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습은 자가 자우(子虞)이고, 진군(陳郡) 자현( 縣) 사람으로 군의 주부가 되었다. 조조가 사공으로 있을 때, 양습을 불러 장현( 縣)의 우두머리로 삼았고, 옮겨서 승씨현(乘氏縣)ㆍ해서현(海西縣)ㆍ하비현(下 縣)의 현령이 되었다. 그는 임지에서 잘 다스려 명성이 있었다. 

양습은 중앙으로 돌아와서 서조영사(西曹令史)로 임명되었고, 승진하여 서조속(西曹屬)이 되었다. 병주의 땅이 막 조조에게 귀속되었을 때, 양습은 별부사마(別部司馬)의 신분으로 병주자사를 겸임했다. 당시 그는 고간(高幹 ; 원소의 생질)의 황폐하고 혼란한 상황의 뒤를 이었고, 오랑캐들은 주 경계선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관리와 백성들이 도망가거나 모반을 할 경우에는 오랑캐 부락으로 들어갔다. 병사를 인솔하는 자들은 사람들을 모아서 약탈하고 해를 끼쳤고, 또 서로 선동하고 자주 분열하여 세력을 겨루었다. 양습은 임명된 후, 그들을 설득하고 회유하여 불러들였으며, 모두 예로써 그들의 세력 자들을 초청하고 점점 천거하여 막부의 직책을 맡도록 했다.

세력 자들을 다 선발한 이후에는, 순서에 따라 남자를 징발하여 의롭게 종군하는 사람이 되도록 했다. 또 대군이 출정하였으므로 용기 있는 병사가 되도록 요청했다. 군대의 관리와 병사들이 이미 간 이후, 점점 그 가족들을 이주시켜 앞뒤로 하여 업현으로 보냈는데 모두 수만 명이나 되었다. 그들 중에서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병사를 일으켜 토벌하였는데, 머리를 베인 자가 천여 명이고, 항복하여 귀순한 사람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이 이후로 선우는 공손하고, 명왕(名王 ; 흉노의 여러 부족의 왕)은 머리를 땅에 닿게 했으며, 부족민들은 호적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함께 윗사람 일을 받들었다. 변방지대는 안정되었고 백성들은 들녘에 즐비했으며, 농업과 양잠을 부지런히 권하고 법령과 금령은 엄했다. 추천된 명사들은 모두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이런 상황은 〈상림전(常林傳)〉에 기록되어 있다. 조조는 양습의 행정을 칭찬하고 관내후의 작위를 내리고, 또 정식 관리로 임명했다. 나이든 사람들은 그를 칭찬하며, 자신들이 듣고 아는 한에서는 양습에 미치는 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건안 18년(213)에 병주가 기주로 합병되었으며, 양습은 다시 의랑ㆍ서부도독종사(西部都督從事)로 임명되어 기주를 다스려 원래 있던 부족민을 통솔했다. 또 조조는 양습을 상당(上黨)으로 파견해 큰 목재를 취하여 업현의 궁실을 짓는데 제공하도록 했다. 양습은 둔전도위 두 명을 설치하고, 인부 6백 명을 인솔하여 길가에 콩과 벼(곡식)를 심어 사람과 소의 소비를 공급하도록 상주했다. 후에 선우가 조정으로 들어왔을 때, 서북쪽에 우환이 없었던 것은 양습의 공적이다.⑺ 

건안 22년(217)에 이르러 태조가 한중을 공략하고, 제군(諸軍, 모든 군사)들을 돌려 장안에 도착하자 기독(騎督, 기병 대장) 태원과 오환왕(烏丸王) 노석에게 머물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지양(池陽)에 진을 치게 하고, 노수를 방비하게 하였다. (주1) 

(주1) 위략: 선비의 호족 육연(育延)은 항상 주(州)의 두려운 존재였는데, 어느 날 아침에 그 부락민 5천여 기(騎)를 인솔하고 양습을 방문하여 서로 교류하자고 말했다. 양습은 들어주지 않으면 그의 원한을 살까 두려웠고, 만일 주의 성 아래에 오는 것을 들어주면 또 노략질을 당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허락하고 빈 성안에서 서로 만나서 교역하자고 했다. 그리고 군과 현에 명령을 내려 친히 치중(治中;주의 자사) 이하의 관리와 군사들을 인솔하여 그곳으로 향하도록 했다. 

그런데 시장이 성립되지도 않아서, 시장을 관리하는 관리가 오랑캐 한 명을 붙잡았다. 육연의 기병은 모두 놀라 말에 올라타고 활시위를 당겨 양습을 몇 겹으로 포위하였다. 관리와 백성들은 두려워 벌벌 떨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양습은 천천히 시장 관리에게 오랑캐를 붙잡은 이유를 묻자, 실제로 사람을 침범하여 해롭게 했다고 했다. 양습은 통역을 하는 이에게 육연을 부르게 했다. 육연이 도착하자, 양습은 

“당신 오랑캐가 자신부터 법을 범했소. 관리는 당신에게 해를 미치지 않았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기병들을 시켜 사람을 놀라게 하오?”라고 비난한 후 그를 베었다. 다른 오랑캐들은 간담이 내려앉아 감히 행동하지 못했다. 그 이후에는 난동을 부리는 오랑캐가 없었다"

(215년에 장로가 조조에게 항복하고) 22년에 (217년) 이르러 한중을 차지했던 태조가 모든 군사들을 철수하여 장안에 도착하였고, 기독(騎督, 기병 대장) 태원(太原)의 오환왕(烏丸王) 노석(魯昔)에게 머물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지양(池陽)에 진을 치게 하고, 노수(盧水)를 방비하게 하였다.

노석에게는 사랑하는 처가 있었는데 진양(晉陽)에서 살고 있었다. 노석은 그러는 동안 그녀를 생각하였고, 또한 한번가면 되돌아오지 못할까봐 걱정하다가, 결국 자신의 부하 무리 500명의 기마를 병주(并州)에 반환(叛還)하고 그 나머지 기병들을 [餘騎] 산의 골짜기 사이에 두고 배치시켜 머물게 하였고, 단기로 홀로 진양에 들어가 훔치듯 그 처를 취하였다.

이미 성을 나올 때에 지방(州郡)에서 이를 깨달았으나 관리와 백성 또한 그의 훌륭한 활솜씨를 두려워하였기에 감히 쫓지 못하였다. 양습은 이에 따르며 일하던 장경(張景)에게 선비(鮮卑)를 모아 그들로 하여금 노석을 쫓게 하였다.

노석이 말에 그의 처를 태우니, 무거워진 기마는 가는 것이 더뎌져 미처 그 무리와 합쳐지지 못하고, 선비의 화살에 죽임을 당하였다. 처음 태조는 노석의 배반을 듣고 그것이 북변(北邊)에서 난(亂)이 될까 두려웠으나, 마침 이미 그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고, 양습은 전후에 책략이 있다하여 관내후(關內侯)로 봉함을 받았다. (주석 번역하신 분 출처: 게으른 사냥꾼님의 이글루입니다)

문제가 제위에 오르자, 다시 병주를 설치하고, 양습을 또 병주자사로 임명하였으며, 승진시켜 신문정후(申門亭侯)로 봉하여 식읍 1백 호를 주었다. 양습의 치적은 항상 천하제일이었다.

태화 2년(228)에 중앙으로 불려가 대사농으로 임명됐다. 양습은 병주에서 20여 년 있었지만, 사는 곳은 매우 빈궁하였으며, 사방에 진귀한 물건이라고는 없었다. 명제는 이를 특이하게 생각하고 예에 따라 매우 두터운 상을 내렸다.

4년(230)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 양시(梁施)가 뒤를 이었다.

이 전에 제음(濟陰)의 왕사(王思)는 양습과 함께 서조영사(西曹令史)가 되었다. 왕사는 당직 일을 이용하여 정치에 관한 의견서를 갖추었는데, 조조의 뜻을 빠뜨렸다. 조조는 대단히 화를 내며 일을 맡은 사람을 불러오도록 명령하고는 그에게 중형을 내리려고 했다. 당시 왕사는 마침 외출하였으므로, 양습이 대신 가서 대답하였다. 이미 체포된 이후에 왕사가 말을 달려 돌아와 스스로 자신의 죄라고 진술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다. 조조는 양습이 자기를 변호하지 않은 점과, 왕사가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에 감탄하며 말했다.

"나는 우리 군중에 의로운 선비가 두 명이나 있을 줄 어찌 생각지 못했는가?" (주)

주: 신 송지(배송지)가 양습과 왕사를  생각건대, 동료일 뿐이지만, 형제(骨肉, 형제라는 뜻이 있죠.)가 아님에도 친하였고, 목을 베지 않으니(혹은 해임·해직시키지 아니하니) 의로웠고, 자신으로써 바꾸어 생각이었으나, 예측하지 못한 화를 받았다. 그것을 의라 여길 때, 이는 어그러졌으나 선견지명의 맑고 바른 뜻이 아니겠는가! (無乃~乎는 문법상으로 보통 ‘즉 ~하지 않겠는가. 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사마천(史遷, 사마천)이 이르기를 「죽음은 태산보다 무거운 것도 있으나, 홍모보다 가벼운 것도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군자는 구차하게 살지 아니하며, 구차하게 죽지 아니하는 것이다. 만약 왕사가 직분에 이끌리지 않고, 군주(혹은 주인 된 자)가 용서를 가하지 않았던 즉, 이른바 개죽음(經於溝瀆, 목매어 도랑에서 익사하다는 뜻)이라고 알지 않겠는가. 양습의 의를 위한 죽음이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후에 두 사람은 동시에 자사로 발탁되었고, 왕사는 예주를 다스렸다. 왕사 또한 능력 있는 관리지만, 지나치게 세심하여 전체적인 기둥이 없었다. 관직은 구경까지 올랐고, 열후로 봉해졌다. (주)

위략 가리전에서 말하였다.

[[왕사전]]으로 분리.

[[유류전]]으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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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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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2
17: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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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주석이 다 있군요. 주석은 사마휘님의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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