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 - 황후기 서문

출처: 마왕님의 이글루스


하나라와 은나라 이전의 후비(后妃) 제도는 생략해 적지 않는다.

『주례』에 따르면, 왕은 후(后), [주:1] 삼 부인(夫人), 구 빈(嬪), 이십칠 세부(世婦), 팔십일 여어(女御)를 세워서 내직(內職)을 갖추었다. 후는 궁궐 내전[宮闈]의 바른 자리로서 천왕(天王, 황제)과 한 몸을 이루었다.

부인은 앉아서 아내의 예[婦禮]를 논했고, [주:2] 구빈은 사덕(四德) [주:3] 을 가르치는 일을 책임졌고, 세부는 상례와 제사와 손님맞이를 주관했고, [주:4] 여어는 왕의 연침(燕寢, 임금이 평상시에 한가롭게 거처하는 전각.)에서 차례대로 모셨다. [주:5]

자리를 구분하고 일을 나누어 각자 맡은 바가 있도록 했다.

[주:1] 정현(鄭玄)은 『예기주(禮記注)』에서 “후(后)는 후(後), 즉 뒤를 말한다. 지아비 뒤에 있으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주:2] 정현은 『주례주』에서 “삼공이 왕에게 하듯이 부인은 왕후에게 그렇게 하는데, 앉아서 아내의 예[婦禮]를 논한다.”라고 했다.

[주:3] 구빈은 구경에 비견된다. 『주례』에 따르면, “구빈은 여자들이 배울 것[婦學]의 법도를 책임지며, 그로써 구어(九御)를 가르친다.” 사덕이란 부덕 (婦德, 마음가짐) , 부언 (婦言, 말씨) , 부용 (婦容, 몸가짐) , 부공 (婦功, 길쌈) 을 말한다.

[주:4] 부(婦)는 복(服), 즉 모신다는 뜻이다. 남을 모시는 일에 밝은 사람들로 이십칠 대부에 비견된다. 『주례』에 따르면, “세부는 제사, 손님맞이, 상례의 일을 관장한다. 제삿날, 궁궐 여자들이 갖추어야 할 것을 살펴 진열하고, 궁궐 안에서 장만한 제수[內羞]를 두루 진설한다. 경이나 대부가 상을 당했을 때 왕을 대신하여 조의를 표하는 일을 맡는다.”

[주:5] 어(御)는 왕에게 나아가 모신다는 말로, 팔십일 원사(元士)에 비견된다. 『주례』에 따르면, “여어는 왕의 연침에서 차례대로 모시는 일을 책임지며, 해마다 때에 맞추어 길쌈한 공적을 바친다.”

여사(女史) 동관(彤管)을 두어 공적과 잘못을 기록했다. [주:6]

거할 때는 보모[保阿]의 가르침에 따르고, 움직일 때에는 패옥 소리를 울리게 했다. [주:7]

어질고 재주 있는 사람을 천거하여 군자(君子)를 보좌하며, 고상하고 정숙한 여자[窈窕]를 간절히 구하되 그 미색에 현혹되지 않았다.[주:8]

이처럼 여자의 교화[陰化]를 이어받아 선양하고 내칙(內則)을 부지런히 갈고 닦는 [주:9] 까닭은 규방을 엄숙하고 화목하게[肅雍] 하며 사악한 청탁[險謁]을 행하지 않게 하려 함이다. [주:10]

[주:6] 『주례』에 따르면, “여사는 왕후의 예를 담당하고, 왕후의 명령[內令]을 기록하며, 무릇 왕후의 일을 예로써 좇는다.” 정현은 『주례주』에서 “왕에 대해 대사(大史)가 하는 일과 같다.”라고 했다. 동관은 빨간색 대나무 통으로 만든 붓이다. 『시경』에 “나에게 빨간 대나무 통을 주었네[詒我彤管].”라는 구절이 있다. 『시경주』에 따르면, “옛날에 왕후 부인에게는 반드시 여사 동관의 법이 있었다.”

[주:7] 『열녀전(列女傳)』에 따르면, “제나라 효공(孝公)의 맹희(孟姬)는 화씨(華氏)의 딸이다. 어느 날 그녀는 효공을 모시고 놀러 갔는데, 수레가 달리다가 맹희는 떨어지고 수레는 부서졌다. 효공이 사마입거 (駟馬立車, 네 마리 말이 끄는 서서 타는 수레) 를 보내 맹희를 데려오게 했다. 그러자 맹희가 울면서 ‘첩이 듣기에 왕비는 당에서 내려설 때에는 반드시 유모[傅母]나 보모[保阿]를 따르게 하고, 나아가고 물러설 때에는 패옥을 울린다고 했습니다. 지금 입거무병 (立車無輧, 가림막 없이 서서 타는 수레) 를 내리시니, 감히 명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주:8] 「모시서」에 따르면, “「관저」는 숙녀(淑女)를 얻어 군자와 짝지어 줌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어진 사람을 내세우지 못할까를 걱정할 뿐 결코 그 미색에 현혹되지 않으며, 고상하고 정숙한 여자[窈窕]를 간절히 구하고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사모하여 착한 마음을 해침이 없는 것이다.” 모장은 『시경주』에서 “요조(窈窕)는 유한(幽閒), 즉 유순하고 고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9] 『주례』「내재직(內宰職)」에 따르면, “부인의 예[陰禮]로써 육궁 (六宮, 황후와 비빈이 거하는 여섯 궁궐) [의 구빈]을 가르치며, 부인의 직분[婦職]을 정한 법도로써 구어를 가르친다.”

[주:10] 숙(肅)은 경(敬), 즉 공경한다는 뜻이다. 옹(雍)은 화(和), 즉 화목하다는 뜻이다. 알(謁)은 청(請), 즉 부탁하는 것이다. 군자를 보좌하면서 화목하게 순종하고 삼가 공경하며 사적인 청탁을 행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시서」에 따르면, “비록 천자의 딸[王姬]일지라도, 오히려 여자의 도리[婦道]를 바로잡아서 엄숙하고 화목한 덕[肅雍之德]을 이루었다.” 또 “사악하고 편벽되며 사사로이 청탁하려는 마음이 없다.”라고 했다.

옛날 주나라에서는 강왕(康王)이 조회에 늦자 「관저(關雎: 시경의 일부)」를 지어 풍자했고, [주:11] 주나라 주선왕(周宣王)가 늦게 일어나자 [晏起] 황후 강씨(姜氏)가 스스로 죄를 청했다. [주:12]

나중에 주나라 왕실이 동쪽으로 옮겨갔을 때 예와 질서가 시들고 이지러졌다. [주:13]

제후들이 분수에 넘치고 제멋대로 굴어 [후비] 제도에 법이 없어졌다. 제나라 환공은 부인에 해당하는 이를 여섯이나 두었고 [주:14] 진(晉)나라 헌공(獻公)은 융족(戎族)의 여자를 올려서 원비(元妃)로 삼았으므로, [주:15] 끝내 다섯 아들이 난을 일으키고 [주:16] 큰아들은 어려움을 만났다[冢嗣遘屯]. [주:17]

[주:11] 『한서』 「음의」에 따르면, “왕후와 부인은 닭이 울 무렵에 옥을 차고 왕이 거하는 곳에서 물러난다. 주나라 강왕의 왕후가 그러지 않았으므로 시인이 탄식하면서 그것을 가슴 아파한 것이다.” 「노시(魯詩)」에 나온다.

[주:12] 「열녀전」에 따르면, “주나라 선왕의 비 강후(姜后)는 제후(齊侯)의 딸이다. 일찍이 선왕이 밤에 누웠다가 늦도록 일어나지 않고 부인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에 강후가 바깥으로 나와 비녀와 귀고리를 빼고는 영항서에서 죄 받기를 기다리면서 보모를 시켜 왕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첩이 재주가 없는 데다 음란한 마음이 넘쳐서 군왕으로 하여금 예를 잃고 늦게 일어나게 했습니다. 이는 군왕이 색을 즐기고 덕을 잊게 만든 것입니다. 감히 죄를 청하면서 군왕의 명을 기다릴 뿐입니다.’ 왕이 답했다. ‘내 잘못이지 어찌 부인의 허물이겠는가.’ 이에 선왕이 정사에 힘써 중흥의 이름을 이룰 수 있었다.”

[주:13] 주나라 유왕 때, 서쪽 오랑캐[西夷]와 견융(犬戎)이 함께 여산(驪山) 아래에서 유왕을 공격해 살해했다. 이에 태자 의구(宜臼)를 세우니, 이 사람이 바로 평왕(平王)이다. [도읍을] 동쪽 낙읍(洛邑)으로 옮겨서 견융을 피하니 이때부터 정치가 쇠미해졌다.

[주:14] 『춘추좌씨전』에 따르면, 환공은 총애하는 여자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부인과 같았던 이가 여섯이나 있었다. 장위희(長衛姬), 소위희(少衛姬), 정희(鄭姬), 갈영(葛嬴), 밀희(密姬), 송화자(宋華子)가 그들이다.

[주:15] 원비는 정실부인을 말한다. 『사기』에 따르면, 진(晉)나라 헌공이 여융(驪戎)을 정벌한 후 여희(驪姬)를 얻었는데, 그녀를 총애하여 비(妃)로 세웠다.

[주:16] 환공은 여섯 부인에게서 여섯 아들을 낳았다. 환공이 죽자 공자 소(昭)가 자리에 올랐는데, 이에 공자 무휴(無虧), 공자 원(元), 공자 반(潘), 공자 상인(商人), 공자 옹(雍) 등 다섯 공자가 모두 자리에 오르고자 하니 공자 소는 송나라로 달아났다. 이를 두고 난을 일으켰다고 한 것이다.

[주:17] 총(冢)은 대(大), 즉 크다는 뜻이다. 구(遘)는 우(遇), 즉 만난다는 뜻이다. 둔(屯)은 난(難), 즉 어려움이라는 뜻이다. 진(晉)나라 헌공이 여희의 참소를 받아들여 태자 신생(申生)을 죽였으므로 어려움을 만났다고 한 것이다.

마침내 온 나라가 서로 싸우는 데 이르러서는 풍속과 법이 더욱 희미해졌으니 [임금이] 정에 이끌리고 하고픈 대로 행했으므로 저고리와 치마[衣裳]를 뒤집어 입은 꼴이 되어 [주:18] 끝내 나라를 잃고 몸을 망치는 데 이른 자가 세지 못할 정도였다. 이는 진실로 예를 가벼이 여기고 방비를 게을리 한 것이니 먼저 색을 찾고 나중에 덕을 구한 탓이라 할 수 있다.

진나라가 천하를 아울렀을 때, 스스로 교만하고 뽐내는 마음이 커서, 일곱 나라 미인을 궁궐에 구비하고 [주:19] 여덟 가지 품계로 작위를 주었다. [주:20]

한나라가 일어섰을 때, 진나라 때의 칭호를 좇았기 때문에 후비 제도가 제대로 다스려지지[釐] [주:21] 않았다.

[주:18] 윗옷을 의(衣)라 하고, 아래옷을 상(裳)이라 한다. 『시경』에 “푸른 옷이여, 푸른 옷에 누런 속옷이로다[綠兮衣兮, 綠衣黃裳].”라는 구절이 있다. 정현은 『시경주』에서 “단옷[褖衣, 왕후가 입는 옷]은 검은색인데, 여기서는 도리어 누런색을 속옷으로 입은 것이다. 그것은 예에 맞지 않으므로, 첩이 윗사람을 범하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라고 했다.

[주:19]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이 여섯 나라를 무찌르고, 그 궁궐들을 모방하여 함양(咸陽) 북쪽 언덕 위에 짓고는 남쪽으로 위수(渭水)를 끌어들이고 궁전의 여러 방들 사이에는 복도를 두어 빙 두른 누각들이 서로 이어지게 한 후 제후들에게서 얻은 아름다운 여자들을 그 안에 가득 채웠다.” 이를 진나라가 일곱 나라를 아울렀다고 한 것이다.

[주:20] 『한서』에 따르면, “한나라가 일어났을 때 진나라에서 쓰는 칭호들을 가져다 썼다. 그리하여 정실은 황후라고 칭하고 첩은 모두 부인이라고 칭했다. 그 밖에 미인(美人), 양인(良人), 팔자(八子), 칠자(七子), 장사(長使), 소사(少使)라는 호칭이 있었다.”

[주:21] 리(釐)는 리(理), 즉 다스린다는 뜻이다.

한나라 고조는 규방의 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고[帷薄不修] [주:22] 문제는 자리를 가리게 하지 않았다[衽席無辯]. [주:23]

그러나 [비빈을] 선발하여 받아들일 때에는 간소함을 숭상했던 까닭에 장식이나 노리개[飾翫]에는 화려함이 적었다. 하지만 무제(武帝)와 원제(元帝) 이후부터는 해마다 음비(淫費, 궁에서 후궁들을 거느리기 위하여 쓰는 비용.)가 늘어나 액정에 [여자들이] 삼천 명이나 거하는 데 이르렀으며, 등급도 늘어나 열넷에 이르렀다. [주:24]

요사스러운 여자들이 정치의 부절(符節, 조짐이나 징조)을 어그러뜨리고 외척들이 나라의 공적을 어지럽혔다. 이에 대해서는 『한서』에 상세히 실려 있다.

[주:22] 『대대례』에 따르면, “대신들이 남자와 여자 사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더러운 죄를 지었을 때에는 오예 (污穢, 더러움) 라고 하지 않고, 규방을 다스리지 않았다[帷薄不修]고 한다.” 주창(周昌)이 일을 아뢰기 위하여 들어갔을 때 고조가 척희(戚姬)를 끌어안은 채 만났다. 이를 [규방을] 다스리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주:23] 정현은 『예기주』에서 “임(衽)은 자리에 눕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 문제가 신 부인(愼夫人)을 총애한 것을 빌미로 [신 부인이] 매번 황후와 같은 자리에 앉았는데, 이를 일컬어 [자리를] 가리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주:24] 첩여(婕妤) 한 사람, 경아(娙娥) 두 사람, 용화(容華) 세 사람, 충의(充衣) 네 사람, 이상은 무제가 둔 것이다. 소의(昭儀) 다섯 사람은 원제가 설치한 것이다. 미인 여섯 사람, 양인 일곱 사람, 칠자 여덟 사람, 팔자 아홉 사람, 장사 열 사람, 소사 열한 사람, 오관(五官) 열두 사람, 순상(順常) 열세 사람, 무연(無涓), 공화(共和), 오령(娛靈), 보림(保林), 양사(良使), 야자(夜者)는 각각 열네 사람으로 이 여섯 관직은 품질이 모두 똑같이 일 등이었다.

나중에 광무제(光武帝)가 [한나라를] 다시 일으켰을 때, 섬세하게 새긴 것을 깎아[斲彫] [주:1] 질박함으로 돌아갔으니 육궁 (六宮, 황후와 비빈이 거하는 여섯 궁궐) 에 이름을 붙였지만 [후비는] 오직 황후와 귀인만을 두었다. [주:2]

귀인(貴人)은 황금으로 만든 인장에 자주색 인끈을 받았으나 녹봉은 곡식 수십 섬을 넘지 않았다. 그 밑으로는 미인(美人), 궁인(宮人), 채녀(采女) 세 등급만을 두었는데, 모두 관작과 녹봉이 없었으며 해마다 때에 맞추어 상을 내려 쓸 것을 보급했을 뿐이었다.

한나라 법에는 늘 8월에 산인(筭人) [주:3] 을 행했는데, 이때 중대부(中大夫)를 액정승(掖庭丞) 및 상공 (相工, 관상쟁이) 과 함께 파견하여 낙양 여러 마을을 돌면서 양갓집을 검열한 후 나이 열세 살 이상 스무 살 이하의 어린 여자아이 중 자색이 곱고 아름다우며 관상이 맞는 이들을 선발했다.

그러고는 이들을 수레에 싣고 후궁으로 데려와 자세히 살피면서 가부를 가린 후 천거하여 [궁인으로] 썼다. 이렇게 하여 현명하고 신중하게 궁인들을 맞아들이고 정숙하고 밝은 이들을 자세히 살펴 구할 수 있었다.

명제는 광무제의 뜻을 엄히 지켜 틈날 때마다 궁궐 안의 예의와 가르침을 힘써 배우게 하고 황후나 비들을 올려 봉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덕을 다스리게 하니 궁궐 안의 말이 문턱을 넘어 바깥으로 나가는 법이 없었으며 [주:4] 사사로움에 빠져 권세를 내리는 바가 없었으니 가히 그 폐단을 바로잡았다고 할 만하다.

외척(外戚)을 금지하기 위해 갑령(甲令) [주:5] 을 다시 엮어 후비 제도를 고치고 바로잡은 끝에 이를 지금에까지 이르게 하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비록 [명제가] 자기를 다스려 법도가 있었을지라도 [외척의] 방비가 아직 두텁지 못했기 때문에 장제 이후부터는 점차 미색을 받아들이고 권세를 내리며 은혜의 융성함이 총애에 부합하는 바가 많아져 끝내 검은 좀벌레들[淄蠹] [주:6] 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주:1] 새기는 것[彫]은 깎아서 장식하는 것이다. 『사기』에 “한나라가 일어섰을 때, 모난 것을 깨뜨려 둥글게 하고 다듬은 것을 깎아 질박하게 했다[破觚而爲圓, 斲琱而爲璞].”라는 말이 있다.

[주:2] 정현은 『주례주』에서 “황후는 정침(正寢) 하나와 연침 다섯을 두는데, 이것이 바로 육궁이다.”라고 했다. 부인 이하는 거기에 나누어 거한다.

[주:3] 『한의주』에 따르면, “8월 초에 산부 (筭賦, 한나라 때 성인 한 사람당 받던 세금.) 를 받으므로, 이를 산인 (筭人, 사람 수를 센다는 뜻) 이라 한다.”

[주:4] 곤(閫)은 문지방을 말한다. 『예기』에 따르면, “바깥의 말은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지 말아야 하고, 안의 말도 문지방 바깥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주:5] 『한서』 「음의」에 따르면, “갑령은 황제가 가장 앞에 내세우는 명령이다. 차례로 갑령, 을령(乙令), 병령(丙令)이 있다.”

[주:6] 치(淄)는 흑(黑), 즉 검다는 뜻이다. 두(蠹)는 나무를 먹는 벌레이다. 이는 나라가 기울어져 마침내 패망함을 비유한 것이다.

예부터 임금이 어리고 시절이 어려우며 왕실에 재난이 많을지라도 반드시 재상[冢宰]에게 책임을 맡기고 충성스럽고 어진 이들을 간절히 구했지 여자에게 오로지 책임을 맡김으로써 무거운 그릇[重器]이 쪼개져 깨지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돌이켜 보면 진나라의 미 태후(羋太后) [주:7] 가 처음으로 섭정을 시작했는데, 그로 인하여 양후(穰侯)의 권력이 소왕(昭王)보다 무거웠고, 그 집안이 영국 (嬴國, 진나라 왕실의 성씨가 영(嬴)이므로 영국은 진나라를 가리킨다.) 보다 부유했다. [주:8]

한나라는 그 잘못을 거듭하면서 근심거리임을 알았지만 고치지는 못했다. 동경 (東京, 낙양) 시절 황제의 혈통이 몇 차례나 끊어져 권력이 여자 군주에게 돌아갔다. 이에 바깥에서 옹립한 황제가 넷이나 되고, [주:9] 여섯 황태후(皇太后)가 조정에 나와 섭정했는데, [주:10] 모두 장막[帷帟] 뒤에서 몰래 정책을 정하여 아버지나 오빠에게 일을 맡긴 후 어린아이들을 찾아 황제로 세워서 오랫동안 정치를 하고자 했으며, 어질고 현명한 사람들을 억누르면서 그 위세를 마음대로 떨쳤다. [주:11]

[주:7] 미(羋)는 음이 망(亡)과 이(爾)의 반절이다.

[주:8] 미 태후는 진나라 소왕의 어머니이다. 선 태후(宣太后)라고 불렸다. 『사기』에 따르면, 소왕이 세워졌을 때, 나이가 어렸으므로, 선 태후가 몸소 정사를 살피면서 친동생 위염(魏冉)을 장군으로 삼아 정치를 맡기고 양후로 봉했다. 황태후가 섭정한 것은 이로부터 비롯했다.

[주:9] 안제, 질제, 환제, 영제를 말한다.

[주:10] 장제의 두 태후(竇太后), 화희태후(和熹太后) 등태후(鄧太后), 안사태후(安思太后) 염태후(閻太后), 순렬태후(順烈太后) 양태후(梁太后), 환사태후(桓思太后) 두태후(竇太后), 영사태후(靈思太后) 하태후(何太后)를 말한다.

[주:11] 『주례』에 따르면, “막인(幕人)은 휘장과 천막[幃帟幄幕]을 맡는다.” 정현은 『주례주』에서 “역(帟)은 천막 중에서 앉은자리 위쪽을 덮어 먼지를 막는 장막[承塵]을 말한다.” 상제가 붕어했을 때, 등 태후는 오빠 등질 등과 더불어 안제를 맞아들여 황제로 옹립했는데, 이때 나이가 열세 살이었다. 충제가 붕어했을 때, 양 태후가 오빠 양기와 더불어 질제를 맞아들여 황제로 옹립했는데, 이때 나이가 여덟 살이었다. 질제가 붕어했을 때, 태후는 오빠 양기와 더불어 환제를 맞아들여 황제로 옹립했는데, 이때 나이가 열다섯 살이었다. 환제가 붕어했을 때, 두 태후는 아버지 두무와 더불어 영제를 맞아들여 황제로 옹립했는데, 이때 나이가 열두 살이었다.

맡은 바는 무겁고 갈 길은 먼데 이익을 탐하는 마음은 깊고 화는 빨리 다가왔다. 그리하여 몸은 운대 위에서 안개와 이슬[霧露] [주:12] 의 침범을 받았고, 집안의 갓난아기조차도 감옥[圄犴]에 잡혀가 포승줄에 묶인[縲絏] 몸이 되었다. [주:13]

자취 없이 사라지는 일이 잇달아 일어났고[踵], 수레 끌채가 뒤집어지는 일이 길에서 계속되었다. [주:14]

그러나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끊이지 않아 불에 타서 재가 되기에 이르렀으니 끝내 나라의 큰 운명이 내리막길을 걷고[陵夷] 신령한 보물[神寶]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주:15]

『시경』과 『상서』에서 이미 탄식한 바 있는 것처럼, 이는 거의 하나의 법칙이라고 할 만큼 비슷했다. 그러므로 [후비들의] 행적을 낱낱이 고찰해 이를 「황후본기(皇后本紀)」로 삼는다. 일의 성패 (황후에 오르거나 폐위되거나 하는 일을 말한다.) 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나 일단 올바른 호칭 [正號, 황후를 말함.] 과 같이 거했던 이들은 모두 하나의 편으로 나란히 기록했다. 사적인 은택을 입어 추존된 사람은 당시에 직접 받들었던 바는 아니므로 다른 일에 딸려서 부가적으로 기록했다. [주:16]

그 친족들 중에서 따로 기록할 만한 사적들은 각각 열전(列傳)에서 다루었다. 그 나머지 중에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모두 여기 「황후기」에서 다루어서 [주:17] 『한서』「외척전(外戚傳)」을 이었다[纘]. [주:18]

[주:12] 무로(霧露)는 질병을 말한다. 지적해 말하면 죽을까 두려웠으므로 안개와 이슬[霧露]을 빌려 그에 대해 말한 것이다. 영제 때, 중상시 조절이 거짓 조서를 내려 태후를 운대로 옮기게 했다. 사필(謝弼)이 밀봉 상서를 올려 말했다. “신이 엎드려 생각하건대 황태후께서는 황제께서 제위에 오르는 것을 도우셨는데 이제 텅 빈 궁궐에서 숨어 지내시니 이는 [돌보는 이가 없어서] 안개와 이슬을 맞는 질병[霧露之疾]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무슨 면목으로 천하를 바라보려 하십니까!”

[주:13] 류(縲)는 삭(索), 즉 포승이라는 말이다. 설(絏)은 계(繫), 즉 묶는다는 뜻이다. 영어(囹圄)는 주나라의 감옥 이름이다. 향과 정에 있는 감옥을 안(犴)이라 한다. 음은 오(五)와 단(旦)의 반절이다. 이는 외척 등을 주살했음을 말한다.

[주:14] 종(踵)은 적(跡), 즉 발자취라는 뜻이다. 주(輈)는 수레의 끌채[車轅]를 말한다. 가의(賈誼)에 따르면, “앞 수레가 넘어지면 뒤따르는 수레는 경계하게 된다.”

[주:15]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것[陵夷]은 쇠퇴해 없어진다는 말이다. 신령한 보물[神寶]이란 황제의 자리를 말한다.

[주:16] 안제의 어머니 좌희나 할머니 송 귀인 같은 사람을 말한다. 이 일에 대해서는 「청하효왕전(淸河孝王傳」에 자세히 나와 있다.

[주:17] 가 귀인과 우 미인 같은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주:18] 찬(纘)은 계(繼), 즉 잇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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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광무곽황후 코렐솔라 2013-08-20 2459
» 황후기 서문 코렐솔라 2013-08-20 1870
61 성양공왕지열전(유지열전) 코렐솔라 2013-08-20 2630
60 경공열전 코렐솔라 2013-08-20 1994
59 경기열전 코렐솔라 2013-08-20 1897
58 경병열전 [1] 코렐솔라 2013-08-20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