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序

 

힘과 명분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여러 가지 논의가 있겠지만 필자는 양자의 관계를 수단과 목적으로 판단한다. 즉 명분을 바로 세우기 위해 힘이라는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이며, 힘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이 바로 명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양자의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가 않다. 가지고 있는 힘이 지나치면 사리사욕이나 욕망에 의해 명분을 무시하고 권세를 휘두르게 되며 결국 찬탈이나 폭정으로 치닫게 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명분론’을 두고 현실 감각을 무시한 고리타분한 논쟁이라 비판하고 있는데 명분은 절대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옛날 항우와 유방과의 싸움에서 천하무적의 군대를 갖고 있던 항우가 패했던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유방이 살려준 의제를 죽여 천하의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항우의 이런 행동에 유방은 사방의 제후들을 포섭할 수 있었고 마침내 해하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낚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명분이 항상 힘에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명분이라는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힘을 가진 자가 나름대로의 정의를 세운다면 舊 명분은 새로운 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삼국지에서 이와 같은 사례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조조의 위공 즉위와 제갈량의 절맹호의다. 위공 사건이야 너무나도 유명한 만큼, 여기서는 절맹호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손권의 칭제와 절맹호의

 

(1) 사건개요

 

서기 229년, 마침내 삼국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손권이 제위에 올랐다. 조위와 촉한과는 달리 왕국으로 남아있던 손권이 마침내 황제가 되어 제국으로 올라간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촉한의 관료들은 모두가 손권과의 동맹을 끊을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제갈량은 신료들의 의견에 반대하며 손권과의 동맹을 유지할 것을 진언한다. 그러면서 손권과의 동맹이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면서 신하들을 설득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절맹호의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보자.

 

참고자료 : http://cafe.naver.com/sam10/150231 (전체공개이므로 회원이 아니더라도 읽을 수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제갈량의 이 선택을 두고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보지만 손권과의 동맹을 유지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사안이 아니었다. 이를 두고 혹자는‘제갈량의 이 같은 선택은 역적질과 다름없다’라는 과격한 비판을 가할 정도로 명분에 심히 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살펴보자.

 

 

(2) 중국사에서 황제가 가지는 의미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제가 가지는 의미는 지대하다. 그냥 단순히‘한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직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동양에서는‘天子’로 대변되며 백성들의 삶을 진심으로 보살필 수 있는 선택된 인간만이 天命을 받아 오를 수 있는 거룩한 자리였고, 서양에서는 로마 시대 이후 대륙의 진정한 지배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존엄한 호칭이었다. 특히 삼국지의 경우 시황제가 황제를 칭하고 그것을 유씨가 이어받아 무려 400년 이상의 기간을 대륙을 지배하면서 황제는 곧 유씨라는 확고한 사상을 구축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조비의 선양으로 이 같은 사상이 무너졌지만 다행히 소열제 유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전통과 개혁 사이의 대립관계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동맹국 손권이 황제를 칭했고 촉이 이를 인정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이제 더 이상 황제는 유씨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기존의‘거룩한 자만이 오를 수 있는 존엄한 자리’에서‘대륙의 지배자로서 힘 있는 자가 차지하는 최고의 자리’로 사상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제갈량의 절맹호의는 사실상 漢의 멸망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참고자료 : 조조는 왜 찬탈자로 불리는 것일까?

 

 

(3) 절맹호의의 결과

 

제갈량이 무슨 핑계를 댔든 간에 손권이 황제로 인정받으면서 양국간 정치관계는 큰 변화을 겪는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위나라 영토의 분할이다. 제갈량은 진진을 보내 손권의 즉위를 축하했고 그 자리에서 양국은 함곡관을 경계로 위나라 영토를 동/서로 분할하는 협약을 맺는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손권이 황제였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계속 왕으로 남아있었다면 황제를 상대로 영토를 분할하는 일은 명분상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륙의 지배권을 갖고 있는 황제가 두 명이 되었으니 손오는 촉한과 대등한 입장에서 영토를 소유할 자격이 있었고 그것은 유방 이후 대륙의 지배권을 독점하고 있던 漢이라는 존재를 촉한과 손오 모두가 거부했다는 의미가 된다.

 

漢을 계승했다는 촉한의 입장에서 어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하지만 제갈량은 현실을 위해 명분을 굽혔고 이는 매우 굴욕적인 일이었음에 분명하다. 그 후 손권은 독자적으로 공손연에게 사신을 보내는 등 완전한 주권을 가진 국가의 황제로서의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3. 평가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이라 한다)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헌법에도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섬으로 되어 있으며 6.15 공동선언이나 기타 북한과의 협정 역시 국가간의 조약이 아닌 신사협정 정도로 바라보고 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순간 한반도의 분열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북한 문제에 개입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제갈량의 절맹호의가 마치 이와 비슷한 사례이다. 명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촉한 대다수의 신료가 주장했던 것처럼 손권의 칭제를 인정해서는 안됐다. 하지만 제갈량은 그 모든 반발을 잠재우고 자신의 결단에 의해 손권과의 동맹을 유지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현명한 결단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漢의 종말을 선언하는 비극적인 일이었다. 유방과 광무제로 이어지는 漢의 전통은 더 이상 사람들을 감화시킬 없는 구시대의 산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신하들에게 절맹호의를 반포하고 진진을 축하사절로 보낸 후 제갈량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선제의 영정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절맹호의는 촉한에게 있어 대세에 굴복한 굴욕적인 사건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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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begagi/5017223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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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욜롱

2013.08.08
11:16:24
(*.124.224.111)
좋은 글 잘봤습니다.

제갈량으로썬 고뇌되는 결정이였을 것같네요. 오나라없인 위나라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한의 전통을 위해선 또다른 천자는 없어야하는데 그것도 위반하게되니 어느결정을 하더라도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아마 손권은 이걸 계산하고 칭제한게 아닌가 싶네요.

이런 결정을 해서라도 유지시켰던 나라가 263년에 망했으니 더욱 허망하게 느껴지는 결말이네요.

망탁조의

2013.08.08
11:17:12
(*.232.243.197)
하지만 대륙의 지배권을 갖고 있는 황제가 두 명이 되었으니 손오는 촉한과 대등한 입장에서 영토를 소유할 자격이 있었고 그것은 유방 이후 대륙의 지배권을 독점하고 있던 漢이라는 존재를 촉한과 손오 모두가 거부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현명한 결단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漢의 종말을 선언하는 비극적인 일이었다. 유방과 광무제로 이어지는 漢의 전통은 더 이상 사람들을 감화시킬 없는 구시대의 산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제갈량의 절맹호의가 한의 전통을 구시대로 전락시켰는지,
아니면 이미 한의 전통은 사멸했기에 제갈량이 그것을 취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합니다.

조조가 죽고 위나라 신료들이, 한나라 충신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설까봐 국상을 발표하지 못했는데 가규과 과감하게 국상을 발표했고 정작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선양 과정 자체도 굉장히 신속하고 큰 저항 없이 이뤄졌는데다 구품관인법으로 한나라 관료들을 위나라 정부에 흡수했으니, 이미 이 시점에서 한의 전통은 사실상 종말을 고합니다.

한나라의 질서에 최종 치명타를 가하여 그 전통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사람은, 제갈량과 손권이 아니라 조비로 봄이 옳은 것 같습니다.

선비욜롱

2013.08.08
11:18:29
(*.124.224.111)
업친 격에 덥친 격이라 볼만한 여지도 있죠.

미백랑

2013.08.08
11:29:28
(*.233.63.81)
당연히 漢 자체는 조비 선양으로 망했죠. 하지만 그 뒤를 계승하겠다며 국호도 한이라고 고른 촉이

[아니면 이미 한의 전통은 사멸했기에 제갈량이 그것을 취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합니다.] ← 이런 행위를 했다는 거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입니다.

제가 말미에 쉽게 예시를 들어놨죠. 남북한의 관계라고. 지금 분단된지 50년이 넘어갔는데 이제 북한과 합치기 싫다는 여론이 많아져서 10차 개정헌법에서 통일조항 빼버리고 영토조항 개정해서 한반도 이남으로만 대한민국으로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 행위라는 겁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한 행위죠.

망탁조의

2013.08.08
11:35:20
(*.232.243.197)
취하지 않은게 아니라 취하지 못한 것 같은데,
이건 제가 단어 선별을 잘못했군요.

미백랑

2013.08.08
11:37:53
(*.233.63.81)
취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신다면 본문 논지와 얼추 비슷해지죠. 명분이 현실 앞에 굴복한 셈이니까요. 애초에 유비가 황제자리에 오를 때 했던 말이 '끊어진 한의 전통을 되살리겠다' 이거인데, 정작 후대에 가서는 대세에 못 이겨서 또 한 명의 황제를 인정해버리죠. 여러 모로 촉에게는 굴욕적인 일이라고 봅니다.

맘평화

2013.08.09
09:56:44
(*.129.54.218)
뭐 개인적으로 이거 진짜 굴욕아닌가 하고 꼬투리 잡아 비난하면 마속과 더불어 가장 변명할 꺼리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마속 건 보다는 나은게

전략의 축을 하나 잃고 나서는 이것 밖에 답이 없었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굴욕 당한다해서 뜻을 못 이루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실리론이 전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북벌 성공한 다음 위 세력 어느 정도 꺽으면 오를 칠 생각을 했을 꺼라 생각하는 지라 제갈량이 북벌을 성공 못 시킨게 촉 때문에 아쉬운게 아니라

그 다음에 전개될 삼국지 얘기가 삼국지 연의보다 재미 있었을 것 같아서 그걸 왠지 못 본 것 같아 아쉽다는 1인 입니다. 삼국지 연의 읽다 보면 이제 겨우 틀 잡아 놨는데 북벌 좀

하다가 이야기 끝납니다. 뭐 정비석씨 버전은 얘기 들어 보니 북벌 다음에 한 장으로 요약하고 마무리 지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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