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삼국지 갤러리 연인ㅈ님




선주는 휘를 비라 하고 자를 현덕이라고 하며, 탁군 탁현 사람으로 한 경제의 아들 중산정왕 유승의 후예이다. 유승의 아들 유정은 원수6년에 탁현의 육성정후에 봉해져 이후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조부 유웅은 효렴에 천거되어 동군 범현의 현령이 되었다. 아비는 유홍이다.




선주는 어린시절 부친을 잃고, 그 모친과 함께 짚신을 팔거나, 돗자리를 짜면서 생활했다. 그의 집 동남쪽 구석의 울타리에 뽕나무가 있었는데, 높이 5장여 되고, 무성히 자란고로 멀리서 보면 마치 마차 덮개처럼 보였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이상하다고 여겼고, 또, 어느 사람은 “필시 이 집에서 귀인이 나올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선주는 어린 시절, 일족의 아이들과 놀면서 이 나무 아래에 서서


“나는 필시 이 나무처럼 깃털이 잔뜩 달린 수레에 탈테다”


라고 말했는데, 숙부 유자경은


“네 이녀석, 그런 망언을 하다니, 우리 일족을 멸망시킬 셈이냐”


라고 했다.

열 다섯이 되자, 어미가 그를 유학보내어 일족의 유덕연, 요서의 공손찬과 더불어 전 구강태수인 같은 군 출신의 노자간(노식)에게 사사케 했다.



유덕연의 아비 유원기는 늘 선주를 원조하여, 자식 유덕연과 동등하게 대하였다. 유원기의 처가


“그 아이와 우리 아이는 다른 집 아이인데, 어찌 그리 과하게 도와주시는 겁니까?”


라고 말하자, 유원기는


“이 아이는 일족 가운데 범재가 아닌 인물이오.”


라고 말했다.
 


공손찬은 선주와 매우 친하게 지냈다. 공손찬쪽이 나이가 많았으므로 선주는 공손찬을 형으로 모셨다. 선주는 개나 말, 음악, 아름다운 의복을 좋아하였으며, 키는 칠척오촌, 팔을 내리면 무릎에 이르고, 고개를 돌리면 자신의 귀가 보일 정도였다. 또한 겸양하기를 잘했으며, 희로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고, 사람과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였으므로, 호걸이나 젊은이들은 앞다투어 선주와 교우하였다.



중산의 대상인 장세평, 소쌍 등은 이를 진기하게 여겨 선주에게 많은 자금을 대었는데, 선주는 이를 가지고 병졸을 모을 수 있었다. 하동의 관우운장, 동군의 장비익덕은 두 사람 모두 영웅장사로, 선주의 무장이 되었다. 선주는 두 사람과는 침식을 같이 하였는데, 그들을 아끼기가 친형제 대하듯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곁을 따를 뿐이었다.(타인들 앞에서는 주종관계를 드러내 보였다는 뜻)


[1] [한서] 왕자후표에 의하면 유정은 원정2년에 육성후에 봉해졌다.



중평원년, 교위 추정을 따라 황건적 토벌에 나서 공명을 세웠으므로 안희의 위에 임명되었다. (현위가 된 후) 독우에게 알현을 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고로 (독우가 있던 건물에) 난입하여 그를 포획, 이백회에 걸쳐서 매질하고 현위의 관인 줄을 독우의 목에 걸어두고 말을 달려 도망갔다.



얼마 후, 대장군 하진의 모병에 응하였고, 다시 공훈을 세워 하밀의 승으로 임명되었다. 다시 고당의 위로 전임되었다. 이후 (고당의) 현령이 되었다. 공손찬은 중랑장이 되고, 상주하여 선주를 별부사마로 삼았다. 선주는 기주자사 원소를 막아내어 누차 공훈을 세우고 평원의 령이 되었다.



이후 다시 승진, 평원의 상이 되었다. 군민 유평은 선주의 통치를 받는 것을 수치로 여겨 사람을 보내 선주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자객은 선주의 덕에 감복하여 유평이 선주를 죽이려 한 것을 고하고 떠났다.
 



북해의 상 노국출신 공융은 황건적에 포위되어 태사자로 하여금 선주에게 원군을 요청케 하였다. 선주는


“공문거님은 천하에 유비가 있음을 알아주셨는가!”


라고 말하고, 병력을 이끌고 공융에 가세하였다.
 


광릉 태수인 하비출신 진등 원룡은 태위 진구의 손자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자로 천하의 선비들을 모두 가벼이 여기는 자였으나, 공조 진교에게 말하기를

“가정이 화평하고, 덕있는 행동을 하는 점에서, 나는 진원방(진기) 부자를 존경하고 있소. 청정하고 결백한 덕행을 하며 덕스러운 사고를 하는 점에서, 나는 동자어에 미치지 못하오. 견식이 넓고 기억력이 좋으며, 권모술수가 있고 재기 뛰어난 점에서, 나는 공문거를 존경하오. 늠름한 기상이 걸출하고 패도의 지략이 있는 점에서, 나는 유현덕을 존경하오. 뛰어난 인물이라면 이들만이 있을 뿐이오.”


라고 했다.



서주목 도겸은 병이 깊으므로 별가 미축에게


“유비가 아니면 서주를 안정시킬 인물이 없소.”


라고 말했다. 도겸이 죽은 후, 미축은 서주의 배성을 이끌고 선주를 모셨으나, 선주는 서주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진등이 나아와 말했다.


“현재 한실은 쇠퇴하였고, 천하가 어지러워졌으니, 공명을 올려 대사를 도모하려면 바로 지금이 기회입니다. 서주는 번영한 땅이고, 물자도 풍부하며, 인구는 백만에 달하니 사군께 청하기는 서주의 정사를 맡아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선주는


“원공로가 이곳 근방 수춘에 있소. 그는 사세오공의 명문이며 천하는 다스릴만한 자니, 그에게 서주를 맡기면 될 터이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진등은


“공로는 제멋대로에 거만한 인물이니 서주를 다스릴만한 주군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사군을 위해서 보, 기 십만을 모으고자 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구제와 선도로 백성을 돌보아 오패(춘추오패)의 위업을 달성하고, 또 한편으로는 토지를 분할함으로 국경을 지키고, 죽백(문서라는 뜻)에 공명을 남기는 것이 가능할 터입니다. 혹여 사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도 사군을 따라 섬기지는 않겠습니다.” 


북해의 상 공융이 선주에게 말했다.


“원술이 국가 대사를 걱정하고, 탐욕이 없는 자인 것 같습니까? 원술은 무덤속의 해골 같은 무능한 위인입니다. 계산에 넣을 만한 자가 못됩니다. 작금의 서주의 사태에 있어서, 백성은 능력이 뛰어난 인물을 맞아들여야 기뻐할 터입니다. 혹여 하늘이 기회를 주었는데 이를 취하지 못하면 후회하더라도 대업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선주는 서주목 자리를 차지했다.



건안원년, 조공은 상표하여 선주를 진동장군으로 삼고 의성정후에 봉했다. 선주와 원술이 대치하고 있던 때, 하비의 수비대장 조표가 배반하였다. 이 때문에 여포에게 패하여 선주는 처자를 잃고 해서쪽으로 군을 옮겼다. 미축은 여동생을 선주에게 바치고, 더하여 노비 이천명, 금은 재물을 바쳤다. 이를 통해서 선주는 세를 불렸다. 선주는 여포와 화의를 맺었고, 여포는 선주의 처자를 반환하였다. 선주는 일만여 병력을 모아 군세를 소패로 옮겼다. 여포는 이 일을 두려워하여(의심하여) 친히 나가 선주를 고격했다. 이에 선주는 조공에게 몸을 의탁했다. 공(이하 모두 조공)은 선주를 예주목에 임명하고 선주의 군세를 불려주어 여포를 토벌케 하였으나 패배하였다. 여포의 장수 고순은 재차 선주의 처자를 포박하여 여포에게 보냈다. 공은 하후돈에게 선주를 구원하도록 하였으나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3년, 공은 스스로 여포 정벌에 나서, 여포를 생포하였다. 여포가 말하길


“혹여 내가 공을 위해 기병을 통솔하게 된다면 천하를 충분히 평정할 수 있을 터입니다.”


라고 하자, 공이 망설이는 기색을 내보였다. 이에 선주가 말하기를


“공께서는 정건양(정원)이나 동태사(동탁)처럼 여포의 힘을 쓰고자 하십니까?”


라고 말하자 공은 그 말을 옳다 여겼다. 여포는 선주를 노려보며


“이 귀만 큰 녀석이야말로 믿지 못할 위인이구나!”



선주는 다시 처자를 되찾았고, 공을 따라 허창으로 돌아와 좌장군이 되었다. 공은 선주에게 경의를 표하고, 대단히 중히 여겼다. 또한 관우, 장비 두 사람도 중랑장이 되었다. 공의 모신 정욱과 곽가는 선주를 살해하자고 권하였으나, 공은 뛰어난 인물들의 신용을 잃는 것을 우려하여 허락지 않았다.




원술은 회남에서 출발 서주를 경유하여 북방의 원소의 본거지를 공략하려 하였다. 이때, 헌제의 장인인 거기장군 동승은 하사받은 의복의 허리띠 안에 공을 살해하라는 밀칙을 받았다. 이에 동승은 선주, 장수교위 충집, 장군 오자란, 왕자복 등과 공모하였으나, (선주가 원술 토벌에) 출정한 시점에서는 아직 거사를 일으키지 않았다. 어느때인가, 공이 선주에게 부드럽게 묻기를


“천하의 영웅은 사군과 나 뿐이구려. 본초같은 자들은 숫자에도 들어가지 않소.”

선주는 막 음식을 먹으려 하던 차였으나, 놀라서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마 침 천둥이 쳐서 선주가


“성인(공자)이 말하길 [빠른 우뢰와 거센 바람을 만나면 의복을 바로하고 근신의 뜻을 표한다. (迅雷風烈必變 빠른 우뢰, 거센 바람을 맞으면 반드시 얼굴 빛을 바꾸셨다.) ]라고 하였으니, 실로 그 말 대로군요. 그렇더라도 천둥이 이토록 무서울 줄이야...”


라고 말하자 공은 스스로 실언했다고 후회했다. 



이 후 선주가 돌아가자 공은 사람을 풀어 선주가 어찌하고 있는지 살피게 하였다. 선주는 그러한 사정을 알아채고는 밭에서 파를 뽑으며 하인에게 돕게 하였는데, 파가 단정치 않은 모양을 하고 있던 고로 소사를 몽둥이로 후려팼다. 이를 조조가 듣자,


“귀큰 녀석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이라고 말했다. 그날 밤, 선주는 동쪽을 향해 출정했다. 정욱과 곽가가 다시 선주를 죽일 것을 진언하자, 공은 선주를 추격케 했으나 이를 잡지 못했다.선주는 서주자사 차주를 살해하고 모반을 일으켰다. 관우를 남겨두어 하비태수의 직무를 행하게 하고, 자신은 소패에 귀환하였다.



결국 동승 등의 계획이 드러나 이들은 모두 주살되었다.




선주의 수하의 수가 수만에 이르고, 종사인 북해출신 손건을 파견하여 원소와 화친을 맺었다. 공은 장군 유대, 왕충을 파견하여 선주를 토벌케 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건안 5년, 공께서 선주를 정벌하러 동쪽으로 출병하였다. 선주는 대패하였고, 그의 처자와 관우는 사로잡혔다. 선주는 청주로 도망하였고, 자사 원담은 그를 맞이하러 나왔다. 또한 말을 달려 선주의 귀순을 아비 원소에게 고했다. 원소는 업에서 200리 떨어진 곳까지 그를 마중하러 나와 선주와 대면하였다.



공은 관우의 무용에 경의를 표하고 편장군으로 삼았다. 이전, 여포를 포위했던 공의 군에 선주가 종군하였던 때에 관우 또한 종군하였었다. 이때, 진의록은 여포를 위해 장양에게 원병을 요청하였었다. 관우는 공에게 고하기를


“제 처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복양의 성을 함락시키면 진의록의 처를 저에게 주십시오.”


라 하였고, 공은 이것을 허락하였다. 복양함락후, 관우와 공께서 함께 성문에 이르렀을 때, 관우는 공께 다시금 진의록의 처를 줄 것을 아뢰었다. 공은 진의록의 처가 혹 아름다운 여인이 아닌가 하여 진의록의 처를 자신의 거처로 데려오도록 명하였다. 후에 선주와 공이 다투게 되었을 때, 관우는 격전중에 좆공을 살해하고자 청원하였으나, 선주는 천하 대사를 위하여 공을 살려주려 관우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한 고로 관우는 늘 원망을 품고 있었다. 공은 관우의 마음이 불편한 것을 간파하고 장군 장료를 보내어 마음을 떠보았다. 그러자 관우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 역시 조공이 두터운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알고 있소. 그러나, 나는 유장군의 은애를 받았고, 함께 죽을 것을 맹세한 터이오. 이 맹세에 등을 돌릴 수 없으니 공훈을 세워 조공의 은혜에 보답하려 생각하오.”


라고 말했다. 공은 이것을 듣고 관우를 의로운 선비로 여겼다.


이 해, 원소는 공과 관도를 둘러싸고 다투어, 맹장 안량을 파견, 백마에 있던 동군 태수 유연을 공격하였다. 공은 유연을 구원하려 장료와 관우를 선진으로 삼았다. 관우는 안량의 휘개를 멀리서 바라보고는 말을 달려 다수의 적병 가운데에서 안량을 격파, 그 목을 베고 돌아왔다. 원소의 장수 가운데 관우에 대항할 수 있는 자가 없었고, 그 결과 포위망이 풀렸다. 공은 이에 상표하여 관우를 한수정후에 봉하고 더하여 금품과 관위를 하사하였으나, 관우는 이것들에 봉인을 달고 편지를 올려 헤어짐을 고하고는 선주에게로 돌아갔다. 근신들은 관우를 추격하기를 청하였으나, 공은


“그에게는 그 나름의 주인이 있지 않은가.”


라고 말하였다.




선주는 원소에게 형주목 유표와 결맹하도록 설득했고, 원소는 선주가 이끌고 있던 병력을 통솔하여 여남을 향하게 하였다. 공은 장수 채양에게 선주를 격파케 하였다. 선주는


“설령 우리 군세가 불충분하다고는 하여도, 제군(채양)등이 백만 병력을 끄고 왔다고 하여도, 나를 어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조맹덕이 단신으로 온다면 내 스스로 물러나겠다만은!”


이라 말하였다. 채양등은 선주와 가볍게 몇 번 붙었으나, 곧 살해되었다.





공은 이미 원소를 격파하고 스스로 여남 정벌에 나섰다. 선주는 미축, 손건을 파견하여 유표에게로 보냈다. 유표는 교외까지 선주를 마중하여 빈객으로 대우하고 선주를 신야에 주둔케 하였다. 영천의 서원직은 낭야의 제갈량에 대해 말하기를


“공명이라는 인물은 누운 용같은 자입니다. 장군은 그와 만나고 싶지 않습니까?”


라고 말했다. 선주는


“자네가 데려오도록 하게.”라고 말하자 서서는 “이 자는 가서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으나, 강제로 불러내면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선주는 제갈량의 거처를 향했으니, 그를 방문한 회수가 세 번이나 되었다.



제갈량과 대면케 되자 사람을 물리고


“한실은 이미 붕괴되었고, 간신이 천명을 감추어 제 것으로 삼고, 황제폐하는 도읍에서 떠나 계십니다. 나는 스스로의 덕이나 무력 따위는 갖추지 못하였고, 그저 대의를 천하에 표명하기만을 바랬으나, 지혜와 술책은 부족하였던 고로 결국 패배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나, 뜻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버릴 수 없소. 이에 대해 군은 대체 어떤 계책을 권해주겠소?”


라고 물었다. 제갈량은 이에


“동탁의 난 이후, 호걸들이 다투어 일어나 각 주를 점령하고 무리를 짓기를 수없이 하고 있습니다. 조조는 원소와 비교하면 명성은 작고, 군세또한 적었으나, 결국 원소를 격파하였으니, 약자가 강자가 되는 것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계책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지금 조조는 이미 백만의 군세를 장악하였고, 천자를 옹립하여 제후에게 명을 내리고 있으니, 이는 실로 무력으로 다툴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 손권은 강동을 지배하며 이미 3대를 거쳐내려와 그 토지는 지세 험하고(침략하기 어렵고) 백성들은 손가에 마음을 기대고 있으며, 현자와 유능한 이들이 손권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니, 손권과 등을 돌려 강남땅을 빼앗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형주는 북으로 한수, 면수를 끼고 있고, 남해의 이익을 취하는 형세에, 동으로는 오, 회계와 연결되고 서로는 파촉에 통하고 있으니, 이곳은 무력을 기를만한 땅이나, 이 땅의 영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필시 하늘이 장군을 도우려 하는 것일 터입니다. 익주는 천연의 요해에 수회되는 풍족한 땅으로 고조께서는 이곳을 거점으로 제업을 이루었습니다. 유장은 암군이고 장로가 북방에 웅거하고 있지만 나라는 부유하고 인구는 많으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줄 모르니 현명한 자들은 명군을 얻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장군은 본시 제실의 혈통을 이었고, 신의가 사해에 널리 전해지니, 영웅들을 찾으며 현자 구하기를 목마른자가 물을 찾듯이 하십니다. 혹여 형주와 익주를 영유하여 그 요해를 지켜 서쪽의 여러 오랑캐들과 화친하고 남쪽의 오랑캐들을 위무하고, 손권과 화친을 맺고 정치의 도리를 바르게 하면, 천하에 변화가 있을때, 누구 한 사람의 큰 장수에게 명하여 형주의 군세를 이끌고 완, 낙양을 향하게 하고, 장군 스스로는 익주의 군세를 이끌고 진천에 출격하면 어찌 천하에 장군을 환영치 않을자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차비를 하시면 패업은 성취되고 한실은 다시 흥성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답하였다.
 
이에 선주는


“옳은 말씀이오!”


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제갈량과의 교정이 나날이 깊어져,  생각하기에 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았다.





건안13년, 유표가 죽고 막내 유종이 뒤를 이었다. 조공이 남하하자 유종은 사자를 보내어 항복을 고하였다. 선주는 번땅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조공이 급거 내습하는 것을 몰랐고, 완땅에 이르렀을때에야 조공이 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군세를 이끌고 도주하였다. 당양에 이르렀을때, 따르는 자의 수가 십여만, 수레의 수가 천량에 달하였고, 하루에 십여리 밖에 나아가지 못했다. 별동대로 관우를 배에 태워 강릉에 보내 거기서 합류토록 하였다. 어떤 자가 선주에게 고하기를


“어서 진군해야 합니다. 헌데 사람수는 많으니, 갑주를 입은 자는 적은 수에 불과합니다. 조공의 군세가 당도하면 어찌 맞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라 하였다. 이에 대해 선주는


“본시 대업을 이루는 데에는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나를 좇고 있는데, 어찌 그들을 내버려두겠는가?”


라고 하였다.




공은 강릉에 군수물자가 있으므로 선주가 강릉에 도달함을 걱정해 치중을 내버려두고 경기병 오천을 이끌고 선주를 추격, 하루 밤 하루 낮에 삼백리를 달려 당양 장판에 이르렀다. 선주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 장비등 수십기와 더불어 도망하였다. 공은 선주를 따르던 자들을 모조리 포박하였고, 서둘러 선주를 추격했다. 장비는 강을 막아서고 다리를 끊은 후 말에서 내린 후 창(矛)를 움켜쥐고는


“내가 장익덕이다. 맞붙을 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오너라!”


라고 말하자, 모두 추격을 멈췄다. (당나라 군대냐 -.-;;)




선주는 이 길 저 길을 구불구불 도망치면서 한진을 향했고, 마침 관우의 선단과 만났다. 조운은 스스로 선주의 어린 아들인 후주를 품에 넣고, 또 감부인을 안고(!!!) 선주의 군세를 따라 퇴각했다. 선주 일행은 강을 건넜다. 제갈량은


“사태는 급박합니다. 목숨을 걸고라도 손권군에 구원을 요청하고 오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손권의 영지를 향했다. 이때, 손권은 시상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이전부터 선주의 다대한 명성에 경복하였고, 또한 제갈량이 우아한 자임에 즐거워하며 곧바로 주유 정보의 수군 삼만을 파견하여 선주를 구하고 조공을 막도록 하였다. 공은 군을 철퇴시켜 북방에 귀환했다. 선주는 유표의 장자인 강하태수 유기를 형주자사로 삼았다.



선주는 남방의 네 개 군을 평정, 무릉태수 금선, 장사태수 한현, 예양태수 조범, 영릉태수 유도는 모두 항복하였다. 노강의 뇌서는 수만의 수하를 이끌고 머리를 조아려 유비의 수하가 되었다.
유기가 병사하자, 선주가 형주목이 되어 공안으로 역소를 옮겼다. 손권은 선주에게 여동생을 보내고, 깊게 친선을 나누었다. 제갈량을 군사중랑장으로 삼아 남 3군(영릉 계양 장사)의 직무를 맡게 하고, 관우를 탕구장군 양야태수로 삼아 강수의 북쪽에 주둔시켰다. 장비를 정로장군으로 삼아 의도태수에 명했다.




이보다 앞서서 선주는 패하여 동쪽으로 도망, 악땅에 이르렀는데, 그의 영토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관우는 이를 책망하며 말하기를


“이전에 내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같은 일은 없었을 겁니다. (조조 죽였으면 됐단 이야기)"


라 하자, 선주는


”어찌 작금의 일이 복이 아닐지 알 수 있겠느냐?“


라고 말했다고 한다. 형주를 영유하기에 이르러, 다시 많은 이들을 수하에 두게 되자 손권은 사자를 보내어 공동전선을 펴서 촉을 토벌하자고 요청했다. 주부 은관이 말하기를


“혹여 오군의 선봉을 우리가 맡게 된다면 대사는 물 건너가는 겁니다. 지금은 그저 이 요청에 찬성만 하시고, 새로 여러 군을 얻은지 얼마 안되어 움직일 수 없다고 하십시오. 그는 필시 우리 (형주쪽)를 건너서 촉에 손에 넣으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선주는 이에


“익주(정벌에 대한 의견)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아, 좌우의 자들에게 불만을 사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장군(손권)께서는 높은 뜻으로 한조를 구하시고, 한편으로는 종실을 구해주시기를.  혹여 반드시 (촉과) 창을 섞으려 하신다면, 저는 산속에 들어가 머리를 풀어헤칠 것이고, 장군의 명령은 듣지 않겠습니다.”


라고 고하자 손권은 결국 계획을 포기하였다. 은관을 별가로 승진시켰다.




건안16년, 익주목 유장은 법정을 보내어 선주를 맞이하니, 이윽고 익주에 입성하게 되었다. 




건안19년, 선주는 촉을 손에 넣었다. 촉은 재물이 풍부한 땅이었는데, (유비가 촉을 손에 넣자) 풍악을 울리고, 주연을 크게 열었으며, 삼군으로 하여금 하늘에 제사를 올리게 하고 향응을 대접하였다. 또한 촉의 성중의 자들의 금은을 손에 넣어, 장군과 병졸들에게 나누어 주고, 성내의 곡물과 천을 백성들에게 반환하였다. 제갈량, 법정, 관우, 장비에게 금 백오십근, 은 천근, 전 오천만량, 비단 일만필[4]을 하사하고, 그 외 자들에게도 격차를 두고 하사품을 주었다.


[4]촉지 장비전에는 비단 천필이라 적고 있음





제갈량을 군사장군으로 삼고 좌장군부의 직무를 대행케 했고, 법정을 양무장군 촉군태수로, 관우에게 형주의 직무 일체를 맡기고, 장비를 파서태수로, 마초를 평서장군으로 삼았으나, 허정은 임용하지 않았다. 법정이


“허정은 헛되게 명성만 있는 자이기는 하나, 그 허명이 천하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니 백성도 장졸도 공이 군자를 경시한다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하여, 허정을 장사로 삼았다. 방희를 사마로, 이엄을 건위태수로, 비관을 파군태수로 임명하고, 익주태수로는 남군 출신의 동화를 세우고 장군중랑장으로 삼고 대사마부의 직무를 맡겼다. 한가 출신의 파군태수 왕모를 별가로, 광한의 팽양을 치중으로 삼았다. 영릉의 유파를 불러 서조연으로 삼고, 광장의 장 황권을 편장군에 임명했다. 제갈량을 고굉(중신)으로 삼고, 법정을 모주(참모장)로 삼고, 관장마 삼인을 조아(무장)로 삼고, 허정 방의 및 미축 간옹 손건 산양의 이적을 빈객이나 친구처럼 대하였다. 동화 이엄 황권은 유장 밑에 있던 자들이고, 오의 비관은 유장과 인척간이었다. 팽양은 유장에게 배척되었었고, 유파는 이전부터 원한을 갖고 있었으나 그들 모두를 높은 관직에 세우고, 그 기량을 모두 발휘하게 하였는데, 이들 가운데 진력하지 않는 자 없었다.



뭇 신하들은 선주에게 유모의 처를 취하도록 권하였으나, 선주는 유모와 동족간이므로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법정이 말하길


“친척간이라고는 하나, 진 문공과 자어의 관계를 빗대어 보면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자, 선주는 그 말에 따랐다. 


(관련 고사...<<東萊博議>> 謀 於塗者不若謀於鄰 謀於鄰自不若謀於家 非遠愚而近智也 愛淺者其慮畧 愛深者其慮詳 理也 亦勢也 四海九州之人 卒然相遇 問焉而不對 叩焉而不應者 則有之矣 家人婦子則不然 同分義 均休戚 內無所隱 故其情眞 外無所飾 故其語眞 以眞遇眞 懇款惻怛 往往得利害之眞焉 彼家人婦子之智 非果踰於他人也 智者之略 固不如愚者之詳也 故家人婦子之謀 智慮有所不及 聰明有所不逮 則付之無可奈何而已 豈肯僥倖苟免 而懷不盡如塗人之爲耶 이거임. 오키?)



법정은 이전에 촉군에 부임하였는데, 한끼 밥 얻어먹은 정도의 은혜나, 한 번 눈 흘김 당한 정도의 원한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보응치 않는 바가 없었다. 어떤이가 제갈량에게


“법정은 촉군에서 제멋대로 행하고 있는 고로, 장군은 이를 주공께 아뢰어야 합니다.”


라고 하자, 제갈량은


“주공이 공안에 계시는 동안은 북쪽으로 조조의 강대함을 두려워하고 동쪽의 손권의 압력에 괴로워하고 계시고, 또 손부인이 뭔일을 일으키지 않는가 걱정하고 계시오. 효직이 주공의 앞길을 인도하여 그 뜻을 펼치게 하여 다시 억눌리는 일 없게 하였소. 그런데 어찌 법정이 뜻을 펴서 (주공을 돕게) 맘대로 못하게 하겠소?”


라고 말했다.



손부인은 재주있고 호탕한 인물로 오라비들의 풍모가 있었다. 백명의 시비는 모두 검을 쥐고 도열하여 선주는 수레에서 내릴 때 겁을 먹었다. 이에 법정은 선주에게 손부인을 오로 돌려보내도록 권하였다.




건안 20년 손권은 선주에게 형주를 물려받겠다고 뜻을 전했다. 선주가


“우리 군은 양주를 손에 넣고자 합니다. 양주를 평정하면 이후 형주를 넘겨 드리지요.”


라고 고하자, 손권은 노하여 여몽을 파견, 장사와 영릉 계양의 삼군을 불시에 습격하여 빼앗았다. 선주는 공안에 주둔하며 관우를 익양으로 보냈다. 딱 이때, 조공이 한중에 진군, 장로는 파서로 도주하였다. 황권이 진언하여 말했다.


“혹여 한중을 잃게 되면 3파(파동 파서 파중을 말하는 듯?)는 쇠락하여 촉의 팔다리를 베어내는 꼴이 됩니다.”
 
이에 선주는 오와 화평을 맺어 형주를 분할, 강하 장사 계양이 동(오나라)에 속하고, 남군 영릉 무릉이 서(촉)에 속하게 하였다. 선주는 군을 이끌고 북상, 강주(원문은 강하, 촉지 선주전을 따랐다.)에 귀환하고, 황권을 호군으로 삼아 장로를 맞이하게 하였으나, 장로는 이미 조공에게 항복하였다. 황권은 조공으로부터 3파의 태수로 임명된 두호, 박호, 원약 등을 격파하였다. 공은 정서장군 하후연, 익주자사 조x, 장합을 배치하여 한중을 수비케 하였다. 이후 공은 동쪽으로 귀환하였고, 장합은 거듭 파의 경계를 침범하여 약탈을 행했다.




선주는 장비를 이끌고 탕거의 몽두에 진군하여 장합에 대항, 50여일에 걸쳐서 대치하였다. 장비는 다른 길로 우회, 장합이 올 것을 기다려  양석에서 싸웠고, 결국 장합의 군을 대파했다. 장합은 말을 잃고 산을 올라 그저 십여기만을 이끌고오솔길을 통해 남정으로 귀환했다.




건안21년 선주가 성도로 귀환하였다. 건안22년 촉군태수 법정이 아뢰었다.


“조조는 일거에 장로를 항복시켜 한중을 평정하였으나, 이를 기화로 파촉을 손에 넣고자는 하지 않고 하후연 장합을 남겨두고 자신은 황망히 북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이는 조조의 지모가 부족하거나 군사력이 부족함 때문이 아니고 내부의 문제(뭘까...)가 걱정되어서임이 틀림없습니다. 하후연 장합의 재략을 추량컨대 아군의 대장들에게는 미치지 못합니다. 군세를 움직여 공략에 나서야 할 터입니다. 그리하면 필시 하후연 장합 등을 잡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 편을 돕고 있는 것이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선주는 이 권고에 따랐다. 또한 파서 출신의 유림교위 주군에게 묻자 주군이 답하여 말하기를


“그 땅(한중)을 우리 수중에 넣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그 땅의 백성을 손에 넣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혹여 부대를 출진시킨다면 필시 얻는 바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선주는 결국 행동에 나섰고, 제갈량을 본진에 남겨 식량과 병사를 보충케 하였다.





건안 23년, 선주가 병사를 징발하려 급히 편지를 보내자 군사 제갈량은 건위 출신의 종사 양홍에게 의견을 물었다. 양홍이 답하여 말하기를


“한중은 촉의 요소이므로 촉의 존망이 걸린 시기에 한중이 우리 영역이 아니라면 촉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남자는 싸우고 여자는 짐을 나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병사를 징발하는 일에 어찌 망설이십니까?”


라 하였다. 제갈량은 촉군태수 법정이 선주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선주에게 양홍을 촉군태수 대행으로 삼도록 아뢰고, 후에 정식으로 취임케 했다. 이전에 양홍은 건위태수 이엄의 공조였고, 군(건위군 공족의 직)를 떠나 수년만에 촉군태수가 되었으나, 이엄은 이전대로 건위태수직에 머물렀다. 또한 촉군의 하지가 양홍의 문하서좌가 된 후, 군(촉군 문하서좌의 직)을 떠나 수년만에 광한태수가 되었으나, 양홍은 이전대로 촉군태수였다. 이러한 전차로 촉 사람들은 모두 제갈량이 우수한 인재를 발탁하는 재주에 감복했다.





건안24년, 선주는 한중을 평정하고 하후연을 척살했다. 장합은 한중의 관리들과 백성들을 이끌고 내지로 옮겨갔다. 이전에 선주는 오란 뇌동을 파견하여 무도에 진격시켰으나 모두 전사했다. 하여 (주군의 말대로 되었으므로) 주군을 무재로 추거했다. 그 당시, 익주 후부사마였던 장유도 또한 점술에 통달한자였으나 엄한 소리를 한 죄로 주살되었다.(1) 조공은 위왕의 자리에 오르고, 왕(위왕)은 서정을 행했으나 법정의 책략을 듣고는


“이전부터 현덕은 이러한 책략을 쓰지 않았소.”라 말하고, 또한


“나는 간웅이라고 할만한 자들은 거의 다 수하에 두었으나, 법정만은 손에 넣지 못했구나.”


라고도 말했다.


(1) 장유는 “선주는 촉을 얻으나 호랑이해(임인년, 즉 장무2년)과 토끼해 (계유년 즉 장무 3년) 사이에 한을 잃게 될 것이다. 흉년은 경자년(건안25년/연희원년)이다.”라고 말했다.




군신들이 상표하여 선주를 한중왕, 대사마로 올렸다. 허정을 태부로, 법정을 상서령으로, 영릉출신의 뇌공을 태상으로, 남양출신의 황주(8)를 광록훈으로, 왕모를 소부로, 무릉출신의 요립을 시중으로 임명했다. 또 관우를 전장군으로, 장비를 우장군으로, 마초를 좌장군으로 임명하고, 모두 가절월을 내렸다. 또 황충을 후장군에 조운을 익군장군으로 임명하였다. 그 외 여러 관호를 승진시켰다. 군사(군사장군?) 제갈량이 말했다.


“황충의 명성과 인망은 본래 관우 장비 마초와 동격이 아닙니다. 현재 장비와 마초는 황충 곁에 있으므로 그 공적을 스스로 보아 알고 있으나, 그렇더라도 이에 대해 설명을 잘 해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더욱이 관우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를 듣고 크게 분노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선주는


“내가 친히 이 일을 설명하겠소.”


라고 했다.



이때, 관우는 강릉에서 번성의 조인을 포위하고 있었다. 선주가 건위 출신의 전부사마 비시를 보내어 가절을 내리자, 관우가 노하여 말하기를


“대장부인 자(자신)가 어찌 노병과 동렬에 서겠는가!”


라 말하고 이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비시가 말하기를


“과거 소하와 조참은 고조와 불x친구였으나 후일 진평과 한신이 귀참하여 온 후, 그 서열에 대해 논할 때 한신이 수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하와 조참이 이를 원망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왕께서는 일시의 공적에 의해 한승(황충)을 고귀한 직위에 두셨으나, 심중의 경중을 논한다면 어찌 군후(관우)와 동격이겠습니까? 왕과 군후의 사이를 보면 몸의 일부와 같은 사이로 복과 화를 함께 당해온 사이입니다. 저는 군후께서 관후의 높낮음이나 작위의 다소를 계산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관우는 이 말을 듣고 즉각 (가절월 전장군을) 받았다.



이전에 관우는 마초가 귀참해 온 사실을 듣고는 전에 알던 자가 아닌지라 제갈량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 인물됨과 재능에 대해 물었다. 제갈량은 관우가 마초와 동격 취급받음을 꺼리는 것을 알고는 답하여 말하기를


“맹기는 경포나 팽월 따위의 무리입니다. 일대의 일세의 호걸임은 틀림없으나 익덕과 더불어 선봉에나 쓸 인물입니다. 염전(수염님-.-;; 이부분은 원문을 확인 못했군여. 파성 원문에도 물음표로 나와서...)의 절륜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관우는 그 편지를 읽고는 기뻐하여 빈객들에게 내보였다. 관우는 아름다운 수염을 갖고 있었던 고로, 제갈량은 관우를 염전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전에 관우가 팔에 유시를 맞아 날이 흐리면 통증이 심했다. 의사는 화살촉에 독이 있으므로 팔을 가르고 독을 제거해야 통증이 없어질 것이라 말했다. 관우는 즉시 팔을 내밀어 치료를 받았다. 당시 마침 손님과 만나고 있었는데, 팔에서 피가 흘러 그릇에 한가득 될 정도였으나 관우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가르며 평상시처럼 담소를 나누었다.




위왕은 좌장군 우금을 파견하여 7군 3만을 통솔시켜 번성을 구원케 하였으나 한수가 급작스레 물이 불어 모두 관우에게 포박당하였다.  또, 위의 장수 방덕이 살해되어 중원은 공포에 떨었다. 위왕은 천도하여 (관우의) 창끝을 피하는 것이 어떠한지 평의를 열었다. 그러나 손권이 강릉을 습격하고 장군 부사인과 남군태수 미방이 오에 항복하였다. 관우는 오랫동안 번성 공략을 계속치 못할 상황이었고, 위의 우장군 서황이 구원차 도래하였다. 관우는 퇴각하였으나 결국 손권에 의해 살해되었다. 오는 형주 전역을 수중에 넣었고, 유장을 익주목으로 삼고 자귀에 주둔케 하였다.
이해, 상서령 법정이 서거하고, 익후에 추증되었다. 상서 유파가 상서령이 되었다. 



(8)원문은 황권이라 하고 있으나 촉지 양희전에 따라 황주라 한다. 



장무원년, 이는 위의 황초2년이다. 봄, 태부 허정, 안한장군 미축, 군사장군 제갈량, 태상 뇌공, 광록훈 황주, 소부 왕모 등은 선주가 이미 거절했던 한의 혈통을 이어 제위를 잇도록 하는 일을 권했으나, 선주께서는 이를 옳게 여기지 않았다. 제갈량은 진언하여 말했다.
 
"과거, 오한, 경엄 등이 처음 세조(유수)에게 제위에 오르도록 권했으나, 세조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경순은 [천하의 영웅은 (유수를) 따르며 앙모하는 상황으로, 바라는 것들을 각기 손에 넣고자 바라고 있습니다. 혹여 (황위를 이으라는 저희들의) 입안을 따르지 않으신다면 사대부는 각기 당신을 떠나 새로운 군주를 찾을 것이니, 당신을 좇는 이는 아무도 없게 될 것입니다.]라 진언하니, 세조는 이 말에 마음이 움직이셨습니다. 지금 조씨가 한을 탈취하고, 천하의 주인이 없는 상태입니다. 대왕께서는 한조를 승계하고 즉위하심이 마땅할 것입니다. 사대부가 대왕을 따르며 오랜 기간 힘들게 일해온 것은 경순의 말과 같이 얼마간의 공훈을 올리고자(공을 올려 상급을 받고자 하는)하는 것에 불과한 일입니다.(상급을 못받으면 다들 떠날 것입니다.)"
 
선주는 이 말에 따랐다. 제갈량과 박사 허자, 의랑 맹광이 (즉위를 위한) 의례 작법을 정하고, 길일을 택했다. 비시는 상표하여 말했다.
 

"전하는 조조부자가 주공(헌제)를 협박하여 제위를 찬탈하였으므로 고향을 떠나 먼길을 헤매며 병졸들을 규합하여, 기필코 적도를 토벌하고자 하셨습니다. 지금, 강대한 적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시기를 맞추지 못하고 앞서서 제멋대로 즉위하려 하시는 것은 필시 여러 사람들에게 의혹을 갖게 하는 일일 터입니다. 과거, 고조께서는 초(항우)와 더불어, 먼저 진나라를 격파하는 이가 왕이 되자는 약속을 하였으나, 함양을 함락하고, 자영(진 3세 황제)을 포박하였음에도, 늘상 타인이 (즉위할 것을) 권유하더라도 스스로 사퇴하셨습니다. 헌데, 지금 전하는 출정(위에 대한 출정)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즉위하려고 하십니다. 우둔한 신은 전하를 위해서라도 (즉위에) 찬동할 수 없습니다."
 
이 일로 조정은 비시를 좌천하여 영창군의 종사로 삼았다.




5월 12일, 황후에 오씨를 세웠다. 오씨는 오의의 아랫 누이이다. 아들 유선을 황태자로 삼았다.





6월, 아들 유영을 노왕으로 삼고, 유리를 양왕으로 삼았다.
선주는 동정하여 관우의 치욕을 갚고자 하여, 장비에게 명하여 파서의 수만 병력을 이끌게 하고, 강주에서 합류코자 하였다. 그러나, 장비 막하의 장수 장달과 범강이 장비를 살해하고, 그 목을 들고 오나라로 도주하였다. 이 이전에 장비와 관우는 용맹은 삼국의 수위에 섰으니, 만인의 적이라고 칭해졌다. 관우는 신분이 낮은 자를 두텁게 사귀었으나, 사대부에 대해서는 교만하게(무례하게) 굴었고, 장비는 군자를 경애했으나, 소인(일어역에서는 신분 낮은 자라고 하지만, 군자에 대비되는 어휘임을 생각하면 소인을 소인배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하군여.)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두 사람은 모두 그 몸을 상하게 한 것이다. 선주는 늘 장비에게


"경은 과도하게 형벌을 시행하고, 병사를 매질하곤 하면서도 그들을 곁에 두고 있으니 이것은 화를 불러오는 일이라오."

라고 깨우쳤으나, 장비는 듣지 않았으니, 이로서 몸을 상하게 되었다. 선주는 장비의 군영의 도독으로부터 상주가 있었다는 것을 듣고,


"아아, 장비가 죽었는가!"


라고 말했다. (장비의 후임으로) 승상 제갈량을 사예교위로 삼았다.




7월, 선주는 동쪽으로 정벌에 나서니, 많은 군신들이 간언하였으나 듣지 않으셨다. 광한의 진밀이 천시에 그 이익이 없다고 설파하였으나, 선주는 노하여 진밀을 옥에 가두어 버렸다.
권은 편지를 보내어 화평을 청하였으나, 선주는 듣지 않으셨다.  오의 장수 육의(陸議), 이이(李異), 유아(劉阿) 등의 군이 자귀에 착진했다. 좌우영군인 남군출신의 풍습과 진류출신의 오반은 건평으로부터 출격하여 이이등을 격파하고, 군을 자귀에 주둔하게 하였다. 무릉의 (오랑캐) 오계만(족)이 사자를 보내어 출병을 청해왔다. 

(자신들도 유비에게 더불어 참진하겠다는 의미로 보임.) 



2년 봄 정월, 선주의 군이 자귀에, 오반 진계(촉지 선주전에는 진시이라 한다.)등의 수군이 무릉에 주둔하며 서로 강물을 동서로 대치하며 착진하였다. 2월, 진격하려 하자, 황권이 간언하여 말했다.


"오나라 사람들은 용맹하고, 싸움에 있어서 격렬히 임할뿐더러, 수군은 물길의 흐름에 따르고 있어, (오군은) 앞으로 나아가기는 잘해도 뒤로 물러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부디 신을 선진으로 삼으셔서 적과 한 차례 싸워보게 하십시오. 폐하는 후진을 굳히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선주는 이 말에 따르지 않고, 황권을 진북장군으로 삼아, 강북의 군을 통솔하게 하였다. 선주는 군영을 이끌고 조금씩 전진하여 이도 효정에 주둔하며 시중 마량을 보내 한산을 경유해 오계만(오계의 만족)을 위무케 하였다.




6월, 황색의 기운이 자귀로부터 십여리에 걸쳐 나타났는데, 그 넓이가 십여장에 이르렀다. 십수일 후, 오나라 사람들과 싸워, 선주는 대패하고 풍습이나 장남 등은 모두 사망했다. 선주는


"내가 패배한 것은 천명에 의한 것이다."


라고 탄식하고 배를 버리고는 육로로 어복으로 귀환했다. 의양 출신의 장군 부융이 후진을 맡아, 병졸은 전멸하였으나, 부융의 기백은 점점 올랐다. 오의 장수가 항복시키려 하자 부융은 


"오나라 개놈아, 한의 장군이 항복할줄로 아느냐!"


라며 욕하고는 싸우다 죽었다. 종사제주 정기는 독단으로 강물을 거슬러 올라 퇴각하였으나, 병졸들이

"배후에 추격병이 있습니다. 방선을 분리시키고 빨리 도망가야합니다."


라고 말하자 정기는


"나는 군문에 든 몸으로, 적에게 도망치는 법은 모른다. 하물며 천자를 좇는 몸이 아니냐."


라고 말하고는 마찬가지로 살해당했다.




황권의 부대는 고립되어 퇴로도 끊겼으므로 북방의 위군에 항복하였다. 이이, 유아 등은 선주를 추격하여 남산에 주둔하였다.
 




선주는 어복을 개칭하여 영안이라 하였다. 승상 제갈량은 보고를 받자,


"법효직이 살아있었다면 주상을 제지하여 동정에 나서지 않도록 할 수 있었터이며, 만일 동정에 나섰다고 하더라도, 필시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인데"


라며 탄식했다.





8월, 사도 허정이 죽었다.
이 해, 표기장군 마초도 죽었는데, 죽음에 임박해 상주하기를,

"신의 일족 이백여인은 맹덕이 대부분 참살했습니다. 종제 마대만이 일족의 제사를 이을 자이니, 폐하께 마대를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했다.마대의 관위는 평북장군까지 승차되었다. 또한, 부융의 아들 부첨을 좌중랑장으로 삼았다.




10월, 승상 제갈량에게 조칙이 내려, 성도에서 남교와 북교(각기 사당을 말하는 듯 하군여)를 조영토록 하였다. 손권은 선주가 백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두려워하며, 사자를 보내 화평을 청했다. 선주는 남양출신의 태중대부 종위를 보내어 응답했다.




11월, 선주가 병으로 침상에 누웠다.



12월, 한가태수 황원은 이전부터 제갈량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한 고로, 선주가 병상에 누웠다는 것을 듣고는, 후에 재난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군(한가군)을 들어 방어를 굳혔다.




3년 정월, 성도로부터 승상 제갈량을 불러들여서 그의 병문안을 받기로 하였다. 황원은 임공성에 불을 놓았다. 치중종사 양홍은 태자께 장군 진홀, 정작을 파견하여 청의수를 경유하여 황원을 토벌토록 상주하였다. (태자는 그 말을 따라 이들을 보내어) 황원을 격파하였다.




2월, 제갈량이 영안에 도착하였다. 선주가


"군의 재능은 조비의 열배에 이르니, 필시 국가를 안정시키고 최후에는 대사(천하 통일)를 이룰 수 있을 것이오. 혹여 적자(유선가 보좌할만한 인물이라면 이를 보좌하여 주오. 혹여 적자에게 재능이 없다면, 군이 스스로 이를 대신(하여 황위에 오르는)하는 것이 좋겠소."


라 말하자,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신은 신하로서 진력하여 충의와 정절을 지켜, 목숨을 걸고 이(유선을 보좌해 대업을 이루는 것)를 계속할 작정입니다."


라 답했다. 더하여, 선주는 조칙을 내려 태자에게


"너는 승상과 함께 일을 행하며, 그를 아비 대하듯 하여라."


라고 훈계했다. 제갈량은 상서령 이엄과 함께 위탁을 받았다.




4월, 선주는 영안궁에서 죽었다. 향년 63세이다. 제갈량은 상주하여


"선제는 인자한 도를 세우시고, 그 은혜는 한량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이를 애닳게 여기지 않아 이 달 24일에 붕어하셨습니다. 여러 신하, 비첩들은 소리내어 울어, 부모를 잃은 듯 하였습니다. 유조를 돌아보건대 일의 본질을 숙려하는데 전념하라 하시고, 백관은 발상하고 삼일이 지나면 상복을 벗도록 하셨습니다 매장할때는 다시 상복을 입고, 군국의 태수, 상, 영, 장, 승, 위는 삼일이 지나면 상복을 벗도록 하셨습니다."




5월, 관이 성도에 도착하고, 소열황제라 시호를 올렸다.




8월, 혜릉에 매장했다.




찬하여 말한다. 한말의 세상은 크게 어지러워졌고, 영웅호걸이 여기저기서 일어섰다. 동탁 여포 이원(원소와 원술) 한수 마초 장양 유표 등은 주를 병합하고 군을 모았으니, 이러하 자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들이 호령하기로는 모두 스스로를 한조를 잇는 자라 말하고, 환문(제환공과 진문공)도 뛰어넘는 기세였다. 그러나 위무(조조)는 신과 같이 뛰어난 무덕과 지략을 갖고 그들을 평정하여 모두 처단하였으니, 그러한(위에 언급한 자들) 자들은 더는 나오지 않았다.

이때, 선주의 명성은 대단치 않았으나, 그 사람됨과 외관이 화려하였으니, 용이 흥하고 봉이 날아오르는 기세였고, 예주를 영유하고 서주의 군주가 되고, 형초(형주)를 날개로 삼아, 익주의 땅을 번연히 날아올라 한의 천자의 위를 계승, 오나라 위나라와 더불어 솥발처럼 일어섰다. 뛰어난 재능을 갖지 않은 자였다면 어찌 이러한 일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헌데, 조씨가 한을 대신하게 되었으나, 본래대로라면 일을 바르게 행하고, 공평함을 밝혀야할 터였다. 역직을 반환(하고 즉위)한 것은 의로운 선비들에게 비난받은 바였다.
(이부분은 조금 이상함. 왜국 중궈가 해석을 잘못 넣은 것인지... 조씨 이야기인지 유씨 이야기인지 모르겠음... 뭐,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그럴듯하네여.)

그 죽음에 이르러서는, 고아를 제갈량에게 위탁하였으니, 그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진자(진수)는 이 일을 군신간의 공평함이 극에 달한 일로서 고금에 빛나는 견본이라고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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