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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원현님의 블로그
오吳의 주군 손권孫權의 사부인謝夫人은 회계군會稽郡 산음현山陰縣 사람이다. 그의 부친 사경謝㷡은 한漢의 상서랑尙書郞·서령徐令이었다.
사경의 아들 사승謝承 은 『후한서後漢書』를 지었는데 사경을 어려서부터 인의와 효도를 행하고 지혜롭고 사리에 밝아 아름다운 재주가 있었다고 칭했다. 사경의 아우 사정謝貞은 법도를 따라 행하고 학문을 두터이 해 의로움을 숭상했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건창장建昌長이 되었다가 관직에서 죽었다.
손권의 모친 오부인吳夫人은 손권을 위해 그를 불러 비妃로 삼았다. 그는 손권의 사랑을 받아 총애가 있었다. 뒤에 손권은 고모의 손녀 서씨徐氏를 들이고 사부인을 그의 아래에 두려 했지만, 사부인은 이를 듣지 않았다. 사부인은 이로 말미암아 낙담하여 일찍 죽었다. 십여 년 뒤 사부인의 아우 사승은 오관낭중五官郞中을 받았으며, 장사동부도위長沙東部都尉·무릉태수武陵太守로 차츰 옮기고 『후한서』 백여 권을 지었다.
『회계전록會稽典錄』에서 말하기를.
사승의 자는 위평偉平이며 학식이 넓고 들은 것이 많았다. 일찍이 한번 배워 안 내용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사승의 아들 사숭謝崇은 양위장군揚威將軍이었다. 사숭의 아우 사욱謝朂은 오군태수吳郡太守였으며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이 알려졌다.
dragonrz
- 2019.12.03
- 08:56:46
- (*.67.125.237)
『회계전록會稽典錄』에서 말하기를.
사승의 자는 위평偉平이며 학식이 넓고 들은 것이 많았다. 일찍이 알아봄을 받자 그것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사승의 아들 사숭謝崇은 양위장군揚威將軍이었다. 사숭의 아우 사욱謝朂은 오군태수吳郡太守였으며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이 알려졌다.
이 부분도 오역이 있으므로 변경할 필요가 있습니다.
會稽典錄曰:承字偉平,博學洽聞,嘗所知見,終身不忘。子崇揚威將軍,崇弟勖吳郡太守,並知名。
『회계전록會稽典錄』에서 말하기를.
사승의 자는 위평偉平이며 학식이 넓고 들은 것이 많았다. 일찍이 한번 배워 안 내용은 죽을때까지 잊지 않았다. 사승의 아들 사숭謝崇은 양위장군揚威將軍이었다. 사숭의 아우 사욱謝朂은 오군태수吳郡太守였으며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이 알려졌다.
사승의 자는 위평偉平이며 학식이 넓고 들은 것이 많았다. 일찍이 알아봄을 받자 그것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사승의 아들 사숭謝崇은 양위장군揚威將軍이었다. 사숭의 아우 사욱謝朂은 오군태수吳郡太守였으며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이 알려졌다.
이 부분도 오역이 있으므로 변경할 필요가 있습니다.
會稽典錄曰:承字偉平,博學洽聞,嘗所知見,終身不忘。子崇揚威將軍,崇弟勖吳郡太守,並知名。
『회계전록會稽典錄』에서 말하기를.
사승의 자는 위평偉平이며 학식이 넓고 들은 것이 많았다. 일찍이 한번 배워 안 내용은 죽을때까지 잊지 않았다. 사승의 아들 사숭謝崇은 양위장군揚威將軍이었다. 사숭의 아우 사욱謝朂은 오군태수吳郡太守였으며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이 알려졌다.
코렐솔라
- 2019.12.09
- 08:30:37
- (*.74.127.55)
안녕하세요.
해당 내용 반영해서
사경의 아들 사승謝承 은 『후한서後漢書』를 지었다. 어려서 인의와 효도를 행해 사경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지혜롭고 사리에 밝아 아름다운 재주가 있었다. 사경의 아우 사정謝貞은 법도를 따라 행하고 학문을 두터이 해 의로움을 높였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건창장建昌長이 되었다가 관직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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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의 아들 사승謝承 은 『후한서後漢書』를 지었는데 사경을 어려서부터 인의와 효도를 행하고 지혜롭고 사리에 밝아 아름다운 재주가 있었다고 칭했다. 사경의 아우 사정謝貞은 법도를 따라 행하고 학문을 두터이 해 의로움을 숭상했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건창장建昌長이 되었다가 관직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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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승의 자는 위평偉平이며 학식이 넓고 들은 것이 많았다. 일찍이 알아봄을 받자 그것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사승의 아들 사숭謝崇은 양위장군揚威將軍이었다. 사숭의 아우 사욱謝朂은 오군태수吳郡太守였으며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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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승의 자는 위평偉平이며 학식이 넓고 들은 것이 많았다. 일찍이 한번 배워 안 내용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사승의 아들 사숭謝崇은 양위장군揚威將軍이었다. 사숭의 아우 사욱謝朂은 오군태수吳郡太守였으며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이 알려졌다.
로 수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원현님께 이르지 않고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해당 내용 반영해서
사경의 아들 사승謝承 은 『후한서後漢書』를 지었다. 어려서 인의와 효도를 행해 사경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지혜롭고 사리에 밝아 아름다운 재주가 있었다. 사경의 아우 사정謝貞은 법도를 따라 행하고 학문을 두터이 해 의로움을 높였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건창장建昌長이 되었다가 관직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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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의 아들 사승謝承 은 『후한서後漢書』를 지었는데 사경을 어려서부터 인의와 효도를 행하고 지혜롭고 사리에 밝아 아름다운 재주가 있었다고 칭했다. 사경의 아우 사정謝貞은 법도를 따라 행하고 학문을 두터이 해 의로움을 숭상했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건창장建昌長이 되었다가 관직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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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승의 자는 위평偉平이며 학식이 넓고 들은 것이 많았다. 일찍이 알아봄을 받자 그것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사승의 아들 사숭謝崇은 양위장군揚威將軍이었다. 사숭의 아우 사욱謝朂은 오군태수吳郡太守였으며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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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승의 자는 위평偉平이며 학식이 넓고 들은 것이 많았다. 일찍이 한번 배워 안 내용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사승의 아들 사숭謝崇은 양위장군揚威將軍이었다. 사숭의 아우 사욱謝朂은 오군태수吳郡太守였으며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이 알려졌다.
로 수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원현님께 이르지 않고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부분에 오역이 있으므로 아래와 같이 바꿔야겠습니다.
㷡子承撰後漢書,稱㷡幼以仁孝為行,明達有令才。㷡弟貞,履蹈法度,篤學尚義,舉孝廉,建昌長,卒官。
사경의 아들 사승謝承 은 『후한서後漢書』를 지었는데 사경을 어려서부터 인의와 효도를 행하고 지혜롭고 사리에 밝아 아름다운 재주가 있었다고 칭했다. 사경의 아우 사정謝貞은 법도를 따라 행하고 학문을 두터이 해 의로움을 숭상했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건창장建昌長이 되었다가 관직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