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처사군님의 블로그


정중鄭衆의 자는 계산季產으로, 남양南陽 주犨 사람이다. 사람됨이 신중하고 기민하며 지모가 있었다. 영평永平 중, 처음 태자의 집에서 직무를 맡았다. 숙중肅宗이 즉위하고, 소황문小黃門으로 임명하고, 중상시中常侍로 승진시켰다. 화제和帝 초, 관위 구순령鉤盾令이 더해졌다. 

 

당시 두태후竇太后가 집정해, 태후의 오빠 대장군大將軍 두헌竇憲 등이 모두 위세와 권력을 훔쳐, 조정의 신하들은 위아래로 그에게 붙지 않음이 없었으나, 정중은 홀로 왕실에 한마음이었고, 호당豪黨을 섬기지 않아, 황제는 가까이 하며 신임했다. 두헌 형제가 불궤한 짓을 도모할 때, 정중은 마침내 으뜸으로 그를 주살하길 도모하여서, 공으로 인해 대장추大長秋로 승진했다. 공훈을 문서에 기록하고 상을 나누면, 매번 많은 것을 사양하고 조금 받았고, 이로부터 항상 정사를 의논하는데 참여했다. 내시가 권세를 부림은, 정중으로부터 시작됐다. 

 

14년, 황제가 정중의 공이 훌륭하다고 생각해, 소향후鄛鄉侯로 봉하고, 식읍 1500 호를 하사했다. 영초永初 원년, 화희황후和熹皇后가 3백 호를 늘려 봉해줬다. 

 

원초元初 원년 죽어, 양자 정굉鄭閎이 대를 이었다. 정굉이 죽고, 자식 정안鄭安이 대를 이었다. 후에 봉국이 단절됐다. 환제桓帝 연희延熹 2년, 정중의 증손 정석수鄭石讎를 계승해 봉하여 관내후關內侯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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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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