陶璜,字世英,丹陽秣陵人也。父基,吳交州刺史。璜仕吳歷顯位。孫皓時,交阯太守孫住貪暴,為百姓所患。會察戰鄧荀至,擅調孔雀三千頭,遣送秣陵,既苦遠役,咸思為亂。郡吏呂興殺住及荀,以郡內附。武帝拜興安南將軍ㆍ交阯太守。尋為其功曹李統所殺,帝更以建寧爨谷為交阯太守,谷又死,更遣巴西馬融代之。融病卒,南中監軍霍弋又遣犍為楊稷代融,與將軍毛炅,九真太守董元,牙門孟幹ㆍ孟通ㆍ李松ㆍ王業ㆍ爨能等,自蜀出交阯,破吳軍于古城,斬大都督脩則ㆍ交州刺史劉俊。吳遣虞汜為監軍,薛珝為威南將軍ㆍ大都督,璜為蒼梧太守,距稷,戰于分水。璜敗,退保合浦,亡其二將。珝怒謂璜曰:「若自表討賊,而喪二帥,其責安在?」璜曰:「下官不得行意,諸軍不相順,故致敗耳。」珝怒,欲引軍還。璜夜以數百兵襲董元,獲其寶物,船載而歸,珝乃謝之,以璜領交州,為前部督。璜從海道出於不意,徑至交阯,元距之。諸將將戰,璜疑斷牆內有伏兵,列長戟於甚後。兵纔接,元偽退,璜追之,伏兵果出,長戟逆之,大破元等。以前所得寶船上錦物數千匹遺扶嚴賊帥梁奇,奇將萬餘人助璜。元有勇將解系同在城內,璜誘其弟象,使為書與系,又使象乘璜軺車,鼓吹導從而行。元等曰:「象尚若此,系必去志。」乃就殺之。珝ㆍ璜遂陷交阯。吳因用璜為交州刺史。

 

도황(陶璜)은, 자(字)가 세영(世英)이며, 단양(丹陽) 말릉(秣陵) 사람(人)이다(也).

 

부친(父) 도기(基)는, 오(吳)의 교주자사(交州刺史)였다.

 

도황(璜)은 오(吳)를 섬겨(仕) 벼슬(位)을 지낸(歷) 것으로 나와있다(顯).

 

손호(孫皓) 시기(時)에, 교지태수(交阯太守) 손주(孫住)가 탐욕하고 포학하여(貪暴), 백성(百姓)이 근심한 바(所患)가 있었다(為).

 

마침(會) 찰전(察戰=지명)에 등순(鄧荀)이 이르었는데(至), 멋대로(擅) 공작(孔雀) 3천(三千) 마리(頭)를 골라(調), 말릉(秣陵)에 보내니(遣送), 이미(既) 오랫동안(遠) 부역(役)으로 고통받았으므로(苦), 모두(咸) 반란(亂)을 생각하게(思) 되었다(為).

 

군(郡)의 관리(吏) 여흥(呂興)손주(住)와(及) 등순(荀)을 죽이고(殺), 이로서(以) 군(郡)이 내부해왔다(內附=투항).

 

무제(武帝=사마염)여흥(興)을 안남장군(安南將軍)ㆍ교지태수(交阯太守)로 삼았다(拜).

 

이윽고(尋) 그(其)는 공조(功曹) 이통(李統)에게 살해당한 바(所殺)가 되어(為), 무제(帝)는 다시(更) 건녕(建寧)의 찬곡(爨谷)으로(以) 교지태수(交阯太守)를 삼으니(為), 찬곡(谷) 또한(又) 죽어(死), 거듭(更) 파서(巴西)의 마융(馬融)을 보내(遣) 대신하게 하였다(代之).

 

마융(融)이 병(病)으로 죽자(卒), 남중(南中)의 감군(監軍) 곽익(霍弋)이 또한(又) 건위(犍為)의 양직(楊稷)을 보내(遣) 마융(融)을 대신했는데(代), 장군(將軍) 모경(毛炅)은, 구진태수(九真太守) 동원(董元), 아문장(牙門) 맹건(孟幹)ㆍ맹통(孟通)ㆍ이송(李松)ㆍ왕업(王業)ㆍ찬능(爨能) 등(等)과 함께(與), 스스로(自) 촉에서(蜀) 교지(交阯)로 나와(出), 오군(吳軍)을 고성(古城)에서(于) 깨뜨려(破), 대도독(大都督) 수칙(脩則)ㆍ교주자사(交州刺史) 유준(劉俊)을 참수하였다(斬).

 

오(吳)는 우사(虞汜)를 감군(監軍)으로 삼고(為), 설후(薛珝)를 위남장군(威南將軍)ㆍ대도독(大都督)으로 삼으며(為), 도황(璜)창오태수(蒼梧太守)로 삼아(為) 보내니(遣),양직(稷)과 만나(距), 분수(分水)에서(于) 싸웠다(戰).

 

도황(璜)이 패하여(敗), 걸어서(保) 합포(合浦)로 물러났는데(退), 그(其)의 장수(將) 둘(二)이 죽었다(亡).

 

설후(珝)는 노하여(怒) 도황(璜)에게 이르어(謂) 말하였다(曰).

 

“겉으로는(表) 스스로(自) 적(賊)을 토벌한다(討) 하면서(若), 그러나(而) 장수(帥) 둘(二)이 죽었는데(喪), 그(其) 책임(責)은 어찌(安) 할 것인가(在)?”

 

도황(璜)이 말하였다(曰).

 

“하관(下官)이 뜻하는 대로(意) 행해지지(行) 아니한 것은(不得), 제군(諸軍)은 서로(相) 화합하지(順) 못하니(不), 그러하여(故) 패배에(敗) 이른(致)것입니다(耳).”

 

설후(珝)는 노하여(怒), 군(軍)을 이끌고(引) 돌아가고자(還) 하였다(欲).

 

도황(璜)은 밤에(夜) 수백의(數百) 병사(兵)로(以) 동원(董元)을 습격해(襲), 그(其) 보물(寶物)을 노획해(獲), 배(船)에 싣고(載而) 돌아오니(歸), 설후(珝)는 이에(乃) 사죄하였고(謝之), 이로서(以) 도황(璜)영교주(領交州), 전부독(前部督)으로 삼았다(為).

 

도황(璜)은 바닷길(海道)을 좇아(從) 생각지 못한(不意) 곳으로서(於) 나아가(出), 지름길로(徑) 교지(交阯)에 이르었는데(至), 동원(元)이 저항했다(距之).

 

제장(諸將)들은 장차(將) 싸우려 했는데(戰), 도황(璜)은 복병(伏兵)이 있어(有) 장내(牆內)를 끊을까(斷) 의심하여(疑), 긴 창(長戟)으로 줄지어서(列) 후미(後)를 두텁게(甚) 따르게 했다(於).

 

병사(兵)가 비로소(纔) 접촉했는데(接), 동원(元)이 거짓으로(偽) 퇴각하여(退), 도황(璜)이 추격하는데(追之), 복병(伏兵)이 과연(果) 나와(出), 긴 창(長戟)으로 대응하였고(逆之), 동원(元) 등(等)을 대파하였다(大破).

 

앞서서(以前) 얻은(所得) 보물(寶)에서 배 위(船上)에 있는 비단(錦) 물자(物) 수천필(數千匹)을 부엄(扶嚴)의 도적 대장(賊帥)인 양기(梁奇)에게 보내니(遺), 양기(奇)가 장차(將) 1만여명(萬餘人)으로 도황(璜)을 도왔다(助).

 

동원(元)에게는 용장(勇將)인 해계(解系)가 있어(有) 함께(同) 성 내(城內)에 있었는데(在), 도황(璜)은 그(其)의 동생(弟) 해상(象)을 꾀어(誘), 서신(書)을 해계(系)에게 주기로(與) 시키도록(使) 하며(為), 또한(又) 해상(象)으로 하여(使) 도황(璜)의 수레(軺車)를 타게 하니(乘), 북을 치며(鼓吹) 행렬을 따라(導從而) 나아가게 하였다(行).

 

동원(元) 등(等)이 말하였다(曰).

 

“해상(象)이 오히려(尚) 이(此)와 같다면(若), 해계(系)의 마음(必)은 뜻(志)을 저버린 것이다(去).”

이에(乃) 나아가(就) 죽였다(殺之).

 

설후(珝)ㆍ도황(璜)은 마침내(遂) 교지(交阯)를 함락했다(陷).

 

오(吳)는 이로인해(因) 도황(璜)을 등용해(用) 교주자사(交州刺史)로 삼았다(為).

 

 

 

 

 

璜有謀策,周窮好施,能得人心。滕脩數討南賊,不能制,璜曰:「南岸仰吾鹽鐵,斷勿與市,皆壞為田器。如此二年,可一戰而滅也。」脩從之,果破賊。

 

 

도황(璜)은 모책(謀策)이 있어(有), 베푸는 일(好施)을 두루(周) 다하니(窮), 능히(能) 인심(人心)을 얻었다(得).

 

등수(滕脩)가 여러번(數) 남쪽(南)의 도적(賊)을 토벌했는데(討), 없앨(制) 수 없었는데(不能), 도황(璜)이 말하였다(曰).

 

“남안(南岸)은 나(吾)의 염철(鹽鐵)을 의지하는데(仰), 시장(市)에 주지(與) 않고(勿) 단절시키면(斷), 모두(皆) 무너져(壞) 전기(田器)가 된다(為). 2년(二年)이 이와 같다면(如此), 한번 싸워(一戰而) 멸망시킬(滅)수 있을(可)것이다(也).”

 

등수(脩)가 좇으니(從之), 과연(果) 도적(賊)을 격파했다(破).






진서 도황전



진/오의 교주대립이 잘 나와있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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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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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무명

2017.01.02
17:03:23
(*.106.49.25)
여기에 나오는 혜계는 진나라의 옹주자사와는 동명이인이겠지요?

한은

2017.01.02
19:36:40
(*.246.243.139)
ㅇㅇ? 누구 얘기하시는건지 찾아봐야 알듯..ㅋㅋ 아마 다른인물이지 않을까요..?

무명

2017.01.03
21:43:53
(*.106.49.25)
조왕 사마륜의 총신 손수랑 대립한 옹주자사 해계를 말하는 것이고, 한자가 동일한 지라...

한은

2017.01.03
22:00:32
(*.246.243.139)
교주전에 죽었으면 진나라 통일 이전에 죽은 것이니 다른 인물이겠지요 허허..

무명

2017.01.04
00:17:22
(*.106.49.25)
아 그렇네요. “해상(象)이 오히려(尚) 이(此)와 같다면(若), 해계(系)의 마음(必)은 뜻(志)을 저버린 것이다(去).”
이에(乃) 나아가(就) 죽였다(殺之).

아무튼 요즘은 전반부보다 후반부에 관심이 많은데 한은님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한은

2017.01.04
19:08:10
(*.246.243.139)
하하하하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코렐솔라

2017.01.06
10:54:18
(*.46.174.164)
오오 진나라에 항복하고 따로 전까지 있는 오나라 인물인데 드디어 원문 기록을 보게 되는군요 ㅠㅠ 대월사기전서에 있는 설후와의 일화도 역시나 여기있는 것이었군요. 우사는 한 일은 가장 적어 보이는데 어째 이 일로 교주자사가지 오른 것이었을까요;;; 아프니까 걍 죽기 전에 이거나 해봐라라는 거였을까... 아마 우사가 죽고나서 도황이 교주자사가 된 것 같은데 여기선 걍 생략한 거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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