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삼국지 - 이통전

이통(李通)은 자가 문달(文達)이고 강하군 평춘현 사람이다. 

[1] [위략]에 이르기를 이통의 소자(어릴 때 이름)를 만억
(萬億)이라 한다.

의로운 행동과 협기로써 장강과 여수 사이에 서 명성을 떨쳤다. 그는 같은 군 사람 진공과 함께 낭릉에서 군대를 일으켰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귀의했다. 그 당시 주직(周直)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부하가 2천여 가구나 되었다. 진공과 이통은 겉으로는 조화를 이루었으나, 속으로는 틈이 벌어져 있었다. 이통은 진공에게는 과단성이 없음을 알았으므로 독자적으로 계책을 정하여 주직과 회합을 열어 주흥이 무르익었을 때 주직을 살해했다. 사람들은 큰 소동을 벌였지만, 이통은 진공을 이끌고 그 도당의 두목을 주살하고, 그 진영을 모두 병합했다. 후에 진공의 처남 진합이 진공을 죽이고, 그의 부하들을 다스렸다. 이통은 진합의 군대를 공격하여 무찌르고, 진합의 머리를 베어 진공의 무덤에 제사지냈다. 또 황건군의 대통사 오패를 사로잡았고 그의 부하들을 투항시켰따. 마침 대기근을 만나자, 이통은 집이 기울 정도로 베풀고 가산을 모두 흩어 구제하고, 사졸들과 함께 거친 음식을 먹었으므로, 모두 다투어 그를 위해 공을 세우려 했다. 이로 말미암 아 도적은 감히 그를 침범하지 않았다. 


건안 초, 이통은 그의 무리를 이끌고 허창에서 조조를 알현했다. 조조는 이통을 진위중랑장(振威中郞將)으로 임명하고, 여남 서쪽 경계 지역에 주둔하도록 했다. 조조가 장수(張繡)를 정벌할 때, 유표가 병사를 보내 장수를 도왔으므로 조조의 군대가 불리했다. 이통은 병사를 이끌고 밤에 와서 조조를 만났으며, 조조는 그의 부대를 다시 출전시키고, 이통이 선봉을 담당하도록 하여 장수군을 크게 이겼다. 조조는 이통을 비장군으로 임명하고 건교후(建巧侯)로 봉했다. 여남군을 두 현으로 나누고, 이통을 양안도위로 임명하여 관리하도록 했다. 이통 아내의 백부가 법률을 범하였으므로, 낭릉(朗陵)의 장 조엄(趙儼)이 체포하여 사형 판결을 내렸다. 그 당시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한은 목(牧)이나 태수 손에서 결정되었으므로, 이통의 아내는 울면서 그의 목숨을 구제해 달라고 간청했으나, 이통이 말했다. 

"나는 조공과 함께 대업을 완성하려고 힘을 다하고 있소. 절대로 사사로운 정 때문에 공적인 법을 버릴 수는 없소." 

이통은 조엄이 법을 집행하는데 시류에 영합하지 않으려는 것을 가상히 여겨 그와 좋은 친구 관계를 맺었다. 조조가 원소와 관도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원소가 사자를 보내 이통을 정남장군(征南將軍)으로 임명했고 유표가 몰래 또다시 이통을 불렀으나 이통은 모 두 거절했다. 

이통의 친척과 부하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 당신은 고립되어 위험한 상황에서 단독으로 지키고 있는데, 강대한 원조를 잃으면 지키며 기다릴 방법도 없으니, 빨리 원소에게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듯합니다." 

이통은 칼을 움켜쥐고 그들을 질타하며 말했다. 

"조공은 현명하고 이치에 밝아 반드시 천하를 평정할 것이오. 원소는 비록 지금은 강성하지만, 함부로 임용하고 계책도 없으니 결국에는 조공의 포로가 될 것이오. 나는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조공에게 두 마음을 가질 수는 없소." 

즉시 원소의 사자를 죽이고, 인수(印綬)를 조조에게 보냈다. 또 군 안에 있는 도적 적공(翟恭),강궁(江宮),심성(沈成) 등을 공격하여 남김 없이 무찌르고 그들의 머리를 조조에게 보냈다. 그리고 회하와 여수 일대를 평정하였으니 도정후로 바꿔 봉하고, 여남태수로 임명했다. 이 때 도적 장적(張赤)등 5천여 명이 도산(桃山)에 모였는데, 이통이 그들을 공격하여 무찔렀다. 유비와 주유는 강릉에서 조인을 포위하여 공격하고 따로 관우를 보내 북쪽길을 끊어 놓았다. 이통은 부대를 인솔하여 관우를 공격하고 말에서 내려 방책을 걷어내고 포위권으로 진입하여 싸우면서 앞으로 나가 조인의 군사를 구출했는데, 무용이 여러 장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이통은 도중에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는데, 그 해 42세였다. 식읍 2백 호를 추증하여 이전 것과 합쳐 4백 호가 되었다. 문제가 제위에 즉위한 후, 시호를 강후(剛侯)라고 하였으며, 조서를 내렸다. 

--- 옛날에 원소가 병사를 일으켜 어려웠을 때, 허(許),채(蔡) 남쪽에서부터 사람들이 다른 마음을 품었다. 그러나 이통은 도의를 지키고 다른 것을 돌아보지도 않았으며, 마음 속에 두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충심을 따르도록 하였으므로 짐은 그를 매우 가상하게 여겼다. 불행하게 도 일찍 죽어 아들 이기(李基)가 비록 작위를 계승했지만, 그의 공훈에 보답하기에는 부족하다. 이기의 형 이서(李緖)는 이전에 번성에 주둔하였고, 또 전공을 세웠다. 지금 그의 공로를 중시하여 이기를 봉의중랑장으로 임명하고, 이서를 평로중랑장으로 임명하여 그 들을 특별히 총애하라. [2]

[1] 왕은의 [진서]에 이른다.

이서의 아들 이병은 자를 현위라 하며, 준재였으므로 당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관위는 진주자사까지 올랐다. 이병은 사마문왕(사마소)의 질문에 답한 적이 있었으니, 이를 가지고 [가계]를 지었다.

------ 이하의 부분은 따로 단락 구분이 안되어 있는데, 내용를 보니 [가계]의 내용으로 생각됨 ----

과거 선제를 곁에서 모신 적이 있는데, 당시 세 사람의 장관이 파직되었다. (그들을) 퇴출하려고 한 때에 상께서 말씀하셨다.

"관리의 우두머리가 된 자는 청렴하고, 신중하고, 근면해야 한다. 이 세가지를 마음에 새기고 있다면 어찌 다스려지지 않음을 걱정하겠는가?"

이렇듯 말씀하시며 그들을 내쫓으시며 상께서는 우리들을 둘러보며 다시 말씀하셨다.

"잘못을 경계하려면 이리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주상의 곁에 있는 지혜있는 자들 가운데 이에 찬성치 않는 자가 없었다. 상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겠는가?"

어떤 자가 답하여 상신했다.

"청렴이야말로 근본일 것입니다."
 
뒤이어 내게 하문하셨으므로 답하여 상신하였다.

"청렴함과 신중함은 서로 상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나, 무엇이 불가결한가 한다면 신중함이야말로 중요할 것입니다. 청렴한 자가 모두 신중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신중한 자는 필시 모두 청렴할 것이니, 인덕있는자는 필시 용기가 있을 것이나 용기있는자가 반드시 인덕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역경]에서 주머니를 묶으면 근심이 없고,   자리를 깔며 백모白茅를 쓴다고 칭함도, 모두 신중함의 극치입니다."

상께서는 말씀하셨다.

"경의 말이 지당하구나. 근세에 신중한 자를 들자면 누가 있겠는가?"

사람들이 대답치 못하는 가운데, 나는 전 태위 순경천, 상서 동중연, 복야 왕공중의 이름을 들어 이들을 모두 신중한 자였다고 말했다.
이에 상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자들의 삼가함을 보면 일상생활은 물론, 일을 행함에 있어서도 신중함을 보지하고 있었소. 이들 각기 모두 신중한 자들이었소. 그러나 신중함의 극을 다한 자라면 완편종(완적)이 아니겠소? 그와 거듭 말을 섞어보니, 그 말은 유현의 경지에 있었으며, 결코 시세를 평하거나, 인물평 따위는 하지 않았소. 참으로 신중함의 극치라고 할만하지 않겠소."

나는 항상 이 말씀을 떠올리고 살았으며, 이를 밝혀 경계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왔다. 대저 사람이 일을 행함에 있어서 어린시절부터 몸을 세워,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벼이 인물을 평하거나, 가벼이 시사를 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듯 행한다면 어찌 후회할 일이 생기겠는가? 재난이 닥칠 일도 없을 것이다.

이병의 아들 이중(李重)은 자를 무증(茂曾)이라 하며, 젊은시절부터 명성을 날려, 관위는 이부랑 평양태수를 역임하였다.

[진제공찬]에 이른다. 

이중은 청렴함, 고상함으로 칭송받았다. 상국 조왕 사마윤은 이중에게 명성이 있음을 고려하여 우사마로 불러들였다. 이중은 사마윤이 반란을 획책하고 있음을 알고는 병을 이유로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 사마윤은 그를 협박하고 다그쳤으므로, 이중은 결국 더는 살 것을 포기하고, 위독한 채로 다른이의 부축을 받으며 임명을 받았으나, 수일 지나 세상을 떴고, 산기상시의 관직을 추증받았다.

이중에겐 두 사람의 동생이 있었는데, 이상(李尚)의 자는 무중(茂仲)이라 하고, 이구(李矩)의 자는 무약(茂約)이라 하였는데, 두사람 모두 영가연간에 군 태수가 되었고, 이구는 강주자사까지 올랐다. 이중의 아들 이식은 자를 경칙이라 하고, 관위는 시중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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