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사 - 운명을 지배하는 인간, 운명 앞에 쓰러지다 - 워털루, 181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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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8세


『혼란』




 사실 어떠한 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할지라도, '그 선악을 떠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나이' 들을 꼽을 때 그 이름이 열거되며, 사후 150년 동안 오직 한 남자를 묘사하기 위해 8만 권 가까운 책이 동원되는 인물의 뒤에 자리잡는 인물이라면 공정한 평가를 얻기 힘들 것이다. 이는 현재는 물론이고 당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점에서 볼때 루이 18세는 즉위도 하기 전부터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문제는 루이 18세가 프랑스로 돌아오기도 전부터 시작되었다.


 루이 18세에 앞서 파리로 들어간 아르투아 백작, 즉 루이 18세의 동생은 잠시 사령관직을 맡고 있었고 특유의 경박스러운 성격으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늘어놓았다. "세금은 이제 필요 없다. 징병도 없다." 라고 말이다. 인류의 바보 짓은 지금의 시대에서도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객관적인 기준으로는 과거보다 여러 모로 진보된 부분이 많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의 일정 규모 이상의 국가들 중에서도 납세와 병역 의무를 모두 폐지한 국가는 없으니, 19세기 초엽의 프랑스라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결국 아르투아 백작의 경망스러운 말은 혼란만 불러 일으킬 뿐이었다. 심지어 아직 매각하지 않은 국유지를 전 소유주인 교회와 왕당파 망명 인사들에게 돌려주자는 제안은, 혁명에 따른 토지처리 문제 전체를 원점으로 돌림으로써 중산층과 농민을 경악시켰다. 아직도 나폴레옹이라는 사나이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군은 집단 탈영을 일으키고 허가도 없이 자취를 감춤으로써 골칫거리가 되었다. 임시 정부는 점령군과 국민 양쪽에서 갈팡질팡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전쟁에게 있어 경제만큼 가까운 단어도 없는만큼, 전후의 재정적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유럽의 여러 국가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대륙 봉쇄령' 의 후폭풍은 거세게 몰려오고 있었다. 영국 제품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프랑스 산업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얼마 남지 않은 국고를 놓고 아르투아 백작의 측근들은 서로 다투는 추태까지 부렸다. 여기에 탈레랑이 나폴레옹 전쟁 시절은 물론, 프랑스 혁명 전쟁으로 얻은 여러 지역마저 내놓는 매국적인 휴접 협정에 서명하자 부르봉 가에 대한 불신은 다시 한번 프랑스를 뒤덮고 있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루이 18세가 서둘러 프랑스로 귀환하는것으로 보였다. 혁명 정부와 나폴레옹 제국 시절 기나긴 망명을 거쳤던 루이 18세는 드디어 프랑스에 들어섰고, 그 즉시 정부 관계자는 물론 여러 장군들의 알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들 사이에서는 베르티에, 브륀, 르페브르, 마크도날, 마르몽, 몽세이, 네이, 세뤼리에 등 나폴레옹 밑에서 유럽 전역을 누볐던 원수들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베르티에는 그들을 대표해서 입을 열었다.


 "폐하, 불안정과 풍파의 23년을 겪은 끝에 프랑스 국민은 수많은 영광의 세기를 거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이어져 내려온 이 왕조에 다시 한 번 자신의 행복을 위임했습니다. 군인으로써, 또 시민으로써 저희 프랑스의 원수들은 이 국민의 지지에 진심으로 협력을 아끼지 않을 작정입니다. 오늘날 원수들이 중추가 된 폐하의 군대는 그 헌신과 충성으로 폐하의 고결하신 노력에 협조할 수 있게 되어 무상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96년의 이탈리에서부터 나폴레옹과 보조를 같이 하여,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당대 최고의 참모장으로 불리운 인물의 발언으로는 너무나 비열한 말로 들렸다. 루이 18세는 아마 그들이 '나폴레옹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겠지' 라고 생각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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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세계 최강의 보병, 나폴레옹 고참 근위병





 그러나 군의 모두가 원수들처럼 알랑 거리는 일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루이 18세가 파리로 입성했을때, 제국 수비대는 그를 맞이하기 위해 나와있었다. 꼬마 하사관(le petit caporal : 나폴레옹)을 따라 세계의 3분의 1을 무릎 꿇게 했던 이 '용사 중의 용사' 들은 극심한 비만 증세에 통풍에 시달리는 새 군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샤토브리앙은 그 순간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인간의 얼굴이 그렇게 위협적으로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어떤 자들은 이마를 찡그린 채 시야를 가리려고 곰가죽 모자를 눈 위로 덮어썼고, 또 어떤 녀석들은 경멸과 분노에 차 입을 삐죽거렸다. 호랑이처럼 코밑 수염 사이로 이빨을 드러내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무기를 내밀었을 때, 그것은 공포의 순간이었으며 무기의 시끄러운 소리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을 전율케 했다."


 "유럽의 정복자인 이 척탄병들은 얼굴이 흉터에 뒤덮였고, 늙은 왕에게 경례를 하도록 강요받자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렸다."


 우여곡절 끝에 루이 18세가 파리에서 왕정 복고를 선언한 것은 3월 3일이었다. 그의 개선 행진에 많은 사람은 환호하였지만, 러시아군의 보리스 윅스퀼은 시니컬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르봉 가 만세! 루이 18세 만세!'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굉장히 열광하는 것 같았지만, 틀림업싱 억지로 그렇게 보이려고 하거나 왕당파에게 돈으로 매수된 것이리라! 프랑스 국민들이란 경박하고 근성이 없다. 바람개비처럼 바람 부는 대로 돌아가는 그들에게는 매일같이 변화와 다른 정부와 추문과 구경거리가 필요할 뿐이다. 아, 민중이 바스티유를 점거하던 그 날, 나폴레옹이 황제 대관식을 하던 그 날의 파리를 난 보고 싶다……."


 확실히 프랑스 인들의 변덕은 보통이 아니었고, 어제 환호를 받았던 자들이 오늘이면 민중에게 야유를 받는 일도 드문 것은 아니었다. 영국인들은 파리인들이 처음으로 사랑하는 군주(루이 18세)를 가지게 되었고 나폴레옹이라는 존재는 아예 없다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여겼다. "사람들은 그가 14세기의 통치자라도 된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독수리와 N자는 모조리 사라졌다. 전쟁이 없었던 듯 모든 것이 평화롭다." 메테르니히의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프랑스 인들이 과거를 잊지는 않았다. 다만 숨 죽이며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로비고 공작 사바리는 바로 말 없이 지켜보고 있던 사람 중에 한명이었다. 행렬을 구경하는 군중들 속에서, 새 군주의 요란한 행진의 뒤에 의기양양하게 말을 타고 다니던 과거의 원수들을 지켜보며 그는 조용히 이를 갈고 있었다.


 "행진을 보는 것은 괴로웠다…… 황제의 개선 행진 때 선두에 섰던 자들이, 이제 루이 18세를 뒤따르는 것을 보니 왠지 철면피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는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서민들도 베르티에는 용서하지 않았다. 군중들이 그를 향해 몇 번이나 '엘바 섬으로 가라, 베르티에! 엘바 섬으로 가란 말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정 복고에 가장 큰 불만을 가진 집단은 다름 아닌 군이었다. 포로가 되었던 군인들도 속속 들어왔고,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왕실은 그들을 대우해줄 방법이 없었다. 길거리에는 사실상 실업자가 된 예비역 병사들로 넘쳐났으며, 국가는 그들의 손에 푼돈을 쥐어주고 파리에서 내쫒았다. 그러나 세계를 누빈 이 병사들은 평범한 시골의 양치기로 지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고, 또 너무나 많은 것을 경험했다. 무적의 용사에서 버림받은 실직자가 되어버린 병사들은 시골과 마을에 틀어박혀 국왕과 정부를 비난했고, 순진한 시골의 여론은 이때문에 점차 부르봉 가에 적대적이 되어갔다.


 그들은 분노할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혁명 이전에 있었던 국왕 직속 근위 부대가 부활하여 전원 장교 대접을 받는 상황이 되자, 대육군의 전사들은 격노하였다. 저들은 '불이라고는 난롯불 뿐, 포화는 한번도 본 적도 없는' 자들이 아닌가? 자신들을 재정 문제로 쫒아내었다면서, 저들에게 하는 일을 보면 그것은 순전히 핑계가 아닌가? 프랑스에 반역했던 망명 귀족들이 장군으로 발탁되는것은 결정적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사실상 황제를 버린 과거의 원수들도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베르이테나 마르몽은 국왕의 경기병 중대장이 되었지만 마르몽은 '유다 중대' 라는 경멸조의 별명을 가졌다. 마르몽은 자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엘바로 갔어야 한다고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반면 국왕과 사이가 나쁘며, 아직도 보나파르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다부 원수 같은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인기를 지니고 있었다. 어느 나이 많은 경기병은 이렇게 투덜거렸다. "하, 나라를 위해 싸운 결과가 이 모양이군! 까까머리 애송이(나폴레옹)이 있었다면 우리를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겠지. 그 녀석은 사람을 죽이게는 하지만 남에게 상을 줄 줄은 알거든. 그런데 지금 그 돼지(루이 18세)는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도 않아!"



 대육군의 병사들에게 있어 루이 18세는 '돼지'에 지나지 않았다. 확실히, 루이 18세는 외모에 있어서도 손해를 보는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깡마르던 나폴레옹은 나이 30세가 넘으면서 점차 살이 올라, 그의 적대국이던 영국이 비만으로 조롱할 만한 체격이 되었지만 그래도 대단히 정력적이었고 활동적이었으며, 국민들이 생각하는 지도자 상에서 벗어날 정도의 풍채는 아니었다. 이에 비해 루이 18세는 흉할 정도로 살이 쪄서 움직임도 느렸다. 15년 동안 자신들을 맹렬하게 몰아대던 지휘관을 모셨던 병사들에게 있어, 그것은 너무나 이상했고 대조적이었던 것이다.


 루이 18세는 '모든 악의 상징' 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었고, 머리의 회전으로 따지자면 총명한 인물에 가까웠다. 그러나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망명 생활을 하는 바람에 정무라고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동안 나폴레옹이라는 절대적 지도자의 손에 복종하는 버릇이 들어있던 정부 대신들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시간만 흐르고 있었고, 불만은 이제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왕의 가장 결정적인 신체적 특징 - 비만을 조롱하는 사악한 풍자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경제는 후퇴하고 인플레가 따라왔다.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병사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월급을 반만 받게 된 전직 장교들은 카페에 모여 음모를 수근거렸다. 


 지난날까지 나폴레옹을 무찌르기 위하여 손을 잡았던 연합국들도 이제 서로의 몫을 요구하며 반목을 거듭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는 폴란드 전체를 요구했고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러시아가 서부 유럽으로 발을 들이미는것을 완강하게 저지했다. 영국은 프로이센이 완충 지대가 되어주기를 원하였고 탈레랑은 나폴리 왕국을 부르봉 가 출신의 왕족에게 넘겨주기 위하여, 현재의 군주인 뮈라를 축출하려고 했다. 이 모든 일은 조금도 타협의 여지가 없이 자신들의 주장만 늘어놓는 협상국들로 인해, 대단히 지지부진했고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회의장은 그저 끊임없이 연회가 벌어지고, 술을 마시고, 춤추고, 춤추고, 또 춤추고만 있었다.


 이때, 미몽에 젖어있던 그들 모두의 잠을 깨우는 소식이 들여왔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들 모두는 신음을 흘렸으리라.


 맞다. '바로 그 소식'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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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바 섬은 지금도 아름다우며, 틀림없이 1814년에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엘바 섬이란 어떤 곳인가? 나폴리 왕국의 영지였다가 영국에게 넘어가고, 다시 아미앵 조약 때 프랑스에 양도된 섬이다. 토스카나와 엘바 섬 사이에는 10여 킬로미터 정도 바다가 펼쳐져 있다. 총 면적은 231평방킬로미터이고 둘레는 80킬로미터이다. 12만 명이 거주하며 천연자원으로는 염전과 어장과 포도밭이 있었다. 


 한때 러시아 원정에 나서는 '전 유럽의 황제'를 위해 세계에서 모인 60만명의 용사들이 동토(凍土)의 제국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이제 231평방킬로의 영주에게는 천여명 가량의 수하들이 있었을 뿐이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교황이 축성하던 대관식의 궁전은, 거름 냄새를 풍기는 시골의 교회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나폴레옹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타고난 완벽한 솜씨로 말이다. 조기 퇴임한 황제의 일정표를 온순한 소국왕의 일정표로 대체한 그는, 자신의 방에 꿀벌 세 마리를 장식하고 '궁전' 을 만들고 관리인을 뽑았으며, 엘바 섬의 내정을 개혁하기 위해 에너지를 분출시켰다. 적어도 부르봉 정부가 약속했던 연금을 지급하지 않았을 때까지는 말이다.


 그는 이 유배지에서 조세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한때는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의 죽음이었다. 부르봉 왕가의 첩자들은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에게 뺏은 것이라며, 나폴레옹이 자신의 누이동생과 근친관계를 나누었다는 위조된 편지를 늘어놓는 추악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폴린 보나파르트는 당대에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이름이 높았다. 


 '춤추는 회의' 가 벌어지고 있는 빈에서는 나폴레옹의 거처를 엘바에서 아조레스 제도나 서인도 제도, 또는 '세인트헬레나' 로 옮기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1815년 2월, 황제의 측근 플뢰리 드 샤브롱은 이러한 사실을 포함한 프랑스 국내의 문제에 대한 정보를 나폴레옹에게 전해준다. 이 좁은 섬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열정이, 그의 가슴 속에서 또다시 타오르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엘바섬 총독 드루오에게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배를 구하고, 그 배를 영국 배의 일반적인 색깔로 칠할 것을 명령했다. 드루오는 이 무모해보이는 시도에 대해 머뭇거렸지만, 엘바 섬에 머물고 있던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치아는 너무나 커버린 자신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거라, 아들아. 가서 네 운명을 개척하거라. 넌 이 섬에서 죽으려고 태어나지는 않았다."


 나폴레옹을 움직인 동기, 그 힘에 대해 보나파르트 자신은 세인트헬레나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나를 되돌아가도록 부추긴 것은 겁쟁이라는 비난이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샤토브리앙은 그러한 이유에 대해 '오직 자신의 이기심으로 움직였을 뿐' 이라며 비난했지만, 어찌되었건 레티치아의 말처럼 나폴레옹의 운명은 엘바 섬에 있지 않았다.


 감시하던 영국의 캠벨 대령이 놀기 위해 리부른으로 떠남으로서 기회가 찾아왔다. 1815년 2월 26일 앵콩스탕 선에 올라 돛을 올렸다. 2월 28일 캠밸이 돌아왔을때는 이미 나폴레옹과 그 호위대가 길을 떠난 후였다. 가까운 곳에 있는 영국 함선들이 앵콩스탕 호를 추격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오직 항로를 따라 순항중이던 프랑스 배 3척 중 한 척이 앵콩스탕 호에 접근 해, 이렇게 물었을 뿐이다.


 "황제는 잘 있소?"


 그렇게 옛 군주의 근황을 물은 배는 실수인지, 아니면 모든것을 알면서도 묵인해 주려고 했었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냥 돌아아갔다. 1815년 3월 1일, 마침내 나폴레옹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프랑스의 앙티브 근처에 상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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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확실히 굉장한 순간이었다. 나폴레옹은 귀환하자마자 국민에게 보내는 포고문을 발표했지만, 진정 격이 높았던 것은 그가 평생을 함께 했던 장소, 군에 대한 포고문이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옛 용사들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병사들이여


그대들이 올룸을 비롯하여 거둔 승리,


아우스터리츠,


예나,


아일라우,


프리틀란트,


투델라,


에크뮐,


에스링,


바그람,


스몰렌스크,


모스크바 강,


루체른,


뷜센 그리고 몽마라유에서 치켜들었던 그 독수리 표지


그것을 다시 한 번 손에 들어라!


그대들의 지위와, 재산과, 명예를 위해서나


그대들 자손의 지위와, 재산과, 명예를 위해서나


외국으로부터 강요받은 군주만큰 큰 적이 있겠는가?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히는 적이다.


우리의 승리는 돌격의 발걸음으로 전진할 것이다.


우리의 독수리는 국기와 함께 종루에서 종루로,


노트르담 사원의 탑까지 날아갈 것이다.





 포고문이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서라면, 그 위대한 승리의 역사의 서술보다 더한 것이 존재하였을 것인가? 이제 리옹으로 가려면 여기에서 곧장 북으로 가면 될 것이다. 나폴레옹은 1천명도 되지 않은 자신의 병사들에게 "총 한 방 쏘지 않고 파리로 돌아갈 것" 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엘바로 가는 길에 야유를 퍼붓던 왕당파들의 지역을 피해, 지금은 '나폴레옹 루트'로 알려진 그라스, 디뉴딘, 그르노블을 거치는 산악 통로를 택했다. 


 도핀에서 농민들은 보나파르트를 열렬하게 환영했지만, 그르노블 코 앞에서 그는 가장 혹독한 시련을 당했다. 왕당파 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막강한 수비대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자신의 참모였던 라 베드와예 대령이 한 연대를 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연대는 나폴레옹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분명하게 동요하고 있었으며, '옛' 황제의 병력이 1천명 밖에 되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사병들은 놀라 "우린? 우리도 함께 계산해야지!" 라고 아우성을 질러 대었다.


 여기서 나폴레옹은, 그 수많은 전설적인 일화 중에서도 최고봉에 속하는 위업에 도전하였다. "저기다, 발사!" 라는 대장의 명령 소리가 들림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홀로 말을 몰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지점까지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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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대대의 병사들이여, 

나는 여러분의 황제다.

나를 잘 보아라.


 그리고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여러분 가운데 당신들의 황제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 바로 내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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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한 발이면 모든 모험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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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연대는 총을 버리고, 대열을 깨고 나와 "황제 만세!" 를 외치며 나폴레옹을 에워 쌌다. 나폴레옹이 그르노블 관문에 나타나자 포병대원들은 자신들의 황제에게 발포하라는 명령을 거부했고, 전 수비대가 그에게 넘어갔다. 나폴레옹은 위대한 지휘관으로 손 꼽히고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 승리만큼 영광스러운 승리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이곳 그르노블에 이르기 전까지 나는 모험가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다시 왕이 되었다." 그의 군대는 파리를 향해 계속해서 진격했다.


 나폴레옹의 귀환 소식은 처음 파리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진 못하였다. 냉정한 것인지, 아니면 냉정하려고 노력을 해서였는지는 모른다. 루이 18세는 술트 - 과거 나폴레옹을 따라 프라첸 고지를 점령했던 그 술트에게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집결하게 했고, 아르투아 백작이 부대를 지휘하고 마크도날이 이를 보좌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고, 시민들은 국왕군에게 냉담한 상태였다. 아르투아 백작은 겁에 질려 달아났다. 마크도날도 뒤를 따랐고, 그 직후 나폴레옹이 리옹에 입성했다. 시민들은 "왕당파를 타도해라! 귀족들의 목을 매달아라! 부르봉 가를 처형대에 보내라!" 며 소리쳤다.


 엉덩이가 무거운 파리 역시 이제서야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루이 18세는 '용사 중의 용사' 미셀 네이를 불러들여 나폴레옹을 타도할 것을 명령했다. 네이는 자신감 있게 가슴을 두드리며 "그 작자를 철창에 가둬 데려오겠다." 고 대답했다. 그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출발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네이라는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단순하고, 과격하며, 병사들에게 인기가 많고, 쉽게 감동하는 인물. 그와 네이의 아내는 루이 18세의 궁전에서 교양이 없는 인간이라고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네이 부부는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궁정 행사 참석도 거부했다. 나폴레옹은 그런 네이, 자신에게 '퇴위하라' 고 소리쳤던 네이에게 한통의 편지를 전했다.


 "모스크바 전투에서처럼, 나는 그대를 기다릴 것이다."


 모스크바. 네이가 바로 모스크바 대공이었다. 칼과 총탄이 나뒹구는 전쟁터, 눈이 쌓인 러시아의 초원을 말을 달려 진군하여 황제를 위해 싸우던 시절. 루이 18세의 궁전에서 무식한 인간으로 전락하여 모욕받는 나날과 그 시기를 비교하면 무엇이 나은가? 


 과장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타이르는 듯한 나폴레옹의 말에 네이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마르몽은 네이의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대의 의견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병사들이 오랫동안 모시던 지휘관의 이름과 인품에는 마술과 같은 매력이 있었고, 드 부르몽 씨를 포함한 측근들이 진언을 했기 때문에 네이도 마침내 마음을 움직여 결심했다." 네이는 3월 18일, 오세르에서 나폴레옹과 합류했다. 


 어정쩡한 모습으로 합류했지만, 아직 자신의 행동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그런 네이를 만난 나폴레옹은 있는 힘껏 그를 끌어안았다. "어세 오게, 나의 원수" 라면서 말이다.


 그 순간, 나폴레옹은 이미 루이 18에게 승리했다. 루이 18세는 파리에서 불안에 떨며 보좌관에게 "다시 혁명이다." 고 중얼거렸다. 폭풍이 왔다. 엘바로부터, 바다로 부터 폭풍이 왔다. 바람이 바뀌었다. 바다로부터 아침과 바람이 몰려왔다. 세상이 뒤흔들렸다. 관보 『세계신문』은 나폴레옹의 행군에 대해 매일 보고하면서 프랑스인들에게 저항하라고 당부했다.



식인종이 소굴에서 도망쳤다.



신문에는 다음 표제의 기사들이 실렸다.




코르시카의 식인귀가 쥐앙 만에 도착했다.


호랑이가 가프에 도착했다.


괴물이 그르노블에 머물렀다.


독재자가 리옹을 건넜다.


찬탈자가 수도에서 60마일 거리에서 목격되었다.


보나파르트가 큰 걸음으로 진군하지만 아직 파리에 입성하지 않았다.




이제 신문의 어조는 놀랄 만큼 달라지기 시작한다.




나폴레옹은 내일 우리 성벽에 도착할 것이다.


황제가 퐁텐블로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젯밤에 황제 폐하께서 충성스러운 신하에 둘러싸여 튈트리 궁에 입성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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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

2013.10.02
17: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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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건 굉장히 재밌군요.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게 변덕스러운 걸 보면 민족성은 2천년이 지나도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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