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序

 

감녕의 대범함을 보여주는 일화로‘관우뢰’사건이 있다. 정사「감녕전」의 기록을 참고해보자.

 

(감녕은) 후에 노숙을 수행하여 익양을 진무시키고 관우에게 대항했다. 관우는 3만 명의 병사 중 직접 정예병사 5천 명을 선발하여 상류 10여 리의 얕은 여울에 배치하고 밤을 틈타 냇물을 건너려 한다고 말했다. 노숙이 장수들과 상의할 때 감녕은 당시 3백 명의 병사만 있었으므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시 저에게 5백 명을 증원시켜 줄 수 있다면 제가 가서 그에게 대항하겠습니다. 관우는 제가 기침하며 가래침을 뱉는 것을 듣고 감히 물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물을 건너면 저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노숙은 곧바로 병사 1천 명을 선발하여 감녕에게 더해 주었다. 감녕은 그날 밤에 갔다.

 

관우는 이 소식을 듣고 건너지 못한 채 머물러 있으면서 땔나무를 엮어 진영을 만들었는데, 오늘날 이것을 관우뢰(關羽瀨)라고 부른다. 손권은 감녕의 공로를 칭찬하고 서릉태수로 제수했으며, 양신(陽新)ㆍ하치(下雉) 두 현을 통솔하도록 했다.

 

이상의 기록을 두고 관우비판론자들은 만인지적 관우가 감녕의 기세에 눌려서 냇물을 건너지 못했다며 관우를 비판하는 반면, 관우옹호론자들은 상대가 물가 건너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냇물을 건너는 것은 군사상으로 위험한 일이므로 관우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반론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바로‘어째서 감녕은 냇물 건너에서 미리 관우를 기다릴 수 있었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2. 관우는 기밀유지에 실패했다

 

(1) 문제점

 

관우뢰 사건을 다룬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묘하다. 기록을 살펴보면‘관우는 냇물을 건너려 한다고 말했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곧바로 오나라 수뇌부의 회의장면이 나온다. 자,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가? 원래 전투에서 적군의 움직임은 예측하여 방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관우뢰 사건은 다르다. 감녕과 노숙은 관우의 움직임을 예측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그렇게 나올 것을 알고 막은 것이다. 필자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즉, 관우가 말했다는 부분을 근거로 관우군의 작전계획이 사전에 오군에게 알려져 감녕이 선수를 친 것이라 본 것이다. 본문은 이 부분을 전제로 깔고 있다는 점을 명시한다.

 

 

(2) 노숙과 감녕은 관우의 움직임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① 관우가 오군에게 정보를 흘렸다

 

이에 대한 첫 번째 의견으로 손권과 전면전을 원하지 않았던 관우가 대치상황을 만들기 위해 미리 오군이 방비할 수 있도록 정보를 흘렸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너무나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당시 유비는 몸소 5만 대군을 이끌고 공안까지 달려온 상황이었고 그 중 3만을 관우에게 파견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노숙과 관우간의 단도부회를 보자면, 유비와 관우는 형주를 온전한 자기들의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만일 조조가 한중으로 침공해오지 않았다면 전쟁도 불사할 기세였는데 유독 관우뢰 사건에서는 일부러 대치국면을 조장하기 위해 오군에게 정보를 흘린다?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것 같다. 게다가 애초부터 협상을 하고자 했으면 단도부회 혹은 관우뢰 사건 이전에 얼마든지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오군에게 거짓정보를 흘려 물가로 끌어내고 역습하기 위함이었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 역시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만일 관우가 그리 마음을 먹었다면 관우가 감녕을 유인해서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사서의 기록을 보면 관우는 냇물을 건너려다가 감녕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고 물러난 형국이다. 일부러 거짓정보를 흘렸다는 정황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관우가 오군에게 일부러 정보를 흘렸다는 주장은 기록과 정황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필자는 이 의견을 배척한다.

 

 

② 작전계획이 오군에게 누설됐다

 

관우가 정보를 일부러 흘린 것이 아니라면 답은 하나다. 바로 작전계획이 새어나가 노숙을 비롯한 오군 수뇌부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이게 상식적으로나, 논리상으로나 가장 알맞은 결론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오군은 관우의 작전계획을 사전에 입수할 수 있었을까?

 

 

⒜ 관우졸장설

 

관우는 평소에도 작전계획을 말단 졸개들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떠벌이고 다녔다는 것이 관우졸장설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관우의 사람됨을 폄하한 측면이 있다. 일생을 전장에서 보낸 관우가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몰랐을까? 따라서 필자는 관우졸장설을 배척한다.

 

 

⒝ 병력운용실책설

 

관우가 보안에 대한 자각이 없어서 기밀을 관리하는 데 다소 소홀했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예전부터 관우는 뛰어난 맹장이었을지는 몰라도 지휘관으로서는 다소 부족한 면모를 보여줬다고 주장했는데 이 부분도 역시 그러한 맥락이다. 원래 군사작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바로 기밀유지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듯이 작전계획이 누설되면 용맹이고 지략이고 아무 것도 소용이 없는데 관우는 평소 자신의 용맹을 과신한 나머지 이런 세세한 부분을 관리하는 데 있어 다소 소홀했다는 것이 필자의 추론이다. 그 근거로 요립의 평을 들 수 있다. 요립은 관우를 평가함에 있어서‘용맹함과 명성에 기대어 병사를 인솔하는 정확한 법칙이 없었으며 자신의 기분에 따라 돌발적으로 공격했다’라는 말을 했는데, 관우뢰 사건이 딱 이와 맞아 떨어진다.

 

본래 병력을 움직일 때는 미리 수뇌부끼리 작전계획을 수립하여 이동경로와 공격지점 등을 결정한 다음에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통인데 관우는 그러한 과정 없이 자신의 용맹함을 믿고 기분 내키는 대로 출진한 것이 아닐까? 예를 들자면

 

“갑작스럽겠지만 오늘 우리는 냇물을 건너 오군을 압박한다. 아침 일찍 출발할 수 있도록 모두들 미리 준비해라”

 

라는 명령을 내렸다가 그 같은 사실이 주위에 있던 오나라 세작들에게 간파되어 작전계획이 누설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꼭 이와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미리 노숙이 사방으로 세작을 풀어서 관우군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가 관우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곧바로 대응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서론 부분에서 살펴봤듯이, 오군 수뇌부는 사전회의를 통해 관우의 이동경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병력까지 맞춰서 길목을 막은 것으로 보아 필자는 이 부분이 예측이 아니라 작전계획 누설로 보고 있다. 이럴 경우 기밀유지에 실패한 관우는 어떻게든 지휘관으로서 감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3. 결론

 

19세기 통신기기를 활용한 정보전이 개시되기 전까지 적군의 정보를 얻는 방법은 간첩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두드러진 예가 바로 임진왜란 당시 벌어진 1,2차 평양성 전투이다. 평양성에 주둔하고 있던 소서행장은 조승훈이 이끈 5천 기병을 매복작전으로 가볍게 소탕하는데 이 전투 이후 도체찰사가 된 유성룡은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마치 명군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너무나 매끄러운 일본군의 대응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유성룡은 명군과의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조선군 全 군영에 대해 대대적인 감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도체찰사부의 비밀공문을 다루고 있던 김순량을 필두로 일본군과 연결되어 있던 간첩 40여 명이 소서행장에게 온갖 정보를 팔아넘기고 있던 것이었다. 유성룡은 즉각 김순량과 일본군 간첩 40여 명을 모조리 체포하여 참수했고 그 결과 소서행장은 이여송이 이끄는 4만 명군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해 결국 전투에서 패배하고 한양으로 쫓겨나게 된다.

 

필자는 관우뢰 사건이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관우는 병력을 통솔함에 있어 효율적인 관리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그 결과 군영 곳곳에 잠복해 있는 세작의 존재를 알지 못해 작전계획이 사전에 오군에게 넘어간 것으로 본다. 이는 형주를 급습한 여몽의 지휘와 너무나 대조된다. 여몽은 사전에 육손과 더불어 철저하게 작전을 수립하고, 군사들을 모두 장사치로 꾸민 다음 신속하게 이동하여 관우가 배치한 초병(=경계를 서는 군사들)을 사로잡는 은밀함을 보였다. 기동작전에 있어서 정보와 은밀함이 생명이라는 것을 명장 여몽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관우는 그렇지 않았다. 군사를 움직이기도 전에 대응하는 상대방인 노숙과 감녕이 모든 것을 알고 준비할 정도로 정보전에 미숙했고 그 결과 냇물을 사이에 두고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물러났다.

 

사전에 계획한 기동작전이 실패했다는 점에서 냇물을 건넜는가, 건너지 못했는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관우는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만일 유비가 관우에게 3만 병력을 내어준 이유가‘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도록 형남에 주둔하고 있는 노숙의 1만 병력을 소탕하라’는 지침이라도 내린 경우였다면 관우의 실패는 더더욱 문제가 된다. 신중하지 못한 기동작전으로 유비가 세운 전략 자체를 망가뜨린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관우뢰 사건은 관우가 옹호 받을 여지가 하나도 없다.‘미리 자리를 잡고 있는 적군을 보고 물가는 건너는 것은 위험하다’라는 병법적 상식을 지킨 관우가 훌륭하다고? 아니다. 그냥 관우는 0점 맞을 거 군사라도 보존시켰기 때문에 10점으로 올라간 것뿐이다. 만일 애초에 기동작전이 실패한 상황에서 관우가 자신의 전투력을 믿고 감녕과 교전하여 거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면 20점, 만일 패배했다면 0점이고 그냥 물러난 것은 이도저도 아닌 10점이다. 애초에 관우가 세운 작전은 냇물을 건너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었는데 계획 자체가 실패한 이상 무슨 변명을 대도 좋은 점수가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당시 관우를 바라보던 심정이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만일 필자의 추론이 맞는다면 유비는 형주도독을 결정함에 있어 조금 더 신중했어야 된다고 본다. 안량 참살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관우는 돌격을 전문으로 하는 선봉대장으로 썼을 때 가장 큰 능력을 발휘했지 사령관과 같은 자리를 맡겼을 때에는 대부분 실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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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begagi/50176827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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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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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백랑

2013.08.04
23:36:14
(*.233.63.81)
참고로 반대론자들이, 관우는 애초에 싸울 의지가 없었다 라고만 주장했지, 별다른 자료제시가 없어서 제가 삼도 가서 읽어보니깐
(이 부분 상당히 불쾌합니다. 다음부터는 본인들이 직접 가져오세요.)

http://cafe.naver.com/sam10/404483 이쪽 게시물에서 포증님이 댓글로 표명한 견해가 있군요. 이에 따르면 관우는 사령관인 유비의 의중과 반대되는 행동을 한 셈이네요. 어떤 분 의견을 빌자면 항명죄에도 해당할 수 있는 일. 아니면 형주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관우 독단적인 판단이 가능했다고 가정한다면, 관우 스스로 손권과 맞서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꼬리를 내린 셈이지요. 전 좀 이런 의견은 빠심이 들어간 옹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만일 관우가 이런 생각이었다면 일부러 소문을 퍼뜨렸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뭐, 근데 별로 근거가 없어요. 제가 한 것은 기록을 바탕으로 한 분석이고, 저것은 기록범위를 넘어서는 추정이니까요.

미백랑

2013.08.04
23:38:01
(*.233.63.81)
기록을 통해 객관화할 수 있는 것은 '노숙은 관우의 기동사실을 미리 알고 먼저 대비했다' 이거입니다. 이것을 두고 어떻게 논리를 전개할 것인지는 본인들의 몫.

선비욜롱

2013.08.05
02:08:42
(*.124.224.111)
근데 요립의 관우에 대한 비방은 아무리봐도 양번습격을 보꼰 느낌이 들긴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관우가 총사령관을 맡은 것은 도저히 깔 수 없는게 당시 합비만한 성을 잠시나마 통치해본 경험을 가진 장수가 관우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죠. 제갈량은 당시에도 경험이 부족하고 젊었고, 장비는 보나마나 뻔하고, 조운은 끝까지 부장역할에 어울리는 인물이였고, 황충은 뭐.... 관우에다가 미방과 사인을 붙인 것은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대체품이 없는한 관우를 기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안이죠.

좀 소설쓰는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유비군에서 오나라에 투항해서 정보를 지속적으로 보낸 사람이 있다라는 전개도 있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3군이 털릴 때 우거지로 투항한 전적이 있고, 오력에 의하면 미방도 직접 투항하기 전까지 편지를 보냈었으니 말입니다.

ㅁㅁ

2013.08.05
04:00:20
(*.234.37.41)
글 잘 보았습니다.

‘용맹함과 명성에 기대어 병사를 인솔하는 정확한 법칙이 없었으며 자신의 기분에 따라 돌발적으로 공격했다’ 저는 요립의 이 평이 허튼 말이 아닐 것 같은게, 실제 관우 성품을 봐도 기분에 좌지우지 되는 면들이 보이는데다가 안량 참살건도 사실 요립이 평한 이런 개인 성격에 비롯되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거든요.
자신의 용맹함을 믿고 보아하니 이쯤되면 내가 치고 들어가서 안량을 참수해 가지고 올 수 있겠다. 싶으니 기분에 따라 돌발적으로 뛰어 들어간거겠죠. 때때로 이런 공격은 아주 효과적일 수 있으니까요.

장기튀김

2013.08.05
18:12:41
(*.101.45.58)
하치下雉 → 하이
雉의 음은 '이'(羊氏反)입니다.

의견은커녕, 음주(音注) 덧글이라 송구합니다. 요즘 이거에 맛들려서... ㅎㅎ;;

미백랑

2013.08.06
15:30:49
(*.233.63.81)
윽,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구라뱅뱅

2013.08.06
15:37:20
(*.49.168.253)
양신(陽新)ㆍ하치(下雉) 두 현을 통솔하도록 했다.

==> 여기서 하치가 아니라 하이라는 말인듯요.

미백랑

2013.08.06
15:48:16
(*.233.63.81)
아하.. 번역 부분을 짚는 의견이었군요. 설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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