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삼국지 - <배송지주>오질전


[[왕찬전]]에서 분할 



魏略曰:質字季重,以才學通博,為五官將及諸侯所禮愛;質亦善處其兄弟之間,若前世樓君卿之游五侯矣。及河北平定,五官將為世子,質與劉楨等並在坐席。楨坐譴之際,質出為朝歌長,後遷元城令。其後大將軍西征,太子南在孟津小城,與質書曰:「季重無恙!途路雖局,官守有限,願言之懷,良不可任。足下所治僻左,書問致簡,益用增勞。每念昔日南皮之游,誠不可忘。旣妙思六經,逍遙百氏,彈棊間設,終以博弈,高談娛心,哀箏順耳。馳騖北塲,旅食南館,浮甘瓜於清泉,沈朱李於寒水。皦日旣沒,繼以朗月,同乘並載,以游後園,輿輪徐動,賔從無聲,清風夜起,悲笳微吟,樂往哀來,淒然傷懷。余顧而言,茲樂難常,足下之徒,咸以為然。今果分別,各在一方。元瑜長逝,化為異物,每一念至,何時可言?方今蕤賔紀辰,景風扇物,天氣和暖,衆果具繁。時駕而游,北遵河曲,從者鳴笳以啟路,文學託乘於後車,節同時異,物是人非,我勞如何!今遣騎到鄴,故使枉道相過。行矣,自愛!」

 

위략에 이르길 : 오질(吳質)은 자가 계중(季重)으로 재주와 학문이 박통하여 오관장과 여러 제후들에게 경애받았다. 오질은 또한 형제간에 잘 처신하여 마치 전세의 누군경樓君卿이 5후 사이를 노닐었던 것과 같았다.


하북이 평정됨에 이르러 오관장이 세자가 되고 오질과 유정 등의 사람들이 더불어 좌석에 있었다. 유정이 죄에 걸렸을 때 오질은 나가 조가장으로 있다 이후에 원성령으로 옮겼다. 그 후 대장군이 서정하고 태자는 남쪽 맹진의 소성에 있으면서 오질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길 :


「계중은 무양하시는가 ! 길이 비록 가까우나 관리가 지키는 범위가 유한하니 사모하는 그리움이 진실로 견디기 힘드네. 족하께서 편벽한 지방을 다스리고 있는지라 편지를 보내 더욱 번거롭게 하네. 매번 옛날 남피에서의 유람을 생각하면 진실로 잊을 수 없는 것이네. 이미 6경을 신묘하게 생각하고 백가에 소요하며 간혹 탄기彈棊를 하고 박혁博弈으로 끝냈으며 고담준론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슬픈 고쟁의 음악은 귀에 듣기 좋았지. 북방의 전야를 치닫기도 하였고 친구들과 더불어 남쪽의 관사에서 식사도 하였는데 맑은 샘에 참외를 띄워 놓고 붉은 자두를 얼음물에 잠기게도 하였었지. 백일이 지고나면 밝은 달이 이를 연이어 더불어 수레를 타고 후원을 유람했는데 수레바퀴는 천천히 움직이고 따르는 빈객들은 고요한 와중에 맑은 바람이 밤중에 일고 슬픈 호가 소리가 가늘게 울리면 즐거움은 가고 애달픔이 도래하여 처연히 상심에 젖어들었네. 내가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하길 이런 즐거움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하니 족하의 무리들은 모두 그렇다고 여겼었네. 지금 과연 서로 떨어져 각자 한 쪽에 있구려. 원유元瑜(완우)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갔고 다른 사물이 되어 버렸으니 매번 생각이 이르더라도 어느 때야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바야흐로 한 여름이라 따뜻한 바람이 만물에 불어오고 기온이 온화해서 뭇 과일들이 더불어 성숙하네. 때로는 수레에 타서 때로는 걸어 다니며 북쪽의 황하 변을 따라 유람했는데 종자는 호가를 불며 앞에서 길을 열고 문사는 수레 뒤에 탔는데 계절은 같으나 시기가 다르고 사물은 그대로 지만 사람이 틀리니 내가 얼마나 슬프겠는가! 지금 말 탄 사령을 업성에 보내는 연고로 길을 돌아 서로 서신을 부치네. 글을 쓰다 여기까지 왔는데 부디 자중하시게!」


라 하였다.

 

二十三年,太子又與質書曰:「歲月易得,別來行復四年。三年不見,東山猶歎其遠,況乃過之,思何可支?雖書疏往反,未足解其勞結。昔年疾疫,親故多離其災,徐、陳、應、劉,一時俱逝,痛何可言邪!昔日游處,行則同輿,止則接席,何嘗須臾相失!每至觴酌流行,絲竹並奏,酒酣耳熱,仰而賦詩。當此之時,忽然不自知樂也。謂百年己分,長共相保,何圖數年之間,零落略盡,言之傷心。頃撰其遺文,都為一集。觀其姓名,已為鬼錄,追思昔游,猶在心目,而此諸子化為糞壤,可復道哉!觀古今文人,類不護細行,鮮能以名節自立。而偉長獨懷文抱質,恬淡寡欲,有箕山之志,可謂彬彬君子矣。著中論二十餘篇,成一家之業,辭義典雅,足傳于後,此子為不朽矣。德璉常斐然有述作意,才學足以著書,美志不遂,良可痛惜。間歷觀諸子之文,對之抆淚,旣痛逝者,行自念也。孔璋章表殊健,微為繁富。公幹有逸氣,但未遒耳,至其五言詩,妙絕當時。元瑜書記翩翩,致足樂也。仲宣獨自善於辭賦,惜其體弱,不足起其文,至於所善,古人無以遠過也。昔伯牙絕絃於鍾期,仲尼覆醢於子路,愍知音之難遇,傷門人之莫逮也。諸子但為未及古人,自一時之儁也,今之存者已不逮矣。後生可畏,來者難誣,然吾與足下不及見也。行年已長大,所懷萬端,時有所慮,至乃通夕不瞑。何時復類昔日!已成老翁,但未白頭耳。光武言『年已三十,在軍十年,所更非一』,吾德雖不及,年與之齊。以犬羊之質,服虎豹之文,無衆星之明,假日月之光,動見觀瞻,何時易邪?恐永不復得為昔日游也。少壯真當努力,年一過往,何可攀援?古人思秉燭夜游,良有以也。頃何以自娛?頗復有所造述不?東望於邑,裁書叙心。」 

 

건안 23년 태자는 다시 오질에게 편지를 보내 이르길 :


「세월은 빨리 흘러가 헤이진지도 다시 4년이 되었네. 3년 동안 보지 못한 것을 동산東山의 시에서 오히려 너무 오래됐다고 탄식했는데 하물며 이를 넘은 시간에 생각하는 마음을 견딜 수 있겠는가? 비록 서신이 무시로 오고 갔지만 마음속의 서운함을 풀기에는 부족했네. 작년에 역병이 도지는 바람에 옛 친구들이 많이 그 재앙을 만나 서간, 진림, 응양, 유정등이 한꺼번에 세상을 등졌으니 그 고통이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 옛날에 더불어 놀던 곳에서 움직이면 같은 수레를 탔고 멈추면 방석을 접하여 앉았는데 어찌 일찍이 잠깐이라도 서로 떨어진 적이 있었던가 ! 매번 술잔이 오고가고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주흥이 방성하고 신심이 쾌활할 때 고개를 들고 시를 읊곤 했네. 이때를 당해서는 홀연히 스스로 즐거운 줄 몰랐네. 말하길 백년을 사는 것은 인간의 분수니 길게 더불어 서로 보중하자 했거늘 어찌 수년의 사이에 모두 죽어 거의 없게 되었는가. 이 일을 말하면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하네. 근래에 그들의 유문을 모아 모두 문집 한권으로 만들었네. 그 성명을 보면 이미 귀신의 장부에 올랐지만 옛날 같이 노닐던 때를 생각하면 오히려 눈앞에 있는 듯 한데 이 여러 사람들이 분토로 변했다니 또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고금의 문인을 보건대 대체로 세세한 예절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으로 능히 명절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네.


위장偉長(서간)은 홀로 문질을 어울러 갖추었으면서 청정하고 욕심이 적어 기산의 뜻이 있었으니 가히 빛나는 군자라고 할 만하네. 중론中論 20여편을 지었는데 일가를 이루어 문사의 의미가 전아하여 족히 후세에 전할 만하니 이 사람의 작품은 불후할 것이네.


덕련德璉(응양)은 항상 문채도 있었고 저술에 대한 뜻도 있어 재주와 학식이 족히 책을 지을 정도가 되었는데 훌륭한 뜻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니 진실로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네. 여러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눈물을 닦는 것은 이미 간 사람을 슬퍼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감개하는 것이네.


공장孔璋(진림)의 표장은 비록 장건하여 기세가 있지만 약간 부화한 측면이 있네.


공간公幹(유정)은 세속을 초월하는 기상이 있지만 완전히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네. 그 5언시에 이르러서는 신묘하기가 당시에 따를 사람이 없네.


원유元瑜(완우)는 서기가 편편하여 족히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네.


중선仲宣(왕찬)은 사부를 잘 써서 일가를 이루었는데 안타깝게도 문체가 약하여 문장을 일으키기 부족했지만 고인들도 그와 비교해 아주 뛰어나다고 볼 수 없을 정도이네.


옛날 백아는 종자기에 대해 거문고의 현을 끊었고 공자는 자로 때문에 젓갈을 엎었는데 지음이 어려움을 만난 것을 슬퍼한 것이자 문인중에 비할만한 사람이 없음을 탄식한 것이었네. 이들 여러 사람들은(건안칠자) 고인에 미칠 수 없다 하더라도 일시의 준걸들이네. 지금 사는 사람들은 이미 그들과 비교할 수가 없네. 후생이 두려워 할 만하고 장차 그들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다하나 나와 족하는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마음속에 품은 일은 수없이 많은데 항상 생각하다보니 온 밤을 지새더라도 잠을 이룰 수가 없네. 어느 때가 돼야 다시 옛날과 같겠는가 ! 이미 노인이 됐지만 아직 머리가 하얘지지는 않았네. 광무제가 말하길 『나이가 30이되고 군중에서 10년 있었는데 겪은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내가 덕이 비록 미치지는 못하나 연령은 그와 더불어 비슷하네. 개와 양이 실질을 가지고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을 입었으며 뭇 별들의 광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월의 빛을 빌려온 상태에서 움직이면 모든 사람들이 주시하니 어느때야 편하게 마음대로 행동하겠는가? 아마도 영원히 다시 옛날의 즐거운 유희를 얻을 수 없을 듯 하네. 어리고 장건할 때 응당 노력을 해야지 세월이 흘러가 버리면 어찌 붙잡을 수 있겠는가? 고인들이 촛불을 들고 밤에도 놀러다닌 것은 진실로 이유가 있네. 근래에 무엇으로 오락을 삼으시오? 자못 다시 쓴 문장이 있는가? 성읍의 동쪽을 바라보며 편지를 써 마음을 표현하네.」


라 하였다.

 

臣松之以本傳雖略載太子此書,美辭多被刪落,今故悉取魏略所述以備其文。太子即王位,又與質書曰:「南皮之游,存者三人,烈祖龍飛,或將或侯。今惟吾子,棲遲下土,從我游處,獨不及門。瓶罄罍恥,能無懷愧。路不云遠,今復相聞。」初,曹真、曹休亦與質等俱在渤海游處,時休、真亦以宗親並受爵封,出為列將,而質故為長史。王顧質有望,故稱二人以慰之。始質為單家,少游遨貴戚間,蓋不與鄉里相沈浮。故雖已出官,本國猶不與之士名。及魏有天下,文帝徵質,與車駕會洛陽。到,拜北中郎將,封列侯,使持節督幽、并諸軍事,治信都。太和中,入朝。質自以不為本郡所饒,謂司徒董昭曰:「我欲溺鄉里耳。」昭曰:「君且止,我年八十,不能老為君溺攢也。」 

 

신 송지는 본전에서 비록 태자의 이 편지를 대략 실었지만 아름다운 문사가 많이 깎여 나가 지금 그런 연고로 위략의 서술을 모두 취해 이로써 그 문장을 채웠습니다. 태자가 왕위에 오르고 다시 오질에게 편지 보내길 :


「남피에서 노닐던 사람중에 아직 있는 사람은 3명인데 열조(조조)가 용이 되어 날아 오른 후에 혹은 장군이 되고 혹은 후작이 되었네. 지금 오직 그대만이 낮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데 나를 따라 더불어 노닐때에도 홀로 중용받지 못했네. 병속에 물건이 없어도 그릇이 부끄러워 하거늘 (내가) 능히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거리가 멀지 않으니 지금부터 다시 상종하세.」


라 하였다. 애초에 조진, 조휴 역시 오질등과 더불어 발해에 있으면서 노닐었는데 이 당시에 조휴와 조진 역시 종친으로 더불어 작위와 봉지를 받고 나가서 장수가 되었으나 오질은 의연히 장사로 있었다. 왕이 오질에게 원망이 있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을 칭해 위로한 것이다.


처음에 오질은 한문寒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귀척간에 노닐었는데 대체로 향리와 더불어 교제하지 않았다. 그런 연고로 비록 관직에 나아왔으나 본국에서는 오히려 선비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위나라가 천하를 소유함에 이르러 문제는 오질을 징소하여 더불어 거가에 타고 낙양에 돌아왔다. 도착하자 북중랑장으로 배임하고 열후에 봉했으며 사지절독유병제군사使持節督幽、并諸軍事로 신도를 다스리게 하였다. 태화 연간에 조정에 들어왔다. 오질은 스스로가 본군에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사도 동소에게 말하길


「나는 향리를 더럽히고자 합니다.」


라 하니 동소가 말하길


「그대는 또한 멈추길 바랍니다. 내 나이가 80인데 늙어서 그대 때문에 몸에 오줌을 묻힐 수 없습니다.」


라 하였다.

 

世語曰:魏王嘗出征,世子及臨菑侯植並送路側。植稱述功德,發言有章,左右屬目,王亦恱焉。世子悵然自失,吳質耳曰:「王當行,流涕可也。」及辭,世子泣而拜,王及左右咸歔欷,於是皆以植辭多華,而誠心不及也。 

세어에 이르길 : 위왕이 일찍이 출정할 때 세자와 임치후 조식이 더불어 길가에서 전송했다. 조식은 공덕을 칭술하고 하는 말이 법도가 있어 좌우의 사람들이 눈을 모으고 왕 역시 기뻐하였다. 세자가 창연히 스스로 실망하니 오질이 귀에다 대고 말하길


「왕께서 행로에 오르실 때에 눈물을 흘리면 괜찮습니다.」


라 했고 이별할 때에 이르러 세자는 울면서 절하니 왕과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탄식했고 이에 모두들 조식은 문사가 화려하지만 진실한 마음은 이르지 못했다고 여겼다.

 

質別傳曰:帝嘗召質及曹休歡會,命郭后出見質等。帝曰:「卿仰諦視之。」其至親如此。質黃初五年朝京師,詔上將軍及特進以下皆會質所,大官給供具。酒酣,質欲盡歡。時上將軍曹真性肥,中領軍朱鑠性瘦,質召優,使說肥瘦。真負貴,恥見戲,怒謂質曰:「卿欲以部曲將遇我邪?」驃騎將軍曹洪、輕車將軍王忠言:「將軍必欲使上將軍服肥,即自宜為瘦。」真愈恚,拔刀瞋目,言:「俳敢輕脫,吾斬爾。」遂罵坐。質案劒曰:「曹子丹,汝非屠机上肉,吳質吞爾不搖喉,咀爾不搖牙,何敢恃勢驕邪?」鑠因起曰:「陛下使吾等來樂卿耳,乃至此邪!」質顧叱之曰:「朱鑠,敢壞坐!」諸將軍皆還坐。鑠性急,愈恚,還拔劒斬地。遂便罷也。及文帝崩,質思慕作詩曰:「愴愴懷殷憂,殷憂不可居。徙倚不能坐,出入步踟躕。念蒙聖主恩,榮爵與衆殊。自謂永終身,志氣甫當舒。何意中見棄,棄我歸黃壚。煢煢靡所恃,淚下如連珠。隨沒無所益,身死名不書。慷慨自僶俛,庶幾烈丈夫。」太和四年,入為侍中。時司空陳羣錄尚書事,帝初親萬機,質以輔弼大臣,安危之本,對帝盛稱「驃騎將軍司馬懿,忠智至公,社稷之臣也。陳羣從容之士,非國相之才,處重任而不親事。」帝甚納之。明日,有切詔以督責羣,而天下以司空不如長文,即羣,言無實也。質其年夏卒。質先以怙威肆行,謚曰醜侯。質子應仍上書論枉,至正元中乃改謚威侯。應字溫舒,晉尚書。應子康,字子仲,知名於時,亦至大位。

 

오질 별전(質別傳曰)에 따르면 : 황제(조비)는 일찍이 오질 및 조휴를 불러 연회를 즐기면서, 곽황후에게 나와 오질 등을 보도록 명령했다. 문제가 말하길


「그대는 그녀를 자세히 보도록 하시오」


라 하였으니 그의 지극한 친함이 이와 같았다.


오질이 황초 5년 경사에 입조했을 때, 조서를 내려 상장군 및 특진 이하 모두를 오질이 있는 곳에서 연회를 열도록 하면서, 태관大官으로 하여금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도록 했다. 주흥이 오르자 오질은 즐거움을 다하고자 하였다. 당시에 상장군 조진은 살쪘고 중령군 주삭은 야위었는데 오질은 배우를 불러 살찌고 야윈것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였다. 조진은 귀한 신분이었는데, 희롱당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 화를 내며 오질에게 말하길


「경은 부곡장으로써 나를 대우하려는 것인가?」


라 하였는데 표기장군 조홍, 경거장군 왕충 등이 말하길


「장군께선 상장군으로 하여금 살찐 것을 다스리도록 하시려는 것이니, 스스로 살을 빼셔야 겠습니다.」


조진이 더욱 화를 내며 칼을 뽑아 눈을 부릅뜨고 말하길


「광대가 감히 경솔하게 굴다니, 내가 널 베어버리겠다」


그러면서 마구 욕했다. 오질이 칼을 만지며 말하길


「조자단, 너는 어찌 도살된 상 위의 고기가 아니겠느냐. 오질은 너를 삼키며 목을 떨지도 않고, 너를 씹으며 이빨이 흔들리지도 않을테건만, 어찌 감히 세를 믿고 교만하게 군단 말이냐?」


주삭이 이로 인해 일어나 말하길


「폐하는 우리들로 하여금 와서 경을 즐겁게 해주라고 하셨을 뿐인데, 어찌 이리 할 수가 있단 말이오!」


라 하자 오질이 돌아보며 주삭을 꾸짖으며 말하길


「주삭, 감히 자리를 망치다니!」


라 하자 뭇 장군들이 모두 좌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주삭은 성미가 급했고, 더욱 화가 나서, 돌아가 검을 뽑아 땅을 찍었다. 그리하여 곧 자리가 파해졌다.


문제가 붕어하는데 이르러 오질이 사모하여 시를 지어 이르길


「슬프게도 깊은 걱정을 품고 걱정이 깊어 감당할 수가 없네. 배회하며 앉을 수 없고 출입하며 돌아다니네. 성주에게 은혜를 입은 것을 생각하면 영예로운 작위는 무리들과 달랐네. 스스로 말하길 종신토록 영구하자더니 지기가 겨우 펼 때를 당해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버렸는가? 날 버리고 황천으로 갔는가? 고독하게 기댈곳이 없고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내리네. 따라 죽어도 유익함이 없고 몸이 죽어도 이름이 남지 않을 것이니 강개하여 스스로 노력해 강직한 장부가 되고자 하네.」


라 하였다.


태화 4년 입조하여 시중이 되었다. 당시 사공 진군이 녹상서사로 있었고 황제가 처음 친정하였는데 오질은 보필할만한 대신과 안위의 근본으로 황제에 대해 성칭하길


「표기장군 사마의는 충성스럽고 지혜로우며 지극히 공정하니 사직의 신하입니다. 진군은 화합할뿐 아무것도 작위가 없는 선비로 재상의 재주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중임에 거하면서도 친히 일을 돌보지 않습니다.」


라 하니 황제가 그 말을 받아들였다. 다음날 급조를 내려 진군을 책망하니 천하의 사람들은 사공으로 장문長文, 즉 진군만한 사람이 없고 오질의 말은 실질이 없다고 여겼다. 오질은 이해 여름에 죽었다. 오질이 생전에 위세에 기대어 마음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시호를 추후醜侯라고 하였다.


오질의 아들인 오응()이 이로 인해 상서를 올려 잘못을 논하자 정원 연간에 이르러 마침내 시호를 위후威侯로 고쳤다. 오응(吳應)의 자는 온서(溫舒)로 진나라의 상서였다. 오응의 아들은 오강()인데 자가 자중(子仲)으로 당시에 유명했으며 역시 고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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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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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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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ne

2013.10.30
13:30:26
(*.111.2.155)
고생하셨습니다. 오질에 대한 자환의 정이 유별나군요.

상장군 조진이 살집이 두툼하다 희롱당해 성을 냈다는 구절은, 당시의 시대상을 유추해볼만한 구절이라 봐도 될만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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