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충(馬忠)은 자가 덕신(德信)이고 파서(巴西)군 낭중(閬中)현 사람이다. 어려서 외가에서 길러졌으며 성을 호(弧)라 하고 이름을 독(篤)이라 했는데, 후에 성을 바꾸고 이름을 충(忠)으로 고쳤다. 마충은 군의 관리가 되었고, 건안 말년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으며, 한창현의 장(漢昌長)으로 승진했다.
 
유비가 동쪽 정벌에 나섰다가 효정에서 실패했을 때, 파서태수(巴西太守) 염지(閻芝)는 여러 현의 병사 5천여 명을 징발하여 군사가 없는 곳을 보충시켰으며, 마충을 파견하여 그곳으로 가도록 했다. 유비는 벌써 영안(永安)으로 돌아왔고, 마충을 만나 함께 대화를 나누고 상서령(尚書令) 유파(劉巴)에게 말했다.
 
"비록 황권을 잃었지만, 또 호독(狐篤:마충)을 얻었다. 이것은 세상의 현인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건흥 원년(223)에 승상 제갈량이 막부를 열어 마충을 문하독(門下督)에 임명했다. 3년(225)에 제갈량은 남쪽으로 들어갔으며, 마충을 장가태수(䍧牱太守)로 삼았다.
 
(장가)군승(丞) 주포(朱襃)가 모반을 했다. 주포가 반란을 일으킨 후, 마충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구제하였으며, 가르치고 관리하여 위엄과 은혜가 컸다.
 
건흥 8년(230)에 유선은 마충을 불러 승상참군(丞相參軍)으로 임명하고 장사 장완의 차관으로 남겨 부의 일을 보도록 하였다. 마충은 또 주의 치중종사로 겸임(領州治中從)했다. 다음해 제갈량이 기산(祁山)으로 출격했을 때, 마충은 제갈량이 있는 곳으로 가서 군대 안의 사무를 관리했다. 군대가 돌아온 후, 장군 장의(張嶷) 등을 지휘하여 반란을 일으킨 문산군(汶山郡)의 강족을 토벌했다.
 
건흥 11년(233)에 남방 만족의 호족 우두머리(南夷豪帥) 유주(劉冑)가 모반하여 각 군을 소란하게 했다. 유선은 내강도독(庲降都督) 장익(張翼)을 불러 돌아오도록 하고, 마충이 장익을 대신하도록 했다. 마충은 빠르게 유주를 참수시켜 남쪽 땅을 평정했다. 마충에게 감군(監軍)분위장군(奮威將軍)을 더하고 박양정후(博陽亭侯)로 봉했다.
 
당초 건영군(建寧郡)에서는 태수 정앙(正昂)이 살해당하고, (그 후에 임명된) 태수 장예(張裔)는 결박하여 오나라로 보내졌으므로 내강도독은 항상 평이현(平夷縣)에 주둔했다. 마충에 이르러서는 독부를 미현(味縣)으로 옮겨 만족 주민들이 거주하는 사이에 있었다. 월수군(越嶲郡) 또한 장기간 토지를 잃었으므로 마충은 태수 장의(張嶷)를 이끌고 옛날 군을 수복했다. 이로부터 마충은 안남장군(安南將軍)의 관직을 더하고 승진하여 팽향정후(彭鄉亭侯)에 봉해졌다.
 
연희 5년(242)에 마충은 조정으로 돌아왔고, 그 후 한중(漢中)에 도착하여 대사마(大司馬) 장완(蔣琬)을 만나 조서를 전하였으며, 진남대장군(鎮南大將軍)에 제수되었다.
 
연희 7년(244) 봄에 대장군(大將軍) 비의(費禕)는 북쪽으로 가서 위나라 군대에 저항하고, 마충을 성도에 남게 하여 상서의 일을 맡도록(平尚書事) 했다. 비의가 돌아온 후에 마충은 곧 남쪽으로 돌아갔다.
 
연희 12년(249)에 마충은 세상을 떠났다. 아들 마수(馬脩)가 후사를 이었다.
 
마수(馬脩)의 동생은 마회(馬恢)이다. 진(晉)의 건영태수(建寧太守)가 되었다.

마충은 사람됨이 관대하고 도량이 컸으며, 농담을 잘 하고 크게 웃으며, 분노할 때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결단을 할 수 있었으며, 위엄과 은혜를 함께 갖추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만족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했다.
 
마충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를 치르는 곳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는 마음을 다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 때문에 묘당을 세워 제사지냈으며, 그것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장표(張表)는 당시의 명사로 첨령과 명망이 마충을 뛰어넘었다.
 
염우(閻宇)는 줄곧 공로와 재간이 있었고 정치적인 일에 열심이었다. 그는 마충의 뒤에서 그의 직무를 이었지만, 위풍과 정치적인 업적은 모두 마충에 미치지 못했다.
 
익주기구전(益部耆舊傳)에 따르면 “장표(張表)는 장숙()의 아들이다. 화양국지(華陽國志)에 따르면 장표는 장송(張松)의 아들이다.“ 했지만 (어느 것이 옳은지) 자세하지 않다. 염우(閻宇)의 자는 문립(文平)으로 남군(南郡) 사람이다.
분류 :
촉서
조회 수 :
12218
등록일 :
2013.05.02
16:03:38 (*.125.69.88)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1578/0af/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1578

'6' 댓글

코렐솔라

2013.07.23
18:59:40
(*.52.89.88)
주석 추가

무명

2013.09.20
04:27:09
(*.86.193.215)
益部耆舊傳曰:張表,肅子也。華陽國志云:表,張松子,未詳。閻宇字文平,南郡人也。
익주기구전에 따르면 “장표는 장숙의 아들이다. 화양국지에 따르면 장송의 아들이다.“ 했지만 (어느 것이 옳은지) 자세하지 않다. 염우의 자는 문립으로 남군 사람이다.

코렐솔라

2013.09.20
10:12:39
(*.166.245.166)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다니 특이한 경우도 봤군요. 반영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9.20
10:49:38
(*.166.245.166)
사실 둘 중 한명은 여자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군요?!

구라뱅뱅

2021.08.25
12:47:59
(*.114.89.66)
이름/지명/관직 한자 병행 표기
일부 오자 수정

구라뱅뱅

2021.08.25
13:06:16
(*.21.49.97)
叛亂之後,忠撫育卹理,甚有威惠。
주포가 반란을 일으킨 후 3년 만에 평정되었는데 마충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구제하였으며, 가르치고 관리하여 위엄과 은혜가 컸다.
--> 원문에 3년만에 평정이 없기에 이부분 삭제

누락된 아래 원문(주석) 내용 추가
脩弟恢。恢子義,晉建寧太守。
마수(馬脩)의 동생은 마회(馬恢)이다. 진(晉)의 건영태수(建寧太守)가 되었다.
옵션 :
:
: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비추천 수 날짜
공지 삼국지 게시판 도움말 [10] 코렐솔라 9059     2021-08-30
공지 촉서 촉서 목차 링크 재원 355230     2013-07-08
공지 위서 위서 목차 링크 [3] 재원 354043     2013-06-29
공지 오서 오서 목차 링크 [3] 재원 253579     2013-06-28
65 촉서 미축전 [5] 견초 17069     2013-05-28
 
64 촉서 허정전 [4] 견초 16200     2013-05-28
 
63 촉서 법정전 재원 28619     2013-05-27
 
62 촉서 방통전 재원 34304     2013-05-27
 
61 촉서 조운전 [2] 재원 51049     2013-05-27
 
60 촉서 황충전 재원 19426     2013-05-27
 
59 촉서 <배송지주>마등전 [1] 재원 13389     2013-05-27
 
58 촉서 마초전 [2] 재원 29129     2013-05-27
 
57 촉서 비의전 [2] 견초 15671     2013-05-26
 
56 촉서 계한보신찬 [5] 견초 28220     2013-05-04
 
55 촉서 양희전 [2] 견초 10993     2013-05-04
 
54 촉서 요화전 [1] 재원 15453     2013-05-04
 
53 촉서 종예전 [4] 재원 11976     2013-05-04
 
52 촉서 장익전 [4] 견초 12738     2013-05-03
 
51 촉서 등지전 [13] 견초 13336     2013-05-03
 
50 촉서 장완전 [13] 견초 13610     2013-05-03
 
49 촉서 장억전(장의) [10] 견초 13832     2013-05-03
 
48 촉서 왕평전 [1] 견초 16554     2013-05-02
 
» 촉서 마충전 [6] 견초 12218     2013-05-02
마충(馬忠)은 자가 덕신(德信)이고 파서(巴西)군 낭중(閬中)현 사람이다. 어려서 외가에서 길러졌으며 성을 호(弧)라 하고 이름을 독(篤)이라 했는데, 후에 성을 바꾸고 이름을 충(忠)으로 고쳤다. 마충은 군의 관리가 되었고, 건안 말년에 효렴(孝廉)으로 천...  
46 촉서 여개전 [2] 견초 8661     201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