晉書卷四十五(진서권사십오) 列傳第十五(별전제십오)

 

후사광

 

 

侯史光字孝明東萊掖人也幼有才悟受學於同縣劉夏舉孝廉州辟別駕咸熙初爲洛陽典農中郎將封關中侯

 

侯史光孝明といい青州東萊郡掖県である幼少より才能があってわかりが同郷劉夏(1)から学問かった孝廉推挙されから別駕として招聘された咸熙年間(264~265)洛陽典農中郎将となり関中侯ぜられた

 

후사광侯史光은 자를 효명孝明이라 하며, 청주青州 동래군東萊郡 액현掖県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어 사물의 이해가 좋았으며, 동향인 유하劉夏에게 학문을 배웠다. 효렴에 추거되어, 주에서 별가로 초빙했다. 함희 연간(264~265) 초에 낙양 전농중랑장이 되고 관중후로 봉해졌다.

 

 

泰始初拜散騎常侍尋兼侍中與皇甫陶荀廙持節循省風俗斠注一及還奏事稱旨轉城門校尉進爵臨海侯其年詔曰:「光忠亮篤素有居正執義之心歷職內外恪勤在公其以光爲御史中丞雖屈其列校之位亦所以伸其司直之才。」光在職寬而不縱斠注二太保王祥久疾廢朝光奏請免之詔優祥而寢光奏

 

 

斠注一〕 魏志三少帝紀注引魏書有中壘將軍昌武亭侯臣廙夏侯玄傳注引世語有散騎常侍荀廙廙爲荀彧之孫彧傳作霬官至中領軍諡曰貞侯即此人也。 

斠注二〕 書鈔六十二引臧榮緒晉書作光在職寛仁不縱

 

 

泰始年間(265~275)散騎常侍任命されせて侍中兼務した皇甫陶(2)荀廙(3)天子使者として民間風俗視察その風俗うようにした(4)視察からって奏上するとそれが天子意向にかなったことから城門校尉転任爵位めて臨海侯となったそののようにある。「侯史光誠意って政務補佐誠実純朴であり正義って内外官職歴任職務忠実朝廷にいるよって侯史光御史中丞任命する校尉序列っていないが政務補佐才能ばそうとうからである。」侯史光いてうままにうことはなかった太保王祥長期間病気のため朝廷参内しなかったため侯史光罷免することを奏上したが王祥厚遇侯史光奏上却下された

 

태시 연간(265~275) 초기에 산기상시에 임명되고 아울러 시중을 겸무했다. 황보도皇甫陶순이荀廙와 함께 천자의 사자로 민간의 풍속을 시찰하여, 그 풍속에 따르도록 했다. 시찰에서 돌아와 주상하자 그것이 천자의 의향에 맞았기에, 성문교위로 전임하고, 작위를 올려 임해후臨海侯가 되었다. 그 해에 조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후사광은 성의를 갖고 정무를 보좌해 성실하고 순박하며, 정의를 따르는 마음을 가지고 내외의 관직을 역임하여, 직무에 충실히 힘써 조정에 있다. 그러므로 후사광을 어사중승에 임명한다. 교위 서열에 맞지는 않으나, 그가 정무를 보좌하는 재능을 펼치게 하고자 함이다.후사광은 직위에 올라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태보 왕상이 병 때문에 장기간 조정에 참내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사광이 그를 파면도록 주상했으나, 조서로 왕상을 후히 우대하여, 후사광의 주상은 각하되었다.

 

 

 

 

斠注一〕 のようにえる。『三国志魏書三少帝紀裴松之注魏書引用して中塁将軍昌武亭侯臣荀廙とある。『三国志魏書夏侯玄伝裴松之注世語引用して散騎常侍荀廙とある荀廙荀彧である。『三国志魏書荀彧伝では、「荀霬官職中領軍薨去した貞侯というとあるつまりこののことである。 

斠注二〕 『北堂書鈔六十二臧栄緒晋書引用して光在職寛仁不縱としている

 

각주 1〕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삼국지三国志위서魏書 삼소제기三少帝紀의 배송지裴松之 주는 위서魏書를 인용하여 中塁将軍昌武亭侯臣荀廙중루장군 창무정후 신 순이라 되어있다. 삼국지위서 하후현전夏侯玄伝의 배송지주는 세어世語를 인용하여 산기상시 순이散騎常侍荀廙라 한다. 순이는 순욱荀彧의 손자이다. 삼국지위서 순욱전에서는 순이荀霬의 관직은 중령군中領軍에 이르렀고, 훙거했다. 시호를 정후貞侯라 했다. 고 한다. , 이 사람의 것이다.

 

각주 2〕 『북당서초北堂書鈔62는 장영서臧栄緒진서를 인용하여 광재직관인부종光在職寛仁不縱이라 했다.

 

 

 

後遷少府卒官詔賜朝服一具衣一襲錢三十萬布百匹及葬又詔曰:「光厲志守約有清忠之節家極貧儉其賜錢五十萬。」光儒學博古歷官著績文筆奏議皆有條理長子玄嗣官至玄菟太守子施嗣[]東莞太守斠注三

 

[] 子施嗣 蔡豹傳有東莞太守侯史旄」,當即此人。「」「二字形近當有一誤

斠注三〕 蔡豹傳」。

 

少府転任卒去したがあり朝服一具衣一襲銭三十万布百匹下賜した葬儀またがあった。「侯史光まし約束らかな忠義があった一家貧窮めたと銭五十万下賜する。」侯史光儒学においてはのことにじており官職歴任して功績って奏上すればすべて道理があった長男侯史玄官職平州玄菟太守った卒去して侯史施徐州東莞郡太守となった

 

후에 소부少府로 전임하여 졸거했다. 조를 내려 조복朝服 1130백 필을 하사했다. 장의할 때, 다시 조를 내렸다. 후사광은 뜻을 북돋아 약속을 지키고, 깨끗한 충의의 마음이 있었다. 일가는 빈궁이 극에 달했다고 들었다. 50만을 하사한다. 후사광은 유학에 있어서는 옛 일에 넓게 통하여, 관직을 역임해 공적을 드러냈고, 붓을 쥐고 주상하면, 모두 도리에 맞았다. 장남인 후사현侯史玄이 적을 잇고, 관직은 평주平州 현토태수玄菟太守에 이르렀다. 졸거하자 아들 후사시侯史施가 적을 이었고, 서주徐州 동완군 태수東莞郡太守가 되었다.

 

 

[] 子施嗣 『晋書巻八十一蔡豹伝東莞太守侯史旄とありつまりこのである。「二字ており一方りであろう

 

斠注三〕 『晋書巻八十一蔡豹伝ではとしている

 

[6] 자시사子施嗣 『진서晋書81 채표전蔡豹伝동완태수후사모東莞太守侯史旄가 있어, 즉 이 사람이다. 의 두 자는 모양이 비슷하니 한쪽이 잘못이다.

 

각주3〕 『진서晋書81 채표전에는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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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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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에스

2016.07.16
08:42:03
(*.220.244.12)
자문을 구했더니 인명 때는 후라고 읽는다고 하여 후사광으로 수정했습니다. (7/16 9:29 수정)

출처가 일본 사이트 이며, 예전에 수정해줄 것도 아니면서 한자 갖고 시비 걸던 인간들 때문에, 일본어를 토대로 번역했음을 알리고자 한 일이니, 실제 자료로 등록할 떄는 그 부분은 빼고 부탁드립니다.

출처 : http://www.eonet.ne.jp/~echizen/jinshu/45-7koushikou.html

그리고 링크를 제외한 어떤 형태로의 본문 퍼가기를 금지합니다. 필요하면 제가 거기 가서 올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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