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삼국지 갤러리 子明


마량(馬良)의 아우는 마속(馬謖)이니 자(字)는 유상(幼常)이다. 형주종사(荆州從事)가 되어 소열제(昭烈帝=유비)를 따라 촉으로 들어갔는데, 면죽 성도령(綿竹 成都令), 월전태수(越雋太守)에 제배(除拜)되었다. 재기(才器)가 과인(過人)하였는데, 군략(軍略) 논하기를 좋아하니, 승상 제갈량은 더더욱[深加] 재주를 남달리 여겼다. 소열제가 임종시에 제갈량에게 일러 말하기를


“마속은 말이 그 실제를 넘어[言過其實], 중용(重用)하는 것은 불가하니 그대는 이를 잘 살피라[유념하라는 뜻].”


하였다. (그러나) 제갈량은 외려


“그렇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지금 삼국지에는 “제갈량은 외려 그렇지 않다고 (여겼다.)” 되어 있사온데, 송본(宋本)은 대부분 “말하였다[謂]”라고 되어있고, 이는 통지(通志)에도 역시 위(謂)자가 있는 것과 합치합니다.(사고전서 편수자가 달아놓은 주석)

 


(제갈량은) 마속으로써 참군(參軍)을 삼고는 매양 인견(引見)하여 담론(談論)하기를 낮부터 밤이 되도록 하였다.

 

 

양양기(襄陽記)에 말하기를, 건흥(建興) 3년, 제갈량이 남중(南中)을 정벌하매, 마속이 수 십리를 전송하였다. 제갈량이 말하기를


“비록 여러 해를 함께 꾀하였으나, 이제 좋은 충고[良規]를 다시 베풀어[更惠] 주게.”


하였다. 마속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남중(南中)은 (지세가) 험하고 먼 것을 믿고, 복종치 않은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비록 오늘 이를 깨트려도, 다음날 다시 반역할 것입니다. 이제 공께서 바야흐로 나라를 기울여 북벌하려 하시어 강한 도적[彊賊-위나라]을 맡고 계시온데, 저들은 관리들의 힘이 안으로 비어 있는 것을 알 것이니, (더욱) 빨리 배반할 것입니다. 만약 남은 자들을[遺類] 모조리 진멸하여 후환을 없애시는 것은 어진 이의 마음이 아니요, 또한 창졸간(倉卒間)에 하시지 못할 것입니다. 무릇 용병(用兵)하는 방도(方道)는,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요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 되며, 마음으로 싸우는 것이 상책이요, 병사로 싸우는 것은 하책이 되오니, 원컨대 공께서는 그 마음을 복종시키셔야 합니다.”


하였다. 제갈량이 그 말을 채납(採納)하여, 맹획(孟獲)을 사면(赦免)하여 이로써 남방(南方)을 복종시켰다. 그리하여 제갈량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남방(南方)은 감히 다시 반역하지 못하였다.



건흥(建興) 6년, 제갈량이 기산(祁山)을 공격하니, 이때 숙장(宿將-경험 많은 장수)으로 위연(魏延)과 오의(吳懿) 등이 있으매, (계책을) 논의하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마땅히 (이들로) 선봉을 삼자 하였다. 그러나 제갈량은 중론(衆論)을 어기고 마속을 뽑아 대군을 통솔하여 선봉(先鋒)에 있게 하고, 위나라 장수 장합(張郃)과 더불어 가정(街亭)에서 싸우게 하였다. (그러나) 마속은 제갈량의 절제(節制-작전명령)을 어겼고, (군사)행동이 번잡스럽고 어지러웠으며, 물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니, 내려가 성을 점거하지 아니하였다. 장합이 그 급도(汲道-물을 수송하는 길)을 끊고 이내 공격하니, 마속은 패주하고 사졸은 흩어졌다. 제갈량은 진군(進軍)하여도 거점(據點)이 없었으므로, 군대를 물려 한중(漢中)으로 돌아갔다. 마속을 잡아들여[收] 하옥(下獄)하고, 눈물을 흘리며 참(斬)하여 군중(軍衆)에게 사죄하였다. 이때 (마속의) 나이 39였다. 마속이 임종할 때에 제갈량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명공(明公)께서 속(謖) 보시기를 아들처럼 하셨고, 속(謖)은 명공 뵙기를 아버지처럼 하였습니다. 원컨대 (순임금께서 우임금의 아버지) 곤(鯀)을 죽였으나 우(禹)임금을 등용하신 뜻을 깊이 상량하시어[마속을 곤에 비유하고, 자신의 자식을 우임금에 비유한 것으로, 자식들을 돌보아 달라는 말], 평생의 사귐이 이것으로[가정에서 패한 것] 어그러지지 않게 하여주시오면, 속(謖)은 비록 죽사오나 황양(黃壤=黃泉, 무덤 혹은 저승)에서 한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 때 10만의 군사들이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제갈량이 친히 제(祭)를 지내 그 남은 고아(孤兒-마속의 자녀)를 위로하고, 평생을 돌보았다. 장완(蔣琬)이 후에 한중(漢中)에 이르러 제갈량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옛적 초나라에서 성득신(成得臣)을 (자결토록 하여) 죽이니, 연후에 진나라 문공이 기뻐하였습니다.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못하였는데 지모(智謀)있는 사(士)를 죽이시니, 어찌 아깝지 아니합니까?”


하였다.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손무가 능히 천하에서 승리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법을 쓰는 것이 명확했기 때문이오. 이러므로 양간(揚干)이 법을 어지럽히니 위강(魏絳)이 (본보기로 양간의) 노복(奴僕)을 주벌 하였소. 사해(四海=천하)가 나뉘어[分裂] 전쟁이 바야흐로 시작되는데, 만약 다시 법을 폐한다면, 무엇을 써서 적을 토벌하겠소?”


하였다.


춘추 좌씨전(春秋 左氏傳-희공 28년조)에 (이르기를), 초나라 영윤(令尹-재상) 자옥(子玉-성득신)이 패하니, (초나라) 왕이 사자를 보내 그에게 일러 말하기를 “대부가 만약 (초나라로) 들어온다면, 신(申), 식(息)의 부로(父老)들에게 어떻게 (말하려는가?)” 하였다. 자서와 손백이 (사자에게) 말하기를 “득신은 장차 죽으려 하였으나 (저희) 두 신하가 말리며 말하기를 ‘군께서 장차 (바른 법)으로써 형벌을 내리실 것이오.’ 하였습니다.” 하였다[초왕에게 가면 용서할 것이라 기대한 것]. (성득신은) 연곡(連谷)에 이르러(서도 초왕이 사면하지 않으니 스스로) 죽었다. 진후(晉侯-진문공)이 이 소문을 듣고는 기뻐하여 말하기를 “내게 해독을 끼칠 자가 없구나.” 하였다.



[원주 : 학경의 주석]

습착치(習鑿齒)가 말하기를, 제갈량이 상국(上國-위나라)을 아우르지 못한 것이 어찌 마땅하지 않으리요[위나라를 병탄하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는 뜻]. 무릇 진(晉)나라 사람들은 순림보(荀林甫)가 후에 성취하리라 여겼으므로 법을 폐하여 공을 거둘 수 있었고, 초나라 성왕은 성득신이 자신을 이롭게 할 것을 알지 못하여 그를 죽였으니 거듭 패하였다. 지금 촉(蜀)나라는 외지고 비루한 일개 지방이요, 재주 있는 이가 상국(上國-위나라) 보다 적은데도 그 준걸(俊傑-마속)을 죽였고, (더 싸우지 않고 군사를) 거두어 물러나는 멍청한[駑下] (계책을) 썼으며, 법을 밝히는 것을 재주 있는 이를 (살려두는 것 보다) 낫게 (여겼으니), (이) 세 가지 패하는 방도를 깨닫지 못하고[不師-스승삼지 않다, 즉 깨달아 알지 못한다는 뜻], 장차 이로써 대업을 이루려 하였으니, 또한 (성공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겠는가. 또 선주가 ‘마속을 중용(重用)하는 것은 불가하다’ 경계(警戒) 하였으니, 어찌 (이것이) ‘그가 재주 없다’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제갈량이 경계를 받았으나 (유비의 명령을) 받들지 아니하였으니, 마속을 버려두기 어려웠음이 분명하다. 천하의 재장(宰匠-재상)이 되어 만물의 공력(功力)을 거두어들이고자 하면서도, 재주에 맞게 임용하고 기량에 맞게 일을 주는 것을 탁량(度量-헤아림)하지 아니하였고, 큰 실수[大過]임을 알고도 곧 밝은 군주[明主-유비]의 경계를 어겼고, 중용(中庸)을 잃은 판단을 하여 곧 유익한 사람을 죽였으니, 그와 더불어 지혜(智慧)로운 것에 대해 말하기 어렵도다.

 

[습착치에 대한 학경의 말] 제갈량이 장완(蔣琬)의 말에 대답한 것을 살피건대, 성심(誠心)을 열어 보이고 공도(公道-공평한 도리)를 베풀었음을 알 수 있다. 죄를 밝히고 법을 세우는 것은 적을 토벌하는 규범이 되는 것이니, 습씨(習氏-습착치)가 (제갈량을) 지적하여 법을 폐하여 재주 있는 이를 보전(保全)함이 마땅하다 말한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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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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