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자의 평 - [순암집] 제갈근을 평하다
제갈근은 자가 자유(子瑜)로서, 용모가 뛰어나고 생각이 깊고 성품이 너그럽고 도리를 지켰으며, 졸지에 화복(禍福)을 요리하는 사행심 같은 것은 갖지 않았다. 상중에 있을 때는 지극히 효성스러웠고, 계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공손하고 근신하여 매우 자식된 도리를 다하였다. 그리고 아내가 죽자 다시 장가들지 아니하였다. 재략(才略)은 비록 제갈량에 미치지 못했으나 덕행은 더욱 뛰어났다.
그가 오(吳) 나라에 벼슬하고 있을 때 손권(孫權)의 부탁으로 소열(昭烈 유비(劉備))에게 우호관계를 맺으러 갔는데, 그 아우인 제갈량과는 공회(公會 공사(公事)로 인한 모임)에서 서로 만나보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서는 사적으로 대면한 적이 없었다. 소열이 오 나라를 쳐서 백제성(白帝城)에 이르자, 제갈근이 소열에게 서신을 보내기를 “폐하는 관우(關羽)와의 절친함이 선제(先帝)에 비해 어떠하며, 형주(荊州)의 대소(大小)가 해내(海內)에 비하여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이것들을 살피시면 성공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울 것입니다.” 하였는데, 소열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때 어떤 사람이 “제갈근이 별도로 사람을 보내서 유비(劉備)와 통하고 있다.”고 이간질을 하니, 손권(孫權)은 “나와 자유에게는 죽으나 사나 바꾸지 못할 맹약이 있다. 자유가 나를 저버리지 않는 것은, 내가 자유를 저버리지 않는 것과 같다. 내 일찍이 자유에게 말하기를 ‘경(卿)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친형제간이니, 아우가 형을 따르는 것은 의리상 옳은 일인데 어찌 붙잡아 두지 않는가?’ 하자, 자유가 말하기를 ‘제갈량은 사람에게 몸을 잃은 자로서 이미 몸을 맡겨 군신관계를 맺었으니, 의리에 두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제갈량이 이곳에 머물지 못할 사정은 제가 유비에게로 가지 못할 사정과 같습니다.’ 하였으니, 그 말이 족히 신명(神明)을 감동시킬 수 있었는데, 이제 어찌 그런 일이 있겠는가.” 하였다.
지금 제갈근이 선주(先主 유비(劉備))에게 준 서신을 보니, 그 말뜻에서 그 거사의 불리함을 깊이 읽을 수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선주는 깨닫지 못하였다. 형제가 두 나라를 나누어 섬길 때 공회에서만 서로 보고 말뿐 물러나서 사적으로 대면하지는 않았으니, 그 혐의를 피함이 이처럼 철저하였다. 손권이 이간질하는 사람에게 답한 말에서 군신이 서로 신뢰한 뜻을 볼 수 있고, 또 제갈근에게는 군신간의 한번 정해진 큰 분수가 있어 흔들리지 않음을 보겠으니, 과연 어진 사람이었다. 제갈근이 그 임금에게 신뢰를 받은 것은 그 정대함이 이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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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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