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준은 자를 공위公偉라 하며 회계会稽 상우上虞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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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어머니는 피륙을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

 

주준은 효양孝養으로 이름을 알려 현의 문하서좌門下書佐가 되었다.

 

주준은 의를 좋아하고 재산을 가볍게 여겨 고향에서는 모두 이를 존경했다. 당시 같은 군의 주규周規가 공부公府의 부름을 받고 출발하려는 때, 군고郡庫의 돈 백만 냥을 빌려 관[건책巾責](관과 두건頭巾)을 갖춘 비용에 댔다.

 

(장번의 한기는 주규를 주기周起라 썼다.)

 

이후 갑자기 빚 상환에 쫓겼으나 주규의 집는 가난하여, 지불할 수 없었다. 이에 주준은 몰래 어머니의 비단을 빼돌려 주규의 빚을 상환해 주었다. 어머니는 생업을 잃어 주준의 행동을 깊이 원망하고 비난했다. 주준은

 

"지금 작은 손해를 봐도 앞으로 큰 이득이 올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난해도 나중에 풍부하게 되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라고 말했다. 상우현장上虞県長 산양山陽 사람 도상度尚은 이를 보고, 보통 인물이 아니라 생각해, 주준을 태수 위의韋毅에게 추천했다. 잠시, 주준은 군의 직을 맡았다. 후에 태수 윤단尹端이 주준을 주부主簿에 임명했다.

 

희평 2(173) 윤단은 도적 허소許昭를 토벌했지만 전과를 올리지 못해, 에 죄가 상주되어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주준은 이에 ()복을 벗고 샛길을 달려, 재빨리 수백금을 모아 경사에 다다라 법을 관장하는 관리들에게 뇌물을 보내, 마침내 주가 올린 상주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윤단은 좌교左校에 옮겨져 공작工作에 종사하게 되어, 사형을 면한 것을 기뻐했지만, 그 이유를 몰랐다. 주준 또한 끝내 이를 말하지 않았다.

 

후에 태수 서규徐珪는 주준을 효렴孝廉에 추천했고 주준은 또 자리를 옮겨 난릉현령蘭陵県令에 임명됐다.

 

주준은 정치에 특히 재능을 발휘해 동해국상東海国相에게 공적을 표창받았다.

 

어느 날 교지交趾의 군적群賊이 일제히 봉기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주목州牧·태수太守는 연약하여 막지 못했다.

또 교지의 도적 양룡梁龍 등 만여 명이 남해 태수南海太守 공지孔芝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군현을 파괴했다.

 

이에 광화 원년(178)에 주준은 교지자사交趾刺史에 임명되어 고향 회계에 들러 모집한 가병家兵(종자)및 징발한 병사를 선발하여 모두 5천 명을 두 패로 나누어 (교지로) 진군시켰다.

 

주의 경계에 다다르자 병사를 멈추게 하고 우선 사자를 보내 도적의 허실을 찾고 (조정의) 위덕을 거창하게 늘어놓아 그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그 후 7군의 군사들과 함께 진격하여 마침내 양룡을 베었다.

 

항복한 자는 수만 명이었다. 한 달동안 도적은 모두 평정되었다.

 

그 공적으로 주준은 1500호의 도정후都亭侯에 봉해지고, 황금 오십근을 받았고, 중앙에 소환되어 간의대부諫議大夫가 되었다.

 

황건黄巾의 난 때 공경 대부분이 주준이 재략이 있다고 하여 추천했다.

이에 우중랑장右中郎将에 임명되어 절을 가지고 좌중랑장左中郎将 황보숭皇甫嵩과 영천潁川, 여남汝南, 진국陳国의 여러 도적을 치고, 모두 평정했다.

 

황보숭은 이들의 상황을 상주하여 전공을 주준에게 돌렸다.

 

이에 따라 주준은 서향후가 되었으며 진적중랑장鎮賊中郎将으로 전임했다.

 

그 무렵, 남양南陽의 황건 장만성張曼成이 병사를 일으켜 신상사神上使라고 칭했다. 따르는 사람은 수만 명이었다. 도적은 남양 태수 저공(褚貢)을 죽이고 완의 땅에 군을 멈췄다.

 

100일 후 신임태수 진힐이 장만성을 격파하고 그를 죽였다. 도둑은 조홍趙弘을 세워 대장으로 삼았다. 따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마침내 10여 만이 되어, 완성에 들어갔다. 주준은 형주 자사 서구 및 진힐과 함께 도합 18천의 병사로 조홍을 포위했다.

6월에서 8월이 되어도 이를 못 빼앗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주준을 소환할 것을 상주했다. 이에 사공 장온張温이 상소하여 말했다.

 

"옛날 진은 백기白起를 기용하고 연은 악의楽毅를 임용해 함께 세월을 보내고 적을 잘 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사기에 이르길 백기는 미읍 사람이다. 용병에 뛰어나 진나라 소왕을 모시고 대량조大良造가 되었다. 백기는 위나라의 도읍을 공격해 이를 함락시켰다. 5년 만에 조를 공격해 광랑성光狼城을 함락시켰다. 7년 후에는 초를 공격해 언·등의 다섯 성을 함락시켰다. 이듬해 군을 내려보내 이릉을 불태우고 마침내 동쪽으로 경릉에 이르렀다. 악의는 조나라 사람이다. 명석하고, 군사를 좋아하여 연 소왕은 아경에 임명했다. 나중에 상장군이 되어 제나라를 공격, 임치에서 제나라를 쳐서 5년 사이에 70여 성을 함락시켰다.)

 

주준은 영천(도둑)을 쳐서 이미 공적이 있습니다. 또 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하고 방책은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군을 파견하여 그 장수를 바꾸는 것은 병가에서 꺼리는 것입니다. 유예를 주고 그 성공을 요구하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영제는 이에 주준의 소환을 그만두었다.

 

주준은 이를 듣고 서둘러 조홍을 공격하여 이를 베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도적의 장수 한충韓忠은 다시 완에 의거하여 주준을 막았다. 주준의 군사는 적고, 공격해 함락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성 주위를 둘러싸고 보루를 차리고 토산을 쌓아 성내의 모습을 바라보다, 북을 치고 성 서남쪽을 공격했다. 도적은 전군을 들어 이를 요격했다. 주준 자신은 정병 5천을 이끌고 성 동북쪽에서 느닷없이 돌입했다. 한충은 퇴각해 소성小城에서 저항하였으나, 두려워하여 항복을 청했다.

 

사마 장초 및 서구·진힐은 모두 이를 들어주자 했지만 주준은 말했다.

 

"군사는 모양이 같아도 그 기세는 다르오. 옛날 진나라와 항우項羽가 싸웠을 때, 백성은 정해진 주인이 없었소. 그렇기에 자신의 눈에 띄는 자를 칭찬하며, 귀순을 장려할 수밖에 없었소이다. 지금 천하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으며 단지 황건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외다. 항복을 받아들이면 선을 장려할 수가 없고 이를 치면 악을 응징할 수 있소이다. 지금 이를 받아들이면 더욱 모반할 마음을 조장시켜 도적이 유리한 때는 진격해 싸우고 불리한 때에는 항복하게 될 것이오. 그럼 적을 끌어들이며 도적의 행패를 조장할 뿐. 토벌하지 않아도 좋겠소?"

 

이에 공격 태세를 강화해 몇 번이나 전투를 벌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주준은 토산에 올라 모습을 보고 뒤돌아보며 장초에게 말했다.

 

"이제 알았소. 도적은 지금 밖에서 물샐 틈 없이 포위되어 안의 군세는 내몰리고 있소. 항복이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밖으로 벗어날 수도 없었고,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이오. 만 명이 마음을 하나로 해도, 당할 수 없는 기세. 하물며 적은 10. 그 피해는 막대하오. 포위를 풀고 병사를 모아 성에 돌입하는 것 외는 없겠소이다. 한충은 포위가 풀리는 것을 보고 반드시 자진해서 나올 것이오. 자진해서 나온다면 그 전의는 상실하였을 것. 이기는 건 쉬운 일이오."

 

그리고 포위를 풀자, 과연 한충은 출격했다. 주준은 이를 공격하여 크게 쳐부쉈다. 승세를 몰아 달아나는 적을 쫓아 벤 목의 수는 수만 급에 달했다. 한충 등은 마침내 투항했다. 그러나 진힐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그를 죽였다.

나머지 부하들은 두려워 불안을 품고 손하孫夏를 대장으로 세워 돌아가 완성을 지켰다. 주준은 갑자기 이를 쳐서 손하를 따라 서악西鄂의 정산精山에 이르러 또 이를 격파하고 만여 급의 목을 베어냈다. 도둑은 마침내 흩어졌다.

 

이듬해(185) , 조정은 사자를 보내 절을 가지고 주준을 우거기장군右車騎将軍으로 임명했다. 개선하고 경사로 돌아오자 광록태부光禄太夫가 되어, 식읍 5천을 가증받아 전당후에 봉해졌다. , 특진의 지위가 더해졌다.

 

(전당기銭塘記에 이르길. 옛날, 의 의조議曹 화신華信은 이 둑()을 만들어 바닷물을 막겠다는 의견을 냈다. 처음에 "토석 1석을 가지고 오는 자가 있으면 돈 천 냥을 준다." 고 사람을 모집했는데, 열흘 사이에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둑이 완성되기 전에 거짓말로 (이제 충분하다고 말해) 받지 않았다. 모두들 토석을 버리고 돌아갔다. 그 토석으로 둑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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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5
13:54:25 (*.198.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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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에스

2013.10.05
13:55:12
(*.198.7.16)
한자가 없는 부분은 일본어에서 지원하지 않아서 파자가 된 부분으로 엔하위키 등에서 찾아다 채운 것들입니다. 대부분 고유명사이니 원문에서 찾아 붙이면 될 듯 합니다.

코렐솔라

2013.10.05
14:14:27
(*.166.245.166)
우오우오우오! 사랑합니다 아리에스님!

아리에스

2013.10.05
14:16:59
(*.198.7.16)
장만성에게 죽은 남양태수를 좀 채워주세요. 이름이 있는데 파자라서 못 찾겠네요. 자치통감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코렐솔라

2013.10.05
14:25:41
(*.166.245.166)
혹시 저공(褚貢) 맞습니까? 고유명사가 있으면 http://www.sidneyluo.net/a/a03/071.htm 여기와 끼워맞춰보시면 될 듯 합니다.

아리에스

2013.10.05
14:32:17
(*.198.7.16)
저공 맞습니다. 기억이 나네요. 고유명사인 것은 아는데, 파자가 徐[繆(左王)]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은 답이 없습니다. 간단한건 네이버 사전에서 그려서(..) 라도 찾아보겠지만 말입니다. 참고로 저 한자는 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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