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마왕님의 이글루스



광렬음황후(光烈陰皇后)


광렬황후(光烈皇后) 음씨는 휘가 여화(麗華)이며 [주:1] 남양군 신야현 사람이다.

예전에 광무제(제위: 25-57) 유수(劉秀)가 신야(新野)현에 갔을 때, 음려화(陰麗華)가 아름다움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무척 기뻐했다. 후에 장안에 이르렀을 때, 집금오의 거기(수레와 말)가 무척 성대한 것을 보고 감탄하면서 말했다.

“벼슬을 한다면 마땅히 집금오여야 하고, 아내를 맞는다면 마땅히 음려화여야 하리라.”

경시 원년(23년), 6월, [유수가] 마침내 완현 당성리(當成里)에서 음려화를 아내로 맞으니, [이때 음려화는] 나이가 열아홉 살이었다.

나중에 유수가 사예교위가 되어 서쪽 낙양으로 나아갈 때, 음려화에게 말해서 신야현으로 돌아가게 했다.

[건무 2년(26년)] [8월], 등봉(鄧奉)이 군사를 일으켰을 때, 음려화의 오빠 음식(陰識)이 그 장수가 되었다. 음려화는 집안사람들을 이끌고 육양(淯陽)현으로 옮겨 등봉의 관사에 머물렀다.

[주:1] 『일주서』 「시법해」에 따르면, “덕을 지키고 대업을 준수하는 것을 열(烈)이라 한다.” 『동관기』에 따르면, “음자공(陰子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들 음자방(陰子方)을 낳았다. 음방 (陰方, 음자방) 은 음유공(陰幼公)을 낳고, 음공 (陰公, 음유공) 은 음군맹(陰君孟)을 낳았다. [음군맹은] 이름을 목(睦)이라 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황후의 아버지이다.” 최근의 책에는 ‘목(睦)’이 ‘륙(陸)’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광무제가 즉위하자 시중 부준(傅俊)에게 영을 내려 음려화를 맞이해 오게 했다. 음려화는 호양공주(胡陽公主), 영평공주(寧平公主) [주:2] 와 함께 여러 궁인들을 이끌고 함께 낙양에 도착했다. 음려화를 귀인으로 삼았다.

광무제는 음귀인이 아름다운 데다 성품이 관대하고 어질었으므로 그녀를 존숭하여 지위를 높이고자 했다. 그러나 음귀인은 굳게 사양했으며, 곽씨에게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침내 곽씨를 곽황후(郭皇后)로 세웠다.

건무 4년(28년), 팽총(彭寵)을 정벌하는 데 따라갔다가, 원씨(元氏)현에서 명제(顯宗)를 낳았다.

건무 9년(33년), 도적들이 음귀인의 어머니 등씨와 동생 음흔(陰訢) [주:3] 을 협박하고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자 광무제가 이를 매우 가슴 아프게 여겼다. 이에 대사공에게 조서를 내려 말했다.

"짐이 미천했을 때 음씨를 아내로 맞았다. 그 탓에 군대를 거느리고 정벌하러 다니느라 끝내 각자 떨어져 살게 되었다. 이제 다행히 편안함과 온전함을 얻었으니 모두 호랑이 입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노라고 생각했다. [주:4]

게다가 음귀인은 모의(母儀, 만민의 어머니가 될 만한 품행.)의 아름다움을 갖추었으니 마땅히 황후로 세워야 하나, 감당할 수 없다고 굳게 사양하니 잉첩(媵妾) [주:5] 의 반열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짐은 그 의로운 양보를 기쁘게 여겨서 귀인의 여러 동생들을 제후로 봉하려 했다. 그러나 미처 관작과 봉토가 미치기도 전에 재난과 부닥치고 참화와 마주쳐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명을 달리하니 가슴이 아프고 찢어질 듯하구나. 「소아(小雅)」에 이르기를, “무섭고 두려워도, 나는 당신과 함께했건만, 편안하고 즐거우니, 당신은 마음 바꿔 나를 버렸네[將恐將懼, 惟予與汝. 將安將樂, 汝轉棄予].’ [주:6] 라고 했다.

사람을 풍자하는 가르침이 가히 진실 되지 않은가? 시호를 내려 귀인의 아버지 음륙(陰陸)을 선은애후(宣恩哀侯)로, 음흔을 선의공후(宣義恭侯)으로 추봉하고, 그 동생 음취에게 선은애후의 작위를 잇게 하노라. 시신이 담긴 널이 당에 있으니, 태중대부에게 인수를 주어 보내서 나라 있는 열후의 예로써 장례를 치르라. 혼이 있고 영이 있다면, 그 은총과 영예를 기뻐하리라!"

[주:2] 영평현(寧平縣)은 회양군에 속한다. 옛 성이 지금 박주 곡양현 서남쪽에 있다.

[주:3] 음이 흔(欣)이다.

[주:4] 『장자』에 따르면, 공자가 도척(盜跖)을 보고 유하혜(柳下惠)에게 말했다. “자칫하면 호랑이 입을 면하지 못할 뻔했구나.”

[주:5] 『이아』에 따르면, “잉(媵)은 송(送), 즉 보낸다는 뜻이다.” 손염에 따르면, “딸려 보내는 여자[送女]를 잉(媵)이라 한다.”

[주:6] 「곡풍(谷風)」의 시이다.

건무 17년(41년), 황후 곽씨를 폐하고 음귀인을 황후로 세웠다. 삼공에게 조서를 내려 말했다.

곽황후는 원망과 원한을 가슴에 품고 몇 차례나 교령(敎令, 임금의 명령)을 어겼으며 다른 자식들을 어루만지고 불쌍히 여기며 후궁들을 가르치고 타이르지 못했다. 그러자 궁궐문[闈] [주:7] 안이 마치 매와 새매가 어울린 것같이 되었다.

이미 관저(關雎, 『시경』의 편명으로 부덕을 칭송하고 있다.)의 덕망은 사라지고 여곽(呂霍, 고조의 황후 여태후와 선제의 황후 곽성군을 가리키는 말로, 두 사람 다 질투가 심한 데다 잔혹했다.)의 기풍만 남았는데, 어찌 어린 황자들을 맡기고 밝은 제사를 공손히 이을 수 있겠는가.

이제 대사도 섭(涉) [주:8] 과 종정 길(吉)에게 지절을 주고 황후의 옥새와 인끈을 받들게 하노라. 음귀인은 시골 마을의 양갓집 출신으로 스스로 미천한 데로 시집을 왔다[歸]. [주:9]

“내가 보지 못한 지 벌써 삼 년[自我不見, 于今三年].” [주:10] 이라 할 것이니 이제 마땅히 종묘를 받들고 천하의 어머니가 되게 하라. 이를 책임질 자들은 옛 법을 상세히 살피어 적절한 존호를 올리라. 보통 때의 일과 달라서 나라의 길한 복록만은 아니니 술을 올려 장수를 기원하면서 경사를 칭송하는 일은 하지 말라.

음황후는 황후의 자리에 있는 동안 늘 공손하고 검소했으며, 기완(嗜玩, 보석과 같은 기호품)을 즐기지 않았고, 소학(笑謔, 웃음을 자아내는 놀이.)을 좋아하지 않았다.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러웠으며, 아끼고 사랑함이 많았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이미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말을 꺼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어서 광무제가 그것을 보고는 늘 탄식하곤 했다.

[주:7] 『이아』에 따르면, “궁궐의 작은 문을 위(闈)라고 한다.”

[주:8] 대섭(戴涉)을 말한다.

[주:9] 『춘추공양전』에 따르면, “여자들이 시집간다고 할 때, 돌아간다[歸]고 말한다.”

[주:10] 『시경』 「빈풍(豳風)」 동산지사(東山之詞)에 나온다.

[중원 2년(57년)], 명제가 즉위했다. 음황후를 높여 황태후라 했다.

영평 3년(60년), 겨울, 명제가 음태후를 좇아 장릉(章陵)군으로 행차했다. 옛 집에 술을 차려 놓고, 음씨(황태후 집안)와 등(鄧)씨(광무제의 외가) 집안 자손들을 불러 모아서 모두에게 상을 내렸다.

영평 7년(64년), [음황후가] 붕어했다. 황후가 된 지 스물네 해 만이었으며, 나이는 예순 살이었다. [광무제와 함께] 원릉(原陵)에 합장했다.

명제는 성정이 효성스럽고 사랑이 많았다. [따라서 음황후를] 추모함이 끝이 없었다.

영평 17년(74년), 정월, [명제가] 원릉을 참배했다. 한밤중에 광무제와 음 황후를 꿈에서 보고 나서 평소 살아 있을 때처럼 기뻐했다. 그때 문득 잠에서 깨었으나 슬픔 때문에 다시 잠들 수 없었으므로 안궤에 기대어 밤을 새운 후, 새벽 해가 뜨자마자 백관들과 옛 빈객들[故客]을 거느리고 상릉(上陵, 황제가 선조의 능에 나아가 제사지내는 것.)했다. 그날 능 주변의 나무들[陵樹]에 감로가 내렸다. 황제가 영을 내려 백관들로 하여금 그것을 모아서 바치게 했다. 제의가 끝난 후, 황제가 [능침 안에] 앉았다가 앞에 있는 어상(御床, 임금의 음식을 벌여 놓는 상.) 위에 놓인 음 황후의 거울 상자[鏡奩] [주:11] 속에 있는 물건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마음에 느낀 바 있어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나서 영을 내려 상자 안에 있는 화장 용구들을 바꾸게 했다. 좌우가 모두 흐느끼니, 감히 [명제를] 우러러볼 수가 없었다.

[주:11] 염(奩)은 거울을 넣어두는 상자[鏡匣]이다. 음은 염(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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