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 - 의헌양황후
출처: 마왕님의 이글루스

의헌양황후(懿獻梁皇后): 환제 의헌황후[주:1] 양씨는 휘가 여영(女瑩; 양여영(梁女瑩))이며, 순렬황후(順烈皇后)의 여동생이다. 환제가 예오후(蠡吾侯)였을 때, 양 태후가 불러서 의헌황후와 맺어 주려 했다.

[본초 원년(146년)], 그러나 미처 가례(嘉禮)[주:2] 를 치르기도 전에 질제가 붕어하자 예오후를 황제로 세웠다. 이듬해, 담당 관리가 황태후에게 상소문을 올려 말했다.

『춘추』에 따르면, 기(紀)나라에서 왕후를 맞이했을 때, 길에서 이미 후(后)[주:3] 를 칭했다고 합니다. 지금 대장군 양기의 여동생은 마땅히 만민의 어머니를 이을 만합니다[膺紹聖善].[주:4] 결혼할 때를 맞아 명이 이미 내렸으니[有命旣集][주:5] 마땅히 예의와 규장을 갖추어 때에 맞추어 나아가 납폐를 이루어야[徵幣][주:6] 합니다. 청하옵건대 삼공과 태상에게 명을 내려 예의를 따져 보게 하소서.

[주:1] 『일주서』 「시법해」에 따르면, “온화하고 선한 것을 의(懿)라 하고, 총명하고 지혜로운 것을 헌(獻)이라 한다.”

[주:2] 가례는 혼례를 말한다.

[주:3] 『춘추공양전』에 “제공(祭公)이 기나라에서 왕후를 맞이해 왔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고는 덧붙여 말하기를, “제공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천자의 삼공을 말한다. 왕후를 칭한 것은 어찌된 일인가? 왕에게는 바깥이 없기 때문에 그 말이 성립한 것이다.”

[주:4] 응(膺)은 당(當), 즉 마땅하다는 뜻이다. 소(紹)는 사(嗣), 즉 잇는다는 뜻이다. 슬기롭고 착하다[聖善]는 말은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이다. 아내를 맞았으면 마땅히 후사를 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시경』에 “어머니가 슬기롭고 착하시니[母氏聖善].”라는 구절이 있다.

[주:5] 태후가 먼저 영을 내려 결혼을 허락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에 “하늘이 아래를 굽어 살피니 천명이 이미 내렸구나[天監在下, 有命旣集]”라는 구절이 있다.

[주:6] 징(徵)은 성(成), 즉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납폐로써 혼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황태후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혜제(惠帝)가 황후를 맞이한 옛 일을 남김없이 살펴서 황금 이만 근, 납채(納采)할 기러기, 벽옥, 승마(乘馬, 말 네 필이 끄는 수레.), 속백(束帛, 비단 다섯 필을 묶은 것으로 큰일에 예물로 쓰였다.)을 보냈는데, 모두 옛 기록과 똑같이 했다.[주:7]

건화 원년(147년), 6월, [양여영이] 처음으로 액정으로 들어왔다.

8월, 세워져 황후가 되었다.

[주:7] 『한구의』에는 “황후에게 장가들 때에는 황금 일만 근을 보낸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 태후가 혜제를 위하여 노원공주(魯元公主)의 딸을 맞아들였을 때는 특별히 그 예를 우대한 것이다. 『의례』에 따르면, “납채에는 기러기를 쓴다.” 정현은 『의례주』에서 “납(納)은 그것을 채택하는 예이다. 기러기를 써서 음과 양이 순조롭게 오고 감을 얻으려는 것이다.” 『예기』에 따르면, “왕은 곡규(穀圭, 어린 곡식이 새겨진 홀로 주로 옥으로 만들어 썼다.)로 아내를 초빙한다.” 정현은 『주례주』에서 “사대부 이상은 현훈(玄纁, 검은색 비단과 붉은색 비단) 속백으로 아내를 맞는데, 천자는 거기에 곡규를, 제후들은 대장(大璋, 옥으로 만든 반쪽짜리 홀.)을 더한다.” 그러나 『예기』에서 규(圭)라고 한 것을 여기에서는 벽옥[璧]이라고 했다. 모양이나 마름질은 비록 다르지만 옥을 쓴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승마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이다. 『잡기(雜記)』에 따르면, “납폐(納幣)는 한 속(束)이다. 한 속은 다섯 량[兩]이며, 한 량은 다섯 심[尋]이다.” 그러므로 하나마다 길이는 두 장이다.

이 무렵 양 태후가 정치를 한 손에 쥐고 양기가 조정을 마음대로 했으므로, 오직 양황후만이 특별한 은총을 얻었는데, 스스로 겸양해도 황제를 진현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양 황후는 언니와 오빠의 권세가 천하를 덮을 지경에 이르자, 방자함이 극에 달하고 사치와 허영이 도에 넘쳐서 궁실을 아름답게 조각해 꾸미고 의복과 수레를 진귀하고 화려하게 장식하니 공들여 꾸미고 장식하는 데 쓰는 일이 이전 시대의 갑절에 이르렀다.

나중에 양태후가 붕어하고 나자 환제의 은총이 점차 줄어들었다. 양황후는 아직 아들이 없었으므로, 몰래 시기와 원망을 품고 궁인들이 아이를 낳아 기를 때마다 손을 쓰니 온전한 아이를 찾기가 극히 드물었다. 환제가 양기의 핍박을 두려워하여 감히 꾸짖고 성내지는 못했으나 침소는 마음대로 옮겨 다녔으며 더욱더 황후를 찾는 일이 드물어졌다.

연희 2년(159년), 양 황후가 근심하다가 화병을 얻어 붕어했다. 황후에 오른 지 열세 해 만이었다. 의릉(懿陵)에 장사지냈다. 그 해, 양기를 주살한 후 의릉을 폐하여 귀인총(貴人冢)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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