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보충 자료 - 조비, 전론 논문
제가 소개하고 싶은 글은 다들 아시는 조비의 저서인 전론의 논문이라는 부분입니다. 전론은 이미 소실되었으나 논문이라는 부분은 남아서 현재까지 전해지는 데 이 내용이 아주 가슴에 와 닿아 이렇게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조비(曹丕), [전론(典論)] - 글을 논한다[論文]

논문[論文]

문인(文人)들이 서로를 가벼이 여기는 것은 예부터 그러했다. 부의(傅毅)는 반고(班固)에 비할 때 백중지간일 뿐이다. 그러나 반고가 그를 낮추어 보고는 동생 반초(班超)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무중(武仲, 부의의 자)은 글을 잘 짓는다 하여 난대영사(蘭臺令史)가 되었으나 일단 붓을 들면 스스로 멈출 줄을 모른다.”

문인들이 서로를 가벼이 여기는 것은 예부터 그러했다.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비단 문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가벼이 여기고는 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조비는 이러한 어찌보면 당연해보이는 사실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며 글을 시작합니다.

무릇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잘하나 글에는 하나의 문체[體]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런저런 글을 두루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 때문에 문인들은 각자 자신의 장점을 가지고 서로 남의 단점을 가볍게 보는 것이다. 속담에서 “자기 집에 낡은 빗자루가 있으면, 이를 천금처럼 귀하게 여긴다.”라고 한 바이니 이것이 바로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 우환이다.

이 내용을 글에서 일상생활에 대한 것으로 바꿔서 생각해보자면,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잘하나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으므로 그 많은 일들은 전부 다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장점을 가지고 서로 남의 단점을 가볍게 보며 업신여기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그 것에 익숙한 사람이 익숙하지 못한 사람에게 "에이 그것도 못해?"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일들은 현재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문인으로는 노국(魯國) 사람 공융(孔融) 문거(文擧), 광릉군(廣陵郡) 사람 진림(陳琳) 공장(孔璋), 산양군(山陽郡) 사람 왕찬(王粲) 중선(仲宣), 북해국(北海國) 사람 서간(徐幹) 위장(偉長), 진류군(陳留郡) 사람 완우(阮瑀) 원유(元瑜), 여남군(汝南郡) 사람 응창(應瑒) 덕련(德璉), 동평국(東平國) 사람 유정(劉楨) 공간(公幹)이 있는데, 이들을 칠자(七子)라 부른다. 이들은 학문에 있어서 빠뜨린 것이 없으며 문장에 있어서 [남의 것을] 빌려온 바가 없다. 모두 스스로 좋은 말을 몰고 천릿길을 달리매 고개를 치켜들고 발걸음을 함께하여 나란히 달려가는 것 같으니 이 때문에 서로 승복하기가 또한 진실로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군자는 먼저 자신을 살펴보고서 남을 재어야 하는 법이니, 그럼으로써 이러한 폐단을 면하여 글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전 조비에 대해 그리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벌였던 일들이 너무 심각한 수준으로 주위를 황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조조처럼 적을 치는 것보다 내부의 사람들 특히 견후, 하후상, 우금, 조씨친족 등에게 그가 군주의 위치에서 벌였던 일들이 조위의 몰락을 초래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죠. 하지만 제가 간과했던 부분이 조비는 삼조라고 불리울 정도로 당대의 지성이며 문장가였다는 겁니다. 적어도 이런 분야에서 조비를 판단하는 것은 그가 했던 짓과는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 조비가 이런 글을 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부분에서 군자를 논하고 있는 데 조비가 군자를 논한다고 생각하니 그저 웃음만 나오더군요. 그러나 이 글은 조비가 가지는 군자에 대한 생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왕찬은 부(賦)를 짓는 데 뛰어났다. 서간은 때때로 [문장의] 기운이 지나치게 골랐지만 왕찬의 짝이 될 만했다. 왕찬의 「초정부(初征賦)」, 「등루부(登樓賦)」, 「괴부(槐賦)」, 「정사부(征思賦)」, 그리고 서간의 「현원부(玄猿賦)」, 「누부(漏賦)」, 「원선부(圓扇賦)」, 「귤부(橘賦)」와 같은 작품들은 비록 장형(張衡)이나 채옹(蔡邕)이라 할지라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글은 이와 같이 칭송할 만하지 않다. 진림과 완우의 상주문[章表]이나 편지글[書記]은 오늘날의 뛰어난 작품이다. 응창의 글은 조화로우나 굳센 기운이 없고, 유정의 글은 굳세지만 치밀하지 않다. 공융의 글은 문체와 기운이 높고 오묘하여 사람들을 뛰어넘는 바가 있으나 조리를 견지하지 못한 탓에 이치가 수사를 이기지 못하여 조롱과 빈정거림으로 장황하고 번잡한 데 이르렀다. 그러나 그 중 잘 쓴 작품은 양웅(揚雄)과 반고의 짝을 이룰 만하다.
항상 사람들은 먼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운 것을 천하게 여기며, 명성을 쳐다보려 하고 실질에는 등을 돌린다. 또한 스스로를 바라보는 데에는 어두워서 자기 글을 뛰어나다고 한다. 그러나 무릇 글이라는 것은 근본은 같지만 끝은 서로 다른 법이다. 대체로 상주문[奏]이나 의문(議文)들은 우아해야 하고, 편지나 논설은 이치에 맞아야 하며, 명문[銘]이나 조문[誄]은 사실을 존중해야 하며 시(詩)나 부(賦)는 아름다움을 바라야 한다. 이 네 분야는 서로 같을 수 없으므로 글을 지을 수 있더라도 한쪽에만 치우치지 쉽다. 오직 모두에 능통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야 그 문체를 두루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건안칠자의 비평에 관한 내용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비는 이들 각자가 가지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하여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전들은 귀하게 여기나 최근에 나온 책들은 천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을 가벼이 여기고 멀리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글을 뛰어나다 여기는 것은 현재도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글은 기운[氣]을 중심으로 삼는데, 기운의 맑고 탁함 때문에 문체[體]가 생기는 것이니 힘써 노력한다고 해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음악에 비유해 보면, 곡조와 박자가 모두 똑같고 고저장단이 한가지일지라도 [사람마다] 끌어들이는 기운이 끝내 고르지 않으니 교묘함과 졸렬함[巧拙]은 본래 바탕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나 형에게 [그런 소질이] 있을지라도 이를 아들이나 동생에게 옮길 수 없다.

조비는 사람마다 타고나는 기운이 있으므로 이것으로 문체가 생기며 힘써 노력한다고 이루어 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즉, 타고난 소질이 있으므로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된다고 생각한 것 같은 데, 어찌보면 맞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노력이라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므로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다만 끝부분에 대한 내용은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죠.

무릇 문장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사업이요, 썩어 없어지지 않을 성대한 일이다. 사람의 목숨은 때가 이르면 다하게 마련이고, 영락(榮樂, 삶이 영화롭고 즐거움) 역시 그 몸과 함께 그칠 뿐이다. 이 둘은 반드시 정해진 기한이 있으므로 문장의 무궁함과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옛날 글을 짓는 사람들은 붓과 먹에 몸을 맡기고 서적을 지어 뜻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들은] 훌륭한 역사가들의 문장을 빌려오지 않았으며 나는 듯 달리는 듯한 기세에 의지하지 않았으나 명성은 절로 후세에까지 전해졌다. 그러므로 서백(西伯, 주나라 문왕)은 유폐되었을 때 역(易)을 늘렸으며, 주공 단(旦)은 현달했을 때 예를 제정했다. 그들은 곤궁에 처했을 때[隱約]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편안하고 즐거울 때에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무릇 그러하기에 옛 사람들은 척벽(尺璧, 지름이 한 자나 되는 옥, 즉 귀한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촌음(寸陰, 아주 짧은 시간)을 무겁게 여겼으며,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힘써 노력하는 이가 많지 않으니 가난하고 비천하면 굶주림과 추위를 두려워하고 부유하고 존귀하면 일없이 즐기는 데만 빠져들고 있다. 그래서야 끝내 눈앞의 일만 영위할 수 있을 뿐이지 어찌 천 년을 갈 공적을 남기겠는가. 해와 달은 위에서 움직여 가고 얼굴과 몸은 아래에서 쇠약해지다가 돌연 만물과 더불어 죽어 없어지는 법[遷化]이니, 이는 바로 뜻있는 선비들이 크게 가슴 아파하는 점이다. 공융 등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오직 서간만이 [『중론(中論)』과 같은] 글을 지어 일가의 말을 이루었을 뿐이다.

이 부분이 정말 명문입니다. 문장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사업이요, 썩어 없어지지 않을 성대한 일이다 라고 평한 부분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과거에는 글이란 경전을 해석하고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그 가치를 다 했다고 하지만 조비는 글 자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크게 평가했다고 보는 분들이 있더군요.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이 과학을 해석하기 위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지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사람이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니 글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뜻이 오래도록 전해진다는 겁니다. 실제로 조비는 약 2천년 전 사람이지만 이 글을 남김으로써 그의 뜻이 지금 전해지고 있습니다. 문왕과 주공 단의 사례를 보임으로써 곤궁에 처했을 때나 편안할 때나 생각을 멈추지 말고 노력을 하라고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의 수명은 정해져 있으니 결국 죽게 되는 데 이를 가슴 아파하며 남는 것은 글이라고 주장합니다. 서간이 책을 남겼다는 말로 글을 마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생활이 큰 틀에서 보면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지금의 사람사는 세상과 대입해보면 거의 들어맞습니다. 결국은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힘써 노력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출처: http:/polyedit.egloos.com/3350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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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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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10.23
22: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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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보충자료로 옮기겠습니다. 건안칠자들의 이름이 보이는 것이 흥미롭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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