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습(杜襲)은 자가 자서(子緖)이고 영천군(潁川) 정릉현(定陵) 사람이다. 증조부 두안(杜安), 조부 두근(杜根)은 이전 왕조에 명성이 있었다.

先賢行狀曰:安年十歲,名稱鄉黨。至十三,入太學,號曰神童。既名知人,清高絕俗。洛陽令周紆數候安,安常逃避不見。時貴戚慕安高行,多有與書者,輒不發, 以慮後患,常鑿壁藏書。後諸與書者果有大罪,推捕所與交通者,吏至門,安乃發壁出書,印封如故,當時皆嘉其慮遠。三府並辟,公車特徵,拜宛令。先是宛有報 讎者,其令不忍致理,將與俱亡。縣中豪彊有告其處者,致捕得。安深疾惡之,到官治戮,肆之於巿。懼有司繩彈,遂自免。後徵拜巴郡太守,率身正下,以禮化 俗。以病卒官,時服薄斂,素器不漆,子自將車。州郡賢之,表章墳墓。根舉孝廉,除郎中。時和熹鄧后臨朝,外戚橫恣,安帝長大,猶未歸政。根乃與同時郎上書 直諫,鄧后怒,收根等伏誅。誅者皆絹囊盛,於殿上撲地。執法者以根德重事公,默語行事人,使不加力。誅訖,車載城外,根以撲輕得蘇息,遂閉目不動搖。經三 日,乃密起逃竄,為宜城山中酒家客,積十五年,酒家知其賢,常厚敬待。鄧后崩,安帝謂根久死。以根等忠直,普下天下,錄見誅者子孫。根乃自出,徵詣公車, 拜符節令。或問根:「往日遭難,天下同類知故不少,何至自苦歷年如此?」根答曰:「周旋人間,非絕跡之處。邂逅發露,禍及親知,故不為也。」遷濟陰太守, 以德讓為政,風移俗改。年七十八以壽終,棺不加漆,斂以時服。長吏下車,常先詣安、根墓致祠。

두습이 난리를 피해 형주(
荊州)로 갔을 때, 유표(劉表)는 빈객의 예로써 대우했다. 같은 군 사람 번흠(繁欽)은 자주 유표로 하여금 자신의 재능에 놀라게 했다. 두습은 번흠에게 충고하여 말했다.

"내가 당신들과 함께 온 이유는 단지 물속에 잠겨 있는 용처럼 있다가 시절을 기다려 봉황처럼 비상하려는 것이오. 어찌 그대는 유목(劉牧)이 반란을 평정할 수 있는 군주로 생각하고, 나이 많은 것만 보고 그에게 몸을 의탁하려는 것이오? 그대가 만일 이러한 능력밖에 나타낼 수 없다면, 나의 친구가 아니오. 나는 그대와 절교하겠소!"

번흠은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청컨대 경건히 당신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두습은 마침내 남쪽의 장사군(長沙)으로 내려왔다.

건안(建安) 초, 태조(太祖;조조)가 천자를 맞이하여 허현()에 도읍을 정했다. 두습이 고향으로 달려 돌아왔으므로, 태조는 그를 서악현의 장(西鄂長)으로 임명했다. 

서악현은 남쪽 변방 지역과 근접한 곳이므로 침입하는 도적이 횡행했다. 그 당시 현장들은 모두 백성들을 모아 성곽을 지켰으므로 농업을 할 수 없었다. 토지는 황폐해졌고 백성들은 궁핍하였으며 창고는 텅 비어 있었다. 두습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만 된다는 것을 알고 노약자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가 생산을 하도록 하고, 건장한 장정들을 남겨 성을 지키도록 하였으므로, 관리와 백성들은 환대하고 기뻐했다.

마침 형주에서 보병과 기병 만여 명을 출동시켜 성을 공격해 오자, 두습은 즉시 현의 관리와 백성들 중 방어와 수비를 맡고 있는 50여 명을 불러 모아서 그들과 서약을 하려고 했다. 그들의 친척이 밖에 있어 스스로 수호하려고 하는 자는 임의로 성을 빠져나가도록 들어주었는데,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죽을 각오로 성을 지킬 것을 원하였다. 그래서 두습은 직접 화살과 돌을 들고 사람들을 인솔하여 힘을 합쳤다. 관리와 백성들은 그의 은덕에 매우 감동하여 그의 명을 받기를 원했다.

적진에 이르러 적 수백 명을 참수했으나, 두습의 부하들은 30여명이 죽고, 그 나머지 18명은 모두 부상을 입었으므로 적은 성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두습은 부상당한 관리와 백성들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였다. 백성들은 거의 전부가 죽거나 부상당했지만, 그를 배반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마피(摩陂)의 군영으로 옮겼는데, 관리와 백성들은 그를 존경하였고, 그를 따르는 것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구주춘추(九州春秋): 건안(建安) 6년(201) 유표(劉表)가 서악을 공격했다. 서악현장(西鄂長) 두자서(杜子緒)는 현의 남녀와 어린아이를 이끌고 성으로 들어가 지켰다. 당시 남양군의 공조(南陽功曹)였던 백효장(柏孝長) 또한 성안에 있었는데 병사들이 공격하는 소리를 듣고는 몹시 두려워하며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피복을 끌어다 머리를 덮었다. 서로 공격한지 한나절이 되자 점점 얼굴을 밖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날이 밝자 날이 밝자 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이틀째가 되자 집 밖으로 나가 소식을 묻기 시작했다. 4일, 5일째가 되자 방패를 짊어지고 싸움에 숙달되기 시작하니 자서(子緒)에게 말했다: "용기도 배울 수 있구려."

사예교위(司隸) 종요(鍾繇)가 표를 올려 두습을 의랑참군사(議郎參軍事)에 임명할 것을 요청했다. 순욱(荀彧) 또한 두습을 추천하였으므로, 태조는 그를 승상군좨주(丞相軍祭酒)로 임명했다. 

위나라(魏國)가 세워진 후, 시중(侍中)으로 임명되었고, 왕찬(王粲), 화흡(和洽)과 함께 중용되었다. 왕찬은 기억력이 뛰어났고 학문이 넓었기 때문에 태조가 놀이하러 드나들 때 함께 수레를 타고 갈 때가 많았지만, 존경을 받는 점에 있어서는 화흡, 두습에 미치지 못했다. 

두습은 일찍이 혼자 태조를 만나러 가서 밤이 될 때까지 있었다. 왕찬은 경쟁심이 강한 성격이었으므로, 앉아 있다가 일어나 말했다.

"조공이 두습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십니까?"

화흡이 웃으며 대답했다.

"천하의 일을 어찌 모두 알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낮에 조공을 모셨으면 되지 않습니까? 이런 데서 불쾌해 하는 것은 그를 대신하려는 것입니까?"

후에 두습은 승상장사(丞相長史)를 겸임하게 되었고, 태조를 수행하여 한중(漢中)으로 가서 장로(張魯)를 토벌했다. 

태조는 수도로 돌아와서 두습을 부마도위(駙馬都尉)로 임명하고, 남아서 한중의 군사를 통솔하도록 했다. 그는 백성들을 어루만지며 계도하였으므로, 백성들은 스스로 기뻐하며 고향을 나와 낙양과 업성으로 옮기려는 자가 8만여 명이나 되었다. 

하후연(夏侯淵)이 유비(劉備)에게 살해되자, 군대는 원수를 잃게 되었고, 장수와 병사들은 하얗게 질렸다. 

두습은 장합(張郃), 곽회(郭淮)와 연합하여 군대의 모든 사물을 주관하는 한편, 장합을 원수로 임명하여 군사들의 마음을 통일시켰으므로 삼군은 곧 안정되었다.

태조는 동쪽으로 돌아가 유부장사(留府長史)를 선출하여 장안(長安)을 지키도록 했지만, 일을 주관하는 사람이 추천한 자는 대부분 적합하지 않았다. 태조가 명령을 내려 말했다.

"천리마를 방치하고 타지 않으면서 어찌하여 전전긍긍하며 다시 찾으려 드는가?"

그리고 두습을 유부장사로 임명하여 관중에 주둔하여 지키도록 했다. 당시 장군 허유(許攸)는 자신의 부하를 거느리고 태조에게 귀의하지 않고 불손한 말을 뱉었다. 태조는 대단히 화가 났으므로, 그를 우선 토벌하려고 했다. 모든 신하들은 대부분 간언하여 말했다.

"허유를 불러서 회유하면 함께 강한 적을 토벌할 수 있습니다."

태조는 칼을 무릎 위에 비껴 놓고, 듣지 않으려는 기색을 하였다. 두습이 들어가서 간언하려고 했지만, 태조가 거꾸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생각은 결정되었으니 그대는 더 이상 얘기하지 마시오."

두습이 말했다.

"민일 전하의 생각이 옳다면, 신은 곧 전하를 도와 이 일을 성사시키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전하의 생각이 틀리다면, 비록 결정되었을지라도 응당 바꿔야 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신의 선수를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찌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분명하지 못하십니까?"

태조가 말했다.

"허유가 나에게 오만하게 구는데 어떻게 그를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두습이 말했다.

"전하께서는 허유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태조가 말했다.

"보통 사람이오."

두습이 말했다.

"오직 현인만이 현인을 알아보고, 오직 성인만이 성인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어찌 비범한 인물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시랑이가 길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시랑이를 먼저 공격한다면, 사람들은 전하께서 강함을 피하고 약함을 공격하고, 나아감에 용감하지 못하고 물러남에 인자하지 못하다고 할 것입니다. 신은 천근이나 되는 화살로는 쥐의 발등을 맞추지 못하고 1만 석이나 되는 종은 당목으로 소리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보잘것없는 허유가 어찌 전하의 신 같은 무예를 수고롭게 하기에 충분하겠습니까?"

태조가 말했다.

"그대의 말이 옳소"

그래서 허유를 두텁게 어루만졌고, 허유는 즉시 태조에게 귀의했다. 

그 당시 하후상(夏侯尚)은 태자(太子;조비)와 가까웠으며, 인간적인 우애가 지극히 긴밀했다. 두습은 하후상이 이익이 되는 친구가 아니므로 특별한 대우를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태조에게 말했다. 문제(文帝;조비)는 처음에는 매우 불쾌했지만, 후에 두습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관한 말은 <하후상전>에 있다. 그는 부드럽고 군주를 범하지 않는 것이 이와 같았다.

문제가 왕위에 오른 후,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하사했다. 

문제가 황제의 지위에 오르자, 독군양어사(軍糧御史)로 임명했으며, 무평정후(武平亭侯)로 봉했고, 또 독군양집법(督軍糧執法)으로 임명하였고, 중앙으로 들어가 상서(尚書)가 되었다. 

명제(明帝;조예)가 즉위한 후, 승진하여 평양향후(平陽鄉侯)로 봉해졌다. 제갈량(諸葛亮)이 진천(秦川)으로 출격하자, 대장군(大將軍) 조진(曹真)이 군사들을 통솔하여 제갈량을 막아냈을 때, 두습은 대장군 군사(大將軍軍師)로 바꿔 임명되었고, 식읍 중에서 1백 호를 나누어 그의 형 두기()에게 주었으며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주었다.

조진이 죽은 후, 사마선왕(司馬宣王;사마의)이 그의 직무를 대행했고, 두습은 또 군사(軍師)로 임명되어 식읍 3백호가 증가하여 이전 것과 합쳐 5백5십호가 되었다. 질병으로 인해 중앙으로 불려 들어가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임명되었다. 죽은 후에는 소부(少府)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를 정후(定侯)라고 했다. 아들 두회()가 후사를 이었다.

진수의 평: 두습(杜襲)은 온화하고 순수하며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였으니 한 시대의 우수한 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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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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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코렐솔라

2013.07.13
12:50:46
(*.52.89.88)
한문 주석 추가했습니다.

코렐솔라

2021.10.15
02:39:43
(*.219.68.249)
고유명사 한문 추가.

농일 생산을 할 수 없었다.
->
농업을 할 수 없었다.

의랑삼군사->의랑참군사(議郎參軍事)
태중태부->태중대부(太中大夫)

코렐솔라

2021.10.15
03:00:00
(*.219.68.249)
九州春秋: 建安六年,劉表攻西鄂,西鄂長杜子緒帥縣男女嬰城而守。時南陽功曹柏孝長亦在城中,聞兵攻聲,恐懼,入室閉戶,牽被覆頭。相攻半日,稍敢出面。其明,側立而聽。二日,往出戶問消息。至四五日,乃更負楯親鬥,語子緒曰:「勇可習也。」

구주춘추(九州春秋): 건안(建安) 6년(201) 유표(劉表)가 서악을 공격했다. 서악현장(西鄂長) 두자서(杜子緒)는 현의 남녀와 어린아이를 이끌고 성으로 들어가 지켰다. 당시 남양군의 공조(南陽功曹)였던 백효장(柏孝長) 또한 성안에 있었는데 병사들이 공격하는 소리를 듣고는 몹시 두려워하며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피복을 끌어다 머리를 덮었다. 서로 공격한지 한나절이 되자 점점 얼굴을 밖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날이 밝자 옆에 선 사람의 청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이틀째가 되자 집 밖으로 나가 소식을 묻기 시작했다. 4일, 5일째가 되자 방패를 짊어지고 싸움에 숙달되기 시작하니 자서(子緒)에게 말했다: "용기도 배울 수 있구려."


개그물 같은데 이게 과연 진짜 번역일까요 -_-;;;;

구라뱅뱅

2021.10.15
11:18:15
(*.21.49.97)
1. 집에서 문 닫고 머리 덮어 숨음.
2. 出面 함
3. 側立而聽 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음.
4. 出戶

이런식이니, 3항의 번역을 손보시는게 어떠신지요.

코렐솔라

2021.10.15
12:08:41
(*.219.68.249)
아 이게 옆의 소리를 듣는 것이었군요. 얼굴만 내놓은 공조 상대로 '공조님 이건 어떻게 처리할까요?' 하면 거기에 답해주는 그림을 상상하고 있었음요.

날이 밝자 옆에 선 사람의 청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
날이 밝자 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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