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차: 처사군님의 블로그


[[원안열전]]에서 분리


원굉袁閎의 자는 하보夏甫로, 원팽袁彭의 손자다. 어려서 태도와 행실에 힘써, 몸을 고되게 하며 절조를 닦았다. 부친 원하袁賀가, 팽성상彭城相이 됐다. 원굉은 관아에 가 뵈며, 성명을 바꿨고, 걸어서 가며 무리가 없이 혼자였다. 이미 부문府門에 이르렀으나, 연일 관리가 그에게 알리지 않았는데, 때마침 유모가 나왔다가, 원굉을 보고 놀라, 들어가서 부인에게 아뢔, 이에 은밀히 불러서 만났다. 오래지 않아 작별하고 떠났는데, 원하는 수레를 보내 그를 전송했으나, 원굉은 머리와 눈이 어지러운 병을 칭하며 기꺼이 타지 않고, 돌아와, 군의 경계 안에서는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원하가 군郡에서 죽어, 원굉 형제는 영상迎喪하며, 부의를 받지 않았고, 최질縗絰을 갖추고 널을 떠받치며, 한랭한 이슬을 무릅써서, 예절에 맞는 몸가짐이 손상됐고, 손과 발에서는 피가 흘러, 보는 이들이 불쌍히 여기지 않음이 없었다. 삼년상을 마치고 상복을 벗으니, 자주 예를 갖추어 초대하며 추거하고 불러들였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다. 보잘것없는 곳에 거처하며, 농사를 짓고 학문함을 업으로 삼았다. 종부從父 원봉袁逢, 원외袁隗가 모두 고귀해지고 빛나서, 자주 그에게 선사하였으나, 받은 바가 없었다.


원굉은 당시 한창 험난하나, 가문은 재물이 풍성함을 보고, 항상 형제에게 탄식하길 : “우리 선공先公의 복을, 후세 인들은 덕으로 이를 지킬 수 없고, 교만하고 사치스러움을 다투며, 어지러운 세상과 더불어 권리를 다투니, 이가 바로 진晉의 삼극三郤이로구나.” 연희延熹 말, 당사黨事가 장차 일어나려 해, 원굉은 마침내 머리를 풀어헤치고 세상과 단절돼, 깊은 숲에 투신하고자 했다. 모친이 연로해 의당 멀리 은둔하지 못하기에, 이에 토담집을 쌓고, 뜰에서 사방에는, 구멍을 만들지 않고, 들창으로부터 음식을 거둘 뿐이었다. 아침에는 집안에서 동쪽으로 모친을 향해 절하였다. 모친이 원굉을 그리워해, 때때로 가서 봤는데, 모친이 떠나면, 곧 스스로 문을 닫아, 형제와 처자식은 볼 수가 없었다. 모친이 죽고, 상복을 입지 않고 위패를 두지 않아, 당시에 지칭할 수가 없어서, 어떤 이는 미친 서생이라 여겼다. 은거한지 18년, 황건적이 일어나, 군현을 공격해 함락하여, 백성은 놀라고 어수선했으나, 원굉은 경서를 읽으며 이동하지 않았다. 도적들이 서로 그의 마을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약속하여, 향인들은 원굉에게 이르러 난을 피하며, 모두 온전하게 면할 수 있었다. 57 세에, 토담집에서 죽었다. 두 동생으로 원충袁忠, 원홍 袁弘 은, 절조가 모두 원굉보다 뒤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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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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