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개任愷는 자를 원포元褒라 하고 서주徐州 낙안군楽安郡 박창현博昌県 사람이다.[1] 아버지 임호任昊는 위나라의 태상이었다.[2] 임개는 어려서부터 지식이 풍부했고[3] 위 명제(조예)의 딸을 얻었다(1), 중서시랑中書侍郎·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常侍를 차례로 역임했다. 진이 들어서자 시중이 되어 창국현후昌国県侯에 봉해졌다.

 

[1] 원화성찬元和姓纂5"낙안군 박창현의 임오任敖의 자손, 진의 상서, 임개." 라 한다.

[2] 삼국지위서 삼소제기의 배송지 주에 위서魏書를 인용해 "太常臣晏"이라 했다. 입이사고이廿二史考異 15"진서 임개전에 "父昊魏太常"라 했다. ""·""의 글자모양은 비슷하니, 아마 이 사람일 것이다.“

[3] 세설신어世説新語 임탄편任誕篇의 유효표劉孝標 주에 다음과 같다. "진제공찬晋諸公賛"愷有雅識" 라 한다.“

 

임개任愷는 국가 경영의 재능이 있어 모든 기회를 파악해 일의 대소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을 챙겼다. 성격은 성실하고 바르며 국가 경영을 자신의 임무로 하고 있어 천자는 이를 높이 평가하여 임개와 히 정사에 대해 많은 의논을 했다. 태시 연간 초 정충鄭沖·왕상王祥·하증何曾·순의荀顗·배수裴秀 등이 각각 노령과 병을 이유로 집으로 돌아갔다. 천자는 대신을 후대하여, 근력을 지치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종종 임개를 파견해 여러 공에게 설명하고, 당시의 정사를 상담하며 득실에 대해 논의에 참여시켰다. 임개는 가충賈充의 인품을 기피하여 장기간 조정의 정치를 집무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결재가 있을 때마다 억눌렀다. 가충이 이를 비난해도 대처하지 않았다. 나중에 임개는 지조가 굳고 기량이 있어서 발랐기에, 동궁에서 세자를 수호하는 것이 좋다는 이간離間책을 받았다. 천자는 이에 따라 임개를 태자소부太子少傅에 임명하고 시중의 지위는 전처럼 하려 했으나 가충이 획책하여 하지 못하게 했다. 진주秦州·옹주雍州의 반란이 일어나자, 천자는 근심했다. 임개는 거기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주·양주涼州가 패배하고 관우關右에 소동騷動이 일어났다면, 이건 정말 국가가 깊이 생각할 것입니다. 즉시 진압하여, 인심에 덮개를 씌우는 것이 좋을 겁니다. 자신이 위세가 없는데 중신이 계략을 가지고 있길 바란다면, 결국 서쪽 땅은 안심할 수 없습니다.“

 

천자는 말했다.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임개는

 

"가충이 좋습니다

 

라고 말했다. 중서령中書令 유순庾純역시 같은 발언을 하였기에, 이에 조칙을 내려, 가충에게 서쪽 장안長安의 진압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가충은 순욱荀勖과 모의하여 남을 수 있었다.

 

가충은 무제(사마염)를 이용하여, 명성과 권세를 독점하려 했다. 그러나 유순·장화張華·온옹溫顒·상수向秀·화교和嶠는 모두 임개와 친하게 지내고, 양요楊珧·왕순王恂·화이華廙 등은 가충이 친하게 지내어, 이에 당파가 되어 혼란했다. 무제(사마염)은 이 일을 알고, 가충, 임개를 불러내 식건전式乾殿에서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가충 등에게 말했다.

 

"조정은 일체가 되는 것이 좋으니 대신들은 융화해야 한다.“

 

가충, 임개는 각각 삼가 감사를 말하고 퇴석하였다. 한동안 가충, 임개 등은 무제(사마염)이 대립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무라는 것은 없었지만, 원한은 점점 깊어져 외형적으로는 서로 존중하는 것 같았지만, 내면적으로는 상당히 불만이었다. 어떤 사람은 가충에게 모략을 나타냈다.

 

"임개 문하의 중심인물은 모두 황제와 친하게 접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법전法典의 선정選定을 상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을 서서히 분산시키려면 모두 영사令史에 종사하는 것뿐입니다. 아홉개의 흐름은 모이기 어려우니, 그 틈을 타기 쉬워집니다.“

 

가충은 임개의 재능을 기리며, 관인官人의 직을 얻는 것이 좋다고 했다. 무제는 가충이 재능 있는 자를 천거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당일 임개를 이부상서吏部尚書에 임명하고 봉거도위奉車都尉를 더했다.

 

임개는 상서를 맡아 인재의 선출·천거는 공평하고, 그 직무에 마음을 다했으나 천자를 알현할 기회는 오히려 줄었다. 가충은 순욱·풍담馮紞과 함께 임개는 사치하고 천자가 이용하는 식기를 사용하고 있다며 이간책을 서서히 넓혔다. 가충은 상서우복야尚書右僕射·고양왕高陽王 사마규司馬珪를 파견해 임개를 탄핵시켜 마침내 관직에서 내보냈다. 관리들은 태관재인太官宰人을 잡고 조사한 결과 임개의 아내인 제장공주斉長公主가 위나라 때 하사받은 그릇임이 밝혀졌다. 임개는 이미 면직됐고, 비방 중상은 점점 많아져서 무제의 마음도 멀어졌다. 그러나 산도山濤가 임개의 인품과 일이 잘 통하며 지혜의 활용도 뛰어나다는 것을 밝혀 천거되어 하남 윤河南尹에 임명됐다. 그러나 도적이 나와도 잡지 못해, 또 면관되었다. 다시 광록훈光祿勳에 올랐다.

 

임개는 이전부터 인물의 재능과 일의 시비를 분별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거기에 성실히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정·민간을 불문하고 매우 평판이 좋았다. 그러나 가충 일당은 또 임개가 임진령立進令 유우劉友와 관련이 있다고 관리들에게 탄핵하기도 했다. 사하상서事下尚書, 개대부복. 상서尚書 두우杜友,정위廷尉 유량劉良은 같이 성실한 사대부로, 임개가 가충에게 억제되어 있는 것을 알고 그 진상을 상주하려다 우물쭈물하며 결단하지 못해 임개·두우·유양은 모두 면직되었다. 임개는 관직을 잃고 술에 취해 환락에 빠져 미식을 누리며 하루를 보냈다. 과거 하소何劭가 공자公子를 위해 사치를 하고 매끼 꼭 국내의 진미를 모두 먹었지만, 임개는 이를 뛰어넘어 한 끼에 만 전을 쓰고도 젓가락을 둘 곳도 없다고 말했다. 임개는 조정에 초청돼 무제가 그를 달래 타일렀지만 임개는 다시 말하지 않고 그저 울 뿐이었다. 나중에 관직을 받아 태복太僕에서 태상太常으로 전임했다.

 

그 옛날 위서는 군수를 역임했으나 관직에 임명되지 않았다. 임개는 시중에 임명되어 위서를 추천해 산기상시散騎常侍로 했다.[4] 이 때 위서는 우광록右光祿·개부開府하여 사도司徒을 겸무했고 무제는 옥좌에서 내려와 임개에게 관직을 내리게 했다. 위서는 도량이 크고 응양鷹揚하다고 평판이 있었지만 당시엔 임개 쪽이 정사를 보좌할 인물이라 말했다. 그러나 위서가 삼공에 이르러 임개는 수산경守散卿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분개하여 한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임개는 뜻을 얻지 못하고 결국 수심을 품고 죽었다. 향년 61, 시호는 원이라고 했다. 아들 임한任罕이 뒤를 이었다.

 

[4] 태평어람太平御覧631에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진제공찬"위서는 도량이 크고 여망이 있었지만, 결과를 다하지 못했다. 시중 임개는 세조世祖(무제)에게 맡아 태시 연간 중반에 위서를 산기상시로 삼도록 상주했다."

 

임한은 자를 자륜子倫이라 하며, 어릴 때부터 가풍을 따랐지만, 재능은 임개에 못 미쳤다. 덕행을 가지고 평판을 받아, 청평가사清平佳士로 불렸다. 황문시랑黄門侍郎·산기상시·연주자사兗州刺史· 대홍려大鴻臚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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