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상으로 관직을 떠난 뒤 다시 임관해 장작대장将作大匠이 되었고, 소부少府태복太僕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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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적 이후, 흑산황룡백파좌교곽대현우저근청우각장우각장백기유석좌자장팔평한대계사례연재뇌공부운비연백작양봉우독오록이대목백요쉬고고주 등의 적도가 산과 계곡 사이에서 일제히 봉기하여, 그 수는 셀 수 없을 만큼이었다.

 

그 목소리가 큰 자를 뇌공이라고 칭해, 백마에 타는 자를 장백기로 부르고 홀가분하고 민첩 한 자를 비연이라 하고 수염이 많은 사람을 저근이라 칭하고 큰 눈들을 대목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칭호는 각각의 특징과 연관된 것이다. 큰 자는 2·3, 작은 자는 6·7천명의 대장이었다.

 

(구주춘추九州春秋는 대계大計를 대홍大洪이라 쓰고 연재를 연성縁城이라 썼으며 고주苦唒를 고유苦蝤라 했다.)

 

상산常山 사람 장연張燕은 사납고 강인하며 행동이 민첩했기 때문에 군중에서는 그를 비연飛燕이라 칭했다. 장 연은 사졸의 마음을 잘 잡고, 중산中山,상산·조군趙郡·상당上党·하내河内의 여러 골짜기의 도적과 서로 통하여, 추종하는 사람의 수는 백만에 달했다.

 

그들은 흑산적黒山賊이라 불리며 하북의 모든 군현은 한결같이 그 해를 입었는데 조정은 토벌하지 않았다.

 

장연은 그 후 사신을 경사로 보내 글을 올려 항복을 청했다. 조정은 결국 장연을 평난중랑장平難中郎将에 임명하고 하북河北의 여러 산곡의 일을 담당하고 해마다 효렴·계사計吏를 추천할 권리를 주었다.

 

장연은 그 후 점차 하내에 침입하게 되고, 경사 근처까지 위험이 이르렀다.

 

거기에서 주준은 나가서 하내태수가 되어 자신의 병사를 이끌고 이를 요격해 퇴각시켰다.

 

그 뒤 여러 도적의 대부분이 원소에게 평정된 일은 원소전에 기록이 있다.

 

조정은 다시 주준을 광록태부에 임명하고 또 성문교위城門校尉·하남윤河南尹으로 전임했다.

그 때 조정에서는 동탁이 정치를 마음대로 하고 있었다. 동탁은 주준이 노장이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매우 친하게 받아들였지만, 본심으로는 이를 미워하고 있었다. 관동군의 기세가 활발해지자, 동탁은 두려움을 품고 공경에게 회의를 요구하여 도읍을 장안長安으로 옮기기로 했다. 주준은 즉시 이에 반대했기 때문에, 동탁은 주준이 자기와 같은 의견이 아님을 미워했지만, 그 명성이 높음을 이용할 생각이어서, 상소해 태복太僕으로 전임시켜 자신의 부관으로 삼으려 했다. 사자가 와서 주준을 임명하려 했으나, 주준은 임명을 거절하며 말했다.

 

"국가가 서쪽으로 천도하면 반드시 천하의 신망을 잃고 산동의 사람들은 이 죄를 묻겠지요. 신은 그것을 좋은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사자가 주준을 막으며 말했다.

 

"천자가 당신을 불러 임명하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것을 거절했습니다. 또 천도의 일을 물어본 것도 아닌데 이에 대해 거론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주준은 대답했다.

 

"상국(동탁)의 부관이 되는 것은 신은 견딜 수 없습니다. 또 천도 계획은 갑자기 실시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거절하면서 급히 할 것이 아닌 것을 논한 것은 신이 그러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말했다.

 

"천도의 일은 그런 계획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직 발표도 없었는데 어디에서 그것을 들은 것입니까?"

 

주준은 대답했다.

 

"상국 동탁이 신하들에게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자는 굴복시키지 못했고 부관으로 삼는 일은 중지했다.

 

동탁은 나중에 관중에 들어가 주준을 낙양洛陽에 들어가 지키게 했다. 이에 주준은 산동의 제장과 공모하여 내응을 약속했지만, 동탁이 습격할 것이 두려워 관을 버리고 형주에 도망쳤다. 동탁은 홍농弘農 사람 양의楊懿를 하남윤으로서 낙양을 지키게 했다. 주준은 그것을 듣고, 다시 군사를 진군시켜 낙양으로 돌아갔다. 양의는 도망쳤다. 주준은 하남이 파괴에 휩싸였기 때문에 물자를 얻지 못하고, 동쪽 중모中牟에 주둔했다.

 

그리고 주군에 글을 보내 출병을 요구해 동탁을 토벌하려 했다. 서주 자사徐州刺史 도겸陶謙이 정병 3천여 명을 보내주어 물자의 보급을 약간 받게 되었다. 도겸은 주준을 추대하고 거기 장군車騎将軍의 직무(행 거기장군)를 행하게 했다.

동탁은 이것을 듣고 부장 이각·곽사 등 수만 명에게 하남을 지키고 주준을 막게 했다. 주준은 요격하지만, 이각·곽사에게 패했다. 주준은 자군自軍이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관 아래에 머무르며 굳이 전진하지 않았다.

동탁이 주살됨에 이르러 이각·곽사은 난을 일으켰다.

 

주준은 그 때 아직 중모에 있었지만, 도겸은 주준이 명신名臣으로 수많은 전공이 있어 큰일을 맡겨야 한다고 하며, 호걸들과 주준을 추대해 태사太師로 하여 격문을 보내, 한마음으로 이각 등을 토벌하고 천자를 봉영하려고 했다.

 

거기에서 주준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했다.

 

"서주 자사 도겸, 전 양주 자사 주건, 낭야상 음덕陰徳, 동해상 유규劉馗, 팽성상 급렴汲廉, 북해상 공융孔融, 패국상 원충孔融, 태산 태수 응소応劭, 여남 태수 서구, 전 구강태수 복건服虔, 박사 정현鄭玄 등이 행 거기 장군·하남윤 막부전(주준)에 감히 말합니다.

 

(채질蔡質의 전직의典職儀에 이르길. 여러 주諸州의 자사 및 군이 열경부列卿府에 상언할 때는 감히 말합니다. 라고 한다.) (이 부분은 원문과 병기해야할 필요가 있음)

 

국가는 이미 동탁의 화를 당했지만 거듭 이각·곽사의 화를 당하고 있습니다. 유주幼主는 위협받고 사로잡혀 충량한 신하들은 무참하게 멸망되었습니다. 장안은 격리되고 흉폭한 도적이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관직에 오른 사람, 사람의 장이 된 사람, 신분이 있는 자, 지식이 있는 자로서 우려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희는 명철明哲·웅패雄覇의 선비도 없으나, 어째서 화나 전란을 막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군사를 일으켜 지금에 이르기까지 3, 주군州郡은 그저 모습을 노리고 있을 뿐 아직 분격奮撃(떨쳐 원수를 갚다)의 공을 세우지 못하고, 서로 사투를 벌여 점점 의심하고 있습니다. 저 도겸 등은 함께 상의하여 국난을 없앨 것을 모의했습니다. 모두 장군 각하将軍閣下가 문무에 뛰어났으며, 천명에 따라 범백凡百의 군자君子가 작은 세력이나마 앞장서고 계시다고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서로 격려하고, 정한精悍한 자로 적지에 깊숙이 쳐들어갈 수 있는 용사들을 선발해 곧바로 함양咸陽을 목표로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물자와 군량도 많고 반년 동안은 지탱할 수 있습니다. 삼가 마음을 같이 하고 원수(주준)께 이를 맡기겠습니다."

 

한편 이각은 태위太尉 주충周忠·상서尚書 가후賈詡의 책략을 이용해, 주준을 소환해 입조케 하려 했다. 부하들은 모두 관중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 도겸에 응하도록 했다. 주준은

 

"주군이 신하를 부른다면 의로서 마차의 마중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논어論語에 이르길 주군主君이 부르면, 마차의 마중을 기다리지 않는다. )

 

하물며 천자天子의 말씀이다. 이각·곽사는 애송이고, 번조樊稠는 범아凡児에 불과하다. 그밖에 뭔가 깊은 음모가 있는 것도 아닐 터. 또 그들의 세력은 서로 경쟁하고 있어 변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내가 그 틈을 탄다면 큰일을 할 수 있다."

 

라며 도겸의 제안을 거절했고 이각의 소환에 따라 다시 태복이 되었다. 도겸 등은 결국 계획을 중단했다.

 

초평初平 4(193), 주충을 대신하여 태위·녹상서사録尚書事가 되었다.

 

이듬해(194) 가을에 일식日食에 의해 파면되고, 표기 장군驃騎将軍의 직무를 행하여 절을 가지고 관동의 통솔력이 되었다. 아직 출발하기도 전에 이각이 번조를 죽였다. 곽사는 자신도 살해될까 의심해 이각과 서로 싸워, 장안 안이 전란에 휩싸였다.

 

거기에서 주준은 동쪽으로 향하는 것을 중지하고 장안을 나가지 않고 머물러 대사농大司農이 됐다. 헌제献帝는 주준에게 조칙을 내려 태위의 양표 등 10여 명과 곽사를 설득해 이각과 화친했다. 그러나 곽사는 따르지 않고, 마침내 주준 등을 잡아 볼모로 보냈다.

 

주준은 원래 강직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날 중에 발병하여 죽었다.

 

아들 주호朱皓도 또한 재능과 덕행이 있었고 관직은 예장 태수豫章太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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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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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에스

2013.10.05
14:53:18
(*.198.7.16)
주준 개인의 열전은 여기서 끝이고, 황보숭과 주준에 대해 논한 것이 따로 있는 듯 합니다. 이건 제목 따로 해서 올립죠.

코렐솔라

2013.10.05
14:57:08
(*.166.245.166)
안 그래도 끝에 논과 찬이 없어서 설마 없나 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번역본이 존재했군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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