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트에 보니 언제 <변망론>은 번역이 되어 올라왔군요~~

예전에 제가 별도로 해 놓은 것이 있어 올려 봅니다.

 

 

 

<평론>

 

 

評曰:孫亮童孺而無賢輔, 其替位不終, 必然之勢也. 休以舊愛宿恩, 任用興布, 不能拔進良才, 改絃易張, 雖志善好學, 何益救亂乎? 又使旣廢之亮不得其死, 友於之義薄矣. 皓之淫刑所濫, 隕斃流黜者, 蓋不可勝數. 是以群下人人惴恐, 皆日日以冀, 朝不謀夕. 其熒惑巫祝, 交致祥瑞, 以爲至急. 昔舜禹躬稼, 至聖之德, 猶或矢誓衆臣, 予違女弼, 或拜昌言, 常若不及. 況皓凶頑, 肆行殘暴, 忠諫者誅, 讒諛者進, 虐用其民, 窮淫極侈, 宜腰首分離, 以謝百姓. 旣蒙不死之詔, 復加歸命之寵, 豈非曠蕩之恩, 過厚之澤也哉! [一]

 

 

평한다. 손량은 나이가 어렸지만 현명하게 보좌해줄 신하가 없었으므로, 그가 황제의 지위를 대신하여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손휴는 옛날에 아끼고 익숙한 은혜를 베푼 복양홍과 장포를 임용했기에, 나아가 우수한 인재를 발탁하여 새로운 정치(改絃易張)를 할 수 없었다.[※-1] 비록 착실한 뜻을 지니고 학문을 좋아했을지라도 어지러운 나라를 구제하는데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또 이미 폐출된 손량에게 주어진 수명대로 살지 못하게 한 것은, 우애가 의로움에서 얄팍했다.[※-2]

손호는 부당한 형벌을 남용하였으므로, 죽거나 쫓겨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로써 아래 사람마다 두려워하여 모두 하루하루 생명을 보존하기를 원하고, 아침에 저녁의 일을 헤아리지 못했다. 형혹熒惑(화성)무축巫祝이 교대로 상서로운 징조를 나타낸 것은 급박함이 이르렀다고 여긴다. 옛날에 순舜우禹는 몸소 농사를 짓고, 지극히 신성한 덕행을 갖추었어도 오히려 신하들에게 맹세하여, ‘내가 너의 보필을 어겼을 때는 누구든 충언하면 절할 것이다.’고 하면서, 늘 자신이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했다.

하물며 손호는 사납고 미련하며 잔혹한 법령을 마음대로 시행하여, 충성스럽게 간언하는 신하를 주살하고 참언하고 아첨하는 자는 승진시켰으며, 그 백성들을 학대하여 부리고, 음란하고 사치스러움이 극에 달했으니, 마땅히 허리와 머리를 분리시켜 백성들에게 사죄시켜야 했다. 사형시키지 않는다는 조서를 내리고, 귀명후의 은총을 더해주었으니, 어찌 대사면(曠蕩)한 은혜를 지나치게 두텁게 베푼 은택이 아니겠는가![1]

 

[※-1] ‘개현역장改絃易張’은 말 그대로 ‘현악기의 줄을 바꾸고 팽팽하게 바꾼다.’라는 뜻이다. 사람과 정치로 비유하면, 새로운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여, 타성에 젖은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를 한다는 뜻이다.

[※-2] 김원중은 ‘使旣廢之亮不得其死’ 부분을 ‘이미 폐출된 손량을 죽지 못하게 한 것은’이라 하여 실제와 문장에 어긋났다. 물론 실수일 것이다.

 

 

[一]①孫盛曰:夫古之立君, 所以司牧群黎, 故必仰協乾坤, 覆燾萬物;若乃淫虐是縱, 酷被群生, 則天殛之, 剿絶其祚, 奪其南面之尊, 加其獨夫之戮. 是故湯武抗鉞, 不犯不順之譏;漢高奮劍, 而無失節之議. 何者? 誠四海之酷讎, 而人神之所擯故也. 況皓罪爲逋寇, 虐過辛癸, 梟首素旗, 猶不足以謝冤魂, 洿室薦社, 未足以紀暴跡, 而乃優以顯命, 寵錫仍加, 豈龔行天罰, 伐罪弔民之義乎? 是以知僭逆之不懲, 而凶酷之莫戒. 詩云:「取彼譖人, 投畀豺虎.」 聊譖猶然, 矧僭虐乎? 且神旗電掃, 兵臨僞窟, 理窮勢迫, 然後請命, 不赦之罪旣彰, 三驅之義又塞, 極之權道, 亦無取焉.

 

[1] ① 손성이 말했다. 무릇 고대부터 군주를 세웠으니, 백성을 맡아 다스림을 바탕으로 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늘과 땅의 협력을 바라고, 만물에 은혜를 비춰야 한다. 만약 음란 잔학하여 이러한 것을 게을리 하고 뭇 생명에 혹독하게 해를 입히면, 하늘이 그를 죽이고 그 복을 끊어버리며, 그 남면南面하는 존엄을 빼앗고 그 독부獨夫(인심을 잃은 자)에게 죽음을 더한다. 이런 까닭으로 은 탕왕, 주 무왕은 월鉞[황월이라 하여 천자만 사용하는 것으로, 천자를 가리킨다.]에 저항했지만, 순응하지 않는 자를 나무라는 것에 어긋나지 않았다. 한 고조는 검을 떨쳤지만, 절개의 뜻을 잃은 적이 없었다. 무슨 이유인가? 진실로 천하에서 잔혹한 원수는, 사람과 신이 물리치는 까닭이다.

하물며 손호의 죄는 떠돌이 도적(逋寇)같고 잔학함은 신辛(주왕)계癸(걸왕)를 넘어섰으니, 흰 깃발을 걸어 효수梟首해야 했다. 그래도 오히려 원혼冤魂(억울한 귀신)들에게 사죄하기에 부족하고, 진흙탕에서 땅 귀신이 되어도 포학한 발자취를 기념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나 우대하여 귀명후의 이름을 드러나게 하고 은총을 베풀어 물건을 거듭 더해주었으니, 어찌 하늘을 받들어 천벌을 행하고 죄 지은 자를 쳐서 억울하게 죽은 백성을 조상弔喪하는 뜻이겠는가? 이로써 참역僭逆한 자를 징벌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으니, 사납고 혹독한 자에 대한 계율이 없게 되었다.

《시경》에서, ‘저기 모함하는 자들을 잡아다, 호랑이와 승냥이에게 던져주라.’고 했다. 모함하는 자도 오히려 그럴진대, 하물며 참람하고 잔학한 자이겠는가? 게다가 신기神旗(천자의 군대)가 번개처럼 휩쓸고 잘못된 나라(僞窟)에 병력이 다다르자, 이치가 막히고 세력이 급박해진 다음에 목숨을 청했으니, 그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 드러내야 했다. 삼구三驅[※]의 뜻이 또 막히어서, 천자의 지극한 권도權道로 또한 잡는 게 없었구나.

 

[※] ‘삼구三驅’란 사냥하는 법도에서, 세 번째, 혹은 세 방면에서의 짐승몰이를 말한다. 짐승몰이들 하듯, 손호의 죄를 몰아붙였어야 했다는 뜻이다.

 

 

②-1陸機著辨亡論, 言吳之所以亡, 其上篇曰:「昔漢氏失御, 奸臣竊命, 禍基京畿, 毒遍宇內, 皇綱弛紊, 王室遂卑. 於是群雄蜂駭, 義兵四合, 吳武烈皇帝慷慨下國, 電發荊南, 權略紛紜, 忠勇伯世. 威稜則夷羿震蕩, 兵交則丑虜授馘, 遂掃淸宗祊, 蒸禋皇祖. 於時雲興之將帶州, 飆起之師跨邑, 哮闞之群風驅, 熊羆之族霧集, 雖兵以義合, 同盟戮力, 然皆包藏禍心, 阻兵怙亂, 或師無謀律, 喪威稔寇, 忠規武節, 未有若此其著者也. 武烈旣沒, 長沙桓王逸才命世. 弱冠秀發, 招攬遺老, 與之述業. 神兵東驅, 奮寡犯衆, 攻無堅城之將, 戰無交鋒之虜. 誅叛柔服而江外厎定, 飭法修師而威德翕赫, 賓禮名賢而張昭爲之雄, 交御豪俊而周瑜爲之傑. 彼二君子, 皆弘敏而多奇, 雅達而聰哲, 故同方者以類附, 等契者以氣集, 而江東蓋多士矣. 將北伐諸華, 誅鉏幹紀, 旋皇輿於夷庚, 反帝座於紫闥, 挾天子以令諸侯, 淸天步而歸舊物. 戎車旣次, 群凶側目, 大業未就, 中世而隕.

 

②-1 육기陸機가 《변망론辨亡論》을 지어 오나라가 망한 까닭을 지었는데, 그 <상편上篇>에 말했다.

 

 

━ 옛날 한나라가 통제력을 상실하자 간신奸臣이 천명을 훔쳤고, 경기京畿에서 재앙이 일어나 나라에 두루 해독을 끼쳤다. 황실의 기강은 어지럽게 풀어져서, 왕실은 미약해졌다. 이에 군웅群雄이 소란스런 벌떼처럼 일어나고 의병義兵이 사방에서 모였으며, 오吳 무열황제武烈皇帝(손견)는 강개하게 남쪽나라(下國) 형주 남쪽에서 번개처럼 일어났는데, 권모와 지략에서 떠들썩하고 충용忠勇은 세상에서 으뜸이었다. 위엄과 서슬은 이예夷羿[활 잘 쏘는 동이족, 여기선 오랑캐란 뜻, 즉 동탁의 군대]를 떨쳐 소탕하였고, 병력으로 맞아 싸워서 짐승 같은 호로에게 죽음을 주었다. 마침내 종팽宗祊(종묘)를 말끔하게 청소하고, 황조皇祖에게 제사의 향연을 피웠다.

이때 구름 같이 장수들이 일어나 주州를 둘렀고, 회오리 같이 일어난 군사들은 읍邑을 타고 넘었다. 으르렁거리는 무리들이 바람처럼 달렸으며, 큰곰 같은 족속들이 안개처럼 모였다. 비록 병사들이 의병義兵으로 모였지만 동맹同盟하여 힘을 합했고, 자연히 모두 화를 일으키는 마음을 품고 어지러운 세상에 기대어 병사로 앞가림했다. 어떤 군사는 모책과 규율이 없어, 위엄이 사라지고 노략질했으니, 충성의 모범과 무예의 절도에서 아직 이(손견)와 같이 드러낸 자가 있지 않았다. 무열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장사환왕長沙桓王(손책)이 뛰어난 재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약관의 나이에 빼어나게 재주를 발휘해 남겨진 부로父老들을 불러 거두고, 그들과 함께 사업을 얘기했다. 신병神兵이 동쪽을 내달리고 부족한 군대를 떨쳐 많은 군대를 대적하였지만, 공격하면 견고한 성의 장수가 없었고 싸우면 창끝을 교환할 오랑캐가 없었다. 모반하는 자를 죽이고 유화책으로 굴복시켜 장강 너머를 평정하였으며, 엄정한 법으로 군사를 다스려 위엄스런 덕이 찬연히 빛났다. 빈객이 예로 이름난 현인을 불렀으니 장소張昭가 우뚝하였고, 사귀는 호방한 준걸로는 주유周瑜가 인걸이 되었다.

그들 두 군자君子는 모두 넓은 뜻과 민첩한 재주로 뛰어난 점이 많았으며, 세상일에 통달하여 총명하고 명철했다. 그러므로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자들이 무리지어 붙었고, 그들이 엮어져 기운이 모이니, 강동의 사대부를 거의 망라했다. 장차 제화諸華(중원)를 북벌하여 간기幹紀[지존의 명에 간여함]하는 자를 죽이고, 이경夷庚[만물을 살리는 만고불변의 자리]으로 황상皇上의 가마를 되돌리며, 자달紫闥[자색의 문이란 뜻, 궁중]로 황제의 옥좌를 되돌리려 했다. 천자天子를 끼고 명령하는 제후諸侯가 되어, 천보天步[나라의 운명]를 맑게 만들어 구물舊物[대대로 전하는 법통]로 돌아가려고 했다. 병력을 정돈하였는데, 흉악한 무리들이 곁눈질(側目)하여 대업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세상에서 떠나게 되었다.

 

 

用集我大皇帝, 以奇蹤襲於逸軌, 叡心發乎令圖, 從政咨於故實, 播憲稽乎遺風, 而加之以篤固, 申之以節儉, 疇咨俊茂, 好謀善斷, 東帛旅於丘園, 旌命交於塗巷. 故豪彥尋聲而響臻, 志士希光而影騖, 異人輻輳, 猛士如林. 於是張昭爲師傅, 周瑜陸公魯肅呂蒙之疇入爲腹心, 出作股肱;甘寧淩統程普賀齊朱桓朱然之徒奮其威, 韓當潘璋黃蓋蔣欽周泰之屬宣其力;風雅則諸葛瑾張承步騭以聲名光國, 政事則顧雍潘濬呂範呂岱以器任幹職, 奇偉則虞翻陸績張溫張惇以諷議擧正, 奉使則趙咨沈珩以敏達延譽, 術數則吳範趙達以禨祥協德, 董襲陳武殺身以衛主, 駱統劉基彊諫以補過, 謀無遺算, 擧不失策. 故遂割據山川, 跨制荊吳, 而與天下爭衡矣. 魏氏嘗藉戰勝之威, 率百萬之師, 浮鄧塞之舟, 下漢陰之衆, 羽楫萬計, 龍躍順流, 銳騎千旅, 虎步原隰, 謀臣盈室, 武將連衡, 喟然有呑江滸之志, 一宇宙之氣. 而周瑜驅我偏師, 黜之赤壁, 喪旗亂轍, 僅而獲免, 收跡遠遁.

 

 

우리 대황제大皇帝(손권)에게 인재들이 모이고 기용되자, 뛰어난 후예(기종奇蹤)는 일궤逸軌를 잇고 밝은 지혜(叡心)를 원대한 계책으로 불러 펼치게 했으며, 백성의 뜻을 좇는 정치(從政)는 고사故事의 실례에서 자문하여 법을 베푸는 일을 유풍遺風[후세에 남은 교화]에서 불러 모으게 했다.[※-1] 그것을 더하여서 독실하고 견고해졌고, 그것을 펼쳐서 절약하고 검소해졌다. 재주와 학식이 뛰어난 인재들이 있는지 자문하였고(주자疇咨) 모책을 좋아하여 과단성이 빼어났으니, 동쪽의 비단이 구원丘園[언덕과 동산, 각 지방]에서 떠돌자[※-2] 정명旌命[어진 선비와 인재]은 세상(塗巷)에서 주고받으며 나왔다. 그러기에 호언豪彥(빼어난 인물)은 명성을 살펴서 메아리처럼 모이고(향진響臻), 지사志士들은 빛을 바라고 그림자를 따라 달렸다. 남다른 인재는 바퀴살처럼 모이고(복주輻輳), 사나운 병사는 수풀과 같았다.

이에 장소張昭는 사부가 되었고, 주유, 육공陸公[육손이다. 지은이가 육손의 손자인 까닭에 이렇게 썼다.]노숙, 여몽은 주위에 포진하여 들어와서는 심복이 되고 나가서는 고굉股肱이 되었다. 감녕능통정보하제주환주연의 무리는 그 위엄을 떨치고, 한당반장황개장흠주태의 군속은 그 힘을 펼쳤다. 풍아風雅[고상한 신하]한 제갈근장승보즐이 명성을 드날려 나라를 빛냈고, 정사政事는 고옹반준여범여대呂岱가 그릇에 맞게 임무를 맡아 직무에 간여했으며, 기위奇偉[뛰어난 인재]한 우번육적장온장돈張惇이 넌지시 의논하고 바름으로 들어올렸다. 봉사奉使 조자趙咨심형沈珩은 민첩하게 통달하여 나라의 명예를 늘렸으며, 술수術數 오범吳範조달趙達은 상서의 조짐을 점쳐 덕에 어우러졌다. 동습董襲진무陳武는 자신을 죽여 군주를 지켰고, 낙통유기劉基는 강하게 간하여 군주의 허물을 보완했으니, 계획하면 버려둔 헤아림을 없게 하였고 거병하면 계책을 잃지 않았다.

고로 마침내 산천을 분할 점거하여 형荊오吳를 제압하고 뛰어넘었으며, 더불어 천하에서 다투게 되었다. 위씨魏氏는 일찍이 싸워 이긴 위력을 바탕으로 백만 군대를 이끌고, 강을 덮고 배를 띄우도록 한음漢陰[한수 남쪽, 즉 형주]의 군대에 명령하였다. 우격羽檄으로 만 가지 계획이 모이고 용이 뛰듯 순류順流를 탔으며, 정예 기병은 천 부대요, 호랑이가 걷듯이 마르고 젖은 땅(原隰)을 덮었다. 모신謀臣들은 장막을 채우고 무장武將은 연달아 저울질하니, 숨 한 번 머금고 나서 강허江滸를 삼켜서 천하를 통일하려는 기운이 있었다. 그러나 주유周瑜가 우리의 작은 군사를 치달려 적벽赤壁에서 물리쳐서 적의 군대를 살상하고 어지럽혀 물러나게 했으니, (조조는) 가까스로 잡히는 것에서 벗어나 발자취를 거두고 멀리 달아났다.

 

[※-1] ‘奇蹤襲於逸軌, 叡心發乎令圖, 從政咨於故實, 播憲稽乎遺風’의 구절은 멋진 대구를 이룬다. 우리말의 순서로 하면

奇蹤→於逸軌→襲, 叡心→乎令圖→發;

從政→於故實→咨, 播憲→乎遺風→稽; 이 된다. 이어지는 문장도 많은 곳에서 계속 대구형태를 이루고 있다.

‘일궤逸軌’는 ‘바퀴자국을 고른다.’는 뜻이다. 앞에서 수레가 지나간 길에 남은 바퀴자국을 따라 사람들이 가면, 바퀴자국이 지워져 골라지는 것을 말한다. 즉 뜻은 옛 사람이 간 법도를 따라, 뒷사람이 따르는 것을 가리킨다. 약간 변형되어서, 증거를 인멸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2] ‘동쪽의 비단이 구원丘園에서 떠돌자’라는 말에서, 동쪽은 강동의 오나라를 말한다. 선비나 인재를 불러내기 위해 조정에서 비단으로 회유했다는 뜻이다.

 

 

漢王亦馮帝王之號, 率巴漢之民, 乘危騁變, 結壘千里, 志報關羽之敗, 圖收湘西之地. 而我陸公亦挫之西陵, 覆師敗績, 困而後濟, 絶命永安. 續以灞須之寇, 臨川摧銳, 蓬籠之戰, 孑輪不反. 由是二邦之將, 喪氣摧鋒, 勢衄財匱, 而吳藐然坐乘其弊, 故魏人請好, 漢氏乞盟, 遂躋天號, 鼎峙而立. 西屠庸蜀之郊, 北裂淮漢之涘, 東苞百越之地, 南括群蠻之表. 於是講八代之禮, 蒐三王之樂, 告類上帝, 拱揖群後. 虎臣毅卒, 循江而守, 長戟勁鎩, 望飆而奮. 庶尹盡規於上, 四民展業於下, 化協殊裔, 風衍遐圻. 乃俾一介行人, 撫巡外域, 臣象逸駿, 擾於外閑, 明珠瑋寶, 輝於內府, 珍瑰重跡而至, 奇玩應響而赴, 輶軒騁於南荒, 衝輣息於朔野, 齊民免幹戈之患, 戎馬無晨服之虞, 而帝業固矣.

 

 

한왕漢王(유비) 또한 제왕의 호칭에 기어대 파巴한漢(한중)의 백성을 거느리고 위기를 틈타 변화하고서, 천리에 보루를 연결하여 관우關羽의 패전을 보복하고 상강湘江 서쪽 땅을 거두어 도모하려는 뜻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육손이 또한 서릉西陵에서 그를 꺾었으니, 군사는 엎어져 패전하고 곤란을 겪다 나중에 벗어났다가 영안永安에서 목숨이 끊어졌다. 계속해서 파수灞須[유수濡須의 오기인 듯]로 침략했다가 물가에 다다라 예기가 꺾이고, 봉롱蓬籠의 싸움에서 멀리 나온 윤거輪車는 돌아가지 못했다.[※-3]

이로 말미암아 두 나라의 장수의 기운을 죽이고 창끝을 꺾었으니, 세력은 오그라들고 재력은 다 소비했다. 그러나 오나라는 막연히 앉아서 그 피폐함을 탔으므로, 위나라 사람은 우호를 청했고 한씨(촉)는 동맹을 구걸했으니, 마침내 천자의 호칭에 올라서 솥발처럼 대치하며 서게 되었다.[※-4] 서쪽은 거친 촉蜀의 바깥을 자르고, 북쪽은 회수와 한수의 물가를 찢었으며, 동쪽은 백월百越의 땅을 싸고, 남쪽은 여러 만이蠻夷의 영토를 묶었다.

이로써 8대八代[요순하은주진전한후한]의 예를 강론하고, 삼왕三王[夏禹商湯周文]의 음악을 점검했으며, 황제에게 올려 여러 일을 보고하면서 여러 제후는 두 손을 마주잡고 읍揖하였다. 호신虎臣과 강인한 병졸은 장강을 따라 지켰고, 장극長戟과 굳센 창은 회오리바람을 바라면서 떨쳤다. 여러 윤尹(벼슬아치)은 위에서 법도를 다했고 사방의 백성은 아래에서 생업을 펼쳤으니, 조화는 거의 변방까지 어우러졌고 도읍에서 멀리까지 기풍氣風이 흘렀다.

이에 더하여 사신이 한 번 가면, 바깥 땅을 두루 어루만졌다. 공손한 코끼리와 뛰어난 준마는 바깥 마구간에서 소란스러웠고, 명주明珠와 옥과 보배는 안쪽 곳간에서 빛을 냈다. 진귀한 구슬은 중후한 발자취로 이르렀고, 기이한 노리개는 메아리로 응하여 달려왔다. 유헌輶(천자의 수레)으로 남쪽 황무지에서 인재를 부르고, 충팽衝輣(공성 도구)은 북쪽 들판에서 휴식을 취했다. 일반 백성(齊民)은 전쟁의 근심에서 벗어나고, 군대는 새벽에 옷을 입을 염려가 없었으니, 제업帝業은 견고해졌다.

 

[※-3] <손권전> 황무 4년(225) 12월 배주에서 손소孫韶가 위 문제 조비의 거우개車羽蓋를 탈취한 일이 있다.

[※-4] 어째 망한 이유를 논한 게 아니라 오나라를 한껏 자랑하는 투다. 우호를 청한 것은 오나라지, 위나라가 아니며, 촉과 동맹을 맺은 것은 위나라를 배척하기 위한 오나라의 수순이자, 촉의 필요성에 의한 양국의 공통된 처지에서 비롯되었다.

 

 

大皇旣歿, 幼主蒞朝, 奸回肆虐. 景皇聿興, 虔修遺憲, 政無大闕, 守文之良主也. 降及歸命之初, 典刑未滅, 故老猶存. 大司馬陸公以文武熙朝, 左丞相陸凱以謇諤盡規, 而施績範愼以威重顯, 丁奉鍾離斐以武毅稱, 孟宗丁固之徒爲公卿, 樓玄賀劭之屬掌機事, 元首雖病, 股肱猶良. 爰及末葉, 群公旣喪, 然後黔首有瓦解之志, 皇家有土崩之釁, 曆命應化而微, 王師躡運而發, 卒散於陳, 民奔於邑, 城池無藩籬之固, 山川無溝阜之勢, 非有工輸雲梯之械, 智伯灌激之害, 楚子築室之圍, 燕子濟西之隊, 軍未浹辰而社稷夷矣. 雖忠臣孤憤, 烈士死節, 將奚救哉? 夫曹劉之將非一世之選, 向時之師無曩日之衆, 戰守之道抑有前符, 險阻之利俄然未改, 而成敗貿理, 古今詭趣, 何哉? 彼此之化殊, 授任之才異也.」

 

 

대황제가 세상을 뜨고 어린 군주가 조당에 오르자, 간신이 방자하게 돌아다녔다. 경황제(손휴)가 드디어 일어서서 남겨진 법도를 공경하게 닦자, 정치에는 크게 빠짐이 없었으니, 문장을 갖춘 어진 군주였다. 내려와서 귀명후가 즉위한 처음에는, 법과 형벌이 아직 죽지 않았고 옛 노신이 아직 남아 있었다. 대사마 육항陸抗은 문무로써 조정을 빛냈고, 좌승상 육개陸凱는 거리낌 없이 바른 말을 하여(謇諤) 규간規諫을 다했다. 그리고 시적施績범신範愼은 막중한 위엄으로 빛냈고, 정봉丁奉종리비鍾離斐는 무력이 강인하다고 일컬어졌다. 맹종孟宗정고丁固의 무리는 공경公卿이 되었고 누현樓玄하소賀劭의 족속은 기사機事(기밀업무)를 맡았으니, 원수元首는 비록 병들었더라도 고굉股肱은 오히려 어질었다.

이에 말기에 이르자 여러 공公들이 이미 죽었고, 그런 다음에 백성(黔首)은 와해되는 뜻이 있었으며, 황가皇家는 흙이 무너지는 틈이 있었다. 역수歷數와 천명은 변화에 응할 징조를 보였고, 나라의 군대는 잇달아 옮겨 펼쳐졌다. 사졸들은 진영에서 흩어지고, 백성은 읍락에서 달아났다. 성과 구지溝池는 울타리의 견고함이 없어졌고, 산천은 도랑과 언덕을 구축한 형세가 없었어도, 직공職工들은 사다리의 기계를 나른 일을 아니했다. 지백智伯이 격렬한 물을 대서 해를 입히고, 초楚 자작이 진영을 쌓고 포위하며, 연燕 자작이 서쪽으로 건너가 대오를 이루었는데[이상 진의 공격을 가리킴], 군대가 아직 협진浹辰[12일간을 뜻하며 일주(一周)를 말함, 두루 미침]하지 못해서 사직社稷이 망하게 되었다. 비록 충신이 고군분투하고 열사가 순절한다 해도, 장차 어찌 구원하겠는가?

조조유비[이때 진나라의 북군과 촉의 병사를 가리킴]의 장수들은 한 시대에서 선발한 자가 아니었고, 그때의 군사들은 옛날의 무리들이 없었으니, 싸우면서 지키는 방법은 옛날의 병서를 물리치고 험저한 이점을 갑자기 고치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므로 성패成敗는 이치를 바꾸어서, 고금古今에서 속임수로 취했어야 했다. 무엇 때문인가? 저들이 이런 것에서 다르게 변화했고, 임무를 준 자들은 재주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

 

 

②-2其下篇曰:「昔三方之王也, 魏人據中夏, 漢氏有岷益, 吳制荊揚而奄交廣. 曹氏雖功濟諸華, 虐亦深矣, 其民怨矣. 劉公因險飾智, 功已薄矣, 其俗陋矣. 吳桓王基之以武, 太祖成之以德, 聰明睿達, 懿度深遠矣. 其求賢如不及, 恤民如稚子, 接士盡盛德之容, 親仁罄丹府之愛. 拔呂蒙於戎行, 識潘濬於係虜. 推誠信士, 不恤人之我欺;量能授器, 不患權之我逼. 執鞭鞠躬, 以重陸公之威;悉委武衛, 以濟周瑜之師. 卑宮菲食, 以豐功臣之賞;披懷虛己, 以納謨士之算. 故魯肅一面而自託, 士燮蒙險而效命. 高張公之德而省遊田之娛, 賢諸葛之言而割情欲之歡, 感陸公之規而除刑政之煩, 奇劉基之議而作三爵之誓, 屛氣跼蹐以伺子明之疾, 分滋損甘以育淩統之孤, 登壇慷慨歸魯肅之功, 削投惡言信子瑜之節. 是以忠臣競盡其謀, 志士咸得肆力, 洪規遠略, 固不厭夫區區者也. 故百官苟合, 庶務未遑. 初都建業, 群臣請備禮秩, 天子辭而不許, 曰:『天下其謂朕何!』宮室輿服, 蓋慊如也. 爰及中葉, 天人之分旣定, 百度之缺粗修, 雖醲化懿綱, 未齒乎上代, 抑其體國經民之具, 亦足以爲政矣.

 

 

②-2 그 <하편下篇>에 말했다.

 

 

━ 옛날 세 방향에 왕이 있었으니, 위인魏人은 중하中夏를 점거했고 한씨漢氏는 민岷익益에 있었으며, 오는 형주양주를 제압하고 교주광주를 덮었다. 조조는 비록 중원을 구제한 공이 있었지만 모진 것이 심했으니, 그 백성이 원망하였다. 유비는 험준한 곳을 기회로 지혜를 꾸몄지만, 공은 얄팍하고 그 습속은 비루하였다. 오의 환왕(손책)이 무력으로 기틀을 마련하고, 태조(손권)는 덕으로써 공을 이루었으니, 총명과 슬기가 통달하고 굳센 도량이 깊고도 원대했다. 현인을 구함에 끝나지 않음과 같았고, 백성을 구휼함에 어린아이와 같았으며, 사대부를 접하여 성덕盛德의 관용을 다하고 친근하고 어질게 단부丹府(단전)의 아낌을 다했다.

여몽을 군대의 행군에서 발탁했고, 반준潘濬을 붙잡은 포로에서 알아보았다. 진실로 추천한 선비를 믿고 사람들이 자신을 속일까봐 걱정하지 않았으며, 역량과 능력에 따라 임무를 주고 권력으로 자신을 압박할까봐 근심하지 않았다. 채찍을 잡고 몸소 단련하고 육손의 위엄을 무겁게 만들었으며, 모든 무위武衛를 맡기고 주유周瑜를 넘어서는 군사로 만들었다. 궁을 낮춰 음식을 간소하게 하고 공신功臣의 상을 넉넉하게 주었으며, 자기를 비우고 저들의 마음에 품게 해서 모사謨士를 받아들이는 헤아림으로 했다. 그러므로 노숙魯肅은 한 번 만나고 스스로 의탁했으며, 사섭士燮은 멀리서 은혜를 입어 명을 드러냈다.

장소의 덕을 높이 사서 유전遊田(사냥)에서 즐긴 일을 반성했고, 제갈근의 말을 현명하다고 하여 마음을 나눠 감탄하게끔 했다. 육손의 규간에 감동하여 형정刑政의 번잡함을 제거하고, 유기劉基의 의논을 기특하게 여겨 삼작三爵의 맹서를 지었다. 숨을 죽이고 가슴 졸이며 몸을 굽혀 자명子明(여몽)의 병을 엿보았고, 있는 걸 나누고 좋은 걸 덜어서 능통淩統의 고아를 길렀다. 천자로 등극한 감개무량을 노숙의 공으로 돌렸고, 잘못된 말을 깎아내고 던져서 자유子瑜(제갈근)의 절개를 믿었다. 이로써 충신은 다투어 그들의 책모를 다했고, 지사志士는 함께 힘을 다 쏟았다. 넓은 도리와 원대한 책략은, 진실로 구구한 것이라도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백관百官이 진실로 모였고, 여러 일을 하면서도 허둥대지 않았다.

처음 건업建業에 도읍을 정하였을 때, 군신들이 예의 질서를 갖출 것을 청하자, 천자가 사양하면서 불허하며 말하길, ‘천하에서 짐을 뭐라고 하겠는가!’라고 했다. 궁실과 가마와 복장은 대개 예전처럼 단출했다. 중기中期 쯤에 이르자, 천자와 사람이 나눠져 정해지고 나서, 모든 법도에서 빠지고 거친 것을 고쳤다. 비록 진하게 변화하고 굳세어졌어도 아직 연수年數가 차지 않아 상대上代의 것을 끄집어내었고, 나라와 백성을 통틀어 경륜하여 갖추는 것을 억눌렀지만, 또한 정치로 삼기에는 충분하였다.

 

 

地方幾萬里, 帶甲將百萬, 其野沃, 其民練, 其財豐, 其器利, 東負滄海, 西阻險塞, 長江制其區宇, 峻山帶其封域, 國家之利, 未見有弘於茲者矣. 借使中才守之以道, 善人御之有術, 敦率遺憲, 勤民謹政, 循定策, 守常險, 則可以長世永年, 未有危亡之患. 或曰, 吳蜀脣齒之國, 蜀滅則吳亡, 理則然矣, 夫蜀蓋藩援之與國, 而非吳人之存亡也. 何則? 其郊境之接, 重山積險, 陸無長轂之徑;川阨流迅, 水有驚波之艱. 雖有銳師百萬, 啓行不過千夫;軸艫千里, 前驅不過百艦. 故劉氏之伐, 陸公喩之長蛇, 其勢然也. 昔蜀之初亡, 朝臣異謀, 或欲積石以險其流, 或欲機械以御其變.

 

 

지방地方은 거의 만 리에 달했고, 갑옷을 두른 장병은 백만이었다[물론 수식어다. 실제 20만]. 들판은 기름졌고 백성은 교육 받았으며, 재화는 풍족했고 무기는 날카로웠다. 동쪽은 창해滄海를 둘러업고 서쪽은 험준하게 막혔으며, 장강은 나라를 제압하고 험준한 산은 봉역封域을 둘렀으니, 국가의 이점이 이보다 크게 있던 것을 본 적이 없다. 만약에 중간 정도의 재주를 가진 자에게 길을 지키게 하고 기술이 있어 뛰어난 자에게 통제하게 하며, 돈독하게 남겨진 법을 거느려 백성을 위로하고 정치를 삼가며, 계책을 정하여 따르고 항상 험준한 곳을 지켰다면, 오랜 세월 대를 이어갈 수 있었고 아직 위급하여 망하는 근심은 없었을 것이다.

누가 말하길, 오吳촉蜀은 순치脣齒의 나라여서, 촉이 사라지자 오가 망했다고 하는데, 이치가 과연 그럴듯하다. 그러나 대개 촉은 울타리로 지원하는 국가로 참여했는데, 그렇다고 오나라 사람을 존망存亡하게 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그러한가? 밖에서 국경을 접해서는 산이 거듭 있고 험준함이 쌓여서, 땅에는 수레가 잘 굴러갈 길이 없었다. 냇물은 앞을 막고 흐름이 재빨랐으므로, 물에는 물결이 나부끼고 건너기는 고생길이었다.

비록 날카로운 군사가 백만 명이 있더라도, 앞장서 인도하는 것은 천 명을 넘을 수 없었다. 수레와 함선은 천 리를 와야 하므로, 선봉은 백 척을 넘지 못했다. 그러므로 유비가 정벌할 때 육손은 그의 장사진長蛇陣을 알아채고[※-1], 그의 세력을 그리 꺾었다. 옛날 촉이 처음 멸망하자 조신朝臣들은 남다른 책모를 내놓았으니, 누구는 돌을 쌓아 그 흐름을 비껴 막고자 했고, 누구는 기계로 그 변화를 통제하고자 했다.

 

[※-1] 장사진長蛇陣은 뱀처럼 길게 늘어진 진형을 말한다. 유비가 오를 정벌하면서 썼던 진법인데, 평지에서는 유용하기도 하지만 산곡에서는 위험한 진법이다. 하지만 위 글로써 보건대, 유비의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진법이기도 했을 것이다.

 

天子總群議而諮之大司馬陸公, 陸公以四瀆天地之所以節宣其氣, 固無可遏之理, 而機械則彼我之所共, 彼若棄長技以就所屈, 卽荊楊而爭舟楫之用, 是天贊我也, 將謹守峽口以待禽耳. 逮步闡之亂, 憑保城以延彊寇, 重資幣以誘群蠻. 於時大邦之衆, 雲翔電發, 縣旌江介, 築壘遵渚, 襟帶要害, 以止吳人之西, 而巴漢舟師, 沿江東下. 陸公以偏師三萬, 北據東坑, 深溝高壘, 案甲養威. 反虜踠跡待戮, 而不敢北闚生路, 彊寇敗績宵遁, 喪師大半, 分命銳師五千, 西御水軍, 東西同捷, 獻俘萬計. 信哉賢人之謀, 豈欺我哉! 自是烽燧罕警, 封域寡虞. 陸公沒而潛謀兆, 吳釁深而六師駭. 夫太康之役, 衆未盛乎曩日之師, 廣州之亂, 禍有愈乎向時之難, 而邦家顚覆, 宗廟爲墟. 嗚呼! 人之雲亡, 邦國殄瘁, 不其然與!

 

 

천자가 신하들과 통틀어 의논하고 대사마 육항陸抗에게 자문했다. 육항은 사독四瀆[※-2]과 천지天地로써 그 기운의 마디를 마땅하게 하면, 진실로 막히는 이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계는 적과 아군이 함께 가지고 있고, 적들이 만약 장기長技를 버리고 비굴하게 다가와서 형주와 양주에서 배와 노를 쓸 것을 다툰다면, 이는 하늘이 아군을 돕는 것이니, 장차 협구峽口를 삼가 지켜서 기다렸다가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천步闡이 난을 일으켜서 성을 보존하고 기대면서 강구彊寇[진나라 지원군]를 끌어들였으며, 막대한 자원으로 여러 만이蠻夷를 꾀어냈다. 이때 대방大邦(진나라) 군대는 구름처럼 날고 번개처럼 일어나서 깃발을 달고 장강에 끼어들었으며, 물가를 따라 보루를 쌓고 요해지를 둘러 덮었다. 오나라 사람을 서쪽에서 막고, 파한巴漢의 수군은 강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왔다. 육항은 편사偏師 3만으로 북쪽에서 점거하고 동쪽에서 땅을 팠다. 구지溝池를 깊게 파고 보루를 높였으며, 갑옷을 살피고 위력을 길렀다.

반란자들은 발자취를 오므려 죽기만을 기다렸고, 감히 북쪽에서 살 길을 엿보지 못했다. 강구彊寇는 패전하여 똑같이 달아나서 죽은 군사가 절반이 넘었으며, 명을 나누어 정예병사 5천으로 서쪽에서 수군을 막았다.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이겼으니, 헌부獻俘[전쟁에 이기고 돌아와 포로를 바쳐, 조상의 묘당에 알림]는 만 명을 헤아렸다. 믿었구나, 현인의 모책을! 어찌 우리를 기만할 수 있으랴! 이로부터 봉화를 피워 경계하는 일이 드물어졌고, 봉역封域은 우려를 덜하게 되었다.

육항이 세상을 떠나고 수많은 모책을 잠기게 두었으니, 오나라의 틈은 깊어지고 육사六師는 어지러워졌다. 태강太康 연간의 싸움에서, 군사는 예전의 군사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융성하지 못했고, 광주廣州의 반란에서, 화禍는 지난날의 어려움이라 부를 수 있은 것을 뛰어넘었다. 그리하여 나라가 무너지고 종묘는 텅 비게 되었다. 오호라! 사람은 망한 것을 운운하고 나라는 남김없이 없어졌으니, 그것이 그러한 것에 아우르지 않겠는가!

 

[※-2] 瀆은 바다로 직접 흘러드는 하천을 가리킨다. 원래 중원의 사독四瀆은 하수河水제수齊水회수淮水강수江水였다. 이곳의 사독은 당연히 오나라의 사독을 가리킨다. 아마도 장강長江절강折江주강朱江홍강紅江일 것이다. 보천이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육항은 대사마가 아니었다. 대사마의 관직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렇게 쓴 것이다.

 

易曰『湯武革命順乎天』, 玄曰『亂不極則治不形』, 言帝王之因天時也. 古人有言, 曰『天時不如地利』, 易曰『王侯設險以守其國』, 言爲國之恃險也. 又曰:『地利不如人和』, 『在德不在險』, 言守險之由人也. 吳之興也, 參而由焉, 孫卿所謂合其參者也. 及其亡也, 恃險而已, 又孫卿所謂舍其參者也. 夫四州之氓非無衆也, 大江之南非乏俊也, 山川之險易守也, 勁利之器易用也, 先政之業易循也, 功不興而禍遘者何哉? 所以用之者失也. 故先王達經國之長規, 審存亡之至數, 恭己以安百姓, 敦惠以致人和, 寬沖以誘俊乂之謀, 慈和以給士民之愛. 是以其安也, 則黎元與之同慶;及其危也, 則兆庶與之共患. 安與衆同慶, 則其危不可得也;危與下共患, 則其難不足卹也. 夫然, 故能保其社稷而固其土宇, 麥秀無悲殷之思, 黍離無湣周之感矣.」

 

 

《주역》에서 ‘탕왕과 무왕은 하늘에 순응하여 혁명했다.’고 했고, 《태현경太玄經》에서 ‘혼란이 끝에 이르지 않으면 다스림은 모양을 잃지 않는다.’고 했으니, 제왕은 천시天時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고인古人이 말한 게 있으니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다.’고 했다. 《주역》에서 ‘왕후王侯는 험준함을 갖춰 그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했으니, 나라는 험준함에 기대야 한다는 말이다. 또 말하길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했고, ‘덕에 있지 험준함에 있지 않는다.’고 했으니, 험준한 것을 지키는 것은 사람에서 유래한다는 말이다. 

오나라가 일어난 것은, 이 세 가지에서 유래하였으며, 손경孫卿이 이른바 그 세 가지를 합했다고 했다. 오나라가 망한 것은 험준한 것에 기댄 것뿐이었고, 또 손경이 이른바 그 세 가지를 버렸다고 했다. 무릇 4주四州의 백성이 적었던 것이 아니요, 장강의 남쪽에 인재가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산천의 험고함은 지키기 쉬웠고, 굳세고 날카로운 무기는 쓰기에 쉬웠으며, 선조의 정치의 사업은 좇기에 쉬웠는데, 정벌의 공업을 일으키지 않고서도 화를 만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쓰는 자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왕先王들은 나라를 경영함에 장구한 법도로 도달하게 했고, 존망存亡을 살피는 헤아림에 이르렀으며, 자기를 공손히 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했다. 은혜를 돈독히 하여 인화人和에 이르렀고 관용을 채워 뛰어난 인재가 책모를 하게끔 유도했으며, 자애로운 조화로 사민士民을 아끼는 마음을 주었다. 이로써 그가 편안히 하면 백성이 그와 더불어 경사를 함께하고, 그가 위험에 빠지면, 억조의 백성이 그와 더불어 같이 근심한다. 무리들과 더불어 경사를 함께하여 편안해지면 그 위험은 생기지 않으며, 위험을 아랫사람과 더불어 같이 근심하면, 그 어려움은 두려워하기에 부족하다. 그들이 그리하였기에, 그런 까닭으로 그 사직을 잘 보존하여 그 나라를 굳건히 했으며, 맥수麥秀에서 은殷을 생각하는 슬픔이 없었고, 서리黍離에서 주周의 감회에 젖는 슬픔이 없었다.[※-3] ━

 

[※-3] 맥수麥秀는 은殷 멸망을 슬퍼하고 서리黍離는 주周 멸망을 슬퍼하는 시다. 잘 알려진 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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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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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0
22:12:46 (*.155.79.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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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10.24
12:03:06
(*.104.143.222)
"또 이미 폐출된 손량에게 죽지 못하게 시켜야 했는데, 우애가 의로움에서 얄팍했다. " 이 부분에서"또한 이미 폐해진 손량으로 하여금 천수를 누리지 못하게 하였으니"가 맞을 듯 합니다. "형혹熒惑(화성), 무축巫祝이 교대로 상서로운 징조를 나타낸 것은 급박한 정세를 나타낸 것이다." 보건대 급박한 정세를 나타낸 게 아니고 以爲至急 에서 以爲는 ~로 여기다, ~로 삼다의 의미이므로 지극히 급한 일로 여겼다고 해석해야 됩니다. 惑拜昌言 은 혹' 선량한 말을 들으면 절을 하여' 항상 미치지 못할것 처럼 하였다는 뜻인데 앞 부분의 해석이 누락된것 같습니다.

고 하는데 이렇게 수정해도 괜찮겠습니까?

구다라

2013.10.30
21:42:36
(*.155.79.204)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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