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전(于禁傳)
 
우금(于禁)의 자는 문칙(文則)이고 태산(泰山) 거평(鉅平) 사람이다. 
 
황건적이 봉기하자 포신(鮑信)이 무리들을 불러 모았고 우금이 이에 부종(附從-의탁해서 뒤따름)했다. 태조(太祖-조조)가 연주(兗州)를 다스리게 되자 우금은 그의 무리와 함께 나아가 도백(都伯-하급 무관직 ※ 참고)이 되었고 장군 왕랑(王朗)에 속했다. 왕랑이 그를 높이 평가해, 우금이 대장군을 맡을 재능이 있다고 추천했다. 태조가 우금을 불러 대화를 나누어 보고 군사마(軍司馬)로 삼고, 군을 이끌고 서주(徐州)로 나아가 광위(廣威)를 공격하게 하여 이를 함락시켰다. 함진도위(陷陳都尉)에 임명했다. 
 
(※ 『통전』< 병전>에 인용된 조조의 보전령(步戰令-보병전투에 관련된 군령) 중에서 - "오(伍) 중에 진격하지 않는 자는 오장(伍長)이, 오장 중에 진격하지 않는 자는 십장(什長)이, 십장 중에 진격하지 않는 자는 도백(都伯)이 (그의 죄를 물어) 죽인다")
 
태조를 수행해 복양(濮 陽)에서 여포를 토벌했는데, 별도 군으로 성 남쪽에서 여포의 2영(營)을 격파했다. 또한 별도로 군을 인솔해 수창(須昌-연주 동평국 수창현)에서 고아(高雅)를 격파했다. 태조를 수행해 수장(壽張-연주 동평국 수장현), 정도(定陶-연주 제음군 정도현), 이호(離狐-제음군 이호현)를 공격하고, 옹구(雍丘-진류군 옹구현)에서 장초(張超)를 포위해 모두 함락시켰다. 
 
태조를 수행해 황건적의 유벽(劉 辟), 황소(黃邵) 등을 정벌하기 위해 판량(版梁)에 주둔했는데, 황소 등이 태조의 둔영을 야습(夜襲)하자 우금이 휘하 군을 통수해 그들을 격파해 황소 등을 참수하고 그 무리들을 모두 항복시켰다. 평로교위(平虜校尉)로 올렸다. 태조를 수행해 고(苦-예주 진국 고현)에서 교유(橋蕤)를 포위하고 교유 등 4명의 장수를 참수했다.
 
태조를 수행해 완(宛 -형주 남양군 완현)에 이르러 장수(張繡)를 항복시켰다. 장수(張繡)가 다시 모반하자 태조는 싸움이 불리해 패하고 무음(舞陰-형주 남양군 무음현)으로 돌아왔다. 이때 군중에 난이 일어나 장수들은 각각 태조를 구하러 갔는데, 단지 우금 만이 휘하의 군사 수백 명을 이끌고, 싸우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며 비록 사상자가 생겨도 진을 흩뜨리지 않았다. 그러다 적의 추격이 느슨해지자 서서히 행대(行隊)를 정돈한 채 북을 울리며 돌아왔다. 
 
태조가 있는 곳에 당도하기 전, 도로에서 십여 명이 창에 찔려 부상을 입은 채 알몸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 우금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들이 대답하길, 청주병(靑州兵)에게 약탈당했다고 했다. 당초 황건적이 항복했을 때 그들을 청주병이라 이름하고 태조가 관용을 베풀었었는데 이 때문에 감히 노략질을 일삼은 것이다. 
 
우금이 노하여 그 무리들에게 말했다, “청주병도 함께 조공(曹公-조조)에 속하는데 다시 도적질을 한단 말인가!” 이에 그들을 토벌하고 여러 명의 죄를 물었다. 청주병이 급히 태조에게로 달아나 고해 바쳤다. 우금은 도착한 뒤 먼저 영루(營壘)를 세우며 곧바로 태조를 찾아가 배알하지 않았다. 
 
어떤 이가 우금에게 말했다,


“청주병이 이미 군(君-2인칭 존칭)을 고해바쳤으니 서둘러 공께로 나아가 변명해야 합니다.”


우금이 말했다,


“지금 적이 배후에 있어 어느 때고 들이칠 터인데, 먼저 방비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적을 감당할 수 있겠소? 게다가 공께서 총명(聰明)하시니 참소(譖訴)가 어찌 통하겠소!”


천천히 참호를 파고 영채를 안돈시킨 후에야 비로소 조공을 배알하고 그간의 정황을 진술했다. 
 
태조가 기뻐하며 말했다,


“육수(淯水) 에서 겪은 곤란으로 나는 참으로 급박했소. 그러나 장군은 변란에 처해서도 군사를 정돈해 적을 치고 보루를 단단히 했으니 불가동(不可動-위기에 처해 함부로 망동하지 않음)의 절조가 있다 할 만하오. 비록 옛 명장(名將)이라 한들 어찌 이보다 뛰어날 수 있겠소!”


이에 우금의 앞뒤 공을 따져 익수정후(益壽亭侯)에 봉했다. 
 
다시 태조를 수행해 양(穰-형주 남양군 양현)에서 장수(張繡)를 공격하고, 하비에서 여포를 사로잡았다. 별도로 사환(史渙), 조인(曹仁)과 함께, 사견(射犬-하내군 야왕현 일대)에서 휴고(眭固)를 공격해 깨뜨리고 그를 참수했다.
 
태조가 처음 원소를 정벌할 때 원소의 병력이 강성했으나 우금은 선봉이 되기를 자원했다. 태조가 이를 장하게 여기고 보졸 2천 명을 주어 이끌게 했다. 우금은 연진(延津-황하 나루터. 진류군 산조현 북쪽)을 지키며 원소와 맞섰고 태조는 군을 이끌고 관도(官渡)로 돌아갔다. 
 
유비가 서주(徐州)를 들어 모반하자 태조가 동정(東征)했다. 원소가 우금을 공격했는데 우금이 견수(堅守)해 함락시킬 수 없었다. 또한 악진 등과 함께 보기(步騎-보병과 기병) 5천을 이끌고 원소의 별영(別營)을 들이치고, 연진 남서쪽으로부터 황하를 따라 급(汲-하내군 급현), 획가(獲嘉-하내군 획가현)의 2현에 이르기까지 보취(保聚) 30여 둔(屯)을 불사르고 적군을 참수하고 사로잡은 것이 각각 수 천에 이르렀고, 원소의 장수 하무(何茂), 왕마(王摩) 등 20여 명의 항복을 받았다. 
 
태조는 다시 우금을 보내 별도로 군을 이끌고 원무(原武-하남군 원무현)에 주둔시켰는데, 두씨진(杜氏津)에 있던 원소의 별영(別營)을 격파했다. 비장군(裨將軍)으로 올렸다.
 
그 뒤 태조를 수행해 관도로 돌아왔다. 태조는 원소와 더불어 진영을 잇달아 세우고 토산(土山)을 만들어 서로 대치했다. 원소가 진영 안으로 활을 쏘아대자 사졸들이 다수 죽거나 부상을 입어 군중에서 이를 두려워했다. 우금이 토산을 맡아 지키며 힘을 다해 싸우고 기백을 떨쳤다. 원소를 격파하고, 편장군(偏將軍)으로 올렸다.
 
기주(冀州)가 평정되고 창희(昌豨)가 다시 모반하자 우금을 보내 이를 정벌케 했다. 우금이 급히 진격해 창희를 들이쳤다. 창희는 우금과 교분이 있었으므로 우금에게로 나아가 항복했다. 제장들은 모두 창희가 이미 항복했으므로 응당 태조에게로 호송해야 한다고 했다. 
 
우금이 말했다,


“제군들은 공의 상령(常令)을 모른단 말이오! 포위당한 후에 항복한 자는 사면하지 않는다 했소. 무릇 법을 받들고 영을 행하는 데(奉法行令) 으뜸되는 것이 절(節-절도, 절조)이오. 비록 창희가 옛 벗이긴 하나 나 우금은 절(節)을 잃을 순 없소!” 직접 창희의 형을 집행했는데 눈물을 흘리며 참수했다. 
 
이때 태조는 순우(淳于-청주 북해국 순우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창희가 내게로 와 항복하지 않고 우금에게 항복했으니, 어찌 그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우금을 더욱 중하게 여겼다. (주1) 

(주 1) 신 송지(松之-주석을 단 배송지)가 살펴보건대, 포위당한 뒤에 항복한 자는 군법에서 사면하지 않는다 했으나, 죄인을 호송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명을 거스른 것이다. 우금이 예전에 (창희와) 교분이 없었다면 만에 하나 있을 수도 있는 일이나, 방자하게도 호살지심(好殺之心)을 품고 중론을 저버렸다. 이 때문에 (훗날) 졸지에 항로(降虜- 항복한 포로)가 되고 죽은 후에 추악한 시호가 더해진 것이니 당연한 일이로다.

동해(東海-서주 동해군)가 평정되자 우금을 호위장군(虎威將軍)에 임명했다. 

그 뒤 우금은 장패(臧霸) 등과 함께 매성(梅成)을 공격하고, 장료, 장합 등은 진란(陳蘭)을 공격했다. 우금이 도착하자 매성은 그 무리 3천여 명을 이끌고 항복했다. 그러나 항복한 후 다시 모반하여 진란에게로 달아났다. 장료 등은 진란과 서로 대치하며 군식(軍食-군량)이 부족했는데, 우금이 군량을 계속 보내주어 마침내 장료가 진란, 매성을 참수했다. 식읍을 2백 호 늘려주어 예전과 합해 모두 1,200 호가 되었다. 
 
이 무렵 우금, 장료, 악진, 장합, 서황이 모두 이름난 장수(名將)로, 태조가 매번 정벌할 때마다 행군할 때는 군의 선봉이 되고 군을 물릴 때는 배후를 지켰다. 우금은 군을 이끌 때 엄정(嚴整)하였고 적의 재물을 얻어도 사사로이 차지하는 일이 없어 이 때문에 특히 중한 상(賞)을 받았다. 그러나 법(法)으로 아랫사람들을 다스려 병사들의 환심을 크게 얻지는 못했다. 
 
태조가 주령(朱靈)을 항상 증오하여 그의 군영을 뺏고자 했는데, 우금이 위중(威重-위엄이 높음)했으므로 우금으로 하여금 수십 기(騎)를 이끌고 명령서를 갖고 가게 했다. 우금이 곧장 주령의 군영에 도착해 그 군(軍)을 빼앗았으나 주령과 그 부중(部衆)들은 감히 저항하지 못했다. 그리고 주령을 우금의 부하독(部下督-우금이 이끌던 部 휘하의 督)으로 삼게 했으나 그 무리들이 모두 진복(震服-두려워 떨며 복종함)했으니, 사람들이 우금을 두려워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좌장군(左將軍)으로 올리고 절월을 내렸다.(假節鉞) 식읍 5백 호를 떼어내어 아들 한 명을 열후로 봉했다.
 
건안 24년(219년), 태조가 장안(長安)에 있을 때 조인으로 하여금 번(樊)에서 관우를 치게 하고 또한 우금을 보내 조인을 돕게 했다.
 
가을, 큰 장마비가 내렸다. 한수(漢水)가 범람해 평지에 물이 차올라 수 장(丈)에 이르렀고 우금 등의 칠군(七軍)이 모두 물에 잠겼다. 우금이 제장들과 함께 고지에 올라 물을 바라보니 회피할 길이 없었고, 관우가 큰 배를 타고 와서 우금 등을 공격하자 마침내 우금은 투항하고, 오직 방덕(龐德)만이 절의를 굽히지 않고 (싸우다) 죽었다. 태조가 이 일을 듣고 오랫동안 애탄(哀歎)해 하며 말했다,


“내가 우금을 30년 동안 알고 지냈지만 위난에 처하자 오히려 방덕보다 못하리라는 것을 어찌 짐작했겠는가!” 
 
때마침 손권이 관우를 사로잡고 그 군사들을 포획하자 우금은 다시 오(吳) 로 보내졌다. 문제(文帝-위문제 조비)가 황제가 되고 손권이 칭번(稱藩)하자 우금을 돌려보냈다. 문제가 우금을 인견(引見-불러서 만남)했다. 우금은 수염과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형용이 초췌했는데,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頓首) 문제는 순림보(荀林父)와 맹명시(孟明視)의 고사를 들어 그를 위로하고(주2) 안원장군(安遠將軍)에 임명했다. 

(주2) 위서(魏書)에 기재된 제(制-제서. 공문의 일종)에서 이르길 – “옛날 순림보가 필(邲) 땅에서 패했고, 맹명은 효(殽) 땅에서 군을 잃었으나 진(秦)과 진(晉)은 그들을 교체하지 않고 그 직위에 다시 올렸다. 그 후 진(晉)은 적토(狄土-북적의 땅)를 획득하고 진(秦)은 서융(西戎)과 구구한 소국들을 제패했으니 오히려 이와 같았다. 하물며 만승(萬乘-천자)의 지위인 짐이겠느냐? 번성에서의 패배는 수재(水災)가 사납게 닥친 것일 뿐 싸움에서 잘못한 것이 아니니 우금의 관등(等官)을 복구한다.”

 
오(吳) 에 사자로 보내고자 하여 우선 북으로 업(鄴)에 가서 고릉(高陵-조조의 능묘)을 참배하도록 했다. 문제는 미리 사람을 보내 능옥(陵屋)에 관우가 싸움에서 이기고 방덕이 분노하며 우금이 항복하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우금이 이를 보고 부끄럽고 분한 마음에 병을 얻어 죽었다. 
 
아들인 우규(于圭)가 후사를 이어 익수정후(益壽亭侯)에 봉해졌다. 시호를 내려 여후(厲侯)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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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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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10.01
00: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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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벽, 황소 등을 처형하고 에서 유벽이 생략된 이유는 고원님이 번역하신 원문이 중화서국본 1999년판인데 이곳에는 벽짜가 생략되어 있다고 하군요. 그래서 여기는 처형당하는 곳에서 유벽을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벽을 처형한다는 내용의 경우는 집해에는 그대로 처형했다고 나와있으니 그쪽을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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