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훈鮑勛은 자가 숙업(叔業)이고, 태산군 평양현 사람이다. 한의 사예교위를 지낸 포선(鮑宣)의 9대 손이다. 포선의 자손으로 상당에서 태산까지 옮겨와 그곳에서 집을 안착시켰다. 포훈의 아버지 포신(鮑信)은 영제때 기도위로 임명되었다. 대장군 하진은 그를 동쪽으로 보내 군대를 소집하도록 했다. 후에 제북국의 상이 되었는데, 조조를 돕다가 살해되었다. 이에 관한 일은 <동탁전>과 <무제기>에 있다.

위서에 이르길: 포신은 어려서부터 절개가 있었고, 관대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침착, 강인 하며 지모가 있었다. 대장군 하진이 그를 불러 기도위로 임명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병사를 모집하도록 했다. 포신은 천여명을 모집하여 성고로 돌아갔지만, 하진은 이미 해를 입은 후였다. 포신은 중앙으로 왔고, 동탁도 막 도착했다. 포신은 동탁이 반드시 난을 일으킬 것을 알고, 원소에게 동탁을 습격할 것을 권했지만, 원소는 두려워하며 행동을 일으킬 생각을 못했다.

포신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와 병사 2만명과 기병 7백 명,군수물자 5천여 수레를 모았다. 이 해, 조조는 처음으로 기오에서 병사를 일으켰고, 포신의 동생 포도와 모은 병사를 이끌고 조조에 호응했다. 조조는 원소와 함께 표를 올려 포신에게 파로장군을 대행하도록 하게 했고, 한도를 비장군에 임명했다. 당시 원소의 군세가 가장 강성하였으므로 대부분의 호걸들은 그에게로 갔다. 포신은 조조에게


"불세출의 지략으로 영웅들을 통솔하여 난을 진압하고 바르게 할 수 있는 자는 바로 당신입니다. 이런 사람이 아니라면 강할지라도 반드시 망할것입니다. 그대는 하늘이 이끌고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했다. 면수에서의 패배로 포신은 부상을 입었고, 포도는 전사했다. 포신은 조조에게


"간신이 일어나 왕실을 전복시키므로 영웅들이 충절을 다하여 떨쳐 일어나고 천하 사람들이 호응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원소는 맹수가 되어 권력을 이용하고 이익을 챙기고 있으니 장차 난을 일으키면 또 한 명의 동탁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를 누르려고 해도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재난을 구하는 일 또한 성공할 수 없습니다. 황하 남쪽을 살펴 그에게 일이 일어날 것을 기다리십시오."


조조는 그의 말을 들었다. 太祖為東郡太守,表信為濟北相。會黃巾大眾入州界,劉岱欲與戰,信止之,岱不從,遂敗。語在武紀。太祖以賊恃勝而驕,欲設奇兵挑擊之於壽張。先與信出行戰 地,後步軍未至,而卒與賊遇,遂接戰。信殊死戰,以救太祖,太祖僅得潰圍出,信遂沒,時年四十一。雖遭亂起兵,家本修儒,治身至儉,而厚養將士,居無餘 財,士以此歸之。


건안 17년(212)에 조조는 포신의 공적을 기록하고, 표를 올려 포훈의 형 포소를 신도정후로 임명했다.

魏書曰:邵有父風,太祖嘉之,加拜騎都尉,使持節。邵薨,子融嗣。


그리고 포훈을 불러 승상의 연으로 삼았다.


魏書曰:勛清白有高節,知名於世。

22년(217)에 태자를 세우도 포훈을 중서자로 임명했다. 황문시랑으로 전임되었으며 지방으로 나가서 위군서부도위가 되었다. 태자 곽 부인의 동생은 곡주현의 관리가 되었는데, 관의 베를 훔쳤으므로 법률에 따라 참수하여 시장에 버렸다. 조조는 당시 초현에 있었고, 태자만이 업성에 남아 있었다. 태자는 그를 위해 여러 차례 친히 편지를 써서 죄를 사면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포훈은 감히 독단적으로 석방시키지 않고 사실대로 상세하게 보고했다. 포훈이 이전에 동궁에 있을 때, 공정한 태도를 고수하며 굽히지 않았으므로 태자는 당연히 좋아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일이 겹쳤으므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이 더욱 심해졌다. 마침 군의 경계지역에 배치했던 휴가중인 병사로 기한을 어긴 자가 있어 은밀히 중위에게 명하여 상주하도록 하여 포훈을 면식시켰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자, 다시 시어사로 임명했다.

연강 원년(220)에 조조는 세상을 떠났고, 태자가 왕의 자리에 즉위하였으며, 포훈은 부마도위의 신분으로 시중을 겸임했다. 문제가 선양을 받아 즉위한 후, 포훈은 항상 그에게 말했다.

"현재 급박한 것은 오직 군사와 농경뿐이니 백성들에게 관대하고 은혜롭게 대하십시오, 누각과 정자, 그리고 동산은 응당 뒤로 해야 합니다."

문제가 수렵하러 궁궐을 나가려고 할 때, 포훈은 수레를 멈추게 하고 말했다.

"신은 오제와 삼왕이 본업을 밝혀 교화를 세우지 않은 적이 없고, 효도로써 천하를 다스렸다고 들었습니다. 폐하의 어짐과 성덕과 백성들을 측은해 하는 마음은 고대의 빛났던 선왕과 똑같습니다. 신은 폐하께서 당연히 전대 명왕의자취를 계승하여 만대로 하여금 폐하로써 준칙으로 삼을 수 있게 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어떻게 복상기일 중에 말을 달려 수렵을 할 수 있습니까! 신은 죽음을 각오하고 이 말을 하니, 폐하께서는 신의 마음을 살펴주십시요."

문제는 그 표를 직접 찢고 수렵을 떠났다. 가는 도중에 갑자기 멈추더니 수행하는 신하에게 물었다.

"수렵하는 즐거움을 음악과 비교하면 어떻소?"

시중 유엽이 대답했다.

"수렵하는 것이 음악보다 낫습니다."

포훈이 반박하여 말했다.

"무릇 음악이란 위로는 신명에 통하고, 아래로는 인리를 조화롭게 하고, 정치를 융성하게 하고 교화를 실행하여 온 지역이 평안하게 다스려지게 합니다. 풍속을 바꾸는 데는 음악에 비해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수렵은 황상의 화려한 수레 덮개를 들녘에 드러내어 생육의 지극한 이치를 상하게 하고 바람이 불고 비가 떨어지는 계절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옛날 노은공은 당으로 가서 물고기를 보았는데도, <춘추>에서는 이 일을 풍자했습니다. 비록 폐하께서 수렵을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어리석은 신하는 이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주했다.

-유엽은 간사하고 아첨하며 충직하지 않습니다. 그는 폐하의 과분하고 농담하는 말에 영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양구거는 천대에서 아첨하는 말을 했는데, 유엽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컨대 담당관리가 죄를 의논하여 황조를 밝게 하도록 하십시오.

문제는 노여운 얼굴을 하고, 수렵가던 것을 멈추고 궁궐로 돌아와 즉시 포훈을 우중랑장으로 삼았다.

황초 4년(223), 상서령 진군과 복야 사마선왕은 함께 포훈을 궁정으로 추천하였는데, (궁정은 즉 어사중승이다.) 문제는 부득이 그를 기용했는데, 모든 관료들은 푸훈이 꺼리는 것을 두려워하며 숙연해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황초 6년(225) 가을에 문제는 오나라를 정벌하려고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크게 논의하도록 했는데, 포훈이 정면을 향하고 간언했다.

"왕의 군대가 자주 정벌하러 나갔지만 승리하지 못한 것은 모두 오와 촉 두나라가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자하고 있고, 산과 물의 험난함에 기대어 있어 공격하여 얻기 어려운 지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오를 정벌한 때 용주가 표류하여 오나라 군사가 있는 남쪽 해안에 떨어져 있었으며, 폐하의 옥체는 위험에 처했고, 신하들은 간담이 부서질 지경이었습니다. 이때 종묘는 거의 기울어 엎어지려고 하였으니, 이것은 백대의 교훈이 될 것입니다. 지금 또 병사를 수고롭게 하여 먼 곳에 있는 적을 습격한다면, 하루에 천 금을 소비하게 되어 중국의 재물은 고갈될 것이고, 교활한 포로로 하여금 우리 군대를 놀리도록 하게 될 것이므로, 신은 사사로이 생각해 보건대 할 수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매우 화가 나서 즉시 포훈을 치서집법으로 좌천시켰다.

문제는 수춘에서 돌아와 진류군의 경계지역에 주둔했다. 진류태수 손옹은 문제를 보고 나가서 포훈을 방문했다. 당시 진영의 보루가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표지를 세웠는데, 손옹은 비껴서 가고 바른 길로 가지 않았다. 군영 영사 유요가 그를 심문하려고 했는데, 포훈은 보루가 완성되지 않았으니 용서하고 문제로 삼지 말도록 했다. 대군이 낙양으로 돌아오자, 유요가 죄를 지었으므로, 포훈은 면직시킬 것을 상주했다. 그러나 유요는 몰래 포훈이 사사로이 손옹의 일을 불문에 붙인 것을 상주했다. 문제가 조서를 내렸다.

-포훈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고 있다. 체포하여 정위에 넘기도록 하라.

정위는법에 따라 논의하여 말했다.

"징역 5년으로 판결한다."

삼관이 반박했다.

"법률에 따르면 벌금 두 근이면 됩니다."

문제는 대단히 화가 나서 말했다.

"포훈은 살려줄 만한 여지가 없거늘, 너희들이 감히 그에게 관용을 베풀려고 하다니, 삼관 이하의 담당 관원을 체포하여 자간으로 넘기고, 열 마리의 쥐와 같은 동굴에 있도록 하라."

태위 종요, 사도 화흠, 진군대장군 진군, 시중 신비, 상서 위진, 수연의 고유등이 공동으로 표를 올렸다.

"포훈의 아버지 포신은 태조(조조)를 위해 공을 세웠습니다."

포훈의 죄를 사면해 줄 것을 청했다. 문제는 받아들이지 않고, 포훈을 처형했다. 포훈은 집에서 행동을 닦고 청렴을 실행하였으므로 죽었을 때, 집에는 남아 았는 재산이 없었다. 2년이 지난 후, 문제 또한 붕어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포훈의 억울한 죽음을 한탄했다.

분류 :
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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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3
12:58:28 (*.104.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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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3
10:23:54
(*.52.89.87)
한문주석 추가했습니다. 역시나 포신의 경우 뒷 얘기가 더 있었네요.

코렐솔라

2013.09.24
20:08:51
(*.166.245.166)
기욕->기용 구렵->수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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