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로管輅는 자가 공명(公明)이고, 평원(平原)사람이다. 용모는 조잡하고 추하며, 당당한 위풍도 없었으며, 술을 좋아하고 음식을 먹으면서 농담을 하여 어떤 사람이든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좋아했지만 존경하지는 않았다.
 
관로별전(輅別傳)에서 이르길: 관로는 8,9세 때, 별보기를 좋아하여 옆에 사람만 있으면 그 이름을 물었으며 밤마다 잠을 자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은 관로의 그런 행동을 항상 금지시켰지만, 관로는 중지할 수 없었다. 관로는 스스로 

"나는 나이는 비록 적지만 천문(天文)을 보는 것이 좋다"

고 중얼거렸다. 또 항상

"집안에 있는 닭과 들에 있는 고니도 때를 아는데, 하물며 인간이 때를 알지 못하겠는가?"

라고 했다. 이웃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진흙 속에서 놀 때도, 땅바닥에 천문이나 일월성신을 그렸다.

每答言說事,語皆不常,宿學耆人不能折之,皆知其當有大異之才。及成人,果明周易,仰觀、風角、占、相之道,無不精微。體性寬大,多所含受;憎己不讎,愛己 不褒,每欲以德報怨。  

매번 대답하고 일을 말할 때에 말이 심상치 않아 학식 있는 학자와 노인들도 꺾지 못하니 모두들 그가 크게 기이한 재주를 지녔다는 것을 알았다. 성인이 된 후에 과연 주역과 앙관, 풍각, 점술, 상술등의 도리에 밝아 정미하지 않음이 없었다. 천성이 관후하고 마음이 넓어 포용력이 있었기에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복수하지 않았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추켜세우지 않아 항상 덕으로 원한을 갚고자 하였다.  

常謂:「忠孝信義,人之根本,不可不厚;廉介細直,士之浮飾,不足為務也。」自言:「知我者稀,則我貴矣,安能斷江、漢之流,為激石之清?樂與季主論道,不欲與漁父同舟,此吾志也。」其事父母孝,篤兄弟,順愛士友,皆仁和發中,終無所闕。臧否之士,晚亦服焉。  

항상 말하길 : 「충효와 신의는 사람의 근본이므로 두텁지 않으면 않되고 청렴하고 올곧은 것은 선비의 수식하는 바이니 족히 힘쓸필요가 없다.」 스스로 말하길 :「나를 아는 사람이 드무니 나의 값어치가 귀하다고 한들 어찌 강한의 흐름을 끊어 (강 속에 있는) 돌을 깨끗하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계주와 즐겁게 도에 관해 논할 수는 있어도 어부와 더불어 같은 배를 타고 싶지 않은것이 나의 뜻이라네.」 그는 부모를 효성있게 섬기고 형제 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선비 벗들과 거스르지 않고 친애하여 모두 인자하고 평온하게 대하되 중도에 맞아 끝내 흠이 없었다. 인물을 논평하는 선비들도 끝내 (관로의 사람됨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父為琅邪即丘長,時年十 五,來至官舍讀書。始讀詩、論語及易本,便開淵布筆,辭義斐然。于時黌上有遠方及國內諸生四百餘人,皆服其才也。瑯邪太守單子春雅有材度,聞輅一黌之雋, 欲得見,輅父即遣輅造之。  

(관로의) 아버지가 낭야 즉구의 장리(長吏)가 되었는데 관로는 15세의 나이로 관사에 와서 책을 읽었다. 처음에 시경과 논어, 주역을 읽은 후에 곧바로 필묵을 가져다가 문장을 썼는데 글의 뜻이 훌륭했다. 당시 학교에 먼 지역과 국내의 학생들이 400여명 있었는데 모두 그의 재주를 탄복하였다. 낭야태수 단자춘單子春은 고아하고 재주와 도량이 있는 사람으로 관로가 학교에서 준재라는 소식을 듣고는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관로의 아버지는 막바로 관로를 보내 만나보도록 하였다.  

大會賓客百餘人,坐上有能言之士,輅問子春:「府君名士,加有雄貴之姿,輅既年少,膽未堅剛,若欲相觀,懼失精神,請先飲三升清 酒,然後言之。」子春大喜,便酌三升清酒,獨使飲之。酒盡之後,問子春:「今欲與輅為對者,若府君四坐之士邪?」子春曰:「吾欲自與卿旗鼓相當。」輅言: 「始讀詩、論、易本,學問微淺,未能上引聖人之道,陳秦、漢之事,但欲論金木水火土鬼神之情耳。」  

(단자춘은) 크게 빈객 100여명을 모았는데 좌중에는 논변에 뛰어난 선비도 있었다. 관로가 단자춘에게 묻길 :「부군께서는 명사이실뿐만 아니라 웅장하고 고귀한 풍취가 있으십니다. 저 관로는 나이가 어리고 담이 견강하지 못하니 만약 서로 만난다면 두려워 정신을 잃을 것입니다. 청컨대 먼저 3승의 청주를 마시고 나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 단자춘은 크게 기뻐하면서 3승의 청주를 따라 관로 홀로 마시도록 하였다. 술을 다 마시고 난 다음에 단자춘에게 묻길 :「지금 저 관로와 더불어 변론하고자 하는 사람은 부군의 주위에 앉아 있는 선비들입니까?」단자춘이 말하길 :「나는 자신이 경과 더불어 대적하길 바라오.」 관로가 말하길 : 「비로소 시경과 논어, 주역을 읽어 학문이 미천하여 위로는 성인의 도리를 인용할 수 없고 진나라와 한나라의 일을 늘어 놓을 수 없으니 다만 금목수화토의 5행과 귀신의 사정을 논하고자 합니다.」  

子春言;「此最難者,而卿以為易邪?」於是唱大論之端, 遂經於陰陽,文采葩流,枝葉橫生,少引聖籍,多發天然。子春及眾士互共攻劫,論難鋒起,而輅人人答對,言皆有餘。至日向暮,酒食不行。子春語眾人曰:「此 年少盛有才器,聽其言論,正似司馬犬子游獵之賦,何其磊落雄壯,英神以茂,必能明天文地理變化之數,不徒有言也。」於是發聲徐州,號之神童。  

단자춘이 말하길 ;「그건 가장 어려운것인데 경은 쉽다고 여기는 것인가?」이로부터 큰 토론의 단서를 시작하여 마침내 음양의 도리를 설명하게 되었는데 문채가 화려하게 흐르며 가지와 잎이 사방에 생기듯 하였다.(변론의 흐름에 막힘이 없고 여러가지 쟁점에 관하여 다양하게 검토하였다는 뜻인듯.) 성현의 경적에 관한 내용은 적게 인용하고 자연의 도리에서 출발한 내용이 많았다. 단자춘과 여러 선비들이 더불어 공격하여 반박이 많았는데 관로는 한 사람 한 사람씩 대답하되 논리가 넉넉히 남을 정도였다. (격렬한 토론이 오고가는 와중에) 해가 서쪽으로 지고 있었지만 (토론에 몰두해서) 사람들은 음식도 먹지 않았다. 단자춘이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길 :「이 소년은 진실로 재주가 있다. 그 언론을 들어보면 바로 사마상여의 유렵부를 보는것 같으니 어찌나 포부가 드넓고 웅장한지 그 훌륭한 재능을 보면 반드시 천문과 지리의 변화에 밝은 것이지 다만 말에 그칠뿐이 아니다.」 이로부터 관로의 명성이 서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르길 신동神童이라 하였다.

관로의 아버지는 이조(利漕)의 령으로 임명되었을 때, 이조의 백성 곽은 형제 세 사람은 모두 앉은뱅이가 되는 질병에 걸렸으므로 , 관로에게 그 이유를 점쳐 보도록 했다. 관로가 말했다. 

"괘에 의하면 묘 안에는 한 여자의 혼이 있는데, 당신의 백모가 아니면 숙모입니다. 옛날 기황(饑荒)이 들은 시기에 그녀가 갖고 있던 몇 승(升)의 쌀에 눈독을 들인 자가 있었습니다. 그 자는 그녀를 우물 속에 밀어 넣었고, 그녀가 우물 속에서 소리 내어 울자 큰 돌덩어리를 던져 그녀의 머리를 깨뜨렸습니다. 그녀의 외로운 혼이 원통해 하며 하늘에 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곽은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관로별전에서 이르길: 이조(利漕)의 백성 곽은(郭恩)은 자가 의박(義博)으로 재주와 학문이 있었다. 善周易、春秋,又能仰觀。輅就義博讀易,數十日中,意便開發,言難踰師。於此分蓍下卦,用思精妙,占黌上諸生疾病死 亡貧富喪衰,初無差錯,莫不驚怪,謂之神人也。又從義博學仰觀,三十日中通夜不臥,語義博:「君但相語墟落處所耳,至於推運會,論災異,自當出吾天分。」 學未一年,義博反從輅問易及天文事要。義博每聽輅語,未嘗不推几慷慨。自言「登聞君至論之時,忘我篤疾,明闇之不相逮,何其遠也」!義博設主人,獨請輅, 具告辛苦,自說:「兄弟三人俱得躄疾,不知何故?試相為作卦,知其所由。若有咎殃者,天道赦人,當為吾祈福於神明,勿有所愛。兄弟俱行,此為更生。」輅便 作卦,思之未詳。會日夕,因留宿,至中夜,語義博曰:「吾以此得之。」既言其事,義博悲涕沾衣,曰:「皇漢之末,實有斯事。君不名主,諱也。我不得言,禮 也。兄弟躄來三十餘載,腳如棘子,不可復治,但願不及子孫耳。」輅言火形不絕,水形無餘,不及後也。

광평(廣平)의 유봉림(劉奉林)의 아내는 병세가 위독하였으므로 미리 관(棺)의 재료를 사 두었다. 당시는 정월이었으므로 관로에게 점을 보도록 했다. 관로가 말했다. 

"8월 신묘일 태양이 하늘 가운데 있을 때 수명이 끝납니다." 

유봉림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의 아내의 병은 점점 호전되었다가, 가을이 되어 재발하였다. 하나같이 관로가 말한 것과 같았다.

관로별전에서 이르길: 포자춘(鮑子春)은 열인현의 현령으로 있었다. 그는 총명하고 사려가 깊었으며 재지를 갖고 있고 도리에 통한 인물이다. 포자춘은 관로와 만나 

"듣건대 그대는 유봉림을 위해 그 아내의 죽을 날을 점쳐 맞추었다는데, 어떻게 정묘한 일을 할 수 있소!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이유를 논해 봅시다."

라 고 했다. 관로는 역의 효나 상이 의미하고 있는 것을 논하고 만상이 돌고 돌아 변화하는 이치를 설명하였는데, 설명은 마치 둥근 것을 묘사하여 규정된 사각을 묘사하는 것 같았으며 조금도 부합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포자춘은 자신의 일을 돌아보며 

"나는 어려서부터 역을 좋아하였고 도 초석을 만들기를 좋아하였소. 그러나 이것은 흑과 백을 구분하여 보려는 것이고 농아가 소리의 맑음과 탁함을 들으려고 하는 것으로 수고롭게 노력하였지만 성과를 얻지 못한 것이오. 당신의 말을 들은 후에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면 정말로 혼란스러울 뿐이오."

라고 했다. 

관로가 평안태수 왕기(王基)를 가서 보았는데, 왕기가 그에게 괘를 뽑아 보도록 했다. 관로가 말했다. 

"미천한 부인이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출생한 후 부엌으로 달려 들어가 죽게 됩니다. 또 침상 위에서 붓을 입에 문 큰 뱀 한 마리가 있는 것을, 집안사람들이 모두 보고 잠시 떠날 것입니다. 또 까마귀가 집안으로 들어와 제비와 함께 다투어 제비는 죽고 까마귀는 날아갑니다. 이런 세 가지의 괴이함이 있습니다." 

왕기는 매우 놀랐으며 그것의 길흉을 물었다. 관로가 말했다. 

"객사가 오래되었으므로 도깨비가 괴이한 일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자 곧 달리는 것은 스스로 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송무기(불의 정수)라는 요괴가 부엌으로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큰 뱀이 붓을 입에 물고 있는 것은 나이 든 서기가 괴이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까마귀와 제비가 싸우는 것은 늙은 위병이 괴이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괘중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만, 흉상(凶象)은 보이지 않으므로 요상한 징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후에 결국 우환이 없었다.

관로별전에서 이르길: 왕기는 관로와 함께 며칠간 <역>에 관한 논쟁을 벌이고 매우 즐거워했다. 그는 관로에게 

"모두들 당신이 점을 잘 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함께 논의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현재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반드시 그 이름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라고 했다 관로는 왕기를 위해서 쾌를 세우고, 재앙이 없음을 알려주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옛날 고종(高宗)의 솥에서는 꿩이 우는 일이 없었고, 은나라 궁전의 앞 정원에서는 나무가 자라지 않았는데, 들새가 정의 귀에서 울자, 무정이 고종이라고 존칭하도록 하였으며, 뽕나무와 곡식이 궁정에서 자라나자 태무(太戊)는 은 왕조를 흥하게 했습니다. 어찌 신변에서 일어난 이 세 가지 일이 길조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원컨대 당신은 심신을 편안히 하고 덕을 기르고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여 하늘이 준 본연의 성품을 굽어지게 하지 마십시오."


당시 신도(信都)의 현령 집에는 여자들이 번갈아 가며 놀라 두려워하는 병을 앓았으므로 관로에게 점을 보도록 했는데, 관로가 말했다. 

"당신의 북쪽에 있는 지의 서쪽에는 죽은 남자가 두 명 있는데, 한 남자는 항을 쥐고 있고 한 남자는 활과 화살을 쥐고 있으며, 머리는 벽 안쪽에 있고 다리는 벽 밖에 있습니다. 창을 갖고 있는 자가 사람들의 머리를 찌르고 있기 때문에 머리에 통증이 심해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활과 화살을 갖고 있는 자는 사람들의 배를 쏘기 때문에 가슴속에 통증이 생겨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낮에는 떠돌아다니다가 밤이 되면 와서 사람들을 해롭게 하기 때문에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골을 발굴하여 옮기자, 집안 식구들의 병이 모두 나았다.

관로별전에서 이르길: 王基即遣信都令遷掘其室中,入地八尺,果得二棺,一棺中有矛,一棺中有角弓及箭,箭久遠,木皆消爛,但有鐵及角完耳。及徙骸骨,去城一十里埋之, 無復疾病。基曰:


「吾少好讀易,玩之以久,不謂神明之數,其妙如此。」


便從輅學易,推論天文。輅每開變化之象,演吉凶之兆,未嘗不纖微委曲,盡其精神。基曰:


「始聞君言,如何可得,終以皆亂,此自天授,非人力也。」


於是藏周易,絕思慮,不復學卜筮之事。


관로와 같은 고향 사람인 내태원(乃太原)이 물었다.


"그대는 지난날 왕기를 위해 요괴를 논하면서 '오래된 서좌(書佐)가 뱀이 되고 오래된 부하(鈴下)가 까마귀가 된다'고 하셨지요. 이들은 본래 모두가 사람인데 어찌 그런 미천한 동물로 변한다는 것입니까? 효상(爻象)에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까. 아니면 그대가 추측한 것입니가?"


관로가 말하길:


"진실로 본성과 천도가 그렇지 않다면, 무슨 이유로 효상을 위배하면서까지 내 마음속의 임의대로 하겠습니까? 무릇 만물의 변화는, 정해진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큰 것이 혹 작은 것으로도 변하고, 작은 것이 혹 큰 것으로도 변하는 것일 뿐, 그 속에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의 변화는 일정한 틀의 도가 있습니다. 이 까닭으로 하(夏)나라 때 곤(鯀)은 천자(天子)의 아버지였고 한나라 조왕(趙王) 여의(如意)는 한고조(漢祖)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곤은 누런 곰이 되었고, 여의는 푸른 개로 변한 것이니, 이처럼 지존지위(至尊之位)라 할지라도, 검훼(黔喙) 같은 무리로 변하는데, 하물며 뱀이란 것은 진(辰) 사(巳) 자리와 상배하고, 까마귀는 태양(太陽)에 사는 정(精)으로, 이는 등흑(騰黑)의 명확한 상징이요, 밝은 태양의 유경(流景)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좌나 영하(鈴下)가 각각 미천한 신분으로서 그들이 변하여 까마귀가 된다는 것이 역시 본래 신분에 비해 오히려 과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청하(淸河)의 왕경(王經)은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관로가 그와 만났다. 왕경이 말했다. 

"최근에 한 괴이한 일이 있었는데, 매우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번거롭겠지만 괘를 뽑아 주십시오." 괘를 뽑고, 관로가 말했다. 

"효괘(爻卦)는 길하므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당신이 밤에 집의 문 앞에 있을 때, 연작(燕雀)같은 빛이 흘러 가슴속에 떨어져 은은한 소리를c 남겼습니다. 내심 불안하여 옷을 벗고 방황하다 부인을 불러서 남은 빛을 찾도록 했군요." 

왕경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당신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관로가 말했다. 

"길합니다. 관직이 오를 징조입니다. 이런 징조는 곧 실현될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왕경은 강하(江夏)태수로 임명되었다.

관로별전에서 이르길 왕경은 관로에게 점을 치도록 했지만 의심스러워하는 구석이 있었다. 관로는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 주에서는 사물에 달통한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십니까! 옛날 사마계주는 '무릇 점이라는 것은 반드시 천자를 본받고, 네 계절을 상하며, 인의에 따르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복희가 팔괘를 만들고, 주 문왕이 이를 38효로 만들어 천하는 다스려지게 되었습니다. 병든 자도 그것에 따라 쾌차하고, 죽은 자 또한 그것에 따라 소생하며, 재난 또한 그것에 따라 면하게 되고 사업도 그것에 따라 성공하는 것입니다. 딸을 시집보내고 아내를 맞이하는 경우에도 이것에 따라 자손이 번성하는 것입니다. 어찌 수천 금이 문제이겠습니까? 이러한 점으로 추측해 보면, 점은 급한 일입니다. 진실로 도를 분명하게 한다면, 성인과 현인은 자신의 의견을 왜곡시켜 사양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나는 소인이니 감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왕경은 관로에게 사과 했다. 彥緯斂手謝輅:「前言戲之耳。」於是輅為作卦,其言皆驗。經每論輅,以為得龍雲之精,能養和通幽者,非徒合會之才也。

관로는 또 곽은의 집에 도착하였는데, 비둘기가 날아 대들보 위에 있으면서 매우 구슬프게 울었다. 관로가 말했다. 

"한 노인이 동쪽에서 올 것입니다. 그는 돼지 한 마리와 술 한 동이를 갖고 있습니다. 주인은 비록 기뻐하지만, 작은 사고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 날, 과연 손님이 왔는데 점과 같았다. 곽은은 손님으로 하여금 술을 절제하고 고기를 삼가며, 불을 조심하도록 하였다. 활을 쏘아 닭을 잡을 때, 화살이 나무 사이에 있던 몇 살 된 여자 아이 손을 맞추어 피가 흘러 놀라고 두려워했다.

관로별전에서 이르길: 곽은은 관로에게 새의 울음소리에 따라 점치는 것을 배웠다. 관로가 말하기를 

"그대는 이러한 이치를 좋아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적고, 또 음률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가르치는 일은 곤란할 것입니다." 

라고 했다. 관로는 그를 위해 여덟 가지 방향의 바람의 변화와 다섯 가지 음계가 갖고 있는 의미를 설명하고, 여율(음의 음조)에 따른 새들의 울음소리의 기본적인 높이를 정하고, 여섯 가지 갑을 시간이나 일수를 헤아리는 기본으로 할 것을 서술하고 반복하여 설명을 했다. 곽은은 조용히 깊이 생각하며 며칠을 보냈지만 끝내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재능이 특출나지 못한 사람은 이러한 일을 쫓아 구하는 것이 어렵다"

라고 말하고 중단했다.

관로가 안덕(安德)의 현령 유장인(劉長仁)의 집을 방문했을 때, 까치가 지붕 위로 내려와 울었는데 그 소리가 매우 급했다. 관로가 말했다. 

"까치는 동북쪽에 있는 부인이 어제 남편을 죽이고, 그 죄를 서쪽에 있는 집의 남자에게 연루시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빠지기 전에 이 일을 알리는 자가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 시각이 되자 과연 동북쪽으로부터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이 고발하였는데, 이웃에 사는 부인이 자기 남편을 직접 죽이고 서쪽 집에 있는 사람이 남편과 원수지간이었으므로 자기 남편을 죽였다고 한다고 했다.

輅別傳曰:勃海劉長仁有辯才,初雖聞輅能曉鳥鳴,後每見難輅曰:「夫生民之音曰言,鳥獸之聲曰鳴,故言者則有知之貴靈,鳴者則無知之賤名,何由以鳥鳴為語, 亂神明之所異也?孔子曰『吾不與鳥獸同群』,明其賤也。」輅答曰:「夫天雖有大象而不能言,故運星精於上,流神明於下,驗風雲以表異,役鳥獸以通靈。表異 者必有浮沈之候,通靈者必有宮商之應,是以宋襄失德,六鶂並退,伯姬將焚,鳥唱其災,四國未火,融風已發,赤鳥夾日,殃在荊楚。此乃上天之所使,自然之明 符。考之律呂則音聲有本,求之人事則吉凶不失。昔在秦祖,以功受封,葛盧聽音,著在春秋,斯皆典謨之實,非聖賢之虛名也。商之將興,由一燕卵也。文王受 命,丹鳥銜書,此乃聖人之靈祥,周室之休祚,何賤之有乎?夫鳥鳴之聽,精在鶉火,妙在八神,自非斯倫,猶子路之於死生也。」長仁言:「君辭雖茂,華而不 實,未敢之信。」須臾有鳴鵲之驗,長仁乃服。

관로가 열인현(列人縣)의 전농(典農)으로 있던 왕홍직(王弘直)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높이가 3척 쯤 되는 회오리바람이 신(申:西南西) 방향으로부터 불어와 정원 안에서 회전하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일어나더니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왕홍직이 관로에게 무슨 연고인지 묻자, 관로가 대답했다. 

"동쪽에서 말을 관리하는 관리가 옵니다. 아마도 부친께서 아들 때문에 곡(哭)을 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다음날, 교동(膠東)의 관리가 도착하였고, 왕홍직의 아들이 과연 죽었다. 왕홍직이 그 까닭을 묻자, 관로가 대답했다. 

"그 날은 을묘일로서, 장남의 징후입니다. 나뭇잎이 신(申:가을 초의 계절)에 떨어지고, 북두칠성의 자루가 신(申)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신(申)이 인(寅)을 파괴하는 것으로 상사(喪事)의 징후입니다. 태양이 오(午:남쪽) 방향을 하고 있을 때 바람이 부는 것은 말의 징후입니다. 리(離:남쪽)는 문채를 상징하며, 관리의 징후입니다. 신미(申未)는 호(虎:서쪽)로 있고, 호(虎)는 대인(大人)으로 있으니, 부친의 징후입니다." 

관로별전에서 이르길: 관로는 또 말했다. 

"바람이라는 것은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역]의 효는 상에 나타난 사물에 반응합니다. 시간은 신비한 존재가 달리는 것이고 상은 신비한 것이 형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간을 사물의 근본인 법칙과 합치된다고 생각하면, 그 의미를 알기는 곤란할 것입니다." 

양홍직은 학문을 쌓아 도술이 있었지만, 관로의 말의 미묘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관로에게 물었다.

 “ 바람이 변화하여 바뀌어도 똑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관로가 대답했다. 

“만일 하늘의 별이 그 별자리를 떠나고 신들이 그 직분을 어지럽게 할 때, 팔풍(팔방의 바람)이 비껴 일어나고, 화난 기운은 번개를 달리게 하며, 산은 붕괴되고 돌이 날리며, 수목은 부러지고 뽑히며, 만 리 높이까지 먼지가 날려 우러러 보아도 하늘이 보이지 않고, 새와 짐승은 동굴 속으로 숨고, 백성들은 놀라 재신 같은 자들을 높은 누대에 올라가게 하여 바람의 기운을 관찰하여 재난의 종류를 결정하고, 그 일시를 판단하도록 하지만 그런 연후에 신들의 유원한 생각과 영이 있는 바람을 두려워할 줄 알게 됩니다."

또 수까치가 날아와 양홍직의 집 안에 있는 령(鈴)을 매단 기둥 위에 올라가자 양홍직은 매우 불안하여 관로에게 점괘를 뽑아 보도록 했다. 관로가 말했다. 

"5월에 반드시 승진할 것입니다." 

이때가 3월이었다. 5월이 되자, 양홍직은 과연 발해태수로 임명되었다. 

관도(館陶)의 현령으로 있던 제갈원(諸葛原)이 신흥(新興)태수로 승진하였다. 관로는 먼저 가서 그를 위해 환송회를 했는데, 그 자리에는 빈객들도 함께 모였다. 제갈원이 직접 일어서서 제비 알, 벌집, 거미를 그릇 속에 넣고 관로로 하여금 맞추어 보도록 했다.

그릇 속에 물건을 넣고 그 내용물을 맞추는 놀이에서는 사자구의 운문을 사용하여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괘를 뽑은 후에 관로가 말했다. 

" 첫번째 물건은 생기를 품고 변화를 기다리며 집에 의지하고 있으며, 수컷과 암컷의 형체가 있고 날개가 넓게 펴지니, 이것은 제비 알입니다. 두 번째 물건은 집에 걸려 있고 문이 매우 많으며, 정화만을 감추고 독액을 기르며, 가을이 되면 변화하니, 이것은 벌집입니다. 세 번째 물건은 발이 많고 실을 토해 내어 그물을 만들며, 그물로 음식물을 찾아 구하고, 날이 저물 때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은 거미입니다."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라며 기뻐했다.

관로별전에서 이르길: 제갈원諸葛原은 자가 경춘(景春)이며, 학문을 한 사람이다. 그는 점괘 보는 것을 좋아하여 자주 관로와 함께 사복을 했는데, 관로를 이길 수는 없었다. 

경춘이 영전하여 다른 지방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관로가 그를 송별하였는데, 논의에 탁월한 자들이 많이 모였다. 사람들은 관로가 점을 보고 천문에 상세하다는 것을 이야기로 전해 들었지만, 그가 특이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선 관로에게 성인이 경전을 지은 깊은 의미에 대해서 논하고, 아울러 오제나 삼왕이 천명을 받은 것에 대해서 서술했다. 관로는 경춘의 의도를 알고 있었으므로, 싸움터를 확장하여 공고하지 못함을 나타내고, ‘고허’의 장소에 숨어서 공격 해오기를 기다렸다.

경춘이 패하여 달아나자. 그의 군사 또한 해를 입고 스스로 

“내가 그대의 깃발을 보니 성도 연못도 이미 무너졌군요.”

라고 했다. 그러한 정세를 보고 진군하여 북을 치고, 피리를 불고, 높은 사다리를 들었으며, 활과 화살을 쏘아 댔고, 장군의 아기와 군기가 포위했다. 그런 연후에 관로는 성에 올라 위세와 무용을 나타내고 문을 열어 적을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여 싸웠다. 위로 오제의 일을 논하면, 장강이나 한수와 같이 서술하고, 아래로 삼왕을 논의하면, 창공을 높이 나는 것처럼 했다. 그 화려함을 봄꽃처럼 피어나고 그 예리한 공격은 가을바람이 나뭇잎을 날리는 것 같았다. 청중들은 그의 말에 미혹되어 그 의미를 알 수 없었고, 논의하는 자들은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자신들의 패배를 시인했다. 비록 백기가 전승하여 조나라의 사졸 수십만 명을 생매장하고, 항우가 한나라 병사들을 저수로 몰아 저수를 막히게 했을지는 몰라도 관로의 승리를 넘을 수는 없다. 于時客皆欲面縛銜璧,求束手於軍鼓之下。輅猶總干山立,未便許之。至明日,離別之際,然後有腹心始終。一時海內俊士,八九人矣。蔡元才在朋友中最有清才,在 眾人中言:「本聞卿作狗,何意為龍?」輅言:「潛陽未變,非卿所知,焉有狗耳,得聞龍聲乎!」景春言:「今當遠別,後會何期?且復共一射覆。」輅占既皆 中。景春大笑,「卿為我論此卦意,紓我心懷」。輅為開爻散理,分賦形象,言徵辭合,妙不可述。景春及眾客莫不言聽後論之美,勝於射覆之樂。景春與輅別,戒 以二事,言;「卿性樂酒,量雖溫克,然不可保,寧當節之。卿有水鏡之才,所見者妙,仰觀雖神,禍如膏火,不可不慎。持卿叡才,遊於雲漢之聞,不憂不富貴 也。」輅言:「酒不可極,才不可盡,吾欲持酒以禮,持才以愚,何患之有也?」

관로의 동족 형 관효국은 척구(斥丘)에서 살고 있었다. 관로는 가서 그를 따라 두 명의 빈객과 만났다. 빈객들이 떠난 후, 관로가 관효국에게 말했다. 

"이 두 사람은 이마와 입과 귀 사이에 흉한 기(氣)가 있습니다. 함께 기괴한 변고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의 영혼은 돌아갈 곳이 없어 영혼이 바다에 떠 흐르고, 뼈만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함께 죽을 것입니다." 

며칠이 지나 두 사람은 술을 마셔 취하여 한밤중에 수레를 함께 탔는데, 소가 놀라 길을 내려와 장하 속으로 들어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輅別傳曰:輅又曰:「厚味腊毒,天精幽夕,坎為棺槨,兌為喪車。」

당시 관로의 이웃 마을에는 출입문을 닫지 않아도 서로 간에 훔치는 것이 없었다. 청하태수 화표(華表)가 관로를 불러 문학의 속관으로 삼았다. 안평(安平)의 조공요(趙孔曜)는 기주자사 배휘(裵徽)에게 관로를 추천하며 말했다.

"관로는 천성이 관대하여 세상과 원수를 맺지 않았고, 천문을 우러러보면 감공(甘公), 석신(石申)의 정묘함에 필적할 만하고, 고개 숙여 《주역》을 보면 사마계주(司馬季主)와 생각이 같습니다.

감공과 석신은 전국시대 천문점의 명수로 유명했다. 감공이 제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석신은 위나라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지은 것으로 현존하는 것은 [성경星經]이 있다.

지금 당신이 은인지사에 마음을 두고, 민간의 현인들에게 주의한다면, 관로는 음(陰)이 양(陽)을 따라 순종하는 것처럼 당신을 따라 사람을 위한 의표(儀表)의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배휘는 그래서 관로를 문학종사(文學從事)로 임명하였으며, 불러서 만나보고는 관로를 매우 칭찬했다. 관로는 거록으로 옮기고, 치중별가로 승진했다. 

당초 주의 부름에 응하여 동생 관계유(管季儒)와 함께 수레를 타고 무성(武城) 남쪽에 이르렀을 때, 관로는 스스로 자신의 길흉을 점치고 관계유에게 말했다. 

"고성 안에서 너구리 세 마리만 보면, 나는 출세할 것이다." 

장하의 서쪽 고성 구석까지 나아갔을 때, 마침 너구리 세 마리가 함께 성 옆에 있는 것을 보고 형제는 함께 기뻐했다. 

정시 9년(248), 그는 수재로 천거되었다.

輅別傳曰:輅為華清河所召,為北黌文學,一時士友無不歎慕。安平趙孔曜,明敏有思識,與輅有管、鮑之分,故從發干來,就郡黌上與輅相見,言:「卿腹中汪汪, 故時死人半,今生人無雙,當去俗騰飛,翱翔昊蒼,云何在此?聞卿消息,使吾食不甘味也。冀州裴使君才理清明,能釋玄虛,每論易及老、莊之道,未嘗不注精於 嚴、瞿之徒也。又眷吾意重,能相明信者。今當故往,為卿陳感虎開石之誠。」輅言:「吾非四淵之龍,安能使白日晝陰?卿若能動東風,興朝雲,吾志所不讓 也。」於是遂至冀州見裴使君。使君言:「君顏色何以消減故邪?」孔曜言:「體中無藥石之疾,然見清河郡內有一騏驥,拘縶後廄歷年,去王良、伯樂百八十里, 不得騁天骨,起風塵,以此憔悴耳。」使君言:「騏驥今何在也?」孔曜言:「平原管輅字公明,年三十六,雅性寬大,與世無忌,可謂士雄。仰觀天文則能同妙甘 公、石申,俯覽周易則能思齊季主,游步道術,開神無窮,可謂士英。抱荊山之璞,懷夜光之寶,而為清河郡所錄北黌文學,可為痛心疾首也。使君方欲流精九皋, 垂神幽藪,欲令明主不獨治,逸才不久滯,高風遐被,莫不草靡,宜使輅特蒙陰和之應,得及羽儀之時,必能翼宣隆化,揚聲九圍也。」裴使君聞言,則慷慨曰: 「何乃爾邪!雖在大州,未見異才可用釋人鬱悶者,思還京師,得共論道耳,況草間自有清妙之才乎?如此便相為取之,莫使騏驥更為凡馬,荊山反成凡石。」即檄 召輅為文學從事。一相見,清論終日,不覺罷倦。天時大熱,移床在庭前樹下,乃至雞向晨,然後出。再相見,便轉為鉅鹿從事。三見,轉治中。四見,轉為別駕。 至十月,舉為秀才。輅辭裴使君,使君言:「(丁)〔何〕、鄧二尚書,有經國才略,於物理〔無〕不精也。何尚書神明精微,言皆巧妙,巧妙之志,殆破秋毫,君 當慎之!自言不解易九事,必當以相問。比至洛,宜善精其理也。」輅言:「何若巧妙,以攻難之才,游形之表,未入於神。夫入神者,當步天元,推陰陽,探玄 虛,極幽明,然後覽道無窮,未暇細言。若欲差次老、莊而參爻、象,愛微辯而興浮藻,可謂射侯之巧,非能破秋毫之妙也。若九事皆至義者,不足勞思也。若陰陽 者,精之以久。輅去之後,歲朝當有時刑大風,風必摧破樹木。若發於乾者,必有天威,不足共清譚者。」

12월 28일, 이부상서 하안이 관로를 초대했는데, 등양은 하안의 집에 있었다. 하안이 관로에게 말했다. 

"괘를 뽑는 당신의 실력이 신묘하다고 들었습니다. 한번 괘를 뽑아서 나의 지위가 삼공에 이를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또 물었다. 

"나는 연이어 파리 수십 마리가 콧등 위로 왔는데 쫓아도 뗄 수 없는 꿈을 꾸었소. 이것은 무슨 까닭이오?" 

관로가 말했다. 

"무릇 비효는 천하에서 천한 새로, 그것이 숲속에 있다가 오디를 먹으면 은덕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시경]-[노송] ‘반수’에 ‘훨훨 날고 있는 저 비효는 반수 숲속에 모인다. 내가 오디를 먹자. 나로 하여금 그리워하는 좋은 소리 내게 한다.’ 라는 시구가 있다. 

 더구나 저 관로의 마음은 초목이 아닌데 감히 충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팔원(八元)?팔개(八凱)라고 불렀던 신하가 중화(重華:순임금)를 보좌하여 은혜를 널리 시행하고 인자함과 겸허함을 폈습니다. 주공이 성왕(成王)을 후견하여 정치를 행했을 때 한밤중에 좋은 시책이 머리에 떠오르면 앉은 채로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기 때문에 천하에 빛날 수 있었으며, 각 국이 모두 안녕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른 도를 밟아 행한 아름다운 응답이지 점으로 나타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의 위치는 산처럼 무겁고, 위세는 번개 같지만, 당신의 은덕을 생각하는 자가 적고, 당신의 위세를 두려워하는 자가 많습니다. 이것은 아마 걱정하여 복이 많기를 원하는 어진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또 코는 간괘(艮卦)에 대응하는 것으로, 이것은 천중(天中)의 산(山)이며, 높지만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위가 고귀합니다. 

신송지가 상고하길: 관상서에 의하면, 코가 있는 곳을 천중이라고 한다. 코의 형상이 산과 유사하여 생긴 이름으로 천중의 산이라고 한다.

지금 파리의 악취가 콧등에 모였습니다. 지위 높은 사람이 쉽게 타락하고, 가볍게 호방한 자가 쉽게 멸망하는 것으로, 차면 해롭고 극성하면 쇠하는 진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산이 땅 속에 있으면 겸(謙)이라 하고, 우뢰가 하늘 위에 있으면 장(壯)이라고 합니다. 겸이라는 것은 자신의 많은 부분을 덜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이고, 장이라는 것은 예의에 부합되지 않으면 실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찍이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자기를 강성하게 하지 못하고, 그릇된 행위를 하면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원컨대 당신은 위로는 문왕(文王)이 《역》의 육효(六爻)를 연역시킨 정신을 생각하고, 아래로는 니부(尼父:공자)가 만든 《역》의 단전(彖傳)?상전(象傳)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런 연후에 삼공(三公)의 일이 결단 지어질 수 있고, 파리를 쫓을 수 있습니다." 

등양이 말했다. 

"이것은 나이든 선생이 항상 하는 말이오." 

관로가 대답하여 말했다. 

"나이든 선생이란 현재 살아 있지 않은 것인데, 항상 하는 말이란 무엇이오?" 

하안이 말했다. 

"해가 바뀌면 다시 봅시다."

輅別傳曰:輅為何晏所請,果共論易九事,九事皆明。晏曰:「君論陰陽,此世無雙。」時鄧颺與晏共坐,颺言:「君見謂善易,而語初不及易中辭義,何故也?」輅 尋聲答之曰:「夫善易者不論易也。」晏含笑而讚之「可謂要言不煩也」。因請輅為卦。輅既稱引鑒戒,晏謝之曰:「知幾其神乎,古人以為難;交疏而吐其誠,今 人以為難。今君一面而盡二難之道,可謂明德惟馨。詩不云乎,『中心藏之,何日忘之』!」

관로는 읍사(邑舍:읍의 숙소)로 돌아와, 이런 말을 숙부에게 모두 고했다. 숙부는 관로의 말이 투철하고 지나쳤음을 꾸짖었다. 관로가 말했다. 

"죽은 사람과 말하는 것이 뭐가 두렵습니까?" 

숙부는 매우 화를 내며 관로가 미쳤다고 말했다. 새해 아침, 서북쪽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와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다. 10여 일 후, 하안과 등양이 모두 살해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연후에야 숙부는 관로에게 감복했다.

輅別傳曰:舅夏大夫問輅:「前見何、鄧之日,為已有凶氣未也?」輅言:「與禍人共會,然後知神明交錯;與吉人相近,又知聖賢求精之妙。夫鄧之行步,則筋不束 骨,脈不制肉,起立傾倚,若無手足,謂之鬼躁。何之視候,則魂不守宅,血不華色,精爽煙浮,容若槁木,謂之鬼幽。故鬼躁者為風所收,鬼幽者為火所燒,自然 之符,不可以蔽也。」輅後因得休,裴使君問:「何平叔一代才名,其實何如?」輅曰:「其才若盆盎之水,所見者清,所不見者濁。神在廣博,志不務學,弗能成 才。欲以盆盎之水,求一山之形,形不可得,則智由此惑。故說老、莊則巧而多華,說易生義則美而多偽;華則道浮,偽則神虛;得上才則淺而流絕,得中才則游精 而獨出,輅以為少功之才也。」裴使君曰:「誠如來論。吾數與平叔共說老、莊及易,常覺其辭妙於理,不能折之。又時人吸習,皆歸服之焉,益令不了。相見得清 言,然後灼灼耳。」

당초, 관로는 위군(魏郡)태수 종육(鍾毓)을 방문하여 함께 《역》의 내포된 뜻을 논의하였다. 관로가 말했다. 

"점을 쳐 보면, 당신의 생사일(生死日)을 알 수 있습니다." 

종육은 관로에게 그의 출생 월일을 뽑아 보도록 했는데 그의 말처럼 차이가 없었다. 종육은 경악하며 말했다. 

"당신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요. 죽음은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지, 당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시는 점을 보지 않았다. 종육이 관로에게 물었다. 

"천하가 태평해질 수 있겠소?" 관로가 대답했다. 

"《주역》에 근거하면 지금 사구(四九)는 하늘 위로 비상하는 것으로, 대인의 출현을 이롭게 하고, 신무(神武)의 사업을 세우며, 왕도(王道)가 빛나는데 어찌 태평스럽지 못함을 걱정하겠습니까?" 종육은 관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조상 등이 살해되자 비로소 관로의 말을 깨달았다.

輅別傳云:魏郡太守鍾毓,清逸有才,難輅易二十餘事,自以為難之至精也。輅尋聲投響,言無留滯,分張爻象,義皆殊妙。毓即謝輅。輅卜知毓生日月,毓愕然曰: 「聖人運神通化,連屬事物,何聰明乃爾!」輅言:「幽明同化,死生一道,悠悠太極,終而復始。文王損命,不以為憂,仲尼曳杖,不以為懼,緒煩蓍筮,宜盡其 意。」毓曰:「生者好事,死者惡事,哀樂之分,吾所不能齊,且以付天,不以付君也。」石苞為鄴典農,與輅相見,問曰:「聞君鄉里翟文耀能隱形,其事可信 乎?」輅言:「此但陰陽蔽匿之數,苟得其數,則四嶽可藏,河海可逃。況以七尺之形,游變化之內,散雲霧以幽身,布金水以滅跡,術足數成,不足為難。」苞 曰:「欲聞其妙,君且善論其數也。」輅言:「夫物不精不為神,數不妙不為術,故精者神之所合,妙者智之所遇,合之幾微,可以性通,難以言論。是故魯班不能 說其手,離朱不能說其目。非言之難,孔子曰『書不盡言』,言之細也,『言不盡意』,意之微也,斯皆神妙之謂也。請舉其大體以驗之。夫白日登天,運景萬里, 無物不照,及其入地,一炭之光,不可得見。三五盈月,清耀燭夜,可以遠望,及其在晝,明不如鏡。今逃日月者必陰陽之數,陰陽之數通於萬類,鳥獸猶化,況於 人乎!夫得數者妙,得神者靈,非徒生者有驗,死亦有徵。是以杜伯乘火氣以流精,彭生託水變以立形。是故生者能出亦能入,死者能顯亦能幽,此物之精氣,化之 游魂,人鬼相感,數使之然也。」苞曰:「目見陰陽之理,不過於君,君何以不隱?」輅曰:「夫陵虛之鳥,愛其清高,不願江、漢之魚;淵沼之魚,樂其濡溼,不 易騰風之鳥:由性異而分不同也。僕自欲正身以明道,直己以親義,見數不以為異,知術不以為奇,夙夜研幾,孳孳溫故,而素隱行怪,未暇斯務也。」

평원(平原)태수 유분은 도장이 찍힌 낭(囊)과 산 꿩 털을 뽑아 그릇 속에 넣고 관로에게 점을 보도록 했다. 관로가 말했다.

"안은 방형이고 밖은 원형이며, 오색 무늬를 이루며 보물을 숨기고, 신요을 준수하여 나간 즉 인장이 있는데, 이것은 인낭(印囊)입니다. 험준하고 높은 산에 전신이 붉은 새가 있고, 깃털은 검정과 황색이며, 새벽을 지나치지 않고 웁니다. 이것은 산꿩의 털입니다." 

유분이 말했다. 

"이 군(郡)의 관사에는 기괴한 변고가 연이어 나타나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데, 이것은 어떤 이유이오?" 관로가 대답했다. 

" 아마 한나라 말기 혼란할 때에 병마(兵馬)가 소란스러웠고, 병사들의 시신에서 흐르는 피가 언덕과 산을 물들였기 때문에 날이 저물면 기괴한 현상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도덕은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하늘이 돕고 있습니다. 당신이 직위를 편안히 하고, 광대하고 아름다운 은총을 발양하시기를 희망합니다."

輅別傳曰:故郡將劉邠字令元,清和有思理,好易而不能精。與輅相見,意甚喜歡,自說注易向訖也。輅言:「今明府欲勞不世之神,經緯大道,誠富美之秋。然輅以 為注易之急,急於水火;水火之難,登時之驗,易之清濁,延于萬代,不可不先定其神而後垂明思也。自旦至今,聽采聖論,未有易之一分,易安可注也!輅不解古 之聖人,何以處乾位於西北,坤位於西南。夫乾坤者天地之象,然天地至大,為神明君父,覆載萬物,生長無首,何以安處二位與六卦同列?乾之象彖曰:『大哉乾 元,萬物資始,乃統天。』夫統者,屬也,尊莫大焉,何由有別位也?」邠依易繫詞,諸為之理以為注,不得其要。輅尋聲下難,事皆窮析。曰:「夫乾坤者,易之 祖宗,變化之根源,今明府論清濁者有疑,疑則無神,恐非注易之符也。」輅於此為論八卦之道及爻象之精,大論開廓,眾化相連。邠所解者,皆以為妙,所不解 者,皆以為神。自說:「欲注易八年,用思勤苦,歷載靡寧,定相得至論,此才不及易,不愛久勞,喜承雅言,如此相為高枕偃息矣。」欲從輅學射覆,輅言:「今 明府以虛神於注易,亦宜絕思於靈蓍。靈蓍者,二儀之明數,陰陽之幽契,施之於道則定天下吉凶,用之於術則收天下豪纖。纖微,未可以為易也。」邠曰:「以為 術者易之近數,欲求其端耳。若如來論,何事於斯?」留輅五日,不遑恤官,但共清譚。邠自言:「數與何平叔論易及老、莊之道,至於精神遐流,與化周旋,清若 金水,鬱若山林,非君侶也。」邠又曰:「此郡官舍,連有變怪,變怪多形,使人怖恐,君似當達此數者,其理何由也。」輅言:「此郡所以名平原者,本有原,山 無木石,與地自然;含陰不能吐雲,含陽不能激風,陰陽雖弱,猶有微神;微神不真,多聚凶奸,以類相求,魍魎成群。或因漢末兵馬擾攘,軍屍流血,汙染丘嶽, 彊魂相感,變化無常,故因昏夕之時,多有怪形也。昔夏禹文明,不怪於黃龍,周武信時,不惑於暴風,今明府道德高妙,神不懼妖,自天祐之,吉無不利,願安百 祿以光休寵也。」邠曰:「聽雅論為近其理,每有變怪,輒聞鼓角聲音,或見弓劍形象。夫以土山之精,伯有之魂,實能合會,干犯明靈也。」邠問輅:「易言剛健 篤實,輝光日新,斯為同不也?」輅曰:「不同之名,朝旦為輝,日中為光。」晉諸公贊曰:邠本名炎,犯晉太子諱,改為邠。位至太子僕。子粹,字純嘏,侍中。 次宏,字終嘏,太常。次漢,字仲嘏,光祿大夫。漢清沖有貴識,名亞樂廣。宏子咸,徐州刺吏。次耽,晉陵內史。耽子恢,字真長,尹丹楊,為中興名士也。

청하(淸河)의 현령 서계룡(徐季龍)은 사람을 시켜 사냥을 하도록 하고, 관로에게 그가 잡을 사냥물을 점쳐 보도록 했다. 관로가 말했다. 

"당연히 작은 짐승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먹을 수 있는 짐승이 아닙니다. 비록 손톱과 이빨이 있지만 작고 강하지 못하고, 비록 무늬는 있지만 조밀하여 분명하지 못하므로 호랑이도 아니고 까치도 아니며, 그것의 이름은 이리라고 합니다." 

사냥 갔던 사람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과연 관로의 말과 같았다. 계룡(季龍)이 열세 종류의 물건을 취하여 큰 상자 속에 넣고 관로에게 추측해 보도록 했다. 관로가 말했다. 

"그릇 속에는 열세 종류의 물건이 어지럽게 있습니다." 

관로는 처음에 달걀을 말하고, 다음에는 잠용(蠶踊)을 말했으며, 하나하나 각종 물건의 명칭을 말하였다. 단지 소(梳)를 비(秕)로 말했을 뿐이다.

輅別傳曰:清河令徐季龍,字開明,有才機。與輅相見,共論龍動則景雲起,虎嘯則谷風至,以為火星者龍,參星者虎,火出則雲應,參出則風到,此乃陰陽之感化, 非龍虎之所致也。輅言:「夫論難當先審其本,然後求其理,理失則機謬,機謬則榮辱之主。若以參星為虎,則谷風更為寒霜之風,寒霜之風非東風之名。是以龍者 陽精,以潛為陰,幽靈上通,和氣感神,二物相扶,故能興雲。夫虎者,陰精而居於陽,依木長嘯,動於巽林,二氣相感,故能運風。若磁石之取鐵,不見其神而金 自來,有徵應以相感也。況龍有潛飛之化,虎有文明之變,招雲召風,何足為疑?」季龍言:「夫龍之在淵,不過一井之底,虎之悲嘯,不過百步之中,形氣淺弱, 所通者近,何能〈氵剽〉景雲而馳東風?」輅言:「君不見陰陽燧在掌握之中,形不出手,乃上引太陽之火,下引太陰之水,噓吸之間,煙景以集。苟精氣相感,縣 象應乎二燧;苟不相感,則二女同居,志不相得。自然之道,無有遠近。」季龍言:「世有軍事,則感雞雉先鳴,其道何由?復有他占,惟在雞雉而巳?」輅言: 「貴人有事,其應在天,在天則日月星辰也。兵動民憂,其應在物,在物則山林鳥獸也。夫雞者兌之畜,金者兵之精,雉者離之鳥,獸者武之神,故太白揚輝則雞 鳴,熒惑流行則雉驚,各感數而動。又兵之神道,布在六甲,六甲推移,其占無常。是以晉柩牛呴,果有西軍,鴻嘉石鼓,鳴則有兵,不專近在於雞雉也。」季龍 言:「魯昭公八年,有石言於晉,師曠以為作事不時,怨讟動於民,則有非言之物而言,於理為合不?」輅言:「晉平奢泰,崇飾宮室,斬伐林木,殘破金石,民力 既盡,怨及山澤,神痛人感,二精並作,金石同氣,則兌為口舌,口舌之妖,動于靈石。傳曰輕百姓,飾城郭,則金不從革,此之謂也。」季龍欽嘉,留輅經數日。 輅占獵既驗,季龍曰:「君雖神妙,但不多藏物耳,何能皆得之?」輅言:「吾與天地參神,蓍龜通靈,抱日月而游杳冥,極變化而覽未然,況茲近物,能蔽聰 明?」季龍大笑,「君既不謙,又念窮在近矣。」輅言:「君尚未識謙言,焉能論道?夫天地者則乾坤之卦,蓍龜者則卜筮之數,日月者離坎之象,變化者陰陽之 爻,杳冥者神化之源,未然者則幽冥之先,此皆周易之紀綱,何僕之不謙?」季龍於是取十三種物,欲以窮之,輅射之皆中。季龍乃嘆曰:「作者之謂聖,述者之謂 明,豈此之謂乎!」

관로는 군사를 따라 서쪽으로 가는 도중 관구검 부친의 묘를 지날 때, 나무에 기댄 채 슬프게 노래하며 정신이 불쾌한 듯했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관로가 대답했다. 

"숲의 나무는 비록 무성하지만 영원할 수 없고, 비문은 비록 아름답지만 후대에 지킬 수 없습니다. 현무(玄武)는 머리를 숨겼고, 창룡(蒼龍)은 다리가 없으며, 백호(白虎)는 시신을 물고 있고, 주작(朱雀)은 슬피 울고 있으니, 네 가지 위험함이 이미 갖추어진 이상 법에 따라 관구검의 일족은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현무는 북쪽을, 청룡은 동쪽을 백호는 서쪽을 주작을 남쪽을 나타내는 성수로서 사신 아라고도 부른다. 이 시대에는 묘 내부의 벽 등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침내 관로의 말처럼 되었다. 후에 휴가를 얻어 청하의 예태수를 방문했다. 그 무렵 가뭄이 들었으므로 관로에게 비가 내릴 시기를 물었다. 관로가 대답했다. 

"오늘 저녁에 비가 내릴 것입니다." 

이 날은 매우 더웠으며, 한낮에는 비가 내릴 것 같은 징조가 없었다. 태수의 역소의 승(丞)이나 현령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모두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밤을 알리는 태고(太故)가 한 번 울리자, 별과 달은 모두 사라지고 바람과 구름이 함께 일어나 결국 폭우를 쏟아 부었다. 그래서 주인의 예를 다하여 융성하고 즐겁게 연회를 했다.

輅別傳曰:輅與倪清河相見,既刻雨期,倪猶未信。輅曰:「夫造化之所以為神,不疾而速,不行而至。十六日壬子,直滿,畢星中已有水氣,水氣之發,動於卯辰, 此必至之應也。又天昨檄召五星,宣布星符,刺下東井,告命南箕,使召雷公、電母、風伯、雨師,群嶽吐陰,眾川激精,雲漢垂澤,蛟龍含靈,朱 電,吐咀杳冥,殷殷雷聲,噓吸雨靈,習習谷風,六合皆同,欬唾之間,品物流形。天有常期,道有自然,不足為難也。」倪曰:「譚高信寡,相為憂之。」於是便 留輅,往請府丞及清河令。若夜雨者當為啖二百斤犢肉,若不雨當住十日。輅曰:「言念費損!」至日向暮,了無雲氣,眾人並嗤輅。輅言:「樹上已有少女微風, 樹間又有陰鳥和鳴。又少男風起,眾鳥和翔,其應至矣。」須臾,果有艮風鳴鳥。日未入,東南有山雲樓起。黃昏之後,雷聲動天。到鼓一中,星月皆沒,風雲並 興,玄氣四合,大雨河傾。倪調輅言:「誤中耳,不為神也。」輅曰:「誤中與天期,不亦工乎!」

정원(正元) 2년(255), 동생 관신(管辰)이 관로에게 말했다. 

"대장군께서 형님을 깊은 정과 중시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데, 부귀하게 될 희망이 있습니까?" 

관로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스스로 그러한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안다. 하늘이 나에게 재지를 준 것은 분명하지만, 나에게 연수(年壽)를 주지 않았으니, 아마 47,48세면 딸이 시집가고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될 거야. 만일 죽음을 면하게 된다면 낙양의 현령이 되어 길에서 줍지 않도록 하고, 경계를 알리는 큰 북이 울리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태산에 이르러 귀신을 다스리고, 살아 있는 사람은 다스리지 못할 것 같구나. 어떻게 해야 하지!" 

동안 진산에는 죽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장소가 있으며, 이곳에 태산부군의 관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후한 시대 이후로 이 신앙이 성행하게 되었고 육조 시대 이후 불교의 명부와 합쳐지게 되었다.

신이 그 까닭을 물었다. 관로가 대답했다. 

"나의 이마 위에는 복과 장수할 뼈가 없고, 눈 안에는 정신을 지키는 것이 없으며, 코에는 기둥이 없고, 다리에는 천근이 없으며, 둥에는 장수하는 삼갑(三甲)의 형상이 없고, 배에는 장수의 징조인 삼임(三壬)이 없다. 이것이 모두 장수의 징조가 아니다. 또 나는 본래 명(命)이 인(寅)에 있고, 월식이 있는 밤에 태어났다. 하늘에는 변하지 않는 운세가 있으니,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단지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이다. 나는 앞뒤로 사람들에게 관상을 봐주었는데, 꼭 맞게 죽은 사람이 백 명을 넘었으며, 대부분 틀리지 않았다." 

이해 8월 소부승(少府丞)이 되었다. 다음해 2월에 죽었으며, 마흔여덟 살이었다.

輅別傳曰:既有明才,遭朱陽之運,于時名勢赫奕,若火猛風疾。當塗之士,莫不枝附葉連。賓客如雲,無多少皆為設食。賓無貴賤,候之以禮。京城紛紛,非徒歸其 名勢而已,然亦懷其德焉。向不夭命,輅之榮華,非世所測也。弟辰嘗欲從輅學卜及仰觀事,輅言:「卿不可教耳。夫卜非至精不能見其數,非至妙不能睹其道,孝 經、詩、論,足為三公,無用知之也。」於是遂止。子弟無能傳其術者。辰敘曰:「夫晉、魏之士,見輅道術神妙,占候無錯,以為有隱書及象甲之數。辰每觀輅書 傳,惟有易林、風角及鳥鳴、仰觀星書三十餘卷,世所共有。然輅獨在少府官舍,無家人子弟隨之,其亡沒之際,好奇不哀喪者,盜輅書,惟餘易林、風角及鳥鳴書 還耳。夫術數有百數十家,其書有數千卷,書不少也。然而世鮮名人,皆由無才,不由無書也。裴冀州、何、鄧二尚書及鄉里劉太常、潁川兄弟,以輅稟受天才,明 陰陽之道,吉凶之情,一得其源,遂涉其流,亦不為難,常歸服之。輅自言與此五君共語使人精神清發,昏不暇寐。自此以下,殆白日欲寢矣。又自言當世無所願, 欲得與魯梓慎、鄭裨灶、晉卜偃、宋子韋、楚甘公、魏石申共登靈臺,披神圖,步三光,明災異,運蓍龜,決狐疑,無所復恨也。辰不以闇淺,得因孔懷之親,數與 輅有所諮論。至於辨人物,析臧否,說近義,彈曲直,拙而不工也。若敷皇、羲之典,揚文、孔之辭,周流五曜,經緯三度,口滿聲溢,微言風集,若仰眺飛鴻,漂 漂兮景沒,若俯臨深溪,杳杳兮精絕;偪以攻難,而失其端,欲受學求道,尋以迷昏,無不扼腕椎指,追響長歎也。昔京房雖善卜及風律之占,卒不免禍,而輅自知 四十八當亡,可謂明哲相殊。又京房目見遘讒之黨,耳聽青蠅之聲,面諫不從,而猶道路紛紜。輅處魏、晉之際,藏智以朴,卷舒有時,妙不見求,愚不見遺,可謂 知幾相邈也。京房上不量萬乘之主,下不避佞諂之徒,欲以天文、洪範,利國利身,困不能用,卒陷大刑,可謂枯龜之餘智,膏燭之末景,豈不哀哉!世人多以輅疇 之京房,辰不敢許也。至於仰察星辰,俯定吉凶,遠期不失年歲,近期不失日月,辰以甘、石之妙不先也。射覆名物,見術流速,東方朔不過也。觀骨形而審貴賤, 覽形色而知生死,許負、唐舉不超也。若夫疏風氣而探微候,聽鳥鳴而識神機,亦一代之奇也。向使輅官達,為宰相大臣,膏腴流於明世,華曜列乎竹帛,使幽驗皆 舉,祕言不遺,千載之後,有道者必信而貴之,無道者必疑而怪之;信者以妙過真,夫妙與神合者,得神無所惑也。恨輅才長命短,道貴時賤,親賢遐潛,不宣於良 史,而為鄙弟所見追述,既自闇濁,又從來久遠,所載卜占事,雖不識本卦,捃拾殘餘,十得二焉。至於仰觀靈曜,說魏、晉興衰,及五運浮沉,兵革災異,十不收 一。無源何以成河?無根何以垂榮?雖秋菊可採,不及春英,臨文慷慨,伏用哀慚。將來君子,幸以高明求其義焉。往孟荊州為列人典農,嘗問亡兄,昔東方朔射覆 得何卦,正知守宮、蜥蜴二物者。亡兄於此為安卦生象,辭喻交錯,微義豪起,變化相推,會於辰巳,分別龍蛇,各使有理。言絕之後,孟荊州長歎息曰:『吾聞君 論,精神騰躍,殆欲飛散,何其汪汪乃至於斯邪!』」臣松之案:辰所稱鄉里劉太常者,謂劉寔也。辰撰輅傳,寔時為太常,潁川則寔弟智也。寔、智並以儒學為 名,無能言之。世語稱寔博辯,猶不足以並裴、何之流也。又案輅自說,云「本命在寅」,則建安十五年生也。至正始九年,應三十九,而傳云三十六,以正元三年 卒,應四十七,傳云四十八,皆為不相應也。近有閻續伯者,名纘,該微通物,有良史風。為天下補綴遺脫,敢以所聞列于篇左。皆從受之於大人先哲,足以取信 者,冀免虛誣之譏云爾。嘗受辰傳所謂劉太常者曰:「輅始見聞,由於為鄰婦卜亡牛,云當在西面窮牆中,縣頭上向。教婦人令視諸丘冢中,果得牛。婦人因以為藏 己牛,告官案驗,乃知以術知,故裴冀州遂聞焉。」又云:「路中小人失妻者,輅為卜,教使明旦於東陽城門中伺擔豚人牽與共鬥。具如其言,豚逸走,即共追之。 豚入人舍,突破主人甕,婦從甕中出。」劉侯云甚多此類,辰所載纔十一二耳。劉侯云:「辰,孝廉才也。」中書令史紀玄龍,輅鄉里人,云:「輅在田舍,嘗候遠 鄰,主人患數失火。輅卜,教使明日於南陌上伺,當有一角巾諸生,駕黑牛故車,必引留,為設賓主,此能消之。即從輅戒。諸生有急求去,不聽,遂留當宿,意大 不安,以為圖己。主人罷入,生乃把刀出門,倚兩薪積閒,側立假寐。欻有一小物直來過前,如獸,手中持火,以口吹之。生驚,舉刀斫,正斷要,視之則狐。自此 主人不復有災。」前長廣太守陳承祐口受城門校尉華長駿語云:「昔其父為清河太守時,召輅作吏,駿與少小,後以鄉里,遂加恩意,常與同載周旋,具知其事。云 諸要驗,三倍於傳。辰既短才,又年縣小,又多在田舍,故益不詳。辰仕宦至州主簿、部從事,太康之初物故。」駿又云:「輅卜亦不悉中,十得七八,駿問其故, 輅云:『理無差錯,來卜者或言不足以宣事實,故使爾。』華城門夫人者,魏故司空涿郡盧公女也,得疾,連年不差。華家時居西城下南纏里中,三廄在其東南。輅 卜當有師從東方來,自言能治,便聽使之,必得其力。後無何,有南征廄騶,當充甲卒,來詣盧公,占能治女郎。公即表請留之,專使其子將詣華氏療疾,初用散 藥,後復用丸治,尋有效,即奏除騶名,以補太醫。」又云:「隨輅父在利漕時,有治下屯民捕鹿者,其晨行還,見毛血,人取鹿處來詣廄告輅,輅為卦語云:『此 有盜者,是汝東巷中第三家也。汝徑往門前,伺無人時,取一瓦子,密發其碓屋東頭第七椽,以瓦著下,不過明日食時,自送還汝。』其夜,盜者父病頭痛,壯熱煩 疼,然亦來詣輅卜。輅為發祟,盜者具服。輅令擔皮肉藏還者故處,病當自愈。乃密教鹿主往取。又語使復往如前,舉椽棄瓦。盜父病差。又都尉治內史有失物者, 輅使明晨於寺門外看,當逢一人,使指天畫地,舉手四向,自當得之。暮果獲於故處矣。」

※ 평하여 말한다. - 화타의 진료, 두기의 음악, 주건평의 관상술, 주선의 꿈 풀이, 관로의 점괘는 진실로 모두 현묘하고 정교하며 비범한 기술이다. 옛날 사마천이 [편작],[창공],[일자]의 전을 지은 것은 불가사의한 것을 포괄하여 기록하고자 한 것이다. 때문에 나 역시 이런 것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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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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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15:47:32 (*.52.8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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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0
10:41:00
(*.52.89.212)
배송지가 관로열전에서 모두 다 가져다 쓴게 아닐까 정도로 의심됩니다. 많은 한문 주석이 있군요.

코렐솔라

2013.08.16
10:00:03
(*.131.108.250)
곽은의 자가 토가시와 같군요!

코렐솔라

2019.10.21
11:43:14
(*.46.174.164)
첫번째 주석의 매번 뒷부분은 dragonrz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69038

한은

2019.10.25
00:24:33
(*.236.88.121)
제 게시판에 글이 안올라가네요.. 사이트에 문제가 있는건지 아니면 일시적인 오류인지 ㅠ

코렐솔라

2019.10.25
17:38:52
(*.46.174.164)
쪽지 보냈습니다. 전 아마 사이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한 번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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