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찬전]]에서 분할 


康字叔夜。案嵇氏譜:康父昭,字子遠,督軍糧治書侍御史。兄喜,字公穆,晉揚州刺史、宗正。喜為康傳曰;「家世儒學,少有雋才,曠邁不群,高亮任性,不脩名 譽,寬簡有大量。學不師授,博洽多聞,長而好老、莊之業,恬靜無欲。性好服食,嘗採御上藥。善屬文論,彈琴詠詩,自足于懷抱之中。以為神仙者,稟之自然, 非積學所致。至於導養得理,以盡性命,若安期、彭祖之倫,可以善求而得也;著養生篇。知自厚者所以喪其所生,其求益者必失其性,超然獨達,遂放世事,縱意 於塵埃之表。撰錄上古以來聖賢、隱逸、遁心、遺名者,集為傳贊,自混沌至于管寧,凡百一十有九人,蓋求之於宇宙之內,而發之乎千載之外者矣。故世人莫得而 名焉。」

虞預晉書曰:康家本姓奚,會稽人。先自會稽遷于譙之銍縣,改為嵇氏,取「稽」字之上,〔加〕「山」以為姓,蓋以志其本也。一曰銍有嵇山,家于其側,遂氏焉。

혜강(嵇康)의 자는 숙야(叔夜)이다. 혜씨보(嵇氏譜)를 살피니: 혜강의 아버지는 혜소(嵇昭)로 자는 자원(子遠)이며, 독군량치서시어사督軍糧治書侍御史였다. 형은 혜희로 자가 공목이며 진나라의 양주자사, 종정을 역임했다. 혜희가 혜강을 위해 전을 지어 이르길 :


「집안은 대대로 유학을 공부하였고 어려서부터 준재가 있었으며 광매曠邁하여 무리를 짓지 않았고 고명하여 본성에 따라 행동했으며 명예를 닦지 않았고 마음이 넓어 도량이 있었다. 공부는 스승에게서 배우지 않았고 널리 배우고 많이 들었으며 자라고 나서 노장의 학술을 좋아하고 마음이 청정하여 욕심이 없었다. 단약 복용하는 것을 좋아하여 일찍이 선약을 채집하였다. 글을 잘 짓고 거문고를 타며 시를 읊어 회포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였다. 신선이라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품부받은 것이라 학문을 쌓아 이룰 수 없는 것이나 양생하는 것에 올바른 이치를 얻어 성명을 다하는데 이르러서는 안기, 팽조와 같은 무리도 가히 잘 구하면 얻을 수 있다고 여겨 양생편을 지었다. 스스로 두텁게 대하는 사람은 이 때문에 그 생명을 상하게 하고 더하길 구하는 자는 반드시 그 본성을 잃을 것을 알아 초연히 홀로 통달하여 마침내 세상의 일을 팽개치고 뜻대로 세속의 바깥에서 거닐었다. 상고 이래 성현, 은일, 둔심遁心, 유명遺名의 사람들을 찬록하여 한권으로 묶고 전찬으로 삼으니 혼돈에서부터 관녕에 이르기까지 무릇 119명의 사람으로 대체로 우주의 안에서 이를 구하고 천년 밖에서 이를 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얻어서 이름 붙일 수 없었다.」

우예의 진서에 이르길: 혜강의 집안은 본래 성이 해奚로 회계사람이다. 선조가 회계로부터 초譙의 질현銍縣에 옮겨왔고 성을 혜嵇씨로 바꿨다. 계稽자를 취해 그 위에다 산山자를 더해 성으로 삼으니 이는 대체로 그 근본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질현에 혜산이 있는데 그 옆에 집이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씨로 삼았다고 한다.


魏氏春秋曰:康寓居河內之山陽縣,與之游者,未嘗見其喜慍之色。與陳留阮籍、河內山濤、河南向秀、籍兄子咸、琅邪王戎、沛人劉伶相與友善,遊於竹林,號為七賢。鍾會為大將軍所昵,聞康名而造之。會,名公子,以才能貴幸,乘肥衣輕,賔從如雲。康方箕踞而鍛,會至,不為之禮。康問會曰:「何所聞而來?何所見而去?」會曰:「有所聞而來,有所見而去。」會深銜之。大將軍嘗欲辟康。康旣有絕世之言,又從子不善,避之河東,或云避世。及山濤為選曹郎,舉康自代,康荅書拒絕,因自說不堪流俗,而非薄湯、武。大將軍聞而怒焉。初,康與東平呂昭子巽及巽弟安親善。會巽淫安妻徐氏,而誣安不孝,囚之。安引康為證,康義不負心,保明其事,安亦至烈,有濟世志力。鍾會勸大將軍因此除之,遂殺安及康。康臨刑自若,援琴而鼓,旣而歎曰:「雅音於是絕矣!」時人莫不哀之。初,康採藥於汲郡共北山中,見隱者孫登。康欲與之言,登默然不對。踰時將去,康曰:「先生竟無言乎?」登乃曰:「子才多識寡,難乎免於今之世。」及遭呂安事,為詩自責曰:「欲寡其過,謗議沸騰。性不傷物,頻致怨憎。昔慙柳下。今愧孫登。內負宿心,外赧良朋。」康所著諸文論六七萬言,皆為世所玩詠。


위씨춘추에 이르길 : 혜강이 하내의 산양현에 우거하였는데 더불어 교유하는 사람들이 일찍이 그의 기뻐하거나 노여워하는 기색을 보지 못했다. 진류의 완적(阮籍), 하내의 산도(山濤), 하남의 상수(向秀), 완적의 조카인 완함(), 낭야의 왕융(王戎), 패지방 출신의 유령(劉伶)과 더불어 친하게 지냈는데 죽림을 노닌지라 호칭하길 7현이라 하였다.


종회(鍾會)는 대장군(사마소)과 친했는데 혜강의 명성을 듣고 방문하였다. 종회는 이름난 공자로 재능으로 총애를 받았으며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옷을 입었는데 따르는 빈객들이 구름 같았다. 혜강은 때마침 두 다리를 벌리고 단공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종회가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예를 갖추지 않았다. 혜강이 종회에게 물었다.


「무엇을 듣고 왔으며 무엇을 보고 가시는가?」


하니 종회가 말하길


「들은바가 있어 왔고 본바가 있어 갑니다.」


라 하고는 깊이 원한을 품었다. 대장군이 일찍이 혜강을 징벽하고자 하였다. 혜강은 이미 세속을 끊겠다는 말을 했고 또한 조카가 불선한지라 하동으로 피난 갔는데 혹 말하길 세상을 피한다고 하였다. 산도가 선조랑이 됨에 이르러 혜강을 추천하여 자신을 대체하고자 했으나 혜강은 답하는 편지를 보내 거절하고 이로 인해 스스로 말하길 유속을 따르지 않고 탕무를 비방한다고 하였다. 대장군은 이를 듣고 분노했다.


애초에 혜강은 동평사람 여소(呂昭)의 아들 여손(), 여손의 동생 여안()과 더불어 친했다. 여손이 여안의 아내인 서씨(徐氏)와 간음하고서 여안을 불효하다고 무고하여 가두었다. 여안은 혜강을 증인으로 삼았고 혜강은 의리상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사실을 밝힐 것을 보증하였는데 여안 역시 강직하여 세상을 구할 용기와 지모가 있었다. 종회는 대장군에게 이를 기회로 혜강을 제거하라고 권했고 마침내 여안과 혜강을 죽였다. 혜강은 형의 집행에 임해서 태연자약하게 거문고를 연주했는데 노래가 끝나자 탄식하며 말하길


「아정한 음악이 여기서 끊어지는구나!」


라 하니 당시의 사람들 중에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애초에 혜강이 약을 찾으러 급군의 공북산(共北山)에 들어갔다가 은자인 손등(孫登)을 만났다. 혜강은 그와 더불어 말했는데 손등은 묵연히 대답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혜강이 장차 떠나려 할 때 말하길


「선생께서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라 하자 손등이 마침내 말하길


「그대가 재주는 많지만 식견이 적으니 지금의 세상에서 횡액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네.」


라 하였다. 여안의 사건을 당함에 이르러 (혜강은) 시를 지어 자책하길


「잘못을 적게 하려고 했지만 비방은 끊임없이 솟아올랐고 천성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데 빈번히 원한을 불러왔네. 옛날에는 유하혜에게 부끄러웠고 지금은 손등에게 부끄럽네. 안으로는 평소의 숙원을 저버리고 밖으로는 훌륭한 친구들에게 얼굴을 붉히네.」


라 하였다. 혜강이 지은 여러 문론 6~7만 자는 모두 세상 사람들에게 완상되어진다.

 

康別傳云:孫登謂康曰:「君性烈而才儁,其能免乎?」稱康臨終之言曰:「袁孝尼嘗從吾學廣陵散,吾每固之不與。廣陵散於今絕矣!」與盛所記不同。 

강별전에 이르길 : 손등이 혜강에게 말하길


「그대는 천성이 강직하고 재주가 훌륭한데 재난을 면할 수 있겠는가?」


라 하였고 혜강이 임종하기 전에 했던 말은 이르길


「원효니(袁孝尼; 원준(袁準))가 일찍이 나를 쫓아 광릉산을 배웠는데 나는 매번 인색하게 굴어 주지 않았다. 광릉산이 지금에 이르러 절전되는구나!」


라 하였으니 손성의 기록과는 다르다.

 

又晉陽秋云:康見孫登,登對之長嘯,踰時不言。康辭還,曰:「先生竟無言乎?」登曰:「惜哉!」此二書皆孫盛所述,而自為殊異如此。 


또한 진양추에 이르길 : 혜강이 손등을 만났을 때 손등이 그를 대해 길게 휘파람 불뿐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않았다. 혜강은 인사하며 돌아갈 때 말하길


「선생께서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라고 하자 손등이 말하길


「안타깝구나!」


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두 책은 모두 손성이 쓴 것인데 스스로도 이토록 다르다.

 

康集目錄曰:登字公和,不知何許人,無家屬,於汲縣北山土窟中得之。夏則編草為裳,冬則被髮自覆。好讀易鼓琴,見者皆親樂之。每所止家,輒給其衣服食飲,得無辭讓。 

강집목록에 이르길 : 손등(孫登)의 자는 공화(公和)이고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없으며 가속이 없고 급현 북산의 토굴에서 거처했다. 여름에는 풀을 엮어 치마로 삼고 겨울에는 머리카락에 뒤덮였다. 주역을 읽고 거문고 타는 것을 좋아했고 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좋아하고 가까이 하고자 하였다. 매번 누구의 집에 머물렀을 때 항상 의복과 음식을 주면 이를 받고 사양하지 않았다.

 

世語曰:毌丘儉反,康有力,且欲起兵應之,以問山濤,濤曰:「不可。」儉亦已敗。 

세어에 이르길 : 관구검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혜강에게 힘이 있었고 또한 기병하여 그에 응하고자 하여 이로써 산도에게 물었는데 산도는 대답하길


「불가합니다.」


라 하였다. 관구검 역시 끝내 패했다.

 

臣松之案本傳云康以景元中坐事誅,而干寶、孫盛、習鑿齒諸書,皆云正元二年,司馬文王反自樂嘉,殺嵇康、呂安。蓋緣世語云康欲舉兵應毌丘儉,故謂破儉便應殺康也。其實不然。山濤為選官,欲舉康自代,康書告絕,事之明審者也。案濤行狀,濤始以景元二年除吏部郎耳。景元與正元相較七八年,以濤行狀檢之,如本傳為審。又鍾會傳亦云會作司隷校尉時誅康;會作司隷,景元中也。干寶云呂安兄巽善於鍾會,巽為相國掾,俱有寵於司馬文王,故遂抵安罪。尋文王以景元四年鍾、鄧平蜀後,始授相國位;若巽為相國掾時陷安,焉得以破毌丘儉年殺嵇、呂?此又干寶疏謬,自相違伐也。 


신 송지가 보건대 본전에서는 혜강이 경원 연간에 사건에 연루되어 주살됐다고 했지만 간보, 손성, 습착치 등의 여러 책에서는 모두 정원 2년 사마문왕이 악가로부터 돌아와 혜강과 여안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세어에서 혜강이 거병하여 관구검에 호응하고자 했다는 말과 연결하였기 때문에 관구검을 격파하고 응당 혜강을 죽였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산도가 선관이 되어 혜강을 추천해 자신을 대체하고자 하였고 혜강은 편지를 보내 거절한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산도행장을 보건대 산도는 비로소 경원 2년에 이부랑에 제수됩니다. 경원과 정원연간은 7~8년 정도 차이 나는데 산도행장으로 검사해보면 본전이 올바릅니다. 또한 종회전 역시 종회가 사례교위가 되었을 때 혜강을 주살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종회가 사례교위가 된 것은 경원 연간입니다. 간보는 여안의 형인 여손이 종회와 더불어 친했고 여손이 상국연이 되고 더불어 사마문왕에게 총애를 받은 연고로 마침내 여안을 범죄로 처벌한 것이라 말합니다. 찾아 보건대 문왕은 경원 4년에 종회, 등애와 더불어 촉을 정벌한 이후에 비로소 상국에 오릅니다. 만약 여손이 상국연이 되었을 때 여안을 무고했다면 어찌 관구검을 격파한 해에 혜강과 여안을 죽일 수 있었겠습니까? 이 또한 간보의 거친 착오로 스스로 모순을 보인 것입니다.

 

康子紹,字延祖,少知名。山濤啟以為祕書郎,稱紹平簡溫敏,有文思,又曉音,當成濟者。帝曰;「紹如此,便可以為丞,不足復為郎也。」遂歷顯位。


혜강의 아들은 혜소()로 자가 연조(延祖)이며 어렸을 때부터 명성이 있었다. 산도는 그에게 관직의 길을 열어 비서랑으로 삼았는데 혜소를 칭하길 평이 간소하며 온화하고 민첩한데다 문재가 있고 음악에 밝으니 당연히 성취가 있을 사람이라고 하였다. 황제가 말하길


「혜소가 이와 같다면 승으로 삼아야지 다시 낭으로 삼는 것은 부족하다.」


라 하였고 마침내 여러 현달한 직위를 역임했다.

 

晉諸公贊曰:紹與山濤子簡、弘農楊準同好友善,而紹最有忠正之情。以侍中從惠帝北伐成都王,王師敗績,百官奔走,惟紹獨以身扞衞,遂死於帝側。故累見襃崇,追贈太尉,謚曰忠穆公。

진제공찬에 이르길 : 혜소는 산도의 아들인 산간()과 홍농 사람 양준(楊準)과 더불어 친하게 지냈는데 혜소가 최고 충정의 감정이 있었다. 시중의 신분으로 혜제를 따라 성도왕을 북벌했는데 왕사가 누차 패하고 백관이 도망갔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혜소만이 홀로 몸으로 지키다 마침내 황제의 옆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누차 찬양하고 추숭되어 태위에 추증되고 시호를 충목공忠穆公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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