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序

 

우리가 아는 三國志는 대략 황건의 난이 일어난 184년부터 삼국의 마지막 왕조 오나라가 멸망한 280년까지 약 100여년에 걸친 역사를 말한다. 아무래도 분열시기 역사답게 사건, 사고가 많은 시대였는데 본문에서는‘정사’를 기반으로 사서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서 불가사의라고 할 만한 기록들을 뽑아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세 번째로 선정된 사건은‘읍참마속’이다.

 

 

2. 제갈량, 울며 마속을 베다

 

(1) 사건개요

 

읍참마속으로 통칭되는 가정전투는 예나 지금이나 삼국지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불린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토론이 이루어져왔고 통설은‘제갈량의 인사기용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큰 잘못은 군령을 어긴 마속이다’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문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가정전투의 책임은 마속이 가장 크다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그에 앞서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제갈량은 어째서 가정에 마속을 파견한 것일까?’란 의문이 그것이다.

 

가정전투를 포함한 제갈량 1차 북벌의 전개 과정은 여러 경로를 통해 꾸준히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 대체하겠다.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ⅰ) 제갈량 북벌을 결심하다.

ⅱ) 조운과 등지를 의병(疑兵)으로 편성하여 기곡으로 파견, 조진을 묶어둔다.

ⅲ) 제갈량이 이끄는 본군은 기산으로 진출하여 위나라의 허를 찌른다.

ⅳ) 갑작스러운 제갈량의 진격에 천수, 남안, 안정 3군이 촉에 항복한다.

ⅴ) 조예가 직접 장합을 가정으로 파견하여 촉군과 교전하게 한다.

ⅵ) 제갈량은 가정으로 마속을 파견하여 장합을 상대하게 하나 위군에 참패한다.

ⅶ) 제갈량은 전면적인 철수를 결심하고 군사를 물려 한중으로 돌아간다.

 

 

(2) 의문점

 

제갈량이 가정에 마속을 파견한 이유를 알아보기에 앞서 다음의 몇 가지 사안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가정은 후방이 아닌 최전방이라는 사실이다. 정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연의의 영향으로 가정이 촉군의 군량을 운송하는 후방기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가정의 위치부터가 제갈량이 있던 기산보다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천수에서 안정으로 가는 길목이었고 사서에서도 명백하게 마속이 이끈 군대를‘선봉’이라 말하고 있다.

 

둘째, 마속이 이끈 병력은 주력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연의에서는 제갈량은 마속에게 적은 군사를 주고 지형에 의거하여 방어선을 구축하라고 묘사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마속이 이끈 병력은 상당히 많았고 그것도 촉군의 주력을 차지하는 정예였을 가능성이 높다. 마속이 부여받은 임무부터가 위군의 맹장 장합을 상대하는 중요한 임무였고 이끈 병력도 제군(諸軍)이라고 표기될 정도였다. 게다가 가정전투의 패배가 1차 북벌의 실패로 이어진 것을 볼 때 연의에서처럼 그저 길목만 차단하는 소수 병력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셋째, 제갈량의 마속 기용은 분명한 인사의 실패라는 점이다. 일부 촉한옹호론자들은 제갈량에게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사서에는 명백하게‘중론을 어기고 마속을 뽑았다’라고 쓰여 있으며 제갈량 스스로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후주에게 표를 올려 승상의 벼슬을 박탈해달라고 말할 정도였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비호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이상의 세 가지를 기억하고 이제부터 본문에서는 제갈량이 다른 사람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마속을 가정전투의 지휘관으로 파견한 이유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3. 가설

 

(1) 후진양성설

 

여러 삼국지 관련 매체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의견으로 소개되고 있는 주장이다. 위나 오와는 달리 촉은 인재가 부족했기 때문에 제갈량은 당대 제일가는 유망주였던 마속을 미래의 주축으로 키우기 위해 가정전투를 맡겼다는 학설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의견에 반대한다. 만일 제갈량이 이러한 이유로 가정전투에 마속을 파견한 것이라면 촉군은 망해도 할 말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가정전투 자체가 단순히 후진양성을 위해 모험을 할 정도로 비중이 낮은 전투가 아니었고 만일 실전경험을 키워주기 위해서라면 경험 많은 숙장을 대장으로 하고 참모나 부장으로 종군시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또한 마속을 단순한 유망주로 보기에는 나이나 경력면에서 무리가 있다. 가정전투 당시 마속의 나이는 마흔에 가까운 39세였고 직책 또한 참군이었다. 당시 제갈량은 승상부를 열고 나라의 국정을 전담하여 운영하고 있었는데 여기의 속관인 참군 마속은‘전군사 - 장사 - 참군’으로 이어지는 실세였다. 게다가 제갈량이 남중을 정벌하기 이전부터 참군의 위치에서 여러 차례 전략전술을 논의한 만큼, 마속의 군부 내 위치가 낮은 것도 아니었다.

 

즉, 마속은 미래를 위한 유망주가 아니라 현재에서도 활약해야 하는 인재였고 충분히 한 무리의 군사를 이끌 경력과 지위가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후진양성설은 연의에 입각하여 마속의 지위와 위치를 잘못 판단한 오류라고 보인다.

 

 

(2) 불가항력설

 

마속을 보낸 이유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주장으로 주로 촉한옹호론자들이 이 논리를 많이 취하며 삼갤과 삼도에서도 통설로 여겨지고 있다. 불가항력설은 당시 사람들의 대세였던 위연과 오일(=오의)를 보내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ⅰ) 제갈량의 전략은 옹양주 겸병인데 자오곡 기습을 통해 장안직격을 노린 위연은 사령관의 의중과 배치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정전투와 같은 중요한 임무를 맡기기에 무리였다.


ⅱ) 가정전투는 장합을 쳐부수는 것이 아니라 후방에 있는 촉군이 방어선을 꾸릴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하는 입장이며, 지더라도 아주 잘 져야 하는 전투인데 그런 곳에 황실의 외척인 오일을 보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ⅲ) 당시 촉군의 진영에는 군을 이끌만한 장수가 마속 외에는 딱히 없었다.

 

이상의 세 가지가 주된 논리인데 필자는 이러한 주장에 반대한다. 먼저 ⅰ)의 경우를 보자. 만일 제갈량이 위연을 이와 같은 이유로 배척했다면 그것은 그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이다. 제갈량의 북벌은 모두가 옹양주겸병을 1차적인 목적을 두고 이루어졌다. 위연은 전북벌기간 동안 촉군의 주력으로 활약했고 230년에는 양계에서 위나라 후장군 비요와 옹주자사 곽회를 대파하는 전공을 세운다. 위연은 이 공으로 전군사 정서대장군으로 승진하고 가절을 받아 군부에서 제일가는 장수로 대우받는다. 연의에서와는 달리 위연은 승상부 내에서 얼마간 다툼이 있었을망정(대표적인 것이 양의와의 불화) 전투에서는 항상 충실하게 명령을 수행했고 또 성공했다. 가정전투에서 위연이 명령을 어기고 독단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주장은 그야말로 가능성 낮은 추측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ⅱ)의 경우를 보자. 먼저 오의는 기록은 적지만(사적이 산실되어서 개인전을 만들지 못했다는 계한보신찬의 기록이 있다) 강인한 사람으로 약한 병력으로 강한 적군을 제압했고 위기에 빠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유비가 입촉할 당시부터 유장의 장수로서 유비에게 저항한 경험 있는 장수였고 화양국지에 따르면 위연과 같이 양계에서 비요와 곽회를 격파한 능력 있는 장수였다. 즉, 사람들이 추천한 것처럼 가정전투를 수행하기에는 능력적으로 문제가 없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런 인물을 단순히 외척이라는 정치적 신분 때문에 정작 중요한 전투에서 기용하지 않았다면 제갈량은 북벌이라는 본질을 제쳐두고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한 결함 많은 지휘관이라는 결론이 된다. 게다가 선제의 유훈을 받은 제갈량 스스로가 대군을 이끌고 전장에 나와 있는 상황에서 외척인지, 친척인지가 당최 무슨 이유가 된다는 말인가?

 

마지막으로 ⅲ)의 이유를 보자. 만일 위연과 오일을 가정전투 외 조진의 본군을 상대하거나 아니면 양주에 자리 잡은 서막의 군세를 격파하는 데 활용할 생각으로 다른 장수를 파견한 것이라면 제갈량의 선택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과연 보낼 사람이 마속 밖에 없었을까? 마속의 촉군 내에서의 위치를 보면 충분히 선봉부대를 이끌 자격은 있었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비판한 것처럼 실전경험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장수들, 예를 들자면 마충 같은 인물을 파견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제갈량이 승상이 된 후 마충은 문하독, 장가태수의 자리를 역임했고 나중에 촉이 남중을 평정할 당시에는 군대에 종군하여 제갈량을 보좌했다. 그 후에는 마속과 같은 참군으로 북벌에 가담하여 군대 안의 사무를 관리했는데 훗날 장익을 대신하여 내강도독의 자리에 올라 남쪽의 반란을 진압한 모습을 보면 충분히 군사적인 재능이 있는 장수였다. 물론 제갈량이 보기에 위연이나 오일 같은 숙장들을 제외한 참군급 인물 중에서는 마속이 제일 나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마충이 대신 갔다고 하여 실수가 없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가항력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분명 선택의 여지는 있었기 때문이다.

 

 

(3) 단순실책설

 

이런저런 이유로 마속 기용을 옹호할 것 없이 그냥 이 부분에서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제갈량의 실책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필자가 취하고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제갈량이 삼국시대 가장 뛰어난 재상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어찌 실수가 없었겠는가? 제갈량을 완벽한 사람이라고만 보는 것은 무조건적인 옹호에 불과하다. 게다가 유비는 마속의 사람됨을 경계하여‘크게 기용할 수 없다’라고 경고했으나 제갈량이 이를 무시한 기록이 분명하게 있는 만큼 마속에 관해서는 그의 사람됨을 잘못 판단한 것이 맞다고 보인다.

 

게다가 설사 마속을 보내려면 그를 충분하게 보좌할 수 있는 경험 많은 장수를 딸리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한 안전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제갈량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물론 마속에게는 왕평이 있었고 훗날 그의 행보를 생각해볼 때 왕평을 부장으로 딸린 것은 능력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으나‘삼국지집해’선주전에서 전진굉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가정전투에서 위연, 오의를 쓰지 않고 마속을 써, 자연히 살림이 아주 결딴났다. 이릉전투에서 오는 비교적 신진인 육손을 썼으나 그의 아랫사람인 주연, 반장, 한당, 서성 등은 대략 숙장宿將이었다.”

 

즉, 경험 없는 마속이 실수할 것을 대비하여 그를 제지할 수 있는 무게감 있는 장수를 부장으로 딸려야 하는데 왕평은 항장 출신에 지위가 낮은 비장군이었으니 마속의 독단을 제어할 힘이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가정전투 패배로 이어졌다는 비판이다. 전진굉의 의견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전투 이후 제갈량의 행보가 단순실책설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가 된다. 제갈량은 총 5번 이상에 걸친 북벌에서 많은 패배를 당했지만 1차 북벌에서처럼 스스로 관직을 내려놓을 정도로 후주와 신하들 앞에 죄를 빈 적이 없었다. 이것은 돌려 말해 제갈량 스스로가 마속 기용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자신의 실책임을 인정했다는 의미가 된다.

 

참고로 우스갯소리이지만 Koei 삼국지에서도 제갈량의 마속 기용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바라봤는지 제갈량의 인물기용에 있어서 성향을‘능력중시’가 아닌‘의리중시’로 설정한 경우가 많다. 아래의 스샷을 참고해보자.

 


1.jpg

(조조는 물론이고 유비, 손권과 같은 유명한 군웅들의 기용 성향은 능력중시로 설정되어 있는데

네임드들 중에서는 특이하게 제갈량은 의리중시로 되어 있다) 

 

 

4. 결론

 

제갈량과 마속의 형 마량은 서로가 의형제 관계였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마속 기용에 있어서 제갈량의 편견이 어느 정도 작용했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여러 배경상황들과 제갈량 본인의 행보를 미루어볼 때 마속 기용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제갈량의 개인적인 실책이 맞는 것 같다. 물론, 사고의 전환을 바꿔 위에서 살펴본 후진양성설이나 불가항력설의 논리들을 일정 부분 채용하는 것은 괜찮다고 보나 그게 주(主)가 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 사서에서조차 명백하게‘중론을 어긴’제갈량의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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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종료일: 2013-09-03 00:00
참가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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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마속을 가정으로 보낸 이유는? (3)
1 후진양성설
  bar 1 (33%)
2 불가항력설
  0 (0%)
3 단순실책설
  bar 2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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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begagi/50171660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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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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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평화

2013.08.04
04:46:57
(*.129.54.218)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생각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주제인 것 같습니다. 일단 위연 문제는 촉 내부의 정치적인 상황과 위연과의 관계가 연관이 있을 듯 합니다.

특히 저는 이 주장의 이론적인 배경으로 삼국지 강의의 이중톈씨가 주장하는 촉 내부에 세가지 세력이 존재했고 유비의 세력은 지위는 가장 높았으나

촉에게는 이민자, 그러니 타 지방 사람이라는 것이였습니다. 이중톈씨는 이걸 배경으로 거듭되는 북벌을 설명했고 (정치적인 갈등을 외부로 표출)

저는 같은 맥락을 위연과 오의에게 적용시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정치적인 갈등에 의한 미기용)

저는 마속을 기용한 것을 후진양성설로 보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가정실책은 사실 저는 마속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갈량의 실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사도 실책이였지만

정말로 가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면 (1 장안 직격일 경우) 당연히 제갈량이 가야했다. 주공이니깐 (2 옹양주 겸병) 저는 제갈량이 가는게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옹양주 겸병이 전략적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제갈량이 가정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가정만 틀어 막으면 옹양주 겸병의 전략적 목표의 80%이상이 끝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정은 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는 점

위수때문에 도하는 어려웠고 더우기 먼저 도하하는 쪽은 배수진이라는 점

중요성을 알면서도 마속을 가정에 보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황을 오판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물론 기곡에 남아 있는 세력이 문제였기 때문에 위협이 될 수 있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가정에서 더 들어가 볼 수는 있었다 생각합니다.

군세를 보여주면 후미를 노출하는 점 장안에서도 더욱 다급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곡의 위 세력은 어떻게 보면 위의 본대가

아니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위위구조 생각해서 장안에서 증원을 보냈으면 모를 일이지만....)

제갈량의 인사기능을 활용하는 능력은 간단하게 저는 C정도 점수를 주겠습니다. 1. 기용인사들의 실패 2. 지속적으로 활용가능한 인사풀 만들기 실패 3. 파벌에 따른 기용

이런 점에서 제갈량은 확실히 유비가 필요했습니다. 유비와 조조가 군주가 될 수 있었던 핵심요소는 파벌을 아울러 기용하고 능력에 따라 대우를 달리하고

능력 있는 자를 높이썼다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모택동이 흑묘백묘론을 주장했다지요.

저는 아마도 성공한 중국의 지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아닌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망탁조의

2013.08.04
07:20:41
(*.250.43.215)
촉나라 관료들의 고향을 분석해보면, 촉한은 분명히 익주에 기반을 둔 땅이고 219년, 형주를 상실했음에도 중진들의 상당수가 형주 출신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게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없죠. 제갈량이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근거 중에 하납니다.
송나라였나? 기억나지 않는데 어떤 학자는 "익주 사람은 용렬해 쓸 수가 없다"고 제갈량을 옹호했지만 이건 그야말로 지역차별적인 발언이라 납득할 수 없고.

다만 촉한 정치 말년에 이르러 익주 출신 인사들의 수가 증가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촉한의 역사가 조금 더 길었다면 형주 출신과 익주 출신이 균형있게 관직에 임명됐을 것이니 이걸로 촉한 정치를 형주파 파벌들이 장악했다고 보긴 어렵네요.

망탁조의

2013.08.04
07:14:23
(*.250.43.215)
어찌됐든 마속 기용은 제갈량을 좋아하는 나로써도 도무지 변호해 줄 수 없는 엄청난 실책임은 분명함.

흔히 변호론자들은 위연은 성질머리가 개떡이고 오의는 외척이라 쓸 수 없다고 했는데,

위연이 성질머리가 매우 공격적인 것은 사실이나, 한중태수 역임, 지장 곽회 격파 등. 전투에 임하여 그 공격적인 성향으로 판단 실책을 하여 일을 그르친 적은 없음.
그러니까 위연이 개인의 감정과 군사 일을 혼동하지 않는, 의외로 프로패셔널한 군인이었다는 뜻.

오의의 경우, 막말로 유봉까지 쳐죽였던 제갈량인데 황제의 외척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을까 의문인데,
설령 외척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일단 써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가뜩이나 인재도 없는 나라에서. 외척이라 안되고, 뭐라 안되고. 그럼 남는 인물이 누가 있을까, 싶고.

조조와 비교해도 재밌는게, 조조가 곽가를 중용했지만 곽가에게 군사를 이끌고 전투를 지휘하라고 한 적은 없음.
곽가의 전략관이나 지략은 우수했으나 아마도 용병술은 장기가 아니었던 모양인데, 제갈량은 마속을 한큐에 군사상 요지의 방어를 맡겨버림.

물론 제갈량도 이런 사실을 우려했는지, 마속에게 길을 지키라고 당부하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를 말미암아 1차 북벌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듯.

토론매니아

2018.04.10
14:40:00
(*.241.2.13)
'촉한 멸망의 원흉 강유'에서 논쟁 펼쳤던 사람입니다. 하하하... 여기서도 님의 결과론적인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는군요. 조목조목 반박하겠습니다. 설마 또 반말하시거나 욕하시거나 지우려고 하시지는 않겠죠? 반박할 것이 있으면 정당한 반박 부탁드립니다.

1. 마속이 이끄는 병력이 주력군
: 말이 됩니까... 주력군이 총사령관과 같이 움직여야죠.

2. 중론을 어긴 제갈량
: 더글라스 맥아더가 말했습니다. '전쟁은 민주주의가 통하지 않는다.' 장수들의 회의에서 중론만 따른다면 이 세상에 패배할 장수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위연을 가정으로 보낸다고요? 물론 위연이 연의에서처럼 제갈량과 심각한 반목을 하지는 않았다는 거 압니다. 그러나 위연이 자오곡 계책 같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모험적이고 전공 추구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분명 역사적 사실입니다. 반면 마속은 제갈량이 황제인 유비의 평에도 불구하고 줄곧 곁에 두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제갈량의 말도 가정 전투 전까지는 고분고분 잘 따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갈량 입장에서는 마속이 위연보다 가정 전투의 적임자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위연을 가정으로 보냈다면 그는 마속처럼 장합을 막는 정도가 아니라 완파하려고 무리수를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의는 기록이 적으나 뛰어난 무장이라는 것은 압니다. 위연이나 오의같은 뛰어나고 경험 많은 숙장들은 농서 지역(옹, 양주)를 제압하러 보내야지 단순히 요충지를 막는 단순한 작전에 투입하는 것은 전혀 좋은 군략이 아닙니다.

3. 저는 이 후진양성설이 제갈량이 마속을 가정으로 보낸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2와 연관지어 설명하자면 가정 전투는 중요성은 높고 난이도는 낮은 작전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야 하나 숙장을 투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속은 님 말마따나 나이가 40가까이 되가는 상황, 당시의 평균 수명이 오늘날보다 짧았음을 감안했을 때 충분히 작전참모를 넘어 한 지역의 사령관을 맡아 볼 나이입니다. 더군다나 촉한은 불과 수 년전 이릉대전으로 상당한 인재진을 날려먹은 상황이었으므로 이런 상황에 마속을 썩혀두는 것은 전혀 한 나라의 승상으로서, 군부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올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더하여 유비가 죽으면서 마속을 크게 쓰지 말라고는 했으나 아예 내쳐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서술한 대로 가정 전투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결코 패할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가정은 지형도 험해서 마속이 대패한 이후에 왕평이 이곳 저곳에서 북을 치며 교란시키자 장합 같은 숙장이 복병을 두려워할 정도로 험준했고 마속이 가정으로 가서 왕평이 수 차례 산을 올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는 기록으로 봐서 가정에 도착해서 계속 군략 회의가 벌어졌고 마속도 완전 바보는 아니라 산에 급도를 설치한 것으로 봐서 마속이 이끄는 촉군은 충분히 위군을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또한 항장 출신이므로 직급은 낮지만 사려는 깊은 왕평도 군사 지휘경험이 없는 마속을 위해 부장으로 붙여줬고 왕평이 마속의 명령에 반하여 독자적으로 지휘할 수 있었던 군대가 일천 여명이므로 마속이 이끄는 부대는 님 말처럼 주력까진 아닙니다만 그 군세 역시 상당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갈량은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자신을 받들던 인재 마속을 적절한 난이도의 임무를 맡김으로써 군공과 경험을 세우게 하려는 것이었고 당시 상황만 보자면 전혀 잘못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4. 불가항력이라기보다는 위연이나 오의, 조자룡 같은 숙장들은 농서 지방 제압, 조진 묶어두기 같은 어려운 임무에 투입하고 남은 인재진 중에서 마속이 가장 직급도, 나이도 적절했고 별 다른 잘못은커녕 지금까지 자신을 잘 보좌해왔으니 전혀 제갈량을 비난할 여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진짜 웃긴 게 두 가지가 하나는 왕평 말고 무게감 있는 부장을 달아줬어야 했다는 것인데 그러면 군의 지휘체계가 섭니까? 법조계에 비리 사건이 터질 때 특별검사는 그보다 사시 기수가 높은 선배를 임명합니다. 왜냐? 권위를 가지고 수사를 해 나가기 위함입니다. 하물며 전시에 군대에서 사령관보다 위상이 높은 부장을 붙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마충 같이 마속 말고 다른 자를 보냈어야 했다.' 그게 바로 결과론적인 발상이라는 겁니다. 마속이 그렇게 멍청이고 그로 인해 패한 것은 당시에는 전혀 제갈량이 생각할 수 없는 범위의 일이었습니다. '마속을 보내고 왕평을 부장으로 삼아서 가정에서 패했으므로 그는 무조건 잘못이다.'라는 것이 제가 님에게 강유 논쟁에서도 누차 말씀드렸듯이 결과론적인 발상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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