날짜가 나오지는 않지만, 선조 28년 즈음에 김덕령이 같은 조선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전시 상황이라 한 사람의 인재가 아까운 상황이라, '김덕령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이 분분하게 됩니다.

상이 전교하였다.
김덕령(金德齡)은 의당 유사(攸司)로 하여금 추열(推閱)하게 하고 율문에 의해 집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극악한 왜적이 아직 소멸되지 않아 혹시라도 적절히 대처할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니, 우선 방면하여 그로 하여금 힘을 다해 충성을 바치게 하고, 서서히 의논하여 조처하는 것도 또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비변사는 의논하여 아뢰라.”<선조실록, 선조 29년>



결국 선조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김덕령을 일단 사면해줍니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김덕령(金德齡)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세 사람이나 때려 죽여 그 잔혹함이 극심하므로 법에 있어 놓아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께서 특별히 사면을 명하여 그로 하여금 스스로 보답하게 하였습니다. 신들은 진실로 성상께서 그의 재용(材勇)을 아껴 특별히 너그러운 은혜를 베풀어서 조그마한 보답의 효과라도 거두기를 바라는 것인 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인다.’는 것이 약법삼장(約法三章)3161) 에 실려 있습니다. 옛날의 밝은 임금은 비록 귀척 훈구(貴戚勳舊)라 하더라도 감히 용서하지 않았으니, 이는 진실로 법을 시행하지 않는 바가 있으면 민심을 복종시킬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덕령의 살인은 이미 관하(管下)도 아니며 또 군령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기탄없이 살해하였으니, 그 마음이 나라에 법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습니까. 이제 만약 고식적인 방법만을 취하여 마치 감히 구문(究問)하지 못할 것처럼 하여 갑자기 전석(全釋)하게 되면, 금석지전(金石之典)이 김덕령에게서 무너져 인심이 분개할 뿐만 아니라, 훗날 더욱 무장(武將)이 조정을 경홀히 여기는 마음을 크게 걱정할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김덕령을 잡아와 추국하여 율에 의해 처벌하기를 바랍니다.
형조(刑曹)는 경상우도 관찰사(慶尙右道觀察使)가 김덕령의 처벌을 청한 서장(書狀)을 가지고 회계(回啓)할 때에 율에 의해 죄목(罪目)을 정하지 않고 감히 비변사(備邊司)로 하여금 다시 의논하여 결정할 것을 청하였으니, 이는 크게 집법자(執法者)의 본의(本意)를 잃은 것입니다. 바라건대 당상(堂上)과 색낭청(色郞廳)을 모두 추고하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김덕령의 일은 이미 의논을 거쳐 결정하였으니,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선조실록, 선조 29년>

사헌부가 전에 아뢴 내용으로 아뢰기를,
김덕령을 잡아와 추국하고 율에 의해 죄목을 정하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아직 흉적이 국경에 있는데 먼저 용사(勇士)를 죽이는 것은 불가한 일이 아니겠는가. 일에는 경(經)과 권(權)이 있는 법이니 좀 서서히 의논한들 무엇이 늦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선조실록, 선조 29년>



하지만 신하들은 살인을 저지른 김덕령에 대해 처벌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에 대해 선조는 '전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음'이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사헌부가 전에 아뢴 내용으로 아뢰기를,
김덕령을 잡아와 추국하고 율에 의해 정죄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선조실록, 선조 29년>



계속된 사헌부의 요청으로, 결국 선조는 김덕령을 처벌하겠다고는 하는데....

김덕령(金德齡)이 살인한 일은 극히 놀라운 일이니, 대간이 논한 바가 극히 타당한 것으로 국문하여 죄를 정하는 것이 진실로 마땅합니다. 그러나 적의 진퇴를 아직 알 수 없고 나라의 성패 또한 헤아릴 수 없는 터인데, 이 때를 당해 하나의 장사(壯士)라도 잃는 것은 좋은 계책이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법을 맡은 관원은 진실로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상께서 특별히 정국(停鞫)을 허락하고 형틀을 풀어주어 그로 하여금 허물을 고치고 스스로 충성을 바치게 하소서. 이것이 사람을 쓰는 활법(活法)인 것입니다. 대신에게 문의하여 조처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이 말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하고, 지평(指平) 이형욱(李馨郁)은 아뢰기를,
덕령은 놓아줄 수 없는 중죄인이거니와, 일찍이 털끝만한 공로도 기록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그를 완전히 석방하여 무장들의 방자한 습성을 열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폐단이 장차 사람의 목숨 보기를 초개같이 여기는 데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덕령의 살인은 실로 놀라운 일인데, 주현(州縣)도 감히 발설하지 못하고 피살된 집 또한 감히 고발하지 못하였으니, 나라에 기강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해평 부원군(海平府院君)이 내려간 후에 비로소 계문(啓聞)하였으니, 방백(方伯)이 있다 할 수 있으며, 어사(御史)가 있다 할 수 있겠는가. 대간은 의당 먼저 이들은 탄핵하여야 옳을 것이다.”
하자, 정형이 아뢰기를,
“신들 또한 이상하게 여기어 해조(該曹)의 문서를 가져다 상고해 보니 감사의 장계 1통이 있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관후한 한 고조(漢高祖)도 약법삼장(約法三章)3166) 에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인다. [殺人者死]’고 하였다. 살인죄를 함부로 용서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선조실록, 선조 29년>


아직도 조정에서는 김덕령의 처벌 건을 놓고 용서할지 그대로 처벌할지 갑론을박을 펼칩니다.

상이 이르기를,
김덕령(金德齡)은 어떠한 사람인가?”
하니, 권율이 아뢰기를,
덕령은 본래 광주(光州)의 교생(校生)으로 용력이 뛰어나 쓸 만한 인재입니다. 그러나 늘 군율(軍律)이 엄하지 못한 것을 분개하여, 휘하 사람 중에 범죄자가 있으면 귀를 자르거나 혹은 곤장을 치기도 하므로 휘하 사람들이 점차 도망한다고 합니다.”
하고, 김응남(金應南)은 아뢰기를,
“살인은 중옥(重獄)이라 아래에서 감히 전제할 수 없으나, 덕령은 힘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임을 남들이 모두 아는 바입니다. 지금 만약 특명으로 석방하고 면대해 교유하여 돌려보내면 그는 필시 감격하여 은혜를 알아서 힘을 다해 보답하기를 도모할 것입니다.”<선조실록, 선조 29년>



잡아다가 국문하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을 특명으로 석방시켰다. 덕령은 첩보(牒報) 전달을 지체했다는 이유로 역졸 한 사람을 매로 쳐서 죽였을 뿐만 아니라 도망한 군사의 아버지를 잡아다가 매를 쳐서 죽게 하였는데 죽은 자는 바로 윤근수(尹根壽)의 노속(奴屬)이었다. 근수가 남쪽 지방을 순시하는 도중에 덕령을 직접 만나 석방해 주도록 타일렀고 덕령은 이를 승락하였는데 근수가 돌아가자 즉시 그를 죽였던 것이다. 근수는 그가 약속을 어긴 것이 미워서, 덕령은 신의가 없고 학살을 즐겨서 장수 재목이 되지 못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때 논의가 분분해서, 덕령은 살인을 부지기수로 많이 했으며 심지어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였다고 말하는 자까지 있었다. 결국 덕령을 나국하였는데 증거를 들어 스스로 해명하자 상(上)은 특별히 방면할 것을 명하여 위로하고 달래어 보내고 또 전마(戰馬) 1필을 주었다. 상이 입시한 여러 신하들에게 일렀다.
“당초에 덕령을 지나치게 추장하여 한신(韓信)이 다시 나타났다고 하였는데 이제 보니 하나의 돌격 장령(突擊將領)을 시키기에 합당할 뿐 대장을 삼기엔 가합하지 않다.”<선조수정실록, 선조 29년>
 홍진(洪進)은 아뢰기를,
“신이 김덕령(金德齡)의 사람됨을 보니 실로 노열(駑劣)한 인재가 아닙니다. 신이 덕령에게 ‘국가가 이미 너의 죄를 사면하여 죽이지 않았으니 천은(天恩)이 망극하다.’ 하니, 그의 대답이 ‘천은이 망극하니 죽음으로 보답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한번 보고 싶으나 막 죄를 벗은 사람이라 사체에 흠이 될까 염려된다.”
하니, 신식과 덕형이 아뢰기를,
“이미 사면되어 나왔으니 반드시 그의 마음을 격려하여 공을 이루게 하소서. 옛날에 위지 경덕(尉遲敬德)은 항노(降虜)에서 발신하여 끝내는 대장(大將)이 되었습니다. 3191) 지금 비록 불러 보신들 무슨 해로움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유시(酉時)에 경연을 파하고 나갔다.<선조실록, 선조 29년>


결국 선조는 김덕령에게 특별 사면령을 내립니다.



가끔 인터넷을 보면 '선조는 의병장들을 핍박했다. 봐라 김덕령 같이 죄 없는 사람을 반란에 연루시켜 죽이지 않았느냐'라는 의견이 있던데, 진실은 정반대. 오히려 김덕령이 살인을 저지르고도 선조 때문에 처벌을 피했습니다. 이러다가 몇 개월 뒤, 이몽학의 난이 터지자, 조정에서 칭찬 받던 곽재우와 홍계남 등 의병장들은 선조가 한 번에 풀어줬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고를 친 경력이 있는 김덕령은 과거 살인 경력 + 군대는 이끌고 있는데 공식적인 일본군 사살 수 0명(참고 : http://www.pgr21.com/pb/pb.php?id=freedom&no=46570) + 한신 급으로 부풀려진 명성 때문에 목숨을 잃고 맙니다. 한마디로 자기가 자신의 무덤을 판 셈이죠..



번외. 곽재우 vs 김덕령



진시(辰時) 정각에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주역(周易)》을 강하였다. 상이 윤근수(尹根壽)에게 이르기를,
“경이 남방을 왕래하면서 김덕령(金德齡)을 친히 보았는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한번 잠시 보았을 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재능이 장수가 될 만한 자인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용맹은 있으나 형벌이 중도에 지나쳤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군사를 다스리는 데에 기율이 있던가? 거느리는 군사는 얼마나 되던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처음에는 볼 만하였으나 혹독하고 중한 형벌로 인해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므로 관하(管下)가 많지 않았습니다. 곽재우(郭再祐)는 장략(將略)이 많이 있어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였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도의 말이 그러하던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적을 막는 일이 보통 사람과 다르므로 사람들이 모두 장수 제목으로 허여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장수를 얻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하고, 또 이르기를,<선조실록, 선조 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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