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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序

 

208년 적벽에서 패배하고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업으로 돌아와 漢과 자신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른바 '술지령' 또는 '명본지령'이라는 것인데 자세한 내용은 포증님의 글을 참고하자.

 

위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는 그동안 漢 황실에 충성했다.

 

둘째, 나는 나라의 은덕을 입어 재상의 지위에 올랐으니 더 이상의 야심은 없다.

 

셋째, 만일 내가 혼란을 평정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야심가들이 황제를 칭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넷째, 만일 내가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국가는 다시 혼란해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주 문왕을 본받아 漢을 섬기겠다.

 

다섯째, 스스로 식읍을 반납하고 줄일 것인즉, 이로써 나에 대한 의심이 풀리기를 바란다.

 


당시 사람들은 조조가 비록 승상으로서 신하의 지위에 있지만 언젠가는 漢을 폐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조조가 직접 포고령으로 자신에게 야심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다. 특히 주 문왕을 본받겠다는 말에서 자식인 조비 대에 새로운 왕조를 열겠다는 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주장은 오늘날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품어보았다. 대략 25사라고 일컬어지는 중국 역사에서 조조 말고도 기존의 황제를 폐하고 새로운 왕조의 창업자가 된 '찬탈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왜 그런 수많은 찬탈자 중에서 조조가 대표적으로 거론되며 비판을 듣고 있는 것일까?

 

 

2. 선양

 

(1) 의의

 

선양이란 황제의 자리를 세습의 방식이 아닌, 능력있는 자에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물려주는 것으로 요-순-우 임금간에 이루어진 양위에서 나온 고사이다. 중국사에서 최초의 선양은 바로 요 - 순 - 우로 보는 것이 대세이다. 그렇다면 요순우 시대 이후 다음의 선양은 누구로 보고 있을까? 바로 '헌제 - 조비'간 선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든다. 선양은 평화적인 양위를 말하는 것인데 헌제와 조비간의 양위가 과연 선양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평화적이었을까? 아니다. 조비는 헌제를 핍박하여 강제로 황위를 양도하게 했고 그것은 선양이 아닌 찬탈이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사람들은 헌제와 조비간의 제위양도를 선양이라 말했을까?

 

사실, 선양의 형태로 이루어진 제위양도는 헌제 이전에도 있었다. 왕망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왕망의 예를 찬탈이라 하지 선양으로 보지 않는다. 별반 조비의 경우와 다를 것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조비의 경우를 선양이란 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본문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의미 변화

 

중국사에서 헌제 이전까지는 천자는 하늘의 자식으로서 백성들을 보살피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거룩한 존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천자는 그런 종교적 의미보다는 '대륙의 지배자', '힘있는 자가 차지하는 지위'라는 인식으로 변화되는데 그 계기가 바로 헌제와 조비간의 선양이다.

 

조비가 위를 건국하기 전까지는 대륙의 주인은 유씨의 漢이었다. 전한과 후한을 거쳐 400년 이상 대륙에 존재하면서 일반 백성들의 가슴 속에 '천자는 유씨'라는 당연한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왕망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일 왕망의 신 왕조가 긴 수명으로 오래 존속했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광무제의 활약으로 다시 천자의 자리가 유씨로 되돌아왔고, 그 후 후한은 200년 이상 존속하면서 천자에 대한 확고한 사상을 구축해놨던 것이다.

 

하지만 조비는 그러한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성이 다른 신하가 황제를 몰아냄으로써 천자는 유씨의 전유물이 아닌 힘있는 자의 권좌라는 인식을 대륙에 불어넣었고 난세라는 특수성과 맞물려서 촉의 유비, 오의 손권 역시 각각 황제에 오름으로써 기존의 전통을 완전히 흔들어놓은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헌제와 조비간의 선양은 요순우의 경우와 반대된, 천자의 의미를 새롭게 재정립한 혁명적인 사건이었고 이를 두 번째 선양이라 부른 것이다. 그 후의 중국역사에서는 왕조가 멸망하고 황제가 바뀌는 사건을 선양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냥 대륙의 지배자가 바뀌는 것이었고 왕조가 교체되는 것 뿐이었다.

 

 

3. 조조의 속내

 

그렇다면 조조의 속내는 어떠했을까? 나는 조조가 '술지령'을 반포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조조는 진심으로 漢을 위해 충성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제위는 유씨인 자가 있는 것이 당연한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호가 '대한민국'인 것처럼 말이다. 국호가 대한민국인 것에 이유가 있는가? 없다. 그처럼 대륙의 주인이 漢이고 천자가 유씨인 것은 400년 이상 확고하게 자리잡은 대륙의 사상이었다.

 

그러나 조조의 권세가 조금씩 커지고,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그러한 사상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조조가 '위공'으로 즉위하면서 그것은 현실이 됐다. 당시 漢의 율법상 유씨가 아닌 자들은 공과 왕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합병이나 쿠데타와 같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 때문에 연의에서는 순욱과 순유가 조조의 야심에 놀라 충격을 먹고 사망하는 에피소드가 그려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조조나 조비의 경우는 훗날의 역사와 비교하여 비교적 평화롭고 정당한 정권의 교체였다.비록 약간의 강압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한에서 위로의 왕조교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였고 새롭게 제위에 오른 조비는 헌제의 목숨을 보장해줌으로써 왕권교체를 마무리짓는다. 살육과 저항으로 이루어지는 다른 왕조의 교체과정을 생각해보면 조조와 조비는 찬탈자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평화로웠다.

 

 

 

4. 결론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조비의 즉위는 평화로웠으나 기존에 자리잡고 있던 사상을 파괴하고 '천자'에 대한 의미를 재정립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준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조비의 경우를 선양의 두 번째 사례로 꼽는 것이며, 조씨를 찬탈자의 대명사로 언급하는 것이다. 본문은 내가 대학 시절 동양학 교수님에게 들었던 설명을 바탕으로 약간의 살을 보태 전개해본 논리라는 점을 밝히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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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begagi/5016827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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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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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평화

2013.08.08
12:09:19
(*.129.54.218)
블로그에서 읽고 오늘 두번째 읽는데 확실히 깊이가 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사마휘

2013.08.08
15:20:19
(*.234.26.150)
찬탈자로 불리는 것 중 하나는 조조도 위왕을 스스로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건안 21년에 조조도 스스로 위왕에 오르거든요.

맘평화

2013.08.08
17:18:22
(*.129.54.218)
저는 황제만 생각하다 이 부분은 살짝 관과한 경우네요.......좋은 지적이네요.

관성대제

2013.08.08
16:17:25
(*.50.21.24)
찬탈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조조가 참칭하고 황제가 된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듯요.

SameOldStory

2013.08.08
16:43:17
(*.232.40.239)
까여도 조비가 까여야지 조조가 까이는 것은 주객전도가 아닌가 싶기도 함. 어쨌거나 위공 즉위 이후 위왕에 오른 시점에서도 조조는 헌제를 떠받들고 있었음. 속내야 우리가 조조 해골을 쪼개서 DNA 분석과 관심법으로 볼 수도 없는 일이니. 확실한 팩트는 조조는 황제가 아니었다는 점. 그런고로 직접적인 찬탈자가 아니라는 것.

물론 연좌제 있던 시절이니 조비가 황제 된 것에 대한 도의적, 실질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21세기에 21세기를 기준으로 평하는 이들이 조조를 찬탈자라 하는 것은 조금 어불성설이 아닌가, 마 그렇심다.

맘평화

2013.08.08
17:21:48
(*.129.54.218)
이런 이유가 조조가 다시 재조명 받는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근세만 와도 찬탈자로 욕먹진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21세선 대학살 때문에 더 많이 욕먹을 것 같군요. (물론 시대가 다르지만)

SameOldStory

2013.08.09
00:39:21
(*.37.146.139)
조조의 서주 학살과 원소군 갱살은 까일 여지가 충분한데, 굳이 조조를 위한 변명거리를 주자면 군대가 움직인 이상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정도. 사실 이건 그다지 쉴드거리를 찾을 수 없는 뻘짓인지라...

여문사과

2016.11.28
03:32:16
(*.197.131.248)
위공 받고 위왕 오른 것만으로도 찬탈자 소리를 듣기에는 충분함. 순욱이 괜히 반대한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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