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 왕미열전

왕미王弥는 동래군東萊郡 사람이다. 집은 대대로 2천석二千石의 상급관리를 지냈다. 조부 왕기王頎는 위의 현토태수玄菟太守로, 무제武帝 때는 여남태수汝南太守가 되었다. 왕미는 재능이 있고, 여러가지 책을 널리 읽었다. 젊었을 때 낙양에서 협객이 되었는데(1), 은자 동중도董仲道가 왕미를 만나 말했다.「군은 승냥이山犬와 같고〔흉폭하고〕목소리는 표범豹 같이〔흉악해〕눈매를 하니, 난을 좋아하고 화를 즐거워한다. 혹시 천하가 소란해진다면 사대부가 되진 않을 것이다.」


(1)「유원해전劉元海伝」에 의하면, 왕미는 유연이 귀향할 때 송별연을 베풀었다.

 

혜제恵帝시대 말, 종교를 이용해 대중을 선동한 반란자〔현령㡉令〕유백근劉柏根이 동래군 현현㡉県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왕미는 자신의 하인을 이끌고 반란에 가담해, 유백근은〔왕미를〕장사로 삼았다(2). 유백근이〔진군에게 패해〕죽자,〔왕미는〕바닷가에서 동지를 모았으나, 구순苟純에게 패하고,〔왕미는〕고향을 떠나 장광산長広山으로 도망쳐서 적도賊徒〔의 일원〕가 되었다. 왕미는 임기응변의 책략에 뛰어나고, 약탈할 때도 성공과 실패 양쪽을 예측하여 실패할 작전은 행하지 않고, 궁술弓術이나 마술馬術이 비상하게 민첩하고, 육체적 힘이 남들 이상이었기에, 청주에서는「비표飛豹」라 불렀다. 후에〔왕미는〕병사를 끌어모아, 청주와 서주에 침공해 약탈했으나, 연주자사兗州刺史 구희苟晞가 영격해, 왕미군을 크게 쳐부쉈다. 왕미는 퇴각해 도망병 등을 모으자, 군세는 다시 강대해져, 구희는 몇 번이고 싸웠으나, 쳐부수지 못했다. 왕미는 군을 진격시켜 태산泰山, 노국魯国,초譙,양梁,진陳,여남汝南,영천潁川,양성襄城의 여러 군을 공략해. 허창許昌에 들어가자 국가의 창고를 열어.무기를 탈취하고, 함락시킨 지역의 태수나 현령을 다수 살해하여, 수만의 병사를 거느렸기에, 조정은〔왕미를〕제압할 수 없었다.


(2)「혜제기恵帝紀」에 의하면 광희光煕 원년(306)3월、동래군 현 현령인 유백근이 반란을 일으켜 현공㡉公을 자칭하고 임치臨淄를 습격해 고밀왕高密王 사마간司馬簡은 요성聊城으로 도주했다. 왕준王浚은 부장을 보내 유백근을 토벌하고, 유백근을 참했다.


그 당시 천하는 크게 소란했다.〔왕미가〕진격하여 낙양洛陽에 이르자, 낙양은 크게 동요하여, 궁성의 문은 주간에도 닫혔다. 사도司徒 왕연王衍 등이 백관을 통솔해 방전했다. 왕미가 칠리간七里澗에 주둔하자, 진군은 진격하여 왕미의 군을 크게 파했다. 왕미는 동료 유령劉霊에게 말했다.「진군은 아직 강하고, 귀순하려고 해도 적당한 장소가 없다. 유원해(유연)가 옛날〔진의〕인질로 왔을 때,나는 그와 함께 낙양을 돌아다니며, 의기투합한 적이 있는데,〔유원해는〕지금은 한왕漢王을 칭하고 있으니, 여기에 귀순하고자 하는데 괜찮은가?」 유령은 동의했다. 황하黄河를 건너 유원해에게 귀순했다. 유원해는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여,〔유원해가 임명한〕시중侍中 겸 어사대부御史大夫를 파견하여 근교에서 마중나가, 다음과 같이 서신을 보냈다.「장군에겐 불세출의 공적, 희대의 인덕이 있으니, 이렇게 마중나왔습니다. 이전부터 장군이 오시길 기다려왔기에, 나는 지금부터 장군이 계시는 관까지 직접 참배하고, 바로〔환영 준비를 위해 장군 자리의〕먼지를 털고 잔을 씻으며, 삼가 장군을 기다리겠습니다.」왕미는 유원해와 회견하자, 황제를 칭하기를 권했으나, 유원해는 왕미에게 말했다.「고는 이전에 장군이 두주공竇周公(3) 같다고 말했으나, 지금은 그야말로 나의 공명孔明(제갈량),중화仲華(4)가 되었소. 열조烈祖(5)의 말에『내 밑에 장군이 있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소(6)。』라고 한 것이오.」이 때, 왕미는 사례교위司隷校尉에 임명되어, 시중과 특진特進도 더해졌으나, 왕미는 고사했다.〔유원해는 왕미에게〕유요劉曜를 따라 하내河内를 공략시키고, 또 석륵과 함께 임장臨漳을 공격시켰다.


(3)두융竇融이다. 주공周公은 자. 두융은 처음에는 신新의 왕망王莽을 섬겼으나, 후에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배하가 되어, 관위는 대사공大司空까지 이르렀다.

 

(4)[등登]우禹이다. 중화仲華는 자. 후한 광무제의 거병을 따라 관위는 대사도大司徒까지 이르렀다.

 

(5)촉한의 소열제昭烈帝 유비劉備를 말한다.「유원해전」에 의하면, 유연은 한의 뒤를 잇는다는 것으로 국호를 한漢이라 하고、3조5종三祖五宗을 세웠다. 그 3조 중 하나가 열조烈祖로, 소열제 유비로 보고 있다.

 

(6)『삼국지三国志』촉서蜀書 제5「제갈량전諸葛亮伝」에 보이는「수어지교」의 고사를 뜻한다.


영가永嘉가 시작되자,〔유원해의 군은〕상당上党을 공략하고 호관壺関을 포위했다. 동해왕東海王 사마월司馬越은 회남내사淮南内史 왕광王曠,안풍태수安豊太守 위건衛乾 등을〔유원해 군의〕토벌에 파견했다. 왕미는 고도高都와 장평長平 사이에서〔진군과〕싸워, 진군을 대패시켰다. 진군의 사망자는 10명 중 6-7명에 이르렀다. 유원해는 왕미를 정동대장군征東大将軍으로 올리고 동래공東萊公에 봉했다.〔왕미는〕유요,석륵 등과 함께 위군魏郡,겹군汲郡,돈구頓丘의 50여성을 공격해 함락하고, 그 모든 곳에서 병사를 징발했다. 또 석륵과 함께 업을 공격하자, 안북장군,安北将軍 화욱和郁은 성을 버리고 도주했다. 회제懐帝는 왕미 토벌에 북중랑장北中朗将 배헌裴憲을 파견해 백마白馬에 주둔시키고, 석륵 토벌에 거기장군車騎将軍 왕감王堪을 파견하여 동연東燕에 주둔시키고, 유원해 토벌에 평북장군平北将軍 조무曹武를 파견해 대양大陽에 주둔시켰다. 무부장군武部将軍 팽묵彭黙이 유총劉聡에게 패하여 살해되자,〔진의〕대군은 모두 후퇴했다. 유총이 황하를 건너자, 회제는 사례교위 유돈劉暾, 장군将軍 송추宋抽 등에게 방위시켰으나, 모두 저항하지 못했다. 왕미,유총은 1만기로 낙양까지 오자,〔태학과 소학의〕이학二学을 불태웠다. 동해왕 사마월은 서명문西明門에서 반격하여, 왕미 등은 패주했다(7). 왕미는 또 2천 기로 양성襄城의 각 현을 공략했다. 하동河東,평양平陽,홍농弘農,상당上党의 각 군에서 유랑하여 영천潁川,양성襄城,여남汝南,남양南陽,하남河南의 각 군에 재주한 수만 가는, 원래 살던 사람들에게서 무례한 대접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은〕모두 성곽에 불을 지르고,〔진조에 반란을 일으켜〕태수나 장사 등 이천석의 관리를 죽여 왕미에게 호응했다. 왕미는 또 2만 명으로 석륵과 합류해 진군,영천을 공략해, 양적陽翟에 주둔했다.〔왕미는〕동생 왕장王璋을 파견해 석륵과 공동으로 서주와 연주를 공략하여 동해왕 사마월의 군대를 괴멸시켰다. 


(7)「유원해전」에 의하면, 유연은 유총、왕미 등에게 오만기를 이끌게 하여 낙양 공격에 향하게 했다. 한군은 다시 패퇴하여 평양으로 귀환했다.「효회제기孝懐帝紀」에 의하면 영가 4년(310)5월、유幽,병并.기冀.진秦.옹雍 등 6주에 메뚜기가 크게 발생해, 초목부터 소나 말의 털까지 먹어치웠다. 6월, 유연이 죽고, 아들 유화劉和가 한의 황위를 이었으나, 유화의 동생 유총이 유화를 죽이고 황제가 되었다.


왕미는 후에 유요와 함께 양성을 공략하여. 결국 낙양에 도달했다. 이 때 낙양은 대기근으로, 사람이 서로를 먹고, 많은 사람들이 낙양을 떠나 유랑해, 진조의 고관들은 하음河陰으로 도망쳤다. 유요,왕미 등은 마침내 궁성을 함락시키고, 태극전전太極前殿에 도달하자, 병사들은 마음대로 크게 약탈했다. 회제는 궁성의 남정문南正門으로 유폐되고 양황후羊皇后는〔유요에게〕강요당해 욕을 당하고, 황태자皇太子 사마전司馬詮(8)은 살해되었다. 능묘陵墓는 파헤쳐지고, 궁전종묘宮殿宗廟는 불살라지고. 성내의 관청은 약탈당하여, 관료나 시정의 남녀로 죽임을 당한 자가 3만 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회제는 평양平陽으로 끌려갔다.


(8)「청하강왕전清河康王伝」에는「詮」は「銓」이라 되어 있다.

 

왕미가 약탈을 행하자, 유요는 약탈을 금지시켰으나, 왕미는 따르지 않았다. 유요는 왕미의 아문 왕연을 참하여 보여주기로 삼자,이에 왕미가 노하여, 병력에 기대어 유요와 전투하여,〔쌍방이〕천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왕미의 장사長史 장숭張嵩이 충고하여 말했다.「명공明公은 한왕(유원해)과 함께〔천하평정의〕대사를 일으켰으나, 지금은 그 사업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됐는데, 아군끼리 공격하니, 어떻게 주상을 대면할 수 있겠습니까!낙양을 평정한 공적은 사실 장군(왕미)께 있으나, 하지만 유요는 황족皇族이므로, 섣불리 나서 공적을 적게 하는 게 좋겠지요. 진이 오를 평정했을 때 이왕(왕혼王渾과 왕준王濬)의 일건은, 먼 옛날 일이 아니므로, 부디 명장군(왕미)께서 숙려하시길 바랍니다. 혹시 장군이 병력에 기대어 귀환하지 않는다면, 장군의 자제종족은 어떻게 되겠습니까!」왕미가 말했다.「좋소, 만약 그대가 없었다면,나는 이 잘못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오.」이에〔왕미는〕유요에게 나아가 사죄하여, 화해했다. 왕미가 말했다.「하관下官(왕미)이 잘못을 깨닫게 된 것은 장장사(장숭)의 공적입니다.」유요는 장숭을 향해 말했다.「군의 행동은 주건朱建(9)과 같다〔같이 뛰어나다〕. 범생范生(10)과 같다〔멋대로〕라고 말하겠는가!」각자가 장숭에게 금 100근을 내렸다. 왕미는 유요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낙양은 천하의 중심으로, 산하에서 사방의 수비가 견고하고, 성벽이나 참호, 궁실은 일시에 조영한 것이 아닙니다. 평양에서 수도를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유요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낙양을 불태우고 물러났다. 왕미는 이에 노해 말했다.「도각屠各의 아들에게 제왕帝王으로서의 생각이 있겠는가!네놈은 천하를 어찌하려고 하는가!」이에〔왕미는〕병사를 이끌고 동쪽의 항관項関에 주둔했다(11).

 

(9) 주건은 전한前漢 사람. 회남왕淮南王 경포黥布를 섬겨, 경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반란을 그만두도록 간언했으나, 경포는 받아들이지 않고 반란하여 처형당했다. 주건은 간언을 평가받아 평원군平原君의 호를 받았다.

 

(10) 항우項羽의 군사軍師・범증范増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범증은 항우를 단념하고 떠났다.

 

(11)「유총전劉聡伝」에 의하면 그 후에 유총은 왕미를 대장군大将軍로 삼고 제공斉公에 봉했다.


원래부터 유요는 왕미가 먼저 낙양에 입성하여, 자신을 기다리지 않은 것을 원망했으나, 이 때가 되자〔왕미와 유요는 서로에 대한〕의심과 불만이 표면화했다. 유돈은 왕미에게 청주青州를 거점으로 하기 위해 귀환하도록 설득해, 왕미는 이에 동의했다. 이에 좌장사左長史 조억曹嶷을 진동장군鎮東将軍으로 하여, 5천의 병사를 주어, 다수의 자산이나 보물을 지니고 향리에 귀환시켜 호적을 잃은 자를 권하여, 그리고 그 일족을 영입했다. 왕미의 부장 서막徐邈과 고량高梁은〔조억이 출발하자〕곧장, 부하 수천명을 이끌고 조억의 뒤를 쫓아〔왕미의 밑을〕떠나, 왕미의 세력은 점점 쇠약해졌다.


이전부터 석륵石勒은 왕미가 강하고 용맹한 것을 꺼려, 평소 몰래 대비했다. 왕미는 낙양을 파하자, 석륵〔을 아군으로 삼기 위해〕에게 많은 미녀와 재보를 주고, 석륵과 손을 잡았다. 석륵이 구희를 생포하여 좌사마左司馬로 삼았을 때, 왕미는 석륵을 평하여 말한「공이 구희苟晞를 잡아 기용한 것이, 어찌 이리 신묘한 것인가!구희는 공의 왼쪽에, 왕미를 공의 오른쪽에 두면, 천하를 평정하고도 남을 것이오!」석륵은〔이 말에서〕왕미를 더욱 꺼려, 몰래〔왕미를〕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 유돈劉暾은 왕미에게 조억을 불러들일 것을 권하여, 조억 배하의 병사를 써서, 석륵을 주살하려 했다. 이에 왕미는 유돈을 사자로 하여 청주로 가서 조억에게 병사를 이끌고 자군과 합류하게 하여, 석륵에 대해서는 거짓 서약을 하여 자신과 함께 청주로 향하려 했다. 유돈이 동아東阿에 이르러, 석륵의 유격기병遊撃騎兵에게 포획되었다. 석륵은 왕미가 조억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내용에〕격노하여, 유돈을 죽였다. 왕미가 아직 이를 모르는 틈에, 석륵은 병사를 숨겨 왕미를 습격해 죽이고, 그 군세를 합쳤다(12)。

 

(12)「석륵전상石勒伝上」에 의하면, 석륵은 왕미에게 주연을 권하여, 자신의 손으로 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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