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韓暨)는 자가 공지(公至)이고 남양군(南陽郡) 도양현(堵陽縣) 사람이다.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에서 이르길: 한기는 한신(韓信: 韓王信)의 후예이다. 할아버지 한술((韓術)은 하동태수(河東太守)가 되었고, 아버지 한순(韓純)은 남군태수가 되었다.


같은 현의 호족 진무(陳茂)가 한기의 부친과 형을 무고하여 사형에 이르게 되었다. 한기는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일을 찾아 재산을 축적하여 사람을 죽이는 자와 몰래 결탁해, 끝내 진무를 찾아 그의 머리를 부친의 묘에 바치고 제사지냈다. 이로부터 세상에 이름이 나게 되었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고 사공(司空)에 초빙되었지만,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그는 이름과 성을 바꾸고, 노양산(魯陽山) 속으로 전란을 피해 은거했다. 산에 사는 백성들이 도당을 결성하여 약탈을 자행하려고 했다. 한기는 가산을 팔아 고기와 술을 사서 제공하고, 그들의 두목이 되기를 청하고, 그들을 위해 안정과 위험에 대해 진술했다. 산에 사는 백성들은 그에게 설복되었고, 끝내 해를 끼치지 않았다.

원술(袁術)의 초빙을 피하기 위해 산도(山都)라는 산으로 옮겨 거주했다.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가 예로써 초빙하려고 했지만, 도망하여 남쪽의 잔릉현(孱陵)에서 거주했다. 그는 어느 곳에 이르든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유표는 그를 매우 원망했다. 한기는 두려운 나머지 초빙에 응하여 의성현(宜城)의 장(長)이 되었다.

태조(太祖)는 형주(荊州)를 평정하자 한기를 불러서 승상사조속(丞相士曹屬)으로 임명했다. 후에 낙릉태수(樂陵太守)로 선발되었으며, 감치알자(監冶謁者)로 전임되었다.

과거에 금속을 만들 경우에는 마배(馬排 : 말의 힘을 이용하는 것)를 동력으로 삼았는데, 광석을 한 번 달굴 때 마다 말 백 필이 사용되었다. 다시 인배(人拜)로 바꾸었지만, 너무 많은 인력이 소모되었다. 한기는 흐르는 물을 이용하여 수배(水排)를 만들었는데, 이익을 계산하니 이전보다 세 배나 되었다. 7년간 재직하자 기물이 충실해졌다. 태조는 조서를 만들어 그를 포상하고 칭찬하였다. 사금도위(司金都尉)로 임명되었고 지위는 구경(九卿) 다음이었다. 문제(文帝)가 제위에 오르자, 한기는 의성정후(宜城亭侯)로 봉해졌다.

황초(黃初) 7년(238), 태상(太常)으로 승진하였고, 나아가 남향정후(南鄉亭侯)로 봉해졌으며, 식읍이 2백 호나 되었다.

당시 수도를 막 낙양(洛陽)으로 옮겼으므로 제도는 아직 완비되지 않았지만, 종묘의 위패를 모신 석(祏: 석실)은 모두 업도(鄴都)에 있었다. [주] 한기는 상주하여 업도에 있는 네 묘의 신주(神主)를 맞아들여 낙양(洛陽)에 묘를 세우고, 사계(四季)의 제사에는 화제가 직접 공물을 바치기를 청하였다. 그는 정당한 의례를 추앙하여 밝히고, 음란한 제사를 없애고 바로잡은 것이 많았다. 관직에 몸 담은 지 8년째 되던 해에 질병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주]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길: 선조를 전사종석(典司宗祏)에 임명하여 종묘의 신주를 관리하게 하였다.


주(注)에 이르길: 종묘는 석실 안에 감추어 둔다.

경초(景初) 2년(238) 봄, 조칙을 내렸다.

─ 태중태부(太中大夫) 한기는 몸과 덕을 수양하여 뜻과 절개가 고결하며, 나이는 여든이 넘었는데도 바른 도리를 준수함이 더욱 굳으니 가히 순박하고 독실하며, 나이가 들수록 부지런하고 발분한다고 할 수 있다. 한기를 사도(司徒)로 임명하라. ─

여름 4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당시의 평상복으로 염을 하고, 흙으로 된 무덤에 매장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시호를 공후(恭侯)라고 했다.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에 이르길:


한기는 죽음에 임하여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옛 풍속 중에는 재물이 분에 넘치게 많은 사람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에게 베풀고, 이를 받은 넉넉치 못한 사람은 예의로 이를 절약하며 사용하는 것이 있었다. 내가 살면서 전세대의 많은 이들의 장례식에 참여해보니 이 풍속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으니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너희들이 내 말을 경청하고 있다면 내 장례식 때는 평소 입던 옷가지로 염을 하고 묘혈은 땅을 파고 묻는 것(土藏)으로 끝내 편하게 장사지내고 물건을 더 넣는 일은 삼가거라. "

또 상소문을 올렸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제 인생은 백성들을 이롭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였으니 죽을 때도 그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사옵니다. 신이 태사(台司;삼공) 자리에 있지만 일천한 관계로 성덕을 널리 퍼트려 백성을 이롭게 하지 못했사옵니다. 심한 병이 들어 꼼짝 못하고 누워있음에도 병이 낫지 않으니 곧 숨이 끊어져 저승에 갈 것 같사옵니다. 지금이야말로 백성들이 농사에 힘쓸 시기이니 마땅히 노역을 시켜서는 안될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낙양(洛陽)의 벼슬아치와 백성들에게 상복을 입고 공물을 바치라는 명령은 하지 마시옵소서. 국법은 언제나 한결 같아야 한다는 점이 걱정스러우나 신의 개인적인 바람은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기에 감히 무릅쓰고 아뢰니 가엽게 여기시어 어리석은 청을 허락해주소서."

황제가 표를 받고는 탄식하며 한탄하고는 조서를 내렸다:

"고인 사도(司徒) 한기(韓暨)는 큰덕을 쌓고 행하였으며 충성으로 조정을 똑바로 세웠고 황발(黃髮;70~80세)이 되어서도 밝고 곧음이 어지러워지지 않았다. 이윽고 삼공(三事)의 자리에 오르니 그의 도움으로 모자란 것을 채우기 원했건만 어찌 급사할 줄 알았겠는가? 하늘이 그에게 긴 수명을 주지 않았구나! 증삼(曾參)은 죽음에 임하여 대자리를 예에 맞추어 바꾸었고(증자가 죽으면서 자기가 깔고 있던 대자리가 너무 화려하다며 바꾼 일화);안영(晏嬰)은 항상 검소하여 그의 마부마저 검소하게 만들었다.(안영의 마부가 거만하게 나대다 자기 아내한테 구박받음) 이제 사도의 가르침을 알게 되었으니 유언에 따라 반드시 백성을 진휼하겠다고 약속하겠다. 이를 두고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善始令終)라 한 것이다. 상례를 갖추는데 있어 모든 일을 고인의 말과 같이 하되 묻는 물건은 조정의 예에 따르도록 하라. 이를 위해 특히 온명(溫明), 비기(祕器), 옷 1칭(稱), 오시조복(五時朝服), 옥구(玉具), 검패(劍佩)를 하사하겠노라. "


아들 한조(肇)가 뒤를 이었으며, 한조가 죽자 아들 한방(邦)이 뒤를 이었다.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에 이르길:한방(韓邦)의 자는 장림(長林)으로 어릴 때부터 재주와 학문이 있었다. 진무제(晉武帝;사마염) 때 야왕현의 령(野王令)이 되었으며 칭송할만한 치적이 있었다. 후에 신성태수(新城太守)가 되었는데 야왕현의 옛 관리를 신성군의 계리(計吏)로 추천하니 무제가 대노하여 한방을 죽였다.  


한조의 둘째 아들은 한요(韓繇)로 고양태수(高陽太守)였다.

한요의 아들은 한홍(韓洪)으로 시어사(侍御史)였다.

한홍의 아들 한수(韓壽)는 자가 덕정(德貞)이다.  


진제공찬(晉諸公贊): 한기 이후의 자손들은 일생에 거쳐 선대의 유업을 수행하였다. 한수는 가풍을 더욱 소중히 여겼으며 성품은 한층 더 충직하고 순우하였다. 일찍이 한직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혜제(惠帝;사마충)가 즉위하자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되었으며 하남윤(河南尹)이 되었다. 병사하자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추증되었다.  


한수의 아내는 가충(賈充)의 딸이다. 가충은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한수의 아들 한밀(韓謐)을 (입양하여) 뒤를 잇게 하였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비서감시중(祕書監侍中)이 되었다. 성품이 교만하고 방자하였으나 재주는 출중하였다. 가밀의 막내아들은 가울(賈蔚) 또한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다는 평판이 있었으나 가밀과 가울 모두 조왕(趙王) 사마륜(倫)에게 처형당하였다. 이 둘이 죽음으로써 한씨는 멸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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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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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코렐솔라

2013.07.15
11:36:39
(*.0.203.172)
이미 다 추가되어 있네요. 주석에 숫자만 없애고 번역된 거 하나만 추가합니다.

코렐솔라

2021.09.15
17:25:46
(*.219.68.249)
[주] 祏音石 春秋傳曰:命我先人典司宗祏。注曰:「宗廟所以藏主石室者。」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길: 선조를 전사종석(典司宗祏)에 임명하여 종묘의 신주를 관리하게 하였다.

주(注)에 이르길: 종묘는 석실 안에 감추어 둔다.

코렐솔라

2021.10.15
20:02:13
(*.219.68.249)
「夫俗奢者,示之以儉,儉則節之以禮。歷見前代送終過制,失之甚矣。若爾曹敬聽吾言,斂以時服,葬以土藏,穿畢便葬,送以瓦器,慎勿有增益。」


又上疏曰:「生有益於民,死猶不害於民。況臣備位台司,在職日淺,未能宣揚聖德以廣益黎庶。寢疾彌留,奄即幽冥。方今百姓農務,不宜勞役,乞不令洛陽吏民供設喪具。懼國典有常,使臣私願不得展從,謹冒以聞,惟蒙哀許。」


帝得表嗟歎,乃詔曰:「故司徒韓暨,積德履行,忠以立朝,至於黃髮,直亮不虧。既登三事,望獲毗輔之助,如何奄忽,天命不永!曾參臨沒,易簀以禮;晏嬰尚儉,遣車降制。今司徒知命,遺言卹民,必欲崇約,可謂善始令終者也。其喪禮所設,皆如故事,勿有所闕。特賜溫明祕器,衣一稱,五時朝服,玉具劍佩。」


========================

"옛 풍속 중에는 재물이 분에 넘치게 많은 사람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에게 베풀고, 이를 받은 넉넉치 못한 사람은 예의로 이를 절약하며 사용하는 것이 있었다. 내가 살면서 전세대의 많은 이들의 장례식에 참여해보니 이 풍속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으니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너희들이 내 말을 경청하고 있다면 내 장례식 때는 평소 입던 옷가지로 염을 하고 묘혈은 땅을 파고 묻는 것(土藏)으로 끝내 편하게 장사지내고 물건을 더 넣는 일은 삼가거라. "

또 상소문을 올렸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제 인생은 백성들을 이롭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였으니 죽을 때도 그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사옵니다. 신이 태사(台司;삼공) 자리에 있지만 일천한 관계로 성덕을 널리 퍼트려 백성을 이롭게 하지 못했사옵니다. 심한 병이 들어 꼼짝 못하고 누워있음에도 병이 낫지 않으니 곧 숨이 끊어져 저승에 갈 것 같사옵니다. 지금이야말로 백성들이 농사에 힘쓸 시기이니 마땅히 노역을 시켜서는 안될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낙양(洛陽)의 벼슬아치와 백성들에게 상복을 입고 공물을 바치라는 명령은 하지 마시옵소서. 국법은 언제나 한결 같아야 한다는 점이 걱정스러우나 신의 개인적인 바람은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기에 감히 무릅쓰고 아뢰니 가엽게 여기시어 어리석은 청을 허락해주소서."

황제가 표를 받고는 탄식하며 한탄하고는 조서를 내렸다:

"고인 사도(司徒) 한기(韓暨)는 큰덕을 쌓고 행하였으며 충성으로 조정을 똑바로 세웠고 황발(黃髮;70~80세)이 되어서도 밝고 곧음이 어지러워지지 않았다. 이윽고 삼공(三事)의 자리에 오르니 그의 도움으로 모자란 것을 채우기 원했건만 어찌 급사할 줄 알았겠는가? 하늘이 그에게 긴 수명을 주지 않았구나! 증삼(曾參)은 죽음에 임하여 대자리를 예에 맞추어 바꾸었고(증자가 죽으면서 자기가 깔고 있던 대자리가 너무 화려하다며 바꾼 일화);안영(晏嬰)은 항상 검소하여 그의 마부마저 검소하게 만들었다.(안영의 마부가 거만하게 나대다 자기 아내한테 조인트 까임.) 이제 사도의 가르침을 알게 되었으니 유언에 따라 반드시 백성을 진휼하겠다고 약속하겠다. 이를 두고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善始令終)라 한 것이다. 상례를 갖추는데 있어 모든 일을 고인의 말과 같이 하되 묻는 물건은 조정의 예에 따르도록 하라. 이를 위해 특히 온명(溫明), 비기(祕器), 옷 1칭(稱), 오시조복(五時朝服), 옥구(玉具), 검패(劍佩)를 하사한다. "


==============================
葬以土藏 이 부분을 저는 '땅을 파고 묻는 것(土藏)으로 끝내'라고 했는데 해외 번역을 보니 흙으로 만든 토기만 넣고라 번역한 경우도 있더군요. 뒤의 다른 물건 넣지 말라는 부분과 연계되어 그런거 같긴한데... 藏이 매장품과 연결되는 것을 몰라서 저는 한국에서 많이 쓰는 토장으로 해석했어요 .

구라뱅뱅

2021.10.16
07:45:11
(*.64.157.224)
https://www.baike.com/wiki/%E5%9C%9F%E8%97%8F?view_id=87ctorhmn7k00

挖土坑埋葬 이라 한다고 나오니, 지금 번역이 맞네요.

코렐솔라

2021.10.16
09:51:23
(*.219.68.249)
그렇군요. 확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과 당시 중국에서 같은 단어를 다르게 쓰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고민을 하게 되더군요.

코렐솔라

2021.10.16
18:44:28
(*.219.68.249)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에 이르길:한방(韓邦)의 자는 장림(長林)으로 少有才學。晉武帝時為野王令,有稱績。為新城太守,坐舉野王故吏為新城計吏,武帝大怒,遂殺邦。暨次子繇,高陽太守。繇子洪,侍御史。洪子壽,字德貞。

晉諸公贊曰:自暨已下,世治素業,壽能敦尚家風,性尤忠厚。早歷清職,惠帝踐阼,為散騎常侍,遷守河南尹。病卒,贈驃騎將軍。壽妻賈充女。充無後,以壽子謐為嗣,弱冠為祕書監侍中,性驕佚而才出眾。少子蔚,亦有器望,並為趙王倫所誅。韓氏遂滅。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에 이르길:한방(韓邦)의 자는 장림(長林)으로 어릴 때부터 재주와 학문이 있었다. 진무제(晉武帝;사마염) 때 야왕현의 령(野王令)이 되었으며 칭송할만한 치적이 있었다. 후에 신성태수(新城太守)가 되었는데 야왕현의 옛 관리를 신성군의 계리(計吏)로 추천하니 무제가 대노하여 한방을 죽였다.

한조의 둘째 아들은 한요(韓繇)로 고양태수(高陽太守)였다. 한요의 아들은 한홍(韓洪)으로 시어사(侍御史)였다. 한홍의 아들 한수(韓壽)는 자가 덕정(德貞)이다.

진제공찬(晉諸公贊): 한기 이후의 자손들은 일생에 거쳐 선대의 유업을 수행하였다. 한수는 가풍을 더욱 소중히 여겼으며 성품은 한층 더 충직하고 순우하였다. 일찍이 한직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혜제(惠帝;사마충)가 즉위하자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되었으며 하남윤(河南尹)이 되었다. 병사하자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추증되었다.

한수의 아내는 가충(賈充)의 딸이다. 가충은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한수의 아들 한밀(韓謐)을 (입양하여) 뒤를 잇게 하였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비서감시중(祕書監侍中)이 되었다. 성품이 교만하고 방자하였으나 재주는 출중하였다. 가밀의 막내아들은 가울(賈蔚) 또한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다는 평판이 있었으나 가밀과 가울 모두 조왕(趙王) 사마륜(倫)에게 처형당하였다. 이 둘이 죽음으로써 한씨는 멸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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