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軌,字士彥,安定烏氏人,漢常山景王耳十七代孫也。家世孝廉,以儒學顯。父溫,為太官令。軌少明敏好學,有器望,姿儀典則,與同郡皇甫謐善,隱于宜陽女几山。泰始初,受叔父錫官五品。中書監張華與軌論經義及政事損益,甚器之,謂安定中正為蔽善抑才,乃美為之談,以為二品之精。衛將軍楊珧辟為掾,除太子舍人,累遷散騎常侍ㆍ征西軍司。

 

장궤(張軌)는, 자(字)가 사언(士彥)이며, 안정(安定) 오씨(烏氏)사람(人)이며, 한(漢) 상산경왕(常山景王) 장이(耳)의 17대손(十七代孫)이다(也).

 

가문 대대로(家世) 효렴(孝廉)이어서, 이로서(以) 유학(儒學)에 명성이 있었다(顯).

 

부친(父) 장온(溫)은, 태관령(太官令)이었다(為).

 

장궤(軌)는 어려서(少) 총명하고 민첩하며(明敏) 학문을 좋아해(好學), 뛰어난 평판(器望)이 있었고(有), 자태와 거동(姿儀)이 단아하기가(典) 곧(則), 같은 군(同郡)의 황보밀(皇甫謐)과 함께(與) 뛰어나니(善), 의양(宜陽) 여궤산(女几山)에(于) 숨었다(隱).

 

태시(泰始) 초(初)에, 숙부(叔父)가 주는(錫) 5품관(官五品)을 받았다(受).

 

중서감(中書監) 장화(張華)와(與) 장궤(軌)는 경서(經義)와(及) 정사(政事)의 손익(損益)을 논하였는데(論), (장궤를) 큰(甚) 그릇으로 여겼고(器之), 비록 안정(安定)의 중정(中正)이 훌륭함(善)을 은폐(蔽)하며 재주(才)를 억누르게(抑) 하면서(為) (장화에게) 알렸지만(謂), 이와같이(乃) 뛰어나기(美)가 언급(談) 되니(為之), 이로서(以) 2품지정(二品之精)이 되었다(為).

 

위장군(衛將軍) 양요(楊珧)가 벽소하여(辟) 연(掾)으로 삼고(為), 태자사인(太子舍人)을 제수하였으며(除), 누차(累) 산기상시(散騎常侍)ㆍ정서군사(征西軍司)로 옮겼다(遷).

 

 

軌以時方多難,陰圖據河西,筮之,遇《泰》之《觀》,乃投策喜曰:「霸者兆也。」於是求為涼州。公卿亦舉軌才堪御遠。永寧初,出為護羌校尉ㆍ涼州刺史。于時鮮卑反叛,寇盜從橫,軌到官,即討破之,斬首萬餘級,遂威著西州,化行河右。以宋配ㆍ陰充ㆍ氾瑗ㆍ陰澹為股肱謀主,徵九郡胄子五百人,立學校,始置崇文祭酒,位視別駕,春秋行鄉射之禮。祕書監繆世征ㆍ少府摯虞夜觀星象,相與言曰:「天下方亂,避難之國唯涼土耳。張涼州德量不恒,殆其人乎!」及河間ㆍ成都二王之難,遣兵三千,東赴京師。初,漢末金城人陽成遠殺太守以叛,郡人馮忠赴尸號哭,嘔血而死。張掖人吳詠為護羌校尉馬賢所辟,後為太尉龐參掾,參ㆍ賢相誣,罪應死,各引詠為證,詠計理無兩直,遂自刎而死。參ㆍ賢慚悔,自相和釋。軌皆祭其墓而旌其子孫。永興中,鮮卑若羅拔能皆為寇,軌遣司馬宋配擊之,斬拔能,俘十餘萬口,威名大震。惠帝遣加安西將軍,封安樂鄉侯,邑千戶。於是大城姑臧。其城本匈奴所築也,南北七里,東西三里,地有龍形,故名臥龍城。初,漢末博士敦煌侯瑾謂其門人曰:「後城西泉水當竭,有雙闕起其上,與東門相望。中有霸者出焉。」至魏嘉平中,郡官果起學館,築雙闕于泉上,與東門正相望矣。至是,張氏遂霸河西。

 

 

장궤(軌)는 당시(時) 사방(方)에 많은(多) 혼란(難)이 있어(以), 은밀히(陰) 하서(河西)를 꾀하여(圖) 의지하여 했는데(據), 점이 이르길(筮之), 《태(泰)》를 만나니(遇), 《관(觀)》에 간다 하니(之), 이에(乃) 점대(策)를 던지면서(投) 기뻐하며(喜) 말하였다(曰).

 

“패자(霸者)의 조짐(兆)이다(也).”

 

이에(於是) 양주(涼州)자사가 되기를(為) 청하였다(求).

 

공경(公卿) 역시(亦) 장궤(軌)를 추천하여(舉) 먼 곳을(遠=변방) 거느리도록(御) 맡길만한(堪) 재주있는 사람(才)이라 했다.

 

영녕(永寧) 초(初), 호강교위(護羌校尉)ㆍ양주자사(涼州刺史)가 되어(為) (외지로) 나갔다(出).

 

당시(時)에(于) 선비(鮮卑)가 돌아서 배신하여(反叛), 도적(寇盜)이 종횡하며(從橫), 혼란(軌)이 관청(官)에 이르니(到), 즉시(即) 토벌하여(討) 격파해(破之), 수만여급(首萬餘級)을 참수하였고(斬), 마침내(遂) 위엄(威)이 서주(西州)에 드러나(著), 하우(河右)가 널리 교화되었다(化行).

 

송배(宋配)ㆍ음충(陰充)ㆍ범원(氾瑗)ㆍ음담(陰澹)을 신임하는(股肱) 책사(謀主)로 삼(為)아서(以), 9군(九郡)의 장남(胄子) 500명(五百人)을 불러(徵), 학교(學校)를 세우고(立), 비로소(始) 숭문제주(崇文祭酒)를 두어(置), 품위(位)는 별가(別駕)인데(視), 춘추(春秋)로 향사(鄉射)의(之) 예(禮)를 행하였다(行).

 

비서감(祕書監) 무세정(繆世征)ㆍ소부(少府) 지우(摯虞)는 밤(夜)에 별자리(星象)를 봐(觀), 서로(相) 함께(與) 말하였다(言曰).

 

“천하(天下) 사방(方)이 혼란한데(亂), 피난할(避難之) 곳(國)은 오직(唯) 양주의 땅(涼土) 이로다(耳). 장양주(張涼州=장궤)의 도량(德量)은 일정하지(恒) 않으니(不), 그(其) 사람(人)은 위태하겠(殆)구나(乎)!”

 

하간(河間)ㆍ성도(成都) 2왕(二王)의(之) 난(難)에 이르어(及), 병사(兵) 3천(三千)을 보내(遣), 동쪽으로(東) 경사(京師)로 나아갔다(赴).

 

애초에(初), 한(漢) 말(末)에 금성사람(金城人)인 양성원(陽成遠)이 태수(太守)를 배신하고(以叛) 살해하니(殺), 군(郡)의 사람들(人)은 충성(忠)에 의지하여(馮) 시체(尸)에 나아가(赴) 크게 통곡하였는데(號哭), 피를 토하고 죽었다(嘔血而死).

 

장액사람(張掖人) 오영(吳詠)은 호강교위(護羌校尉) 마현(馬賢)이 벽소(所辟)하여(為), 후에(後) 태위(太尉) 방참(龐參)의 연(掾)이 되었는데(為), 방참(參)ㆍ마현(賢)은 서로(相) 비방하여(誣), 응당 사형에 처해야 하는데(罪應死), 각기(各) 오영(詠)을 추천하는데(引) 증언하였으므로(為證), 오영(詠)은 둘(兩)을 바르게(直) 다스릴(理) 계책(計)이 없으니(無), 마침내(遂) 스스로 목을 베고 죽었다(自刎而死).

 

방참(參)ㆍ마현(賢)은 부끄러워하며 뉘우치지며(慚悔), 몸소(自) 서로(相) 화해하며(和) 풀었다(釋).


장궤(軌)는 그 무덤(其墓)에 모두(皆) 제사지내고(祭而) 그 자손(其子孫)임을 드러냈다(旌).


영흥(永興) 중(中)에, 선비(鮮卑) 약라발능(若羅拔能)이 모두(皆) 도적(寇)이 되어(為), 장궤(軌)는 사마(司馬) 송배(宋配)를 보내(遣) 격파하니(擊之), 약라발능(拔能)을 참수하고(斬), 10여만명(十餘萬口)을 포로로 잡아(俘), 위명(威名)이 크게(大) 진동했다(震).


혜제(惠帝)는 사신을 보내(遣) 안서장군(安西將軍)을 더하고(加), 안악향후(安樂鄉侯)에 봉해(封), 읍(邑) 천호(千戶)를 주었다.


이에(於是) 고장(姑臧)에 크게(大) 성을 쌓았다(城).


그 성(其城)은 본래(本) 흉노(匈奴)가 쌓은 바(所築) 였는데(也), 남북(南北)으로 7리(七里)이며, 동서(東西)로 2리(三里)인데, 땅(地)엔 용의 형상(龍形)이 있어(有), 옛 명칭(故名)은 와룡성(臥龍城)이었다.


애초에(初), 한(漢) 말(末) 박사(博士)인 돈황후(敦煌侯)는 옥(瑾)을 일컫으며(謂) 그(其) 문인(門人)에게 말하였다(曰).

 

“후(後)에 성(城)의 서쪽(西)에서 샘물(泉水)이 응당(當) 다할 것인데(竭), 2개의 대궐(雙闕)이 그(其) 위(上)에 일어나(起) 있어(有), 동문(東門)과(與) 서로 바라볼 것이다(相望). 그중에(中) 패자(霸者)가 있어(有) 나타날(出) 것이다(焉).”

 

위(魏) 가평(嘉平) 중(中)에 이르어(至), 군관(郡官)이 과연(果) 학관(學館)을 일으켰고(起), 샘(泉) 위(上)에(于) 두 개의 궐(雙闕)을 세우니(築), 동문(東門)과(與) 바로(正) 서로 바라보게 되었다(相望矣).

 

이에 이르니(至是), 장씨(張氏)는 마침내(遂) 하서(河西)의 패자(霸)가 되었다.




진서 장궤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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