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전]]에서 분할 
 
세어(世語):

신창()은 자가 태옹(泰雍)이고 관직은 위위(衛尉)까지 올랐다. 신비(辛毗)는 신헌영(辛憲英)이라는 딸이 있었다. 태상(太常)이었던 태산(泰山) 양침(羊耽)의 부인이었다. 외손자였던 하후담(夏侯湛 하후연의 증손)의 ≪위서(魏書)≫ 에는 신헌영의 전기가 있다.

신헌영은 똑똑했다. 예전에 문제 조비가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과 태자 자리를 놓고 다투었는데, 나중에 문제가 태자로 임명되자, 신비를 목(頸)을 껴안고 기뻐하며 말했다. 

"신비는 제가 얼마나 기쁜지 아십니까?"

신비는 이 이야기를 신헌영에게 했다. 신헌영은 그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태자님은 군주에 대신해 종묘, 사직을 지키는 자이니 태자는 우선 근심걱정을 해야 하고, 국가[主國]도 두려워해 합니다. 걱정을 해야 마땅한데 기뻐하다니요. 이것을 보니 위나라가 융성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라고 탄식했다.

남동생 신창(辛敞)은 대장군(大將軍) 조상(曹爽) 참군(參軍)이었다. 사마의(司馬懿)가 조상을 죽이기 위해 조상이 성을 나와 밖으로 나가자 성문을 닫았다. 대장군사마(大將軍司馬) 노지(魯芝)는 조상의 군사를 인솔해 조상으로 향했으며, 이때 신창도 호출해서 같이 가려고 했다. 신창은 매우 놀라 누나인 신헌영에게 가서 말했다.
 
"폐하는 성 밖에 있는데 태부(太傅) 사마의가 성문을 닫았습니다. 사람들은 국가에 불이익을 가져오려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일을 저질러도 괜찮기 때문이 아닙니까?"
 
라고 물었다. 신헌영은 대답했다. 

"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많이 있다만, 추측하기에 사마의는 지금 어쩔 수 없어서 저렇게 하는 것일 것이다. 명제가 돌아가실 때 태부 사마의의 어깨를 붙잡고 이후의 일을 부탁했고, 이는 궁궐 사람들의 귀에 아직도 남아 있다. 사마의와 조상에게 뒷일을 부탁하셨다만, 조상의 전횡은 일삼고 드세지며 행동도 교만해지어, 왕실에 대해서 불충하고, 인도(人道)를 거역하고 있다. 이번에 사마의가 일을 일으킨 것은 조상을 죽이는 것일 뿐일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신창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신헌영이 대답했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조상은 태부 사마의의 적수가 못된다."

신창이 

"그렇다면 성을 나가지 않는 편이 좋을까요?"

라고 물었다.

"나가지 않는 것도 방법이나 직무는 사람의 대의이다. 위험에 있어도 대의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의 하인이 되었다면 그 일을 방폐하는 것은 불길하고, 그 쪽을 위해서 죽어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을 나올 수밖에 방법은 없습니다."

라고 신헌영은 대답했다.

신창은 성 밖으로 나갔고, 사마의는 쿠데타를 성공시키고는 조상을 처형했다. 모든 일이 끝나자 신창은 말했다. 

"내가 누나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인간의 도리를 버린 놈이 될 뻔 했구나."

종회가 진서장군(鎮西將軍)이 되었을 때, 신헌영은 일족의 아들인 조카 양호(羊祜)에게 왜 종사계(鐘士季, 종회)는 서쪽으로 출진하는지 물으니 양호는 촉을 멸망시킬 생각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신헌영은 

"종회는 독단으로 사물을 실시합니다. 언제까지나 신하로 머물러 있을 인간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가 다른 야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걱정입니다."

라고 했으므로, 양호는 

"숙모님, 입을 조심해 주세요."

라고 했다.

종회는 출정 때 신헌영의 아들의 양수(羊琇)를 참군(參軍)으로서 요구했다. 신헌영은 말했다. 

"종회가 밖으로 나갈 때 나는 국가가 걱정되었는데, 오늘 그 걱정이 우리 집안까지 미치는구나. 이번에 종예가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 같구나.(이번의 국가의 큰 반란은 필시 멈추지 않을 것이다[今日難至吾家 此國之大事 必不得止也])"

하였다.

양수(羊琇)는 사마문왕 사마소에게 사퇴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어지지 않았다.

신헌영은 아들에게 

"조심해 가는 거예요. 예부터 군자는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해, 밖에서는 나라에 충성을 맹세해, 일자리에 있어서는 그 의무를 생각하고 도의에 관해서는 가져야 할 태도를 생각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을 유의했습니다. 군대 안에 있어 필요한 것은 오로지 인서(仁恕: 자비심(慈悲心)이 깊고 마음이 어질어, 마음 쓰는 것이 후함) 뿐입니다. 그것을 명심하십시오."

라고 말했다.

신헌영은 그 후 79세까지 살아 태시(泰始) 5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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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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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코렐솔라

2013.07.15
12:11:53
(*.0.203.172)
음 태시 5년에 죽었다는 말이 번역에 빠져있어서 제가 멋대로 추가했습니다.

KM학생

2013.08.04
21:17:28
(*.226.158.233)
재미 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진서 열녀전에 따르면 羊耽妻辛氏,字憲英라고 써있는데 자헌영... 왜 신씨의 자는 헌영이다.라고 되어 있는지.. 헌영이 이름인지 자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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