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何夔는 자가 숙룡(叔龍)이고 진군(陳郡) 양하현(陽夏縣) 사람이다. 그의 증조부 하희(何熙)는 한무제 때 거기장군(車騎將軍)의 관직까지 승진했다. 



화교의 한서(華嶠漢書)에 이르길:하희(何熙)의 자는 맹손(孟孫)으로 少有大志,不拘小節。身長八尺五寸,體貌魁梧,善為容儀。舉孝廉,為謁者,贊拜殿中,音動左右。和帝(佳)〔偉〕之,歷位司隸校尉、大司農。永初三年,南單于與烏丸俱反,以熙行車騎將軍征之,累有功。烏丸請降,單于復稱臣如舊。會熙暴疾卒。



하기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형과 함께 살았으며, 효행과 우애로 칭찬받았다. 그의 신장은 8척 3촌이고, 용모는 근엄하였다.


魏書曰:漢末閹宦用事,夔從父衡為尚書,有直言,由是在黨中,諸父兄皆禁錮。夔歎曰:「天地閉,賢人隱。」故不應宰司之命。


동한 말, 난리를 피해 회남으로 갔다. 후에 원술이 수춘(壽春)으로 가서 그를 초빙하였으나, 하기는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원술에게 붙들려 있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원술은 교유(橋莥)와 연합하여 기양(蘄陽)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기양은 태조가 고수하고 있었다. 원술은 하기가 그 군 사람이었으므로 협박하여 기양 사람들을 설득시키려고 했다. 하기가 원술의 모신 이업(李業)에게 말했다.

“옛날(춘추시대) 유하혜(柳下惠)는 나라를 토벌할 계획을 듣고 걱정하는 기색을 나타내고 말하기를, ‘나는 나라를 토벌하는 일은 어진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 말이 어찌하여 나에게 이르렀는가!’라고 했소.”

그리고 하기는 첨산(灊山)으로 숨었다. 원술은 하기가 결국에는 자기를 위해 쓰이지 않을 것임을 알았으므로 계획을 그만 두었다. 원술의 당형 산양태수(山陽太守) 원유(袁遺)의 어머니는 하기의 당고모이다. 이 때문에 하기를 한스러워했을지라도 해를 끼치지는 못했다.
건안 2년(197)에 하기는 고향으로 돌아오려 했는데, 원술이 반드시 추격하리라고 예상하고 오솔길로 몰래 탈출하여, 다음해에 본군으로 돌아왔다. 오래지 않아 태조는 하기를 불러 사공연속(司空掾屬)으로 임명했다. 당시 원술의 군대가 혼란스럽다는 것을 전하는 자가 있어, 태조는 하기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하기가 대답했다.

“하늘이 도와주는 자는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이 도와주는 자는 사람을 믿습니다. 원술은 하늘에 순응하지 않고 사람을 믿은 사실이 없으면 서 하늘과 사람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데, 이것은 천하에서 원하는 뜻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릇 도를 잃은 군주는 친척들조차 배반하는데, 하물며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임에랴! 저의 생각으로 이 일을 보면 난의 발생이란 필연적인 것입니다.”

태조가 말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을 잃으면 망하게 되오. 그대가 원술에게 임용되지 않았으니, 그곳에 난이 발생하는 것 또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소?”

태조는 성격이 엄했으므로, 연속(掾屬)들은 공무에 관한 일로 왕왕 곤장을 맞기도 했다. 하기는 항상 독약을 가지고 다니며 죽어도 치욕은 받지 않을 것을 맹서하였기 때문에 시종 벌을 받지 않았다.


孫盛曰:夫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是以上下休嘉,道光化洽。公府掾屬,古之造士也,必擢時雋,搜揚英逸,得其人則論道之任隆,非其才則覆餗之患至。苟有疵 釁,刑黜可也。加其捶扑之罰,肅以小懲之戒,豈「導之以德,齊之以禮」之謂與!然士之出處,宜度德投趾;可不之節,必審於所蹈。故高尚之徒,抗心於青雲之 表,豈王侯之所能臣,名器之所羈紲哉!自非此族,委身世塗,否泰榮辱,制之由時,故箕子安於孥戮,柳下夷於三黜,蕭何、周勃亦在縲紲,夫豈不辱,君命故 也。夔知時制,而甘其寵,挾藥要君,以避微恥。詩云「唯此褊心」,何夔其有焉。放之,可也;宥之,非也。


태조는 하기를 밖으로 보내 성부(城父)의 현령으로 삼았으며,


魏書曰:自劉備叛後,東南多變。太祖以陳群為酇令,夔為城父令,諸縣皆用名士以鎮撫之,其後吏民稍定。


또 장광태수(長廣太守)로 승진시켰다. 장광군은 산과 바다에 인접해 있는 지역으로 황건적이 끊이지 않았고, 호걸들은 대부분 조정을 배반했는데, 원담은 그대로 관직을 받았다. 장광현 사람 관승(管承)이 3천여 명의 대중을 모아 난폭하게 해를 미쳤다. 논의하는 사람들은 병사를 일으켜 그를 공격하려고 했는데, 하기가 말했다.

“관승 등은 태어나면서부터 혼란을 좋아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들은 혼란에 익숙해져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덕적인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선(善)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 병사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핍박한다면, 그들은 전멸을 두려워하여 반드시 힘을 합쳐 싸울 것입니다. 그들을 공격하여 뿌리를 뽑는 것도 쉽지 않고, 비록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관리와 백성들이 다치게 될 것입니다. 서서히 은덕으로 깨우쳐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후회하도록 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렇게 하면 병력을 움직이지 않고도 평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군의 승으로 있는 황진(黃珍)을 파견하여 그들에게 일이 성공하고 패했을 때의 득실을 설명하게 했는데, 관승 등은 모두 투항을 요청했다. 하기는 관리 성홍(成弘)을 보내 교위로 인솔하도록 하고, 장광현의 승 등은 소와 술을 예물로 갖고 교외로 가서 그들을 영접하였으며, 귀순한 적장을 군으로 데리고 왔다. 모평현(牟平縣)의 도적 종전(從錢)의 무리 또한 수천 명이나 되었는데, 하기는 군의 병사들을 인솔하여 장료와 함께 토벌하여 평정했다. 동모(東牟) 사람 왕영(王營)은 무리 3천여 명으로 창양현(昌陽縣)을 협박하여 난을 일으켰다. 하기는 관리 왕흠(王欽) 등을 보내 계책을 주어 그들을 분산시키도록 했는데, 10개월만에 모두 평정했다.


그때, 태조는 처음으로 새로운 법령을 제정하여 주와 군에 하달하고, 또 조세와 비단을 거둬들이려고 했다. 하기는 군이 처음 세워졌으며, 최근에 출병하였으므로, 갑자기 법령으로 매어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언했다.

“전란이 있은 이래로 백성들은 기거할 곳을 잃었고, 지금 비록 조금 편안하게 있다고 할지라도 교화되어 복종한 날은 매우 적습니다. 내리신 새로운 법령은 모두 형벌을 명확히 하고 법령을 공포하며, 획일적인 왕도로 다스리는 좋은 법령입니다. 그렇지만 다스리고 있는 여섯 현은 경계가 방금 확정되었고, 게다가 기근도 들었습니다. 만일 일제히 새로 만든 법령을 사용하여 요구한다면, 아마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있게 될 것입니다.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주살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은 백성을 관찰하여 가르침을 세우고, 시대의 상황에 대응하게 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선왕(先王 : 古代의 明君)은 조세를 구복(九服)으로 분별하여 멀고 가까움을 구별하였으며, 삼전(三典)의 형벌을 제정하여 혼란을 다스려 평정시켰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군은 먼 지역, 새로 세운 지역에 맞는 법전에 의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곳 백성들 사이에서의 작은 사건은 장사들로 하여금 그때마다 마땅하게 처리하도록 하면, 위로는 정법(正法)을 어기지 않고 아래로는 백성의 마음에 따를 수 있습니다. 3년만 다스리면, 백성들은 각자의 생업에 안정할 것이고, 그런 연후에 새로운 법령으로 그들을 획일적으로 구속하면 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태조는 그의 건의에 따랐고 하기를 중앙으로 불러 승상(承相)의 군사로 참여시켰다. 해적 곽조(郭祖)가 악안(樂安)과 제남(濟南)의 경계지역에서 약탈을 자행하였으므로 주와 군은 그 점에 대해 고심했다. 태조는 하기가 이전에 장광에서 위신이 있었기 때문에 악안태수(樂安太守)로 임명했다. 하기가 임명된 지 수개월이 지나자 여러 성이 모두 평정되었다.
하기는 중앙으로 들어가 승상 동조의 연(掾)이 되었는데 태조에게 진언했다.

“전쟁이 일어난 이래로 제도가 처음으로 만들어져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근본을 상세하게 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각기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천거하여 관리로 삼고, 어떤 때는 인재를 천거하는 도덕준칙을 잊기도 합니다. 제가 듣건대 ‘현명함을 조건으로 하여 작위를 준다면 백성들은 그들의 품덕을 닦을 수 있고, 공적을 근거로 하여 봉록의 등급을 정한다면 백성들은 다투어 공업을 세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이후로 기용된 인물은 반드시 먼저 고향 마을에서 관련있는 상황에 대한 사찰을 실시하여 연장자와 연소자의 질서를 서로 뛰어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되며, 충성스럽고 정직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어 나타내고, 공정하고 독실한 관리에게 보상을 분명히 하면,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의 구분이 확연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추천한 인물에 대해 보증할 수 있으면서 고의로 부실한 자는 법령을 더하고, 담당 관리에게는 별도로 그 책임을 지도록 하십시오. 조정에 있는 신하들 중에서 당시에 가르침을 받아 동료와 함께 관리 선발에 참여하는 자는 또한 각자 자신들의 직책을 책임져야만 합니다. 위로는 이것으로 조정 신하들의 절개를 관찰하고, 아래로는 경쟁의 근원을 끊어서 여러 신하들을 감독하고 백성들을 인도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천하는 큰 행운을 안게 될 것입니다.”

태조는 하기의 말을 매우 칭찬했다. 위나라가 세워진 후, 하기를 상서복야(尚書僕射)로 임명했다.


魏書曰:時丁儀兄弟方進寵,儀與夔不合。尚書傅巽謂夔曰:「儀不相好已甚,子友毛玠,玠等儀已害之矣。子宜少下之!」夔曰:「為不義適足害其身,焉能害人?且懷姦佞之心,立於明朝,其得久乎!」夔終不屈志,儀後果以凶偽敗。


문제가 태자가 되었을 때, 양무(凉茂)를 태부(太傅)로 삼았고, 하기를 소부(少傅)로 삼았으며, 아울러 이 두 사람이 상서동조와 태자와 함께 제후 관속을 선발하도록 특별히 명령을 내렸다. 양무가 죽은 후, 하기로 하여금 다시 양무를 대신하도록 했다. 매월 초하루, 태부가 궁궐로 들어가 태자를 만났을 때, 태자는 정식 관복을 입고 예의를 다했다. 다른 날에는 회견 의식이 없었다. 하기가 태복(太僕)으로 승진하였을 때, 태자는 그와 이별하려고 재계하고 받들었지만, 하기는 갈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편지를 써서 그를 초대하였지만, 하기는 국가에는 변하지 않는 제도가 있다고 하며 가지 않았다. 그의 행위는 이처럼 단정했다. 그러나 그는 절약을 숭상하는 사회에서 가장 호화롭고 사치스러웠다. 문제는 황제에 즉위한 후, 그를 성양정후(成陽亭侯)로 봉하고 식읍 3백 호를 주었다. 그는 질병으로 인해 누차에 걸쳐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구했다. 문제는 조서를 내려 그에게 대답했다.

- 현자를 예우하고 옛 친구와 친한 것은 제왕의 변하지 않는 일이오. 친근함을 말하면 그대에게는 군왕을 보필하는 공로가 있고, 현명함을 말하면 그대에게는 두텁고 곧은 덕이 있소. 무릇 은덕(隱德)을 실천한 자는 반드시 눈에 보이는 보답을 받게 되오. 지금 그대의 병은 아직 낫지 않았지만, 신명은 나의 말을 들었을 것이오. 그대가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이 나의 뜻을 따르는 것이오.

오래지 않아 하기는 죽었고, 시호를 정후(靖侯)라고 했다. 그의 아들 하증(何曾)이 후사를 이었으며 함희(咸熙) 연간(264~265)에 사도(司徒)가 되었다.



우보진기(干寶晉紀)에 이르길:하증(何曾)의 자는 영고(穎考)이다. 正元中為司隸校尉。時毌丘儉孫女適劉氏,以孕繫廷尉。女母荀,為武衛將軍荀顗所表活,既免,辭詣廷尉,乞為官婢以贖女命。曾使主簿程 咸為議,議曰:「大魏承奏、漢之弊,未及革制。所以追戮已出之女,誠欲殄醜類之族也。若已產育,則成他家之母。於防則不足懲奸亂之源,於情則傷孝子之思, 男不御罪於他族,而女獨嬰戮於二門,非所以哀矜女弱,均法制之大分也。臣以為在室之女,可從父母之刑,既醮之婦,使從夫家之戮。」朝廷從之,乃定律令。晉 諸公贊曰:曾以高雅稱,加性純孝,位至太宰,封朗陵縣公。80여세의 나이로 죽었고,시호를 원(元)이다. 하들 하소(何邵)가 뒤를 이엇다.


하소(何邵)의 자는 경조(敬祖)로 ,才識深博,有經國體儀。位亦至太宰,諡康公。子蕤嗣。 邵庶兄遵,字思祖,有幹能。少經清職,終於太僕。遵子綏,字伯蔚,亦以幹事稱。永嘉中為尚書,為司馬越所殺。傅子稱曾及荀顗曰:「以文王之道事其親者,其 潁昌何侯乎!其荀侯乎!古稱曾、閔,今曰荀、何。內盡其心以事其親,外崇禮讓以接天下。孝子,百世之宗;仁人,天下之令也。有能行仁孝之道者,君子之儀表 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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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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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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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3
10: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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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의 한문주석 추가 저 하증이라는 사람은 사마소 때 승상까지 오른 자라 진서에 내용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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