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처사군님의 블로그


채륜蔡倫의 자는 경중敬仲으로, 계양桂陽 사람이다. 영평永平 말 에 처음 궁궐에서 직무를 맡았다. 건초建初 중, 소황문小黃門이 됐다. 화제和帝가 즉위하고, 중상시中常侍로 전임돼, 유악帷幄에 참여했다.

 

채륜은 재주와 학문이 있었고, 성심을 다하며 돈후하고 신중했고, 자주 엄한 용안을 거스르면서도, 득실을 바로잡으며 도왔다. 매번 휴목休沐하게 되면, 번번이 문을 닫고 빈객을 끊고는, 논밭과 들판에서 햇볕을 쬈다. 후에 관위 상방령尚方令이 더해졌다. 영원永元 9년, 비검祕劔과 여러 기계를 만드는 것을 감독했는데, 정교하고 견고하며 세밀하지 않은 것이 없어, 후세의 모범이 됐다.  

 

자고로 문자는 다수 죽간竹簡에 지었고, 혹은 겸백縑帛을 쓰며 이를 지紙라고 일렀다. 비단은 귀하고 죽간은 무거워, 모두 사람들에게 편하지 않았다. 채륜이 이에 구상하여, 나무껍질, 작은 마麻를 부수고 뒤섞은 것과 해진 포布, 어망魚網을 써서 종이를 만들었다. 원흥元興 원년 이를 상주하니, 황제가 그의 재능을 훌륭하다고 여겼고, 이로부터 따라서 쓰지 않음이 없었기에, 천하에선 모두 채후지 蔡侯紙 라고 칭했다. 

 

원초元初 원년, 등태후鄧太后는 채륜이 오래도록 숙위宿衞하여, 용정후龍亭侯에 봉했고, 식읍 3백호를 하사했다. 후에 장락태복長樂太僕이 됐다. 4년, 황제는 경전의 글이 다수 잘못을 고쳐 바로잡지 못했기에, 이에 경서에 통달한 알자謁者 유진劉珍과 박사博士, 훌륭한 사관을 선발해 동관東觀에 이르러, 각자 가법家法을 비교하여 교정하며, 채륜에게 그 일을 감독하며 주관하게 했다.

 

채륜은 애초에 두후竇后의 풍유한 뜻을 받아, 안제安帝의 조모 송귀인宋貴人을 무함誣陷하였다. 태후가 죽고, 안제는 비로소 직접 만기萬機 를 처리하며, 칙서로 스스로 정위廷尉에게 가도록 했다. 채륜은 모욕을 당할 것이 부끄러워, 이에 목욕하고 의관을 정돈하고는, 약을 마시고 죽었다. 봉국은 제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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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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