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안 19년, 유선주(유비)가 촉을 평정하자, 안원장군 남군의 등방을 주시태수, 내강도독으로 삼아 파견하여 치소를 남창현에 두도록 하였다. (등방은)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과단성이 있어서, 이(夷)와 한인(漢人)이 그 위신에 경복했다. 

등방이 죽자, 선주가 치중종사 건녕군의 이회에게 대신할 넘을 묻자, 이회가 답하길 '서령의 전쟁에서 (* 조충국이 선령강족과 싸운 전쟁) 조충국이 말하길 '노신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라 하였습니다.' 선주가 이에 이회를 기용하여 도독으로 삼고, 치소를 평이현에 두었다.  

선주가 죽은 후, 월수의 수(叟)족 수괴 고정원이 군의 장군 초황을 살해하고, 군을 들어 칭왕하며 모반했다. 

익주(郡)의 대호족 옹개 역시 태수 정앙을 죽였다. (촉에서는) 곧 촉군의 장예를 태수로 삼았다. 

옹개는 귀신의 가르침이라 하며 말하길 '장예 부군은 호리병박과 같아서, 겉은 비록 윤택하나 속알맹이는 조잡하니, 죽여서는 안되고 묶어서 오로 보내라' 이에 장예를 잡아 오로 보냈다. 오주 손권은 멀리서 옹개를 영창태수로 임명하고, 죽은 유장의 남겨진 아들 유천을 익주자사로 삼아 파견하여 교주와 익주의 경계에 두었다. 

장가군승이었던 주제군의 주포를 태수로 삼자, (이넘들이) 흉악히 굴었다. 

승상 제갈량은 처음 대상(大喪=유비 꽥)을 치러야 했으므로, 바로 병사를 보낼 수가 없어서, 월수태수 파서군의 공록을 보내 안상현에 주둔시키고, 멀리서 군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종사 촉군의 상기에게 부(部)를 거느리고 남으로 들어가게 하고, 도호 이엄으로 하여금 서간을 보내 옹개를 회유토록 하였다. 

옹개가 답하길 

'어리석은 이 넘이 듣건대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땅에는 두 임금이 없다고 한다. 지금 천하가 갈라져, 정삭(正朔=각 나라의 공식 정월)만 셋이니, 멀리 있는 (이) 넘은 황송하여 어쩔 줄을 모르겠고, 돌아갈 바를 알 수가 없소이다.' 

라 하였으니, 그 오만함이 이와 같았다. 

상기는 장가에 이르러, 군 주부를 잡아들여 심문을 하였다. 주포가 이로인해 상기를 죽이고 난을 일으켰다. 

익주(郡)의 이(夷)들이 다시 옹개를 따르지 않자, 옹개가 건녕군의 맹획을 시켜 이(夷)족,수(叟)족에게 유세하여 말하길 

'관은 가슴팍이 검은 오구 300마리, 마뇌 3두, 3장까지 자란 탁목 3천매를 얻으려고 한다. 너희들은 (이게) 안되는 걸 알지 않느냐?' 

이족은 그렇다고 생각하고, 모두 옹개를 따랐다. 

탁목은 단단하지만, 구불거리는 특성이 있어서, 2장 이상으로 자라지 않기 때문에, 맹획이 (이런 말로) 이족을 속인 것이다.
  
건흥 3년 봄, 제갈량은 남정하여, 안상으로부터 수로로 월수에 들어갔다. 

별도로 마충을 파견하여 장가를 토벌하도록 하고, 이회에게는 익주(郡)로 향하도록 하고, 건위태수 광한군의 왕사를 익주태수로 삼았다. 고정원은 모우로부터, 정책, 비수에 이르기까지 망루를 많이 세워두었다. 제갈량은 고정원의 군대가 모이길 바랬고, (그들이 모이자) 한꺼번에 토벌했으며, 군이 비수에 이르렀다. 고정원의 부곡이 옹개와 백성들을 살해하자, 맹획이 옹개를 대신하여 우두머리가 되었다. 제갈량은 이미 고정원을 참했고, 마충은 장가군을 격파했으며, 이회는 남중에서 이족을 격파했다. 

여름 5월, 제갈량은 노수를 건넜고, 나아가 익주군을 정벌했다. 

맹획을 산 채로 사로잡아 군중에 두고는, 묻기를 '우리 군대가 어떠한가?' 

맹획이 답하길 '잘 알지 못하는게 한이니, 공은 (그래서) 쉽게 이겼을 뿐이오' 

제갈량은 바야흐로 북쪽에 일이 있었는데, 남중은 반란을 일으키기 좋아하였으므로, 의당 그 속임수를 다 떨어지게 하려고, 이에 맹획을 풀어주고 돌아가게 하고는, 군대를 모아 다시 싸웠다. 도합 7번 사로잡고 7번 풀어주었다. 

맹획 등이 마음으로 복종하니, (반란에 가담했던) 이족과 한인 또한 돌이켜 선량해졌다. 제갈량이 다시 맹획에게 물으니, 맹획이 답하길 '명공은 천위이십니다. 변방 백성의 장이 다신 나쁜 짓을 할 수 없습니다.'

가을, 마침내 4군을 평정했다. 익주군을 고쳐 건녕군으로 삼고, 이회를 태수로 하였고, 안한장군을 더하고, 교주자사를 맡도록 했으며, 치미현으로 옮겼다. 건녕군, 월수군을 나누어 운남군을 설치하고, 여개를 태수로 삼았다. 

또 건녕, 장가군을 나누어 흥고군을 설치했다. 마충을 장가태수로 삼았다. 

남중의 경졸(勁卒=강병), 청강 만여 가를 촉으로 옮겨 5부로 삼으니, 그 앞에 당할 자가 없었고, (이를) 비군(飛軍)이라 불렀다. 

또 그 연약한 자들을 대호족 초, 옹, 누, 찬, 맹, 양, 모, 이씨에게 나누어주어 부곡으로 삼고, 오부도위를 설치하였으며, (이를) 오자(五子)라 하였으므로, 남쪽 사람들은 말하길 '사성오자'라 하였다. 

이(夷)족엔 강한한 넘들이 많아서, 대호족과 부호를 따르지 않았기에, 이에 금과 비단을 내어 성질나쁜 이족을 초빙해 가문의 부곡으로 삼도록 권하고, (부곡을) 많이 얻은 넘은 칭찬하고 관직을 세습시켜 주었다. 

이에 이인들이 재화를 탐하게 되어, 점점 한에 복속하게 되었고, 이족과 한족이 부곡을 이루었다. 

제갈량은 남중의 준걸 건녕의 찬습, 주제의 맹염 및 맹획을 거두어 관속으로 삼았는데, 찬습은 관직이 영군에 이르렀고, 맹염은 보한장군, 맹획은 어사중승에 이르렀다. 남중의 금, 은, 단, 칠, 밭가는 소, 전마가 군국(軍國)의 비용으로 생산되었다. 

도독은 항상 신중한 사람을 기용하였다. (후략)

보충: 성호사설에 이르길,

제갈량(諸葛亮)이 남방(南方)을 정벌할 때 왜 그렇게 불같이 빨리 서두르고 다른 곳보다 먼저 계획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중원(中原)도 회복하지 못하고 대의(大義)도 밝히지 못했는데, 어찌 이런 일은 버려 두고 먼데 것을 구할 수 있겠으며, 더구나 5월 한여름에 열대 지방으로 깊이 쳐들어 갈 수 있겠는가?

장가(牂牁)ㆍ월수(越雟)ㆍ고애뢰(古哀牢)는 지대는 험조하고 동떨어진 먼 곳이다. 이보다 먼저는 남쪽 지방 도적이 침략해 왔다는 말은 듣지 못했고, 이후에도 맹획(孟獲) 같은 이가 정벌을 도와 공을 세운 일은 없었다. 일곱 번이나 적을 놓아 주었다가 다시 사로잡아 군사를 괴롭히고 위엄을 손상시켰으니, 그가 병에 걸려 죽지 않은 것만도 천행이었다. 나는 이것은 제갈량의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처음 생각으로는 반드시 남쪽 지방을 정복하고 천하를 크게 평정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옹개(雍闓)를 이미 목베어 죽인 후에는 맹획이 또 배반했으니 이는 한갓 원망만 맺은 셈이다. 그 마음을 복종시키지 못하고 다만 원망을 맺어 도적을 불러 들이는 것은 또한 지혜가 밝은 자로서는 부끄럽게 여기는 일이다.

이러므로 그의 정벌은 조금 물려서 여러 가지 일이 대강 안정된 후에 조용히 했어야 할 것인데 이렇게 불같이 바삐 한 것은 부득이해서였다지만, 가령 금은과 우마(牛馬)를 취해서 군용(軍用)을 넉넉히 만들 수 있었다 할지라도 만약 이런 계획을 갖고 정벌을 일으켰다면, 이것이 바로 잘못된 계책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대개 마속(馬謖)의,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上策)이다.”는 말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후 9년 만에 제갈량이 죽었고 또 6년을 지난 후에는 장억(張嶷)으로 태수(太守)를 삼았다. 그 밑에 “이전에 월수가 자주 배반하여 태수를 죽였다.” 하였으니 이 ‘이전에’라는 말로 미루어 본다면 수년 동안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즉 남쪽 사람이 다시는 배반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군법(軍法)이란, 우선 소문부터 낸 다음에 실행하는 것도 있고, 또는 스스로 다스리면서 시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천촉(川蜀)은 지대가 중국과 아주 동떨어져 있으니, 그 지세로 본다면 한구석에 있으면서 제대로 영웅 노릇을 할 수 있고, 이로 말미암아 남쪽으로 오랑캐에게 군림하게 되면 적에게도 위엄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적에게 위엄을 보이기도 하고 은혜를 베풀어서 오도록 하여 그들이 두려워하여 다스려 주기를 희망하도록 한 다음에 한 번 군사를 일으켜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것이 양책(良策)일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도 역시 사람이니 어찌 백 번 꾀해서 백 번 다 잘못이 없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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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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