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華陀는 자가 원화(元化)이고, 패국 초현 사람으로, 일병 부(敷)라고도 한다.


신 (배)송지가 살피기로는, 옛 부敷자는 전專자와 서로 비슷하여 글을 베끼는 자가 쉬이 분별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생각건대 화타의 자가 원화이니(혹은, 화타의 자가 원화임을 고려한다면), 그 이름은 마땅히 부旉(=敷)가 될 것입니다.


서주일대에서 유력하며 학문을 하였으며 여러 권의 경전에 달통했다. 패국의 상 진규가 화타를 효렴으로 천거하였고, 태위 황완이 그를 불렀지만, 모두 나가지 않았다. 그는 양성의 방법에 밝았으므로, 그 당시 사람들은 화타의 나이가 백 세 가까이 되었지만 장년의 용모를 가지고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약품 처방에도 정통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끓일 경우에는 불과 몇 종류의 약재를 합쳐 끓였으며, 마음속으로 약품의 분량을 가늠하고 다시 저울로 재지 않았다. 끓여서 익으면 환자에게 먹이고 약을 복용할 때의 주의 사항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이와 같이 하여 약을 먹으면 병이 완쾌되었다. 불과 한두 곳만을 선택하여 각 곳마다 만일 뜸질을 해야 될 경우라면, 뜸질을 7,8회만 하여도 병세가 사라졌다. 만일 침을 놓아야만 될 경우라면 한두 곳만을 선택하여 침을 놓으면서 환자에게 말한다. 

"침은 어떤 장소에까지 찔러야만 합니다. 만일 그곳까지 찔러졌다면 말씀하십시오."

그러면 환자는 '벌써 찔러졌습니다'라고 말한다.

즉시 침을 빼고 나면, 환자의 병세 또한 차도가 있었다. 만일 신체 내부에 병이 있는데 침과 약으로는 환부에 미칠 수 없어 반드시 절개를 해야만 될 경우에는 환자에게 마취약을 먹여 잠시 취한 듯 죽은 듯 지각하는 바가 없게 하고 환부를 잘라 꺼내었다. 만일 창자 속에 질병이 있다면 창자를 잘라 깨끗이 씻어내고, 다시 봉합하여 고약을 붙인다. 4,5일 후면 차도가 있어 통증이 없고, 환자또한 스스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며, 한 달만에 완쾌되었다.

옛날에 감릉의 상으로 있던 사람의 부인이 임신한지 6개월이 되었는데 복통으로 편안하지 못했다. 화타는 그녀의 맥을 짚어보고 말했다.

"태아는 벌써 죽었습니다."

사람을 시켜 손으로 더듬어 태아의 위치를 살피게 하고, 왼쪽에 있으면 사내 아이이고, 오른쪽에 있으면 여자아이라고 했다. 위치를 살핀 사람이 말했다.

"왼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탕약을 배합하여 태아를 씻겨내리니, 과연 내려온 것은 사내아이의 모습이었고, 즉시 통증이 사라졌다.
현의 관리 윤세는 사지에 열이 나고 입안이 마르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소변도 순조롭지 못하였다. 화타가 말했다.

"시험삼아 뜨거운 음식을 먹어보아 땀이 나면 쾌차하고, 땀이 나지 않으면 사흘이 지난 후에 *을 것입니다."

즉시 뜨거운 음식을 만들어 먹었지만 땀이 나지 않았다. 화타가 말했다.

"장기가 이미 체내에서 끊어졌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만 기를 이을 수 있습니다."

과연 화타의 말과 같았다.

부(태위의 막부)의 관리 아심과 이연이 함께 화타에게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두 사람 모두 두통과 전신에 열이 있었으며, 느끼는 고통이 똑같았다. 화타가 말했다.

"아심은 설사를 해야만 되고, 이연은 땀을 내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이 병은 같은데 치료 방법이 다른 것을 이상하게생각하자, 화타가 말했다.

"아심은 체질이 겉으로 튼실하고, 이연은 속이 튼튼하기 때문에 당연히 다르게 치료해야 합니다."

즉시 각자에게 약을 주었는데, 다음날 아침 두사람 모두 병이 완쾌되어 일어났다.

염독의 엄흔이 몇 사람과 함께 화타를 찾아왔다. 그들이 도착하자 마자 화타가 엄흔에게 말했다.

"당신의 몸은 좋습니까?"

엄흔은 말했다.

"평상시와 같습니다."

화타가 말했다.

"당신에게 화급을 다투는 병이 있는 것이 얼굴에 나타나는군요. 술을 많이 마시지 마십시오."

엄흔 등은 담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몇 리를 가다가 엄흔이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며 수레 위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를 부축하여 수레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튿날 밤에 죽었다.

이전에 독우(순찰관)를 지낸 돈자헌이 병에 걸렸다가 쾌차하여, 화타에게 진맥을 짚어보게 했다.

화타가 말했다.

"몸은 아직 허약하며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았으니, 수고로운 일(방사)을 하지 마십시오. 그 일을 하면 곧 *게 될 것입니다. 만일 *게 된다면 혀를 몇 촌 내놓아야만 할 것입니다.

돈자헌의 아내는 돈자헌의 병이 좋아졌다는 것을 듣고 백여 리 밖에서 와서 그를 살펴보고는 밤에 그의 집에 머물며 교접을 하였는데 중간 3일만에 발병하였다. 하나같이 화타가 말한 것과 같았다.

독우 서의가 병이 들었으므로 화타가 가서 그를 진찰해 보았다. 서의가 화타에게 말했다.

"어제 의조리 유조를 시켜 위에 침을 놓게 한 후에 찌르는 듯한 고통이 와서 누워서 편안히 잘 수가 없었소."

화타가 말했다.

"침을 위에 찌르지 않고 잘못하여 간을 찔렀습니다. 먹는 것이 하루하루 줄어들고, 닷새가 지나면 구할 수 없습니다."

결과는 화타의 말처럼 되었다.

동양현 진숙산의 작은 아들이 두 살 때 병에 걸려 변을 보지 못해 항상 먼저 울었으며, 하루하루 쇠약해져 갔다. 화타에게 묻자 화타가 말했다.

"이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가졌을 때, 태아를 자라게 하는 데 양기가 집중되었으므로 모유를 먹는 아이는 어머니의 차가운 성분을 섭취하였기 때문에 나을 수 없습니다."

화타는 네 가지 물건을 합쳐 만든 여완환을 주었는데, 열흘후에 병세가 사라졌다.

팽성태수의 부인이 밤에 변소에 갔다가 전갈에 손을 쏘여 신음소리를 내며 아파했지만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화타는 사람을 시켜 탕약을 뜨겁게 하여 그속에 손을 씻어내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하니 즉시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여러번 탕약을 바꾸어 탕약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였다. 날이 새자 쾌차했다.

군대의 관리인 매평이 병에 걸려 업무를 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광릉현에 있었는데, 2백 리를 남겨두고 친척집에서 머물렀다. 오래지 않아 화타가 우연히 주인집에 오게 되었고, 주인은 화타로 하여금 매평을 보도록 했다. 화타가 매평에게 말했다.

"당신이 일찍 나를 만났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질병이 이미 다했으니, 빨리 집으로 가서 가족들과 만나십시오. 닷새후면 *습니다."

매평은 즉시 돌아갔고, 죽은 기일은 화타가 예측한 것과 같았다.

화타는 길을 가다가 목구멍이 막히는 병에 걸린 사람이 음식을 먹으려고 했지만 먹지 못하자, 집 식구들이 수레에 태워 의사에게 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화타는 그 사람의 신음소리를 듣고 수레를 멈추게 하고 가서 살펴보고 그들에게 말했다.

"방금 지나온 길 옆쪽 빵을 파는 집에 마늘을 부수어서 시게 만든 것이 있으니 세 되를 사서 그에게 먹이면 병이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입니다."

화타의 말처럼 했더니 환자는 즉시 뱀 한마리를 토해냈다. 토해낸 뱀을 수레 옆에 걸고 화타를 방문하니, 화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어린 아이가 문앞에서 놀고 있었는데, 맞이하여 보고 말했다.

"우리 아저씨를 만난 것 같군요. 수레 옆에 뱀을 매달았군요."

환자는 앞으로 들어가 앉아서 화타의 집의 북쪽 벽에 이런 뱀이 수십마리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군의 태수가 병이 들었다. 화타는 그사람이 크게 화를 내면 차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많은 돈을 받고 치료를 하지 않았으며 오래지 않아 환자를 내버려두고 떠나면서, 태수를 욕하는 편지를 남겼다. 태수는 과연 매우 화를 크게 냈으며, 사람들을 시켜 화타를 추격하여 잡아 죽이도록 했다. 군수의 아들은 화타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에 수하 관리들에게 쫓지 말도록 했다. 태수는 최대 한도로 분노하더니 검은 피를 토하자 병이 낫게 되었다.

또 한 사대부가 있었는데, 몸이 불편하였다. 화타가 말했다.

"그대의 병은 깊습니다. 배를 잘라 절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수명또한 10년을 넘지 못할 것이니, 질병이 그대를 죽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10년간 질병을 참아낼 수만 있다면 수명과 함께 질병이 다할 것이므로 특별히 절제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대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것을 반드시 절제하려고 했다. 화타는 마침내 수술을 하였고, 환부는 빨리 좋아졌는데, 10년이 지나 결국 죽게 되었다.

광릉태수 진등이 병이 들자 가슴속에 고민이 가득하였으며 안색이 붉고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화타는 그의 진맥을 보고 말했다.

"당신의 위 속에 있는 몇 되의 기생충이 안에서 악성종기가 되려고 하는데, 날 것을 먹어서 생긴 것입니다."

즉시 두 되의 탕약을 만들어 먼저 한 되를 복용하게 하고, 조금 있다가 전부 복용하도록 했다. 탕약을 먹은지 얼마 안 되어서 세 되의 기생충을 토했는데, 붉은 색 머리는 모두 움직이고 있었으며, 반쪽은 아직 물고기를 얇게 저민 모습을 하고 살아있었다.

"이 병은 3년후에 또 재발합니다. 그때 훌륭한 의사를 만나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

과연 화타가 말했던 기일에 병이 재발하였는데, 그 당시 화타가 살아있지 않았으므로 말한 것처럼 죽었다.


조조가 소문을 듣고 화타를 불러 화타는 항상 조조 곁에 있었다. 조조는 두통으로 고생하였는데, 매번 재발할 때마다 마음이 산란하고 눈이 몽롱했다. 화타는 침으로 횡격막을 찔렀으며, 손이 따라가는 대로 병세가 사라졌다.


화타별전華佗別傳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양 다리兩腳가 절뚝발이躄 되는 병에 걸려 걷지를 못하였기에 수레를 타고 화타에게 가니, 화타가 (그것을 멀리서부터) 지켜 보고서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몸은 침과 뜸을 사용하고 약을 복용해야 할 것이다. 다시 진맥하지 않아도 된다."  옷을 벗도록 하여 편하게 하고, 등 수십 곳을 점하였는데, 서로 거리가 어떤 것은 1촌이고, 어떤 것은 5촌이어서, 놓인 것이 일정하지 않아 서로 균형되게 어울리지 않았다. 말한대로 뜸이 이처럼 각 10장壯이었는데, 뜸의 상처가 낫자 곧 움직일 수 있었다. 후에 뜸을 뜬 곳 협척혈夾脊穴(등마루를 끼고 양쪽에 있는 혈) 1촌으로 (남아 있는 상처의 모양이)상하上下 행行이 바르고 곧았으며, 하나 같이 고르게 있어 마치 포승줄(혹은 새끼줄)과 같았다.

이장군의 부인이 병세가 심각하였으므로 화타를 불러 맥을 짚어 보도록 했다. 화타가 말했다.

"유산이 되었습니다만, 태아가 모체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장구이 말했다.

"유산이 확실하다면 태아는 이미 떨어진 것이라고 들었소."

화타가 말했다.

"진맥에 의하면, 태아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장군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화타는 진료를 멈추고 떠났다. 부인의 병세는 점점 호전되었다. 백여일 후에 병이 재발하였으므로, 다시 화타를 불렀다. 화타가 말했다.

"이 맥의 관례에 따라 판단하면, 태아는 아직 있습니다. 이전에 두 아이가 생겼는데, 한 아이는 먼저 나왔는데 출혈이 매우 많았고, 뒤의 아이는 아직 출생하지 못했습니다. 산모는 자각하지 못했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 또한 깨닫지 못했으므로 이어서 낳지 않았기 때문에 출생하지 못한 것입니다. 태아는 죽었고, 어머니의 혈맥은 다시 태아에게 돌아가지 않으니, 태아가 말라서 어머니의 등골뼈에 붙어있기 때문에 등골뼈의 통증이 많았던 것입니다. 지금 탕약을 주고, 아울러 한 곳에 침을 놓으면, 죽은 이 태아는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탕약과 침을 모두 사용하자, 부인의 격렬한 통증이 아이를 낳을 때와 같았다. 화타가 말했다.

"이 죽은 태아는 너무 오래 말라 있었으므로 스스로 나올 수 없습니다. 응당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찾도록 해야합니다."

과연 죽은 한 사내아이를 꺼냈는데, 손과 발이 모두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었고, 안색은 검었으며, 몸은 1척쯤 되었다.

화타의 절묘한 의술은 대체로 이와 같았다. 그러나 그는 본래 선비였으므로 의술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으로 간주되자 마음 속으로 항상 부끄러워했다. 후에 조조가 직접 국사를 처리할 때, 중병에 걸려 화타에게 치료하도록 했다. 화타가 말했다.

"이 질병은 단기간에 치료하기는 어렵습니다. 장기간 치료해야만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습니다."

화타는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있었으므로 집으로 돌아가려고 조조에게 말했다.

"방금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았습니다. 잠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집에 돌아온 후, 부인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여러 차례 기일을 연기할 것을 청하여 돌아가지 않았다. 조조는 누차 편지를 써서 불렀고, 또 군현의 관리에게 명령하여 화타를 보내도록 했다. 화타는 자신의 본령을 견지하고 다른 사람을 모셔 녹을 먹는 것을 싫어하였으므로 길에 오르지 않았다. 조조는 매우 노하였으며, 사람을 보내 가서 살펴보도록 했다. 만일 화타의 처가 정말로 병에 걸렸다면 팥 열 섬을 내리고 휴가 기한을 더 늘려주도록 하고, 만일 그것이 거짓이라면 체포하여 압송하도록 했다. 그래서 화타는 허현의 감옥으로 넘겨졌으며, 심문을 받고 죄를 시인했다. 순욱이 조조에게 간청하여 말했다.

"화타의 의술은 확실히 매우 정통합니다.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는 바이니 그를 당연히 용서해야 합니다."

조조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천하에는 이런 쥐새* 같은 자가 없어야만 하오."

그리고 화타를 가혹하게 고문했다. 화타가 죽으려고 할 때, 책 한권을 꺼내 옥의 관리에게 주고 말했다.

"이 책은 사람을 살릴 수 있소."

옥의 관리는 법을 범하는 것이 두려워 받지 않았고, 화타 또한 강요하지 않고 불을 찾아 태워버렸다. 화타가 죽은 후에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자 조조가 말했다.

"화타는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 그는 나의 병을 고쳐 스스로를 높이려고 했는데, 내가 이사람을 죽이지 않았어도 끝내 나를 위해 이 병의 근원을 잘라 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사랑하는 아들 창서가 질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조조는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화타를 죽인 것을 후회한다. 이 아이를 죽게했다."

처음에, 군대의 관리 이성이 고통스런 기침으로 밤에도 낮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으며, 항상 피고름을 토하였으므로 화타에게 물었다. 화타가 말했다.

"그대의 병은 장에 종기가 난 것입니다. 기침할 때 토하는 피고름은 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에게 두 전의 가루약을 주겠습니다. 두 승쯤 되는 피고름을 토하고 마음이 유쾌해지고, 기를 갖고 자애롭게 한다면 1년이면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18년이 지나면 한 차례 작은 발작이 있을 것인데, 이 가루약을 복용하면 또한 병세는 회복될 것입니다. 만일 이 약을 얻지 못한다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두 전의 가루약을 주었다. 이성이 약을 얻은후 , 5,6년이 지났을 무렵에 친척중에 이성과 또 같은 병에 걸린 자가 있었는데, 이성에게 말했다.

"그대는 지금 건강하고, 나는 죽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병이 없으면서 약을 수장하고 장차 올 병에 대비하며 견디십니까?[주1] 먼저 나에게 주면 나는 병이 치료될 것이고, 다시 당신을 위해 화타에게서 구해오겠습니다."

이성은 약을 그에게 주었다. 병이 완치되어 초현으로 갔지만, 마침 화타가 붙들려 갔으므로 화타에게서 약을 구하지 못했다. 18년후, 이성은 병이 재발했지만, 약을 복용할 수가 없어 죽게 되었다.[주2]


[주1]신 (배)송지가 살피기로는, 고어古語에서는 장藏이라는 의미로 거去를 썼습니다.


[주2]『화타별전佗別傳』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청룡青龍 연간 중에 산양태수山陽太守 광릉廣陵사람 유경종劉景宗을 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유경종이 중평 연간에 날마다 화타를 수시로 보면서, 병을 다스리는 것과 손의 맥手脈을 짚어 증상을 살핌이 귀신 같았음을 증험하였다고 하였다.


『후한서』 「화타전」에서는, "佗別傳曰 「人有見山陽太守廣陵劉景宗,說數見華佗,見其療病平脈之候,其驗若神。" 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위의 글에서는 "청룡 연간에 있었던 일이다."하는 부분이 빠져 있고(청룡 연간에 산양태수 유경종을 만난 사람이 들은 이야기라는 내용), 手脈이 아닌 平脈으로 나와 있으며, 說中平日數見華佗는 說數見華佗로 바뀌어 있습니다. 같은 화타별전인데 이와 같은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이 필사를 하다가 잘못을 하였거나, 첨삭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고요. 수맥은 흔히 아는 바와 같이 한의사가 손목 잡고 맥진을 하는 것을 말하고, 평맥 역시 큰 차이 없는 방법을 택하여 진단합니다. 게다가 화타의 죽음을 네이버에서 나온 것과 같이 208년 즈음으로 잡는다면 중평 연간 어느 날의 이야기가 아예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후한서 맥락대로라면 "여러 번 화타를 만났던 것을 이야기하였는데, 그 병을 치료함과 평맥을 짚어 증상을 살피는 것을 보았는데, 귀신 같았다고 증험하였다."가 되니 삼국지의 내용과 크게 상충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후한서 맥락이 좀 더 읽기 편한 것 같습니다.


낭사 사람 유훈(劉勳) 이 하내태수(河內太守)로 있을 때 스무 살애 가까운 딸이 있었다. 딸의 왼쪽 다리와 허벅지 안쪽에 창이 있었는데, 가려움이 심했지만 통증은 없었다. 창이 나았다가도 수십일이면 다시 발병하였는데, 7~8년 동안 이와 같아서 화타를 맞이하게 되어 딸의 병을 보도록 하였는데, 화타가 말하길


"이런 정도는 쉽게 고칩니다. 쌀겨와 같은 색의 누런 개 한 마리와 좋은 말 두필을 준비하시오"


그 리고는 새끼줄을 개의 목에 걸어서 말 한 마리가 개를 끌고 달리게 했다. 말이 지치면 즉시 다른 말로 바꿔서 달리게 했다. 이렇게 말이 끌고 다닌 거리가 30여 리가 되었다. 끌려 다니던 개는 지쳐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다시 사람이 걸어다니며 그 개를 끌고 다니게 하여 총 50리를 끌고 다녔다. 이에 화타는 그 사이 처녀에게 약물을 먹였는데 딸은 편안히 누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서 화타는 큰 칼(刀)로 개의 배 근처 뒷다리 앞을 자르고, 그 자른 부분을 창구瘡口를 향하여 두었는데, 2~3촌 정도 떨어지도록 하였다. 잠시 후 뱀 처럼 생긴 것이 창 속에서 따라 나왔는데, 익숙하게 쇠몽둥이(철추)를 휘둘러 뱀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그랬더니 그 뱀은 피부속에서 한참을 꿈틀거리며 요동을 치더니, 잠시 뒤 그 멈추었다. 이에 화타가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자 길이가 3자()가 넘으며 진실로 뱀이었으나, 다만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있었으나 눈동자가 없었고 또한 비늘이 거꾸로 나있을 따름이었다. 이에 고약을 창병에 바르자 일주일만에 나았다.


又有人苦頭眩,頭不得舉,目不得視,積年。佗使悉解衣倒懸,令頭去地一二寸,濡布拭身體,令周匝,候視諸脈,盡出五色。佗令弟子數人以鈹刀決脈,五色血盡,視赤血,乃下, 以膏摩被覆,汗自出周匝,飲以亭歷犬血散,立愈。又有婦人長病經年,世謂寒熱注病者。冬十一月中,佗令坐石槽中,平旦用寒水汲灌,云當滿百。始七八灌,會戰欲死,灌者懼,欲止。佗令滿數。將至八十灌,熱氣乃蒸出,囂囂高二三尺。滿百灌,佗乃使然火溫床,厚覆,良久汗洽出,著粉,汗燥便愈。又有人病腹中半切痛,十餘日中,鬢眉墮落。佗曰:「是脾半腐,可刳腹養治也。」使飲藥令臥,破腹就視,脾果半腐壞。以刀斷之,刮去惡肉,以膏傅瘡,飲之以藥,百日平復。 


또한 어떤 사람이 있어 머리가 어지러운 것으로 고통스러워하였는데 머리를 들 수도 없었고 눈으로 볼 수도 없었던 것이 수년이나 되었다. 화타는 옷을 모두 벗고 거꾸로 매달게 하여 머리가 땅에서 1~2촌정도 떨어지게 하고서는 천을 적셔 몸을 고루 닦게 하였는데 여러 맥을 보니 모두 5색의 빛을 띄었다. 화타는 제자 몇 명으로 하여금 피도로 맥을 갈라 5색의 피가 다하고 붉은 색의 피가 보이고 나서야 내려주고 연고를 바른 이후 덮어 주었다. 땀이 온 몸에서 나고 정력견혈산(亭歷犬血散)을 마시게 하니 곧 나았다. 또한 어떤 부인이 있어 긴 병을 수년동안 알았는데 세상에서 말하길 오한과 발열이 병을 나게 한다는 것이다. 겨울 11월 중 화타는 그녀로 하여금 나무 욕조에 앉게 하여 이른 새벽에 차가운 물로 몸을 적시게 했는데 말하길 마땅히 100번을 채워야 한다고 하였다. 처음 7~8번을 적시자 몸에 전율을 일으키며 죽을 것 같으니 물을 끼얹는 사람이 두려워 멈추고자 하였다. 화타는 그로 하여금 숫자를 다 채우도록 하였다. 장차 80번에 이르러 열기가 뿜어져 나와 효효히(들레는 모양) 높이가 2~3척이나 되었다. 100번을 채우자 화타는 마침내 불을 지펴 상을 따뜻하게 하고는 두텁게 덮도록 했고 오래 지나자 땀이 나왔고 분을 발랐으며 땀이 마르고 나서 곧 나았다. 또 어떤 사람이 있어 배속의 반절이 아파 10여 일 동안 수염과 눈썹이 떨어질 정도였다. 화타는 말하길 「이는 비장의 절반이 부패한 것이니 가히 배를 갈라 치료할 수 있다. 」고 하고는 약을 먹고 눕게 하여 배를 갈라 보니 비장의 절반이 과연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이를 칼로 잘라내 나쁜 살을 없애고 나서 고약을 상처에 바르고 약을 마시게 하니 100일 만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광릉현의 오보,팽성편의 번아가 모두 화타를 추종하여 배웠다. 오보는 화타에 의거하여 치료했으므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구하였다. 화타가 오보에게 말했다.


"사람의 몸은 항상 활동을 하려고 하지만, 지나치게 피로하게 해서는 안된다. 활동하면 식물을 소화하고 흡수할 수 있고, 혈맥이 흘러 통하여 질병이 생기지 않는다. 비유하면 문의 지도리가 썩지 않는 것과 같다. 때문에 옛날에 장수한 신선은 몸과 수족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양생법인 도인 활동을 진행시키고, 곰처럼 나무를 끌어안고, 올빼미처럼 몸은 움직이지 아니하고목만 돌려 뒤를 돌아다 보고 허리를 펴고 각부위의 관절을 활동시켜서 장수를 구했다. 나는 한 운동 방법을 갖고 있는데, 이름을'오금희'라 하였다. 첫째는 호희이고, 둘째는 녹희이며, 셋째는 웅희이고 넷재는 원희이며 다섯째는 조희이다 이것은 또한 질병을 제거할 수 있고, 아울러 수족을 자유롭게 하여 도인작용이 있다. 신체 중에 불편한 곳이 있을 때에 일어나서 한 동물의 놀이를 한다면 땀을 흘려 옷을 적시게 될 것이고, 불편한 곳 위에 가루약을 뿌리면 신체는 경쾌해지고, 뱃 속에서도 음식을 먹으려고 할 것이다."

오보는 이것을 시행하였으므로, 나이는 90여세가 되었지만 귀가 밝고 눈이 밝으며 치아가 완전하며 견고했다.

번아는 침술에 뛰어났다. 무릇 의술을 행하는 사람들은 등과 가슴 사이에숨어 있는 것에는 침을 놓을 수 없으며, 그곳에 침을 놓는다면 4분을 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번아는 등에 침을 1,2촌을 찌르고 큰 구멍이나 가슴 부위에 침을 5,6촌씩 놓아서 질병을 모두 치료했다.

번아는 일찍이 화타에게 사람에게 유익한 약을 먹일 수 있기를 구하였다. 화타는 그에게 칠엽청점산을 전수했다. 옻나무 잎을 자른것 한되와 청점을 잘게 부수어 14량의 비율을 맞추어 만든 것이다. 이것을 오래 복용하면 뱃속에 있는 삼필의 기생충이 제거되어, 오장을 이롭게 하고 신체를 가볍게 하며, 두 발이 하얗게 되지 않도록 한다고 말했다. 번아는 화타의 말을 따라서 이 약을 복용하여 1백여살까지 살았다.

옻나무 잎은 도처에 있고, 청점은 풍현,패현,팽성현과 조가현 일대에 서식한다.

[주] 타별전(佗別傳): 청점(青黏)이라는 것은 지절(地節)이라고 불리며, 또는 황지(黃芝)라고도 불리운는데, 다섯가지 장기를 다스리고, 또한 정기를 복돋워준다. 본래 어떤 사람이 깊은 산속에 들어가 신선이 그것을 먹는 것을 보고는 화타에게 이야기했다. 화타도 몸이 건강해지자, 이 이야기를 범아에게 이야기를 했고, 범아는 비법으로 여겼다.


近者人見阿之壽而氣力彊盛,怪之,遂責阿所服,因醉亂誤道之。法一施,人多服者,皆有大驗。 


근래에 사람들이 번아가 장수하고 기력이 강성한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마침내 번아가 먹은 것을 찾아내고자 하였는데 취한 것으로 말미암아 잘못 누설하였다. 방법이 한번 베풀어지자 많은 사람이 복용하였고 모두 큰 효험이 있었다.


文帝典論論郤儉等事曰:「潁川郤儉能辟穀,餌伏苓。甘陵甘始亦善行氣,老有少容。廬江左慈知補導之術。並為軍吏。初,儉之至,巿伏苓價暴數倍。議郎安平李覃學其辟穀,餐伏苓,飲寒水,中泄利,殆至隕命。後始來,眾人無不鴟視狼顧,呼吸吐納。軍謀祭酒弘農董芬為之過差,氣閉不通,良久乃蘇。左慈到,又競受其補導之術,至寺人嚴峻,往從問受。閹豎真無事於斯術也,人之逐聲,乃至於是。光和中,北海王和平亦好道術,自以當仙。濟南孫邕少事之,從至京師。會和平病死,邕因葬之東陶,有書百餘卷,藥數囊,悉以送之。後弟子夏榮 言其尸解。邕至今恨不取其寶書仙藥。劉向惑於鴻寶之說,君游眩於子政之言,古今愚謬,豈唯一人哉!」 


문제의 전론에서 극검등의 일을 논하면서 이르길 : 「영천의 극검은 벽곡에 능하여 복령(伏苓:버섯의 일종)을 먹었다. 감릉의 감시 또한 기를 운용하는 것을 잘했는데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습이 어렸다. 여강의 좌자는 보도(補導:도가의 양생술)의 기술을 알았는데 더불어 군리가 되었다. 당초에 극검이 이르렀을 때 시장에 복령을 내다팔았는데 가격이 몇배나 폭등하였다. 의랑 안평사람 이담은 그 벽곡술을 배워 복령을 먹고 차가운 물을 마셨는데 이질에 걸려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이후 감시가 이르자 사람들 중에 그에게 수리처럼 보고 늑대처럼 돌아보는 동작과 호흡을 통한 양생술을 배우지 않는 이가 없었다. 군모좨주 홍농사람 동분은 이를 지나치게 하다가 기가 막혀 통하지 않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마침내 깨어났다. 좌자가 이르자 또한 앞다퉈 그 보도의 기술을 배우고자 하였는데 사인(寺人:환관) 엄준이 오가면서 배웠으나 환관들은 진실로 이 기술을 배워봐야 쓸모가 없었다. 사람들이 소리를 쫓는 것이 마침내 이 정도에 이르렀다. 광화연간에 북해사람 왕화평 또한 도술을 좋아하고 스스로 이로써 신선이 될 수 있다 여겼다. 제남사람 손옹이 어렸을 때부터 그를 섬겨 수종하여 경사에 이르렀다. 왕화평이 죽는데 이르러 손옹은 그를 동도에 장사지내고 있는 책 백여권과 약 수 포대를 모두 장송에 사용했다. 이후 제자 하영이 그 시해(尸解: 도사의 영혼이 신선이 되고 신체만 세상에 남는 것)를 말했고 손옹은 지금도 그 보서와 선약을 취하지 못했음을 한스러워 한다. 유향은 홍보(鴻寶:일종의 연금술을 기록한 책)의 설에 미혹되고 군유는 자정(子政:유향의 字)의 말에 현혹되었으니 고금을 통틀어 멍청하고 황당한 사람이 어찌 한 사람 뿐이겠는가!」


東阿王作辯道論曰:「世有方士,吾王悉所招致,甘陵有甘始,廬江有左慈,陽城有郤儉。始能行氣導引,慈曉房中之術,儉善辟穀,悉號三百歲。卒所以集之於魏國者,誠恐斯人之徒,接姦宄以欺眾,行妖慝以惑民,豈復欲觀神仙於瀛洲,求安期於海島,釋金輅而履雲輿,棄六驥而美飛龍哉?自家王與太子及余兄弟咸以為調笑,不信之矣。然始等知上遇之有恆,奉不過於員吏,賞不加於無功,海島難得而游,六黻難得而佩,終不敢進虛誕之言,出非常之語。余嘗試郤儉絕穀百日,躬與之寢處,行步起居自若也。夫人不食七日則死,而儉乃如是。然不必益壽,可以療疾而不憚饑饉焉。左慈善修房內之術,差可終命,然自非有志至精,莫能行也。甘始者,老而有少容,自諸術士咸共歸之。然始辭繁寡實, 頗有怪言。余常辟左右,獨與之談,問其所行,溫顏以誘之,美辭以導之,始語余:『吾本師姓韓字世雄,嘗與師於南海作金,前後數四,投數萬斤金於海。』又言:『諸梁時,西域胡來獻香罽、腰帶、割玉刀,時悔不取也。』又言:『取鯉魚五寸一雙,合其一 煮藥,俱投沸膏中,有藥者奮尾鼓鰓,游行沉浮,有若處淵,其一者已熟而可噉。』余時問:『言率可試不?』言:『是藥去此逾萬里,當出塞;始不自行不能得 也。』言不盡於此,頗難悉載,故粗舉其巨怪者。始若遭秦始皇、漢武帝,則復為徐巿、欒大之徒也。」 


동아왕(東阿王:조식)이 변도론을 지어 이르길 : 「세상의 방사는 우리 왕이 모두 모두 불러모았으니 감릉에는 감시가 있고 여강에는 좌자가 있으며 양성에는 극검이 있었다. 감시는 기운을 움직이는 도인술에 능했으며 좌자는 방중술에 밝았고 극검은 벽곡에 뛰어났는데 모두 300세라고 하였다. 마침내 이들을 위국에 모은 이유는 진실로 이들의 무리가 간교한 이들과 합하여 군중을 속이고 요사하고 가식적인 술수를 부려 백성들을 미혹시킬까 해서이니 어찌 다시 영주에서 신선을 보고 해도에서 안기(安期:봉래산에 산다고 알려진 전설속의 신선)를 구하며 금로를 풀고 구름수레를 밟으며 육기를 버리고 비룡을 아름답게 여기겠는가? (금로, 육기는 황제가 타는 수레와 그 수레를 끄는 6마라의 말로서 속세의 부귀를 상징함) 우리 왕과 태자, 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이를 비웃고 믿지 않는다. 그런즉 감시 등은 높여주는 것은 한도가 있고 받드는 것이 불과 일개 군리에 불과하며 공로가 없는데 상이 더해지지 않는 것과 바다위의 섬을 얻어 유람하는 것이 어렵고 인수를 얻어 차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서는 끝내 감히 허탄한 말을 올리거나 상도에서 벗어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내가 일찍이 시험삼아 극검으로 하여금 100일동안 곡기를 끊게 하고는 더불어 생활을 같이하였는데 그가 돌아다니거나 기거하는 것이 태연자약하였다. 무릇 사람은 7일동안 먹지 않으면 죽는데 극검이 곧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런즉 반드시 수명을 늘릴 수 없다하여도 가히 질병을 치료하고 기근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좌자는 방중술을 잘 수련하여 천수를 누릴 수 있었는데 뜻이 있어 지극히 정밀하지 못하다면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감시는 나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용모가 어렸는데 이로부터 나머지 술사들이 모두 그에게 귀의하였다. 그러나 감시는 말이 많고 실질이 적으며 괴언이 파다하게 있었다. 내가 일찍이 좌우를 물리고 홀로 그와 이야기하면서 그의 행동에관해 물었는데 온화한 얼굴과 아름다운 말로 유인하자 감시가 나에게 말하길 『제 본래 스승은 성이 한씨이고 자가 세웅인데 일찍이 저와 더불어 남해에서 금을 만들려고 전후로 수차례 금을 수 만근이나 바다에 던졌습니다.』라 하였다. 또 말하길 『대개 양(梁)나라 시기 서역의 이민족이 향계(香罽), 요대(腰帶), 할옥도(割玉刀)를 헌상해 왔는데 그때 가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하였다. 또 말하길 『잉어 5촌짜리 한 쌍을 잡아서 그 중 하나에는 약을 물려서 함께 끓는 기름에 던져 놓으면 약을 먹은 것은 꼬리를 흔들고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올라갔다 내려갔다 헤엄치는 것이 마치 연못 속에 있는것과 같은데 다른 한 마리는 이미 익어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내가 당시에 묻길 『말한 바를 대체로 시험해볼 수 있는가?』라 하니 대답하길 『이 약은 여기서 만 리를 넘고 변경을 나가야 하는데 제가 직접가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라 하였다. 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으나 사뭇 다 싣기가 어려워 크게 기괴한 것만 대충 들은 것이다. 감시가 만약 진시황, 한무제를 만났다면 곧 다시 서시, 난대의 무리가 됐을 것이다. 」

진수의 평: 화타의 진료, 두기의 음악, 주건평의 관상술, 주선의 꿈풀이, 관로의 점쾌는 진실로 모두 현묘하고 정교하며 비범한 기술이다. 옛날 사마천이 [편작], [창공], [일자]의 전을 지은 것은 불가사의한 것을 포괄하여 기록하고자 한 것이다. 떄문에 나 역시 이런 것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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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15:43:33 (*.52.8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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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0
10:19:59
(*.52.89.212)
한문 주석 추가

사마휘

2015.02.01
21:55:03
(*.234.26.150)
臣松之案:古「敷」字與「專」相似,寫書者多不能別。尋佗字元化,其名宜為旉也。

신 (배)송지가 살피기로는, 옛 부敷자는 전專자와 서로 비슷하여 글을 베끼는 자가 쉬이 분별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생각건대 화타의 자가 원화이니(혹은, 화타의 자가 원화임을 고려한다면), 그 이름은 마땅히 부旉(=敷)가 될 것입니다.

사마휘

2015.02.01
23:50:00
(*.234.26.150)
佗別傳曰:有人病兩腳躄不能行,轝詣佗,佗望見云:「己飽針灸服藥矣,不復須看脈。」便使解衣,點背數十處,相去或一寸,或五寸,縱邪不相當。言灸此各十壯,灸創愈即行。後灸處夾脊一寸,上下行端直均調,如引繩也。

화타별전華佗別傳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양 다리兩腳가 절뚝발이躄 되는 병에 걸려 걷지를 못하였기에 수레를 타고 화타에게 가니, 화타가 (그것을 멀리서부터) 지켜 보고서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몸은 침과 뜸을 사용하고 약을 복용해야 할 것이다. 다시 진맥하지 않아도 된다."

옷을 벗도록 하여 편하게 하고, 등 수십 곳을 점하였는데, 서로 거리가 어떤 것은 1촌이고, 어떤 것은 5촌이어서, 놓인 것이 일정하지 않아 서로 균형되게 어울리지 않았다. 말한대로 뜸이 이처럼 각 10장壯이었는데, 뜸의 상처가 낫자 곧 움직일 수 있었다. 후에 뜸을 뜬 곳 협척혈夾脊穴(등마루를 끼고 양쪽에 있는 혈) 1촌으로 (남아 있는 상처의 모양이)상하上下 행行이 바르고 곧았으며, 하나 같이 고르게 있어 마치 포승줄(혹은 새끼줄)과 같았다.

사마휘

2015.02.22
14:47:21
(*.234.26.150)
[주1]臣松之案:古語以藏為去。
신 (배)송지가 살피기로는, 고어古語에서는 장藏이라는 의미로 거去를 썼습니다.

[주2]佗別傳曰:人有在青龍中見山陽太守廣陵劉景宗,景宗說中平日數見華佗,其治病手脈之候,其驗若神。

『화타별전佗別傳』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청룡青龍 연간 중에 산양태수山陽太守 광릉廣陵사람 유경종劉景宗을 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유경종이 중평 연간에 날마다 화타를 수시로 보면서, 병을 다스리는 것과 손의 맥手脈을 짚어 증상을 살핌이 귀신 같았음을 증험하였다고 하였다.

* 이 부분은 후한서 화타전과 불일치 되는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을 추가해 봅니다.

『후한서』 「화타전」에서는, "佗別傳曰 「人有見山陽太守廣陵劉景宗,說數見華佗,見其療病平脈之候,其驗若神。" 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위의 글에서는 "청룡 연간에 있었던 일이다."하는 부분이 빠져 있고(청룡 연간에 산양태수 유경종을 만난 사람이 들은 이야기라는 내용), 手脈이 아닌 平脈으로 나와 있으며, 說中平日數見華佗는 說數見華佗로 바뀌어 있습니다. 같은 화타별전인데 이와 같은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이 필사를 하다가 잘못을 하였거나, 첨삭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고요. 수맥은 흔히 아는 바와 같이 한의사가 손목 잡고 맥진을 하는 것을 말하고, 평맥 역시 큰 차이 없는 방법을 택하여 진단합니다. 게다가 화타의 죽음을 네이버에서 나온 것과 같이 208년 즈음으로 잡는다면 중평 연간 어느 날의 이야기가 아예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후한서 맥락대로라면 "여러 번 화타를 만났던 것을 이야기하였는데, 그 병을 치료함과 평맥을 짚어 증상을 살피는 것을 보았는데, 귀신 같았다고 증험하였다."가 되니 삼국지의 내용과 크게 상충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후한서 맥락이 좀 더 읽기 편한 것 같습니다.

코렐솔라

2015.12.28
07:25:35
(*.234.104.49)
주2의 물구나무 후의 5색혈을 관측한 것과 맨 마지막 화타별전에서 근래에 부터는 dragonrz님의 번역입니다. dragonrz님의 경우 번역과 원문을 같이 표기해달라고 하셨기 때문에 dragonrz님의 번역은 한문 밑에 번역이 달려 있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dragonrz/220328669018 http://blog.naver.com/dragonrz/22032860656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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