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마왕님의 이글루스


장덕두황후(章德竇皇后)는 휘를 알 수 없으며, 부풍(扶風)군 평릉(平陵)현 사람이다.

대사공 두융(竇融)의 증손녀이다. 할아버지는 두목(竇穆)이고, 아버지는 두훈(竇勳)은 사건에 연루되어 죽었는데, 이 일에 대해서는 「두융전(竇融傳)」에 자세히 나온다. 두훈은 동해공왕(東海恭王) 유강(劉彊)의 딸 비양공주(沘陽公主)에게 장가들었는데, 두 씨는 그 큰딸이다.

집안이 이미 망해서 무너졌으므로 몇 차례 관상쟁이[相工]을 불러 좋은 점과 나쁜 점[息耗] [주:1] 을 물으니 두씨를 본 사람이 모두 크게 존귀하게 될 얼굴로 신하의 아내가 될 용모가 아니라고 했다. 여섯 살이 되자 글을 쓸 수 있어서 집안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뛰어나게 여겼다.

건초 2년 (77년), 두씨가 여동생과 함께 선발되어 황궁으로 들어와 장락궁 (長樂宮: 황태후) 을 알현했는데, 나아갈 때와 멈출 때 질서가 있었고 풍채와 용모가 매우 성숙했다. 장제는 두 씨가 재주와 미모가 있다는 말을 듣고 몇 차례나 후궁의 여러 보모들[傅]을 불러 그녀에 대해 물었다[訊] [주:2] 고 한다. 마침내 만나 보니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었고, 마태후(馬太后) 역시 뛰어나다고 생각했으므로 액정에 들어와 북궁 장덕전(章德殿)에서 황제를 알현하게 되었다. 두씨는 성품이 민첩한 데다 마음을 기울여 다른 사람들을 대하니 칭송이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이듬해 [건초 3년(78년)], 마침내 세워져 황후가 되었으며, 동생은 귀인이 되었다.

건초 7년 (82년), 두황후의 아버지 두훈(竇勳)에게 작위를 추존하여 안성사후(安成思侯) [주:3] 로 삼았다. 황후는 특별한 총애를 뚜렷하게 받았으므로 후궁에서 마음대로 전횡했다.

[주:1] 설씨(薛氏)의 『한시장구』에 따르면, “모(耗)는 악(惡), 즉 나쁘다는 뜻이다.” 식모(息耗)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말한다.

[주:2] 신(訊)은 문(問), 즉 묻는 것이다. 부(傅)는 부모 (傅母, 보모) 를 말한다.

[주:3] 안성현은 여남군에 속한다. 옛 성이 지금 예주 오방현 동남쪽에 있다.

그 이전에 송귀인(宋貴人)이 황태자 유경을 낳고, 양 귀인이 화제(和帝)를 낳았다. 황후가 아들이 없자 그들을 질시하여 수차례 황제와 이간질하니 황제가 점차 그들을 멀리하고 싫어하게 되었다. 후에 황후가 송귀인이 간사하고 아첨을 잘한다고 모함하니, 송 귀인이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자 황제가 유경을 폐하여 청하왕(清河王)으로 삼았다. 이에 대해서는 「유경전(劉慶傳)」을 보라.

양귀인(梁貴人)은 포친민후(褒親愍侯) 양송(梁竦)의 딸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자 큰어머니인 무음장공주(舞陰長公主) [주:4] 가 길렀다.

건초 2년 (77년) , 양귀인은 나이 열여섯 살에 둘째 언니와 함께 선발되어 액정(掖庭)으로 들어와 귀인이 되었다. 건초 4년 (79년) , 양귀인이 화제를 낳자 두황후(竇皇后)가 데려가 자기 아들로 길렀다. 두 황후는 외척 가문의 명예와 지위를 홀로 누리고자 했으므로 양 씨를 무척이나 꺼렸다. 건초 8년 (83년) , 이에 두 황후가 비서(飛書) [주:5] 를 지어 양송을 모함했다. 양송이 죄를 얻어 주살되었으며, 양 귀인의 언니와 여동생은 시름에 겨워 죽었다. 이때부터 궁궐 안은 두려움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惵息], [주:6] 오히려 두 황후에 대한 사랑은 날로 높아졌다.

[주:4] 무음장공주는 광무제의 딸로 양송에게 시집갔다.

[주:5] 비서는 이름을 감추고 쓴 편지를 말한다.

[주:6] 첩(惵)은 구(懼), 즉 두려워하는 것이다. 음은 첩(牒)이다. 『주서(周書)』에 “사로잡아서 위엄을 보이자 주위가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臨捕以威, 而氣惵懼」.”라는 구절이 있다.

장제가 붕어하고 화제(和帝)가 즉위하자 두황후를 높여 황태후로 삼았다. 두태후가 조정에 나와 섭정하면서 어머니 비양공주(沘陽公主)를 장공주로 삼고, 탕목읍(湯沐邑) 삼천 호를 더했다. 또 오빠 두헌(竇憲:?-92) 및 동생 두독(竇篤)과 두경(竇景)을 모두 존귀하게 만든 후 멋대로 권력과 위세를 누렸다.

영원 4년 (92년), [두씨 일가가] 드디어 몰래 반란을 꾀하다가, 발각되어 주살되었다.

영원 9년 (97년), 두태후(竇太后)가 세상을 떠났다.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을 때, 양귀인의 언니 양예(梁嫕) [주:7] 가 진귀인(陳貴人)에게 상서를 올려 [양귀인을] 무고하게 몰아 죽인 일을 고발했다. 태위 장포(張酺), 사도 유방(劉方), 사공 장분(張奮)이 함께 상주하여 말하기를, 광무제가 여태후(呂太后)를 출척한 옛 일 [주:8] 에 의거하여 황태후의 존호를 깎아내린 후 돌아가신 황제의 능에 합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관들 역시 글을 올려 말하는 자가 많았다. 이에 화제가 몸소 조서를 써서 내렸다.

"두씨가 비록 법도를 준수하지 않았지만 황태후로서는 항상 스스로를 줄이고 낮추셨다. 짐이 받들고 섬긴 지 십 년이 지났으니 대의를 곰곰이 생각해 보노라. 예에 따르면, 신하들은 존장의 시호를 깎아내리지 못하는 법이다. 은정으로 보아도 차마 떨어짐을 견딜 수 없고, 의로 보아도 차마 훼손됨을 견딜 수 없다. 돌이켜보면 이전 조정 때의 상관 태후(上官太后) [주:9] 역시 존호를 낮추어 출척하지 않았다. 다시는 이 문제를 논의하지 말라."

이에 경릉에 합장했다. 황후에 오른 지 열여덟 해 만이었다.

[주:7] 음이 일(一)과 계(計)의 반절이다.

[주:8] 중원 원년 (56년) , 여 태후를 적출하여 고묘에서 배향하지 못하게 했다.

[주:9] 상관 태후는 한나라 소제의 황후이다. 아버지 상관안(上官安)이 연왕과 함께 반역을 꾀하다가 주살되었다. 황태후는 나이가 어렸고, 또 곽광의 외손녀였기 때문에 폐위되지 않았다.

화제가 양귀인(梁貴人)이 잔혹하게 죽었으며 장사지낼 때 예가 누락된 것을 알고, 승광궁(承光宮)에서 다시 염한 후 시호를 추존해 공회황후(恭懷皇后)[주:10] 라 했다. 그러고는 늦게나마 장례에 맞게 상복을 입게 하니 백관들이 모두 흰 명주옷을 입었다. 언니인 대귀인(大貴人)과 함께 서릉(西陵)에 장사지냈는데, 의례는 경원(敬園) [주:11] 에 비견하게 했다.

[주:10] 『일주서』 「시법해」에 따르면, “공경히 섬기면서 윗사람을 존중하는 것을 공(恭)이라 하고, 자애롭고 인자하면서 밝게 행하는 것을 회(懷)라고 한다.”

[주:11] 경원은 안제의 할머니 송귀인의 능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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