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마왕님의 이글루스

순렬양황후(順烈梁皇后), 순렬황후 양씨(梁氏)는 휘가 납(妠; 양납(梁妠))으로, [주:1] 대장군 양상(梁商)의 딸이며 공회황후(恭懷皇后)의 동생의 손녀이다.

양납(梁妠)이 태어났을 때, 빛이 환하게 감싸는 상서로움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여자의 일[女工]을 잘 했고 『사서』 읽기를 좋아했으며, 아홉 살 때에는 능히 『논어(論語)』를 외우고 『한시(韓詩)』 [주:2] 를 익혀 그 대강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항상 열녀(列女) 그림 [주:3] 을 가까이에 두고 스스로 살피고 경계했다. 아버지 양상이 이를 매우 기이하게 여겨 몰래 여러 동생들에게 말했다.

“우리 선조께서는 하서(河西) 땅을 온전히 구제하여 목숨을 살린 자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주:4] 비록 높은 관직은 받지 못하셨지만 덕을 쌓으면 반드시 보답이 있는 법이다. 만약 복이 자손들에게 미친다면 혹시 이 아이로 인하여 모두 흥하게 되지 않을까?”

[주:1] 『일주서』 「시법해」에 따르면, “덕을 지키고 업을 높이는 것이 열(烈)이다.” 『성류(聲類)』에 따르면, “납(妠)은 취(娶), 즉 장가든다는 뜻이다. 음은 납(納)이다.”

[주:2] 한영(韓嬰)이 주해한 『시경』을 말한다.

[주:3] 유향이「열녀전」 여덟 편을 지었는데,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주:4] 양상의 증조할아버지는 양통(梁統)으로, 경시 2년 (24년) 에 중랑장 및 주천태수가 되어 양주(涼州)를 안정시켰다. 이때 하서 지역에서 소요가 일어나 어지러웠는데, 뭇 사람들이 의를 열어 평소에 위엄과 신의를 갖추었다는 이유로 양통을 추천하여 두융과 함께 다섯 군을 온전히 수습하게 했다.

영건 3년 (128년), 고모와 함께 선발되어 액정에 들어왔다. 이때 나이가 열세 살이었다. 관상쟁이[相工] 모통(茅通)이 양납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두 번 절하고 나서 경하하면서 말했다.

“이분은 이른바 일각반월 (日角偃月, 이마 가운데 부분이 반월처럼 생긴 것.) 의 상인데, 관상이 지극히 귀한 것이 제가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태사가 점[卜]을 쳐 보니 수방 (壽房, 양납은 수안전(壽安殿)에서 황후의 자리에 올랐다. 이를 가리킨다.) 을 얻는다 하고, 또 점괘[筮]를 뽑아 보니 [하늘을] 돕는 땅의 자리[坤之比] [주:5] 를 얻는다 했다.

마침내 양납이 귀인이 되었다. 황제의 사랑을 특별히 받았는데, 늘 사양하는 얼굴로 황제에게 말했다.

“양은 널리 베푸는 것을 덕으로 삼고, 음은 독점하지 않는 것을 의로 삼습니다. 여치는 많은 자손을 낳으니, 복이 이로부터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주:6] 폐하께서 구름과 비[雲雨]를 고루 넉넉히 내리시어 물고기 꿰미[貫魚]의 차례와 순서를 알게 하시고 [주:7] 소첩으로 하여금 허물과 비방이 쌓이는 것을 면하게 하소서.”

이로 말미암아 황제가 사랑을 더했다.

[주:5] 『역경』의 곤괘(坤卦) 육오(六五)는 변화해서 도움[比]이 된다. 구오(九五)를 돕는다. 「상전(象傳)」에 따르면, “도움을 드러냄이 길한 것은 그 자리가 한가운데이기 때문이다[顯比之吉, 位正中也].” 구오는 그 자리를 얻어 거하는 것이요, 아래가 위에 조응하므로 길한 것이다.

[주:6] 『시경』 「국풍서(國風序)」에 “후비는 여치와 같아 투기하지 않으니 자손의 무리가 많다.”라는 구절이 있다. 『시경』 「대아」에 “태사가 그 아름다운 명성을 이으시니 많은 자손을 낳으셨네.”라는 구절이 있다.

[주:7] 『역경』에 “구름이 움직여 비를 뿌리니 만물이 형체를 갖춘다[雲行雨施, 品物流形].”라는 말이 있다. 「박괘(剝卦)」에 “물고기를 꿰어 궁녀의 총애를 얻으니 불리함이 없다[貫魚, 以宮人寵, 無不利].”라는 말이 있다. 박(剝)은 곤괘가 아래에 간괘가 위에 있는[坤下艮上] 괘로, 음이 다섯이고 양은 하나이며 뭇 음이 아래에 있다. 나란한 머리가 서로 교차한 모습이 꼭 물고기를 꿴 것과 비슷하다.

양가 원년 (132년), 봄, 담당 관리들이 장추궁(長秋宮)을 세우자고 상주하면서, 승지후(乘氏侯) 양상은 돌아가신 황제의 외척으로 [주:8] 『춘추』의 뜻에 따르면 먼저 큰 나라에서 아내를 맞는다고 했으니 [주:9] 마땅히 양소귀인(小貴人)을 천자[天祚]을 배필로 삼아 황후[坤極]의 자리를 바로잡아야 한다 [주:10] 고 했다.

순제가 그 말을 따랐다. 이에 수안전(壽安殿) [주:11] 에서 양 귀인을 황후로 세웠다.

양황후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워 이전 시대 정치의 득실을 깊이 살폈다. 비록 덕으로써 자리에 올랐지만 감히 황제를 독점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았고, 일식과 월식으로 하늘의 꾸지람이 나타날 때마다[日月見謫] [주:12] 번번이 복장을 낮춰 입으면서 허물을 구했다.

[주:8] 양상의 대고모가 장제의 귀인으로 화제를 낳았다.

[주:9] 『춘추공양전』에 따르면, 천자가 기(紀)나라에 장가들었을 때, 기나라는 본래 자작(子爵)의 나라였는데, 먼저 그를 높여서 후작(侯爵)이 되게 했다. 이를 일컬어 왕은 작은 나라에 장가들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주:10] 황후의 자리[內位]를 바로잡고, 음덕(陰德)의 궁극에 거하는 것이다. 『역경』에 “여자가 안에서 자리를 바르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주:11] 수안전은 덕양궁(德陽宮) 안에 있는 전각 이름이다.

[주:12] 적(謫)은 책(責), 즉 꾸짖는다는 뜻이다. 『예기』에 따르면, “양사 (陽事, 궁궐 바깥의 정치. 외치와 내정을 합해서 가리킨다.) 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늘이 꾸지람을 드러낸다. 일식이 그것이다. 음사 (陰事, 궁궐 내의 후비들과 관련된 일.) 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늘이 꾸지람을 드러낸다. 월식이 그것이다.”

건강 원년 (144년), 순제가 붕어했다. 양 황후에게 아들이 없자 미인(美人) 우씨(虞氏)의 아들 유병(劉炳)을 옹립하니, 이 사람이 바로 충제(沖帝: 143-145)이다. 황후를 높여 황태후로 삼았다. 양 태후가 조정에 나와 섭정했다.

충제가 갑자기 붕어하자, 양 태후는 다시 질제(質帝: 138-146)를 옹립하고, 조정 정치를 한손에 쥐었다.

이 무렵 양주(楊州)와 서주의 큰 도적들이 주와 군을 노략질하면서 크게 나라를 어지럽혔고, 서쪽의 강족과 선비(鮮卑)족 및 일남(日南)군의 만족 오랑캐들이 성을 공격하고 악랄하게 약탈했으며, 괴로울 정도로 심하게 조세를 거두어들였기 때문에 관과 민이 모두 곤궁하고 고갈되었다.

양태후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힘써 애쓰고 마음을 다해 덕 있는 이를 의지하려 했다. 이에 태위(太尉) 이고(李固) 등에게 정치를 맡겨서 어질고 충성스러운 이들을 발탁하여 쓰고 절약과 검소함을 힘써 권했다. 또 재물을 탐하거나[叨] 사악한 죄를 저지른[慝] 자들을 수없이 찾아내 주살하고 물리쳤으며, [주:13] 군대를 나누어 보내 토벌하여 뭇 도적들을 없애 버렸다. 이로 인해 온 세상이 다 조용하고 엄숙해졌으며 종묘가 평안하게 되었다.

그러나 황태후의 오빠인 대장군(大將軍) 양기(梁兾)는 질제(質帝)를 독살하고 난 후 홀로 권력을 쥐고 잔혹무도하게 행세하기 시작했다. 양기는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들을 시기하여 해치려고 몇 차례나 사악한 말로 양 태후를 의심에 빠뜨리고 잘못으로 이끌더니 드디어 환제(桓帝)를 옹립한 후 이고(李固)를 주살했다. 게다가 황태후가 환관들에게 빠져서 총애하던 자들을 많이 제후로 봉하니 이 때문에 천하가 실망했다.

[주:13] 재물을 탐하는 것을 도(叨)라고 한다. 특(慝)은 악(惡), 즉 사악하다는 뜻이다.

화평 원년 (150년), 봄, 황제에게 정권을 돌려주었다. 양 태후는 병들어 누웠다가 끝내 위독해지자 이에 연을 타고 선덕전(宣德殿)으로 행차했다. 궁궐 내의 여러 관속들 및 양씨 형제들을 모이게 한 후, 조서를 내렸다.

짐은 평소 마음에 맺힌 기가 있었는데 최근에 이르러서는 온몸이 퉁퉁 부어오른 데다 비위가 상해 먹기도 마시기도 힘드니 점차[寖] [주:14] 기력이 쇠하게 되었다. 이에 안팎의 사람들을 시켜 마음을 다해 천지신명께 빌도록 했다. 그러나 나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니, 밤낮으로 몸이 허약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할 듯하여 여러 공경들, 선비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려 한다. 나는 성스러운 후사[聖嗣]를 도와 옹립했으나 오랫동안 양육하지 못하고 그 처음과 끝을 보게 된 것이 끝내 한스러웠다. 지금 황제와 장군 형제는 고굉(股肱: 팔과 다리)처럼 지내기를 부탁하니 각자 스스로 힘쓰도록 하라.

그로부터 이틀 후에 붕어했다. 황후에 오른 지 열아홉 해 만이었으며, 나이는 마흔다섯 살이었다. 헌릉(憲陵)에 합장했다.

[주:14] 침(寖)은 점(漸), 즉 점차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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