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고원님의 블로그 史랑방




예(宗預)의 자는 덕염(德艶)이고 남양(南陽)군 안중(安衆)현 사람이다.
 
건안(196-220) 중에 장비를 수행해 촉으로 들어왔다. 건흥(223-237) 초, 승상 제갈량이 주부(主簿)로 삼았고 참군 우중랑장으로 관직이 올랐다.
 
제갈량이 죽자 오나라는 혹시 위나라가 촉이 쇠약해진 기회를 틈타 촉을 취할까 우려하여 파구의 수비병을 1만명 증원했다. 이는 우선 촉을 구원하기 위함이고 만일 여의치 않으면 촉을 분할하기 위한 것이었다. 촉이 이 소식을 듣고 또한 영안의 수비를 강화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했다.
 
종예가 명을 받들어 오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손권이 종예에게 물었다.


“동쪽과 서쪽은 한 가족과 마찬가지인데 내가 듣기로 서쪽에서 백제의 수비를 강화했다 하니 어찌된 일이오?”


종예가 대답했다,


“신이 생각컨대 동쪽이 파구의 수비병을 늘리고 서쪽이 백제의 수비병을 늘린 것은 모두 사세상 당연한 일이니 서로 추궁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손권이 크게 웃으며 그의 강직함을 칭찬하며 크게 예우하여 등지와 비의에 버금가는 공경을 받았다.
 
관직이 올라 시중이 되었다가 상서로 전임되었다.
 
연희 10년(247), 둔기교위에 임명되었다. 그때 거기장군 등지(鄧芝)가 강주로부터 돌아와 조정으로 들어왔다.
 
등지가 종예에게 말했다,

“[예기]에서 나이 60이면 군역을 지지 않는다 했는데 경은 병권을 받았으니 어찌된 일이오?”

 
종예가 대답했다,

“경께서는 나이 70에도 병권을 물리지 않으시는데 제 나이 60에 어찌 받지 못하겠습니까?”(1)

(1) 신 송지가 생각컨대, 등지가 종예보다 나이가 많았으니 이는 등지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 것이긴 하나, 종예가 한 이런 식의 답변은 서로 대화할 때 꺼리는 바이다. 이를 기첩(記牒)에 굳이 기재한 것은 번문(煩文-불필요하거나 부적합한 내용)에 가깝다 할 것이다.

등지의 성정이 교만하여 대장군 비의 등을 포함해 모두 그를 피했으나 종예만이 홀로 굽히지 않았다.
 
종예가 다시 오를 방문했다. 손권은 종예와 헤어질 때 그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군이 매번 명을 받아 양국의 우호를 다져왔으나 이제 군의 나이가 많고 고(孤) 또한 쇠로(衰老)해 다시 만나지 못할까 두렵소이다!”


라 하며, 큰 진주 1곡(斛=10斗. 약 20리터)을 선물했다.(2)

(2) 오력 [吳歷]에 이르길 – 헤어질 때 종예가 손권에게 말했다,


“촉의 땅이 후미지고 작아 비록 이웃나라이나 동쪽과 서쪽이 서로 의지하여, 오는 촉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촉은 오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군신이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하니 폐하께서는 오직 이 점에 진력하시기 바랍니다.”


또 말했다,


“나이가 들고 병이 많아 다시 명을 받들어 성안(聖顔)을 뵙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손성(孫盛)이 말했다 – “무릇 제왕을 보좌하는 것은 오직 도의에 따를 뿐이다. 도의가 이미 확고하다면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이길 수 있으니 바로 은(殷)나라와 주(周)나라가 그러했다. 다만 거짓에 힘쓴다면 비록 강국이라도 반드시 패할 것이니 진(秦)나라와 항우가 그러했도다. 하물며 구석에 치우친 변방의 성에 거처하면서 산과 물의 험고함만을 믿고 만 리를 연횡(連橫)한다한들 어찌 오래도록 서로 의지가 되겠는가?

옛날 9국이 합종지계(合從之計)를 세웠으나 진나라는 끝내 6국을 병합했고, 외효와 공손술이 보거지모(輔車之謀-덧방나무와 수레바퀴처럼 서로 도움)를 꾸몄으나 광무제는 끝내 농(隴)과 촉(蜀)을 아울렀다. 무릇 9국의 강성함과 농(隴), 한(漢)의 강대함으로도 서로 구해줄 수 없었고, 앉아서 망해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왜 그랬겠는가? 도덕의 기반이 단단하지 못하면서 강하고 약함을 헤아리는 지혜가 부족했으니 그것이 하나의 이유인 것이다. 그러니 ‘촉 없이 오가 존재할 수 없고, 오 없이 촉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어찌 아첨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촉으로 돌아와 후장군, 독영안(督永安)으로 관직이 올랐고 곧 정서대장군에 임명되고 관내후의 작위를 받았다.
 
경요 원년(258), 병으로 인해 성도로 불려 돌아왔다. 그 뒤 진군대장군 영 연주자사에 임명되었다. 그때 도호 제갈첨(諸葛瞻)이 처음으로 조정의 일을 통괄했는데, 요화가 종예를 방문하여 함께 제갈첨에게 찾아가자고 했다.

[[요화전]]으로 분할
 
종예가 말했다,

“우리 나이가 70을 넘었으니 욕심을 부릴 나이는 이미 지났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소이다. 어린애에게 찾아가 구구절절 늘어놓아봐야 무엇하겠소”

그리고는 끝내 찾아가지 않았다.

함희 원년(264) 봄, 요화와 종예는 함께 낙양으로 옮겨졌는데 도중에 병들어 죽었다.

진수의 평: 종예(宗預)는 손권(孫權)의 위엄에 대항하여, 모두 칭찬할 만한 점이 있다.
분류 :
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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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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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코렐솔라

2013.07.10
15:23:49
(*.104.141.18)
모든 주석이 번역되어있군요. 쳇, 요화전의 링크만 바꿉니다.

재원

2013.07.10
15:24:39
(*.67.12.154)
야 설마 그 작업을 착수하실 줄이야..

코렐솔라

2013.07.10
15:25:30
(*.104.141.18)
관로전 같은 경우는 너무 길어서 올리기 좀 그런 면도 있더군요;;;

구라뱅뱅

2021.08.26
15:08:23
(*.114.89.66)
종예의 죽음 부분이 요화전으로 분리된 부분에만 있기에 이곳에도 추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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