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표전]]에서 분할

채모(蔡瑁)의 자는 덕규(德珪)이니 양양(襄陽) 사람이다. 보충1) 

보충1)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권60에는 “채모는 양양사람이다. 일찍이 남군(南郡) 사람 괴월(蒯越)과 함께 유표(劉表)의 모주(謀主)가 되었는데 응변(應變)하는 재주가 있었다.

성품이 호방하고 자긍(自矜)하였는데 젊어서 위무제(魏武帝)와 친하였다. 유종(劉琮)이 패하자 무제(武帝)는 그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채모의 침실로 곧장 들어가서 그의 처자(妻子)를 불러 만나고는 채모에게 말하기를


“덕규(德珪), 예전에 함께 양맹성(梁孟星)을 보러 갔는데 맹성이 사람들을 만나주지 않던 때가 기억나지 않는가? 지금 이곳에 있다 들었는데 무슨 면목으로 자네를 보겠다는 것인가.”


하였다. 

이때 채모의 집은 채주(蔡洲) 위에 있었는데 보충2) 집이 매우 좋았고 네 담장에는 모두 푸른 돌로 각우(角隅)를 지었으며 비첩(婢妾)이 수백 명이었고 별장(別莊)이 4~50곳에 있었다.


보충2) 수경주(水經注) 권28 면수하(沔水下) 조에는 “면수(沔水)는 또한 동남쪽으로 채주(蔡洲)를 지나가는데 한나라 장수교위 채모(蔡瑁)가 그곳에 살았으므로 채주라 이름하였다.” 했다. 주(洲)는 물 가운데 있는 섬이다.

한나라 말, 여러 채(蔡)씨들은 가장 번성하였다. 채풍(蔡諷)의 누님은 태위(太尉) 장온(張溫)에게 시집갔고 큰 딸은 황승언(黃承彦)의 처가 되었으며 작은 딸은 유경승(劉景升)의 둘째 부인이 되었는데 이들은 채모의 누님 이었다. 채찬(蔡瓚)의 자는 무규(茂珪)로 언국(鄢國)의 상(相)이 되었고 채염(蔡琰)의 자는 문규(文珪)로 파서태수(巴西太守)가 되었는데 채모와 같은 할아버지였다. 진나라 영가(永嘉) 말, 그 자손들은 더욱 부유하고 종족들은 매우 강성하여 함께 채주(蔡洲) 위에 모여 살았는데, 도적 왕여(王如)에게 살해당하니 일가(一家) 종족(宗族)들이 모두 죽어 지금도 채(蔡)씨 성을 회복한 이가 없다. 보충1)

보충1) 태평어람(太平御覽) 권69에 인용된 형주도경(荊州圖經)에는 “양양현(襄陽縣) 남쪽 8리에 현산(峴山)이 있고 동남쪽 10리 강 가운데에는 채주가 있는데 한나라 장수교위 채모가 살던 곳이다. 종족들이 강성하여 함께 한 섬[洲]에 모여 지냈는데 왕여에게 살해당하니 일가 종족들이 모두 죽었다.” 하였다. 양양기구기에 장여(張如)라고 한 것은 왕여를 잘못 쓴 것이다.

채모는 유표 때에 강하, 남군, 장릉태수(章陵太守)와 보충1) 진남대장군군사(鎭南大將軍軍師)를 지냈으며 후에 위무제(魏武帝)의 종사중랑(從事中郞), 사마(司馬), 장수교위(長水校尉), 한양정후(漢陽亭侯)가 되었다. 

보충1) 양양기구기의 경릉(竟陵)은 장릉(章陵)을 잘못 쓴 것이다.

위무제가 비록 친구로써 대우하였으나 당시 사람들은 천시 하였으니 유종을 돕고 유기를 모함했던 까닭에 이를 책망한 것이었다.


위문제(魏文帝)가 전론(典論)을 짓고는 채모에 대해 쓴 것을 끝으로 완성하였는데 전론에 말하기를 

“유표(劉表)의 맏아들은 유기(劉琦)이다. 유표는 처음에 그를 아끼기를 제 몸처럼 하였다. 오랜 후에 어린 아들 유종에게 후처 채씨의 조카를 부인으로 맞이하게 하니 마침내 유종을 아끼고 유기를 미워하게 되었다. 채모와 외조카 장윤(張允) 등은 아울러 유표에게 총애를 받았고 또한 유종과 화목하였다. 이들은 유종이 잘한 것이 있으면 비록 작더라도 반드시 소문냈고 잘못이 있으면 비록 크더라도 반드시 덮어주었다. 채씨 부인이 안에서 유종의 좋은 점을 칭찬하고 장윤과 채모가 밖에서 유종의 덕을 칭송하니 아끼고 미워하는 마음이 이로 말미암아 유기와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이에 유기는 성을 나와 강하태수(江夏太守)가 되었고 밖에서 군사에 관한 일을 감독하였다.채모와 장윤은 은밀히 유기가 잘못하는 것을 엿보고는 헐뜯었다. 이리하여 유기가 잘한 것은 매우 크다 해도 가려지지 않는 것이 없었고 잘못은 사소한 것이라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에 유표는 화를 내는 일이 날로 늘어났고 유기를 책망하는 글이 날마다 날아들었다. 그리하여 유종을 마침내 후사(後嗣)로 삼았다.  

그러므로 속담에 말하기를 ‘칼을 차고 서로 해치게 됨은 몸이 떨어져 있는 데서 생겨나고 사랑이 쌓이게 됨은 친근하고 익숙한 데서 나온다.’ 하였으니 어찌 이를 일컫는 것이 아니랴. 설류(泄柳)와 신상(申詳)은 목공(穆公)의 측근에서 자신들을 받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 몸을 편히 하지 못하였으리라. 보충1) 

보충1)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

임금과 신하도 이러하거니와 아버지와 아들 사이 또한 외려 이러하구나.” 하였다.


후에 유표의 병이 위독하여지니 유기는 효성스러웠으므로 돌아가 유표의 병을 살피고자 하였다. 채모와 장윤은 그가 유표를 뵙게 되면 부자간에 서로 감동하여 다시 뒷일을 맡길 생각이 들까 저어하여 유기에게 일러 말하기를 

“장군(將軍-진남대장군 유표를 말함)께서 군(君-유기)에게 명하시어 강하를 다스리게 하시고 나라를 위해 동쪽을 지키게 하셨으니 그 책임이 지극히 무겁습니다. 이제 군사들을 버려두고 오신 것을 보시면 반드시 노하실 것입니다. 부친의 즐거운 마음을 상심토록 함은 그 병환이 더 심해지게 하는 것이니 이는 효도(孝道)가 아닙니다.” 

하고 마침내 문 밖에서 막고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매 유기는 눈물을 흘리며 갔다. 선비들과 백성들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마음 아파하였다. 유표가 졸(卒)하니 유종은 마침내 후사로서 형주목이 되었고 성무후(成武侯)의 인수(印綬)를 유기에게 주었다. 

유기는 노하여 이를 땅에 던지고는 분상한다 속이고 채모와 장윤을 토벌할 뜻을 두었다. 마침 왕사(王師-왕의 군대, 즉 조조의 형주정벌을 말함)가 이미 그 근교(近郊)까지 이르자 유종은 형주를 들어 바치고 죄를 청하니 유기는 마침내 강남(江南)으로 출분(出奔)하였다.보충1)


보충1) 수경주(水經注) 권28 면수하(沔水下) 조에는 “면수(沔水)의 서쪽 효자묘(孝子墓) 그 남쪽에 채모의 무덤이 있다. 무덤 앞에는 조각석상이 있어 큰 사슴의 형상으로 만들었는데 매우 커서 머리의 높이가 9척이고 지은 것이 매우 공교(工巧)하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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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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