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원현님의 블로그



오吳의 주군 손권孫權의 서부인徐夫人은 오군吳郡 부춘현富春縣 사람이다. 그의 조부 서진徐眞은 손권의 부친 손견孫堅과 서로 친밀했기에 손견은 그의 누이동생을 서진에게 시집보냈다. 이들은 서곤徐琨을 낳았다. 서곤은 어려서 주군州郡에 임관했지만 한漢 말에 난이 일어나자 벼슬을 떠났다. 그는 손견을 따라 정벌하는 데 공이 있어 편장군偏將軍을 받았다. 손견이 죽자 손책孫策을 따라 번능樊能·우미于麋 등을 횡강橫江에서 토벌했다. 서곤은 당리구當利口에서 장영張英을 쳤지만, 배의 수가 적었기에 군대를 머무르게 하고 다시 배를 구하려 했다. 이때 서곤의 모친이 군중에 있어 서곤에게 일러 말했다.

 

"아마 주가州家는 수군水軍을 크게 일으켜 남을 물리치려 할 것이다. 이는 곧 불리함이니 어찌 머무를 수 있겠느냐? 마땅히 갈대를 베어 뗏목을 만들고 이로써 배를 도와 군사들을 건너게 해야 한다."

 

서곤은 이를 모두 아뢨다. 손책은 곧 이대로 행하여 무리를 모두 건너가게 했다. 마침내 장영을 깨뜨리고 착융笮融과 유요劉繇를 쳐 달아나게 하니 적을 무찔러 사업이 안정되었다. 손책은 표를 올려 서곤에게 단양태수丹楊太守를 겸하도록 했다. 하지만 때마침 오경吳景이 광릉군廣陵郡을 버리고 동쪽으로 왔기에 그를 다시 단양수丹楊守로 삼았다.

 

『강표전江表傳』에서 말하기를.

본래 원술袁術은 그의 종제 원윤袁胤을 단양태수로 삼으려 했다. 손책은 서곤에게 명해 그를 토벌하여 정벌하게 했다. 때마침 오경이 돌아왔다. 그는 전에 단양군에 있으며 인의와 관용으로 무리를 얻고 관리와 백성에게 사모를 받았다. 또한 서곤의 수하에는 병사가 많았다. 손책은 그 크고 무거움을 꺼렸지만 바야흐르 공격하여 정벌하는 데엔 서곤의 무리가 필요했으므로, 오경을 다시 기용하고 서곤을 불러 오군으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서곤을 독군중랑장督軍中郞將으로 삼아 병사를 거느리게 했다. 서곤은 여강태수廬江太守 이술李術을 깨뜨리는 데 종군하여 광덕후廣德侯에 봉해지고 평로장군平虜將軍으로 옮겼다. 뒤에 황조黃祖를 토벌하는 데 종군했다가 빚나간 화살을 맞고 죽었다.

 

 

부인은 서곤에게서 태어나 같은 군의 육상陸尙에게 시집을 갔다. 육상이 죽자 토로장군討虜將軍으로 오군에 있던 손권은 그를 불러 자신의 비로 삼고, 어머니로써 아들 손등孫登을 양육하게 했다. 뒤에 손권이 거처를 옮긴 것은 서부인의 투기 때문이었기에 그를 폐하여 오군에서 살게 했다. 십여 년이 쌓인 뒤 손권은 오왕吳王이 되었다가 존호에 나아갔다. 손등을 태자太子로 삼으니 여러 신하들은 부인을 후后로 삼으라고 청했다. 하지만 손권의 뜻은 보씨步氏에게 있었기에 그는 이를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부인은 뒤에 병으로 죽었다. 그의 오라비 서교徐矯는 부친 서곤의 후작을 이었다. 산월山越을 토벌해 평정하여 편장군을 받았지만 부인보다 먼저 죽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기에 아우 서조徐祚가 봉작을 물려받았다. 그는 또 싸움의 공으로 무호독蕪湖督·평위장군平魏將軍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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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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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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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12.01
18: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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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빈 열전을 원현님 번역으로 교체했습니다. 원현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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