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무왕斉武王 유연劉縯[1]은 자를 백승伯升이라 하며 광무光武의 큰 형이다. 성정이 강의하고 강개함을 중시했다. 왕망王莽이 한을 찬탈하고 스스로 황제를 칭하자 항상 분하게 생각하여 사직을 돌려놓을 것만을 전념하여 가족이나 가업을 돌보지 않고 스스로가 파산해가면서도 천하의 영웅호걸과 교제했다.

 

[1] 은 잡아당긴다는 뜻이며, 음은 연이다

 

왕망 말기에도적이 잇달아 일어나자남방의 근심이 심해졌다백승은 여러 호걸을 불러놓고 전하여 말하길:「왕망이 폭학하여백성이 무너진다지금은 가뭄과 한재가 해마다 이어져병란이 끊이지 않으니[1]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天亡之時고조의 패업을 돌려놓고만세지추万世之秋의 때를 주려는 것이다..」 모두가 옳게 여겼다이에 친구나 빈객들을 나누어등신鄧晨은 신야新野에서 궐기하고광무는 이통李通이질李軼과 함께 완에서 일어났다백승은 스스로 용릉의땅의자제들을 모아징발하여),합쳐 칠팔천명이 되었고빈객을 부서에 배치하여스스로 주천도부柱天都部라 칭했다[2] 종실인 유가劉嘉를 보내 신시新市평림병平林兵의 왕광王匡진목陳牧 등과 연합하게 하고 군을 합쳐 진군하자장취는 당자향唐子郷으로 도망치고호양湖陽를 죽이고진군하여 극양棘陽에 이르렀다완을 공격하기 위해 소장안小長安에 이르러왕망의 전대前隊인 대부大夫 견부甄阜속정属正 양구사梁丘賜와 싸웠다이 때 하늘엔 짙은 안개가 끼어한군이 대패했고누이 원과 동생 중이 모두 해를 입고종종宗従종족宗族과 종족従族중에서 죽은 자가 수십인이었다백승은 다시 병사를 회수하여돌아가 극양을 지켰다.

 

[1] 동관기東観記에 이르길, "왕망의 말년, 천하는 크게 가뭄이 들었고, 황충이 하늘을 가렸다, 도적이 난을 일으키고, 사방은 무너지고 떨어져나갔다.“

 

[2] 주천柱天이란, 하늘의 기둥이 젊은 것을 말한다. 도부都部란 도로서 그 무리를 통솔하는 것을 말한다.

 

견부양구사가 승세를 타고치중을 남향藍郷에 두고[1] 정병 십만을 이끌고 황순수黄淳水를 남으로 건너[2]()[]수에 이르러양쪽 강 사이에 진지를 구축하고다리를 끊어 뒤를 잘라 돌아갈 마음이 없음을 보였다신시평림은 한의 병사가 여러 차례 패한 것을 보았고견부양구사의 군이 큰 것을 보고각각 해산하여 돌아가고자 하였기에백승이 이를 알고 마음의 병이 되었다하강의 병 오천여명이 의추宜秋에 이르자 이를 만나[3] 합종의 예로 설득하자하강은 깨닫고 따랐다이에 관한 것은 왕상전王常伝에 쓰여있다백승은 이에 군사들을 크게 대접하여동맹을 약속했다병졸에게 휴식을 주기를 삼일군을 나누어 6부로 재편하여자던 병사들을 깨워 기습해 남향을 취하여 그곳의 치중을 획득했다. 아침이 밝자다음날>,한군은 서남에서 견부를 공격하고하강병은 동남에서 양구사를 공격했다식시食時식사시간?만에양구사의 진은 무너졌고견부의 군도이 모습을멍하니 바라보다 흩어지니한병이 급히 추격하여 황순수에 이르자참수한 것과 물에 빠져 죽은 것이 2만여 명이었고결국 견부양구사를 참했다

 

[1] 비양현比陽県에 남향藍郷이 있다.


[2] 역원酈元이 수경水経에서 이르길 ()[]수는 두 호수에서 흐르는 것과 합쳐서 황수黄水가 되고 또 극양현의 황수취黄淳聚를 남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다시 황순수黄淳水라고 한다. 지금의 당주唐州 호양현湖陽県에 있다. 소해蕭該의 발음은 []이기 때문에 []이라고 쓰는 것은 잘못이다.

 

[3] 의추宜秋는 마을 이름으로 호양현에 있다.

 

왕망 쪽의 납언장군納言将軍 엄우厳尤, 질종장군秩宗将軍 진무陳茂는 견부, 양구사 군이 패배했다는 것을 듣고 병사를 끌고 완에 들어가려 하자, 백승은 곧바로 군사를 진군시켜 맹세한 후, 쌓여있던 군량과 마초를 태우고, 가마솥을 부수고, 북을 치고 앞으로 나아가니,[1] 엄우, 진무와 육양에서 만나 싸웠고, 이를 대파하여 참수한 것이 3만여 급이었다. 엄우,진무가 군을 버리고 도망쳤으므로 백승는 마침내 스스로 완을 포위하고, 스스로 일컫길 천주대장군이라 했다. 왕망은 처음부터 그 이름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떨고 두려워하여 백승를 읍 5만호, 황금 10만근, 상공의 자리를 주어 화해하려 했다. 그리고 장안 안의 관청 및 천하의 모든 향정郷亭의 행랑방에 백승의 상을 그리게 하여, 아침<다음날>에 일어나면 이것을 비치게 했다.[2]

 

[1] 가마솥을 깨부수는 것은 필사적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북을 치면서 앞으로 향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기에 이르길, "항우는 북으로 조를 구하려고 하여 도강하자, 배를 파묻고 가마솥을 깨뜨렸다.“

 

[2]소해蕭該의 음의에서 또한 ""이라 썼고 글자 림을 빼면 "門側堂이라" 이다. 동관기東観記 속한서続漢書는 나란히 "" 이라 쓴다. 설문説文은 말할 때에는 "射臬이라 하는것이다". 광아広雅에는 "이다.“ 라고 한다. 의 음은 之允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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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부, 양구사가 죽자. 후에 백성은 날마다 오는 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 수는 10여 만에 이르렀다. 제장는 회의하고 누군가를 세워서 인망에 따르겠다고 했는데, 호걸이 마음이 돌아가는 것은 백승이었다. 그리고 신시, 평림의 장수는 방종함을 즐겼기 때문에, 백승의 위명을 꺼렸고 성공聖公(유현)의 나약함을 탐하며 앞서 함께 방안을 정하고 이를 세우려 했다, 그리고 나서 기를 사용해 백승을 불러, 그 심의를 보였다. 백승이 말하길,

 

"여러 장군이 다행히 종가를 존중하려 하니 그 덕이 매우 두텁다는 것이요, 그런데 우비가 보기에는, 절 우니 아직은 한결같지 않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적미가 청주와 서주에서 일어나고 그 무리가 수십 만, 남양이 종가를 세우면, 적미가 돌아갈 곳을 가지는 것(황제를 세우는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반드시 싸우게 되겠지요. 지금 왕망은 아직 망하지 않았는데 종가가 의심하여 싸운다면, 이것은 천하를 의심케 하고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고, 더 나아가 왕망을 깨뜨리지 못한다는 것이오. 한편으로 수병首兵하고 호를 칭하면, 능히 따르려는 자가 적을 것이니 진승, 항우가 바로 그 것이오. 용릉에서 완으로 떠난지 300, 아직 공을 세웠다고 하기에 부족하오. 거자존립위천하준적遽自尊立為天下準的(급히 존호를 칭하여 천하의 적이 되다)으로 후세 사람들이 우리의 폐단을 본받게 할 수는 없소, [1] 계책 중에 훌륭한 것은 아니외다. 지금 또한 칭왕하여 호령하도록 합시다. 만약 적미가 세운 사람이 똑똑하다면, 서로 이끌고 가서 이에 따르는 것이고 만약 세울 곳이 없다면, 왕망을 깨고 적미로 가서 존호를 올려도, 아직 늦지 않는다는 것이오. 그럼 각각 이것을 자세히 생각하시기를."

 

제장의 대부분이 "좋다" 라고 말했다. 장군 장앙張卬은 칼을 뽑아 땅을 치며 말하길,

 

"일을 의심한다면 공이 없어진다. [2] 오늘의 회의는, 두가지 일 수 없는 것이야."

 

모두 이에 따랐다.

 

[1] 전서에서 송의가 말하길, " 싸워 이기고 나면, 군사는 피곤하다, 우리는 그 폐를 따르는거다."

 

[2] 사기에 이르길, 조의 무령왕이 호복을 입길 원하자 비의가 말하길,

 

"일을 의심한다면 공이 없고, 하는 것을 의심한다면 이름이 없다"

 

성공은 즉위하자, 백승을 대사도大司徒에 임명하고, 한신漢信侯에 봉했다. 이 때문에 호걸은 실망하고 대부분이 복종하지 않았다. 평림 후부平林後部가 신야를 공격했지만, 함락할 수 없었다. 신야의 (바닥)무제는 성에 달한다고 말해 가로되, [1]

 

"사도 유공을 안다면 한번 믿어보겠소, 바라건데 앞으로 나와주시오(백승을 파견해 주시오)."

 

백승의 군이 이 곳에 이르자, 즉시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4, 백승은 완을 뽑았다. 5, 광무가 왕심, 왕읍을 물리쳤다. 이 형제의 위명은 더더욱 높아졌다.

 

[1] 王莽改令長為宰東観記其宰潘臨也

 

경시更始의 군신은 스스로 안심하지 못하고 마침내 짜고 백승을 주살하려 했다, 즉 제장을 대연회에 초대하여 그 계획을 세운 것이다. 경시가 백승의 보검을 빼앗아 살피자, 수의어사繡衣御史인 신도건申屠建이 손에 든 옥결을 들어올렸으나 [1] 경시는 끝내 발하지 못했다. 파회하고 나서, 백승의 장인인 번굉이 백승에게 이르길,

 

"옛날 홍문의 연회가 있던 중에, 범증이 옥을 들어서 항우에게 보였다. [2] 지금 신도건의 이 뜻은, 같은 뜻이 아니겠는가?"

 

백승는 웃고는 답하지 않았다. 원래, 이질이 경시의 귀장들에게 아첨했기 때문에 [3] 광무는 이를 깊이 경계하여, 항상 백승에게 말하길,

 

"이 사람은 다시 믿을 수 없다."

 

라고 했지만 또 응답받지 못했다.

 

[1] 수의어사는 무제가 두었다. 수의란 이를 존총한다는 뜻이다. 결은 결정의 표시. 빨리 결단하라고 재촉한 것이다.

 

[2] 사기에 이르길,

 

"항왕은 패공을 머물게 하고 술을 마셨는데, 항백이 동쪽으로 향해 앉고, 범증이 남쪽을 향해 앉고, 패공는 북쪽으로 앉았다. 범증은 몇 번이나 항왕을 보고, 차고 있던 옥을 올리길 세 번, 항왕는 고개를 숙이며 응하지 않았다."

 

홍문은 지명이다, 신풍의 동쪽 칠십리에 있다.

 

[3] 귀장貴将, 주유朱鮪 등이다.

 

백승의 부장인 종인宗人의 유직劉稷은 몇 번이나 진을 함락하고 포위를 부수는 등, 용감하기는 3군에 들어갔다. 이 때에 군대에 장수가 되어 노양을 공격했지만, [1] 경시가 황제가 되었다고 듣고, 화내며 말하길

 

"원체 군사를 일으켜 큰일을 도모한 것은, 백승 형제인 것이오, 지금 경시가 무얼 한 사람이라고 그러는건가?"

 

경시의 군신은 이를 듣고 마음에 꺼려, 유직으로 항위장군抗威将軍으로 삼았지만, 유직은 좇지 않았다. 경시는 즉시 제장과 군사 수천 명을 늘어놓고, 우선 유직을 체포하여, 바야흐로 이것을 주살하려고 했지만, 백승이 굳게 다투었다. 이질, 주유은 의하면 백승도 같이 체포하도록 경시에 제안하고, 당일에 그를 해쳤다.

 

[1]魯陽属南()[]今汝州魯山県也

 

 

두 아들이 있었다. 건무 2, 장자인 장을 세우고 태원왕太原王, 성장하자 노왕魯王으로 삼았다. 11, 장을 옮겨 제왕斉王이라 했다. 15, 백승을 추익追謚하여 제 무왕武王이라 했다.

 

유장은 어릴적 부터 혼자(고아)였기 때문에, 광무는 백승의 공업과 부취에 느끼고, 은혜로 어루만져 키우고 사랑하는 것이 매우 두터워, 以其少貴欲令親吏事, 고로 쓰고 시수試守시켜 평음령平陰令으로, [1] 옮겨 양군태수梁郡太守가 되었다. [2] 세워진 지 21년에 훙하여, 애왕哀王이라 했다. 아들 양왕煬王 이 이었다. 건무建武 27, 유석은 처음 취국就国했다. 30, 유석의 동생 유장劉張을 봉해 하박후下博侯로 삼았다. 영평永平 14, 석의 둘째 아들을 봉해 향후로 삼았다. 유석은 세워진 지 24년이 지나 훙하고, 아들 황이 이었다.

 

[1] 시험받게 된 자는 직책을 칭하고 나이가 차면 진(태수)이 된다. 평음은 현으로, 하남군에 속한다. 응소가 말하길 평진平津의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예부터 이르길 평음이라고 한다. 위나라의 문제가 개명하여 하음이라 했다. 정청은 지금의 낙양현 동북에 있다. 제주済州 평음현 동북 5리에 평음의 고성故城이 있다.

 

[2] 지금의 송주宋州이다.

 

유황과 남동생 이후利侯 유강劉剛은 어머니 태공주 종太姫宗과 서로 무고했다. 장화章和 원년, 유사가 상주하여 황, 강을 내쳐서 서인庶人으로 삼고, 단양丹陽으로 유배토록 청했다.[1] 황제는 민망하여, 조칙을 내려 가로되,

 

"짐은 인군이 병풍을 쳐도 감출 수 없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2] 종준宗尊이 어리다고,[3]궁을 두루 갖추고, 나가면 수레를 꾸미며,[4] 들어오면 창이 단단히 잠겨있으니, 모두 다 참소하는 자의 말이다.[5] 유황, 유강이 이르면 단호히 허물을 꾸짖어 대륜의 흐림을,[6] 큰 형벌로 3천의 불효로 이처럼 큰 것은 없다. 짐은 이치에서 이것을 놓아 줄 수 없다, 그 유황의 작위을 없애 무호후로 하고,[7] 유강의 호를 깎아 3천으로 한다. 서러움에 탄식한다! 소자小子(여기에서는 태희太姫의 일인가)는 대도를 가르치지 않고 법리에 손을 먼저 대어, 종준을 잊게 하였다.[8] 그 알자을 보내 유황 및 태희의 새수璽綬를 거둔다."

 

유황은 세워진 지 17년이 지나 강작된 것이다. 유황이 죽자, 자식 무기無忌가 이었다.

 

[1] 단양은(옛날) 군이며, 옛 성은 지금의 윤주潤州 강녕현江寧県 동남東南에 있다.

 

[2] 백호통白虎通에 이르길, "병풍을 마련한 이유는 무엇인가? 以自障也示不極臣下之敬也. 천자의 덕이 크면, 그 때문에 밖으로 병풍을 친다; 제후의 덕이 적으면, 고로 안에 병풍을 친다"

 

[3] 제후諸侯의 아내를 말하길 소군小君이라 한다.

 

[4] 치병輜軿이란 有擁蔽之車也이다. 열녀전에 이르길, "제의 효공孝公 화맹 공주華孟姫가 공에게 말하길 : 妾聞妃后踰閾必乘安車輜軿下堂必従傅母保阿進退則鳴玉佩内飾則結綢繆所以正心一意自斂制也. "

 

[5] 하휴何休는 공양전公羊伝에 주석을 달아 말하길, " 그 같은 일을 호소하는 것은, 거짓말로서 참소하는 것이다."

 

[6] 은 다만 더러울 뿐. 인륜은 한가지 이치이다. 공자는 가로되, "그 몸을 깨끗이 하길 원한다면 대륜이 어지러워진다"

 

[7] 무호蕪湖. 장기章紀에 해견解見된다.

 

[8] 은 끌어들이는 것이며. 은 깨뜨리는것이다.

 

황제는 두고 백승이 대업을 수창했는데, 그리고 후사에게 죄가 있어 (나라가) 없어진 것에 대해, 마음은 항상 이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 때 북해에도 후사가 없었다. 붕하기에 이르러, 두 나라를 되돌리도록 조령을 남겼다. 영원永元 2, 다시 복원하고 무기를 봉해 제왕이라 했고, 그가 혜왕恵王이 된 것이다. 봉해진지 52년이 지나 훙했다, 아들 경왕頃王 가 이었다. 세운 지 5년이 지나 훙했다, 아들 승이 이었다. 건안 11년 나라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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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5
21:24:20 (*.144.5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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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에스

2013.09.15
21:24:39
(*.144.59.76)
맨 마지막 주석은 해석이 안 되어서 일어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조금 컨디션 좋을 때 해야겠군요.

코렐솔라

2013.09.16
09:28:11
(*.166.245.166)
이게 앞서 말한 그것이군요. 간체 번체 차이나는 것이 은근히 귀찮긴 합니다. 주석 번역 다되면 미번역된 한문을 뒤에 붙인 다음에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이곳에 미번역 한문을 붙일까요?

아리에스

2013.09.16
10:42:06
(*.70.30.130)
이곳에 미번역한문을 붙여주세요. 다행히 이건 완성판입니다.

코렐솔라

2013.09.16
10:50:22
(*.0.203.196)
엇, 그럼 아리에스님이 다 번역할 수 있겠군요. 지금 제가 올린 것에 주석과 문단 구분이 안 되어있는데 수업들어가야돼서 천천히 할께요 ㅜㅠ

코렐솔라

2013.09.16
10:58:37
(*.0.203.196)
색깔 입히기 문단 구분 완료. 생각보다 금방 되는군요.

아리에스

2013.10.05
17:22:17
(*.198.7.16)
논찬만 하면 되는데 힘들어서 못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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